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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천오백자연애상담

여자인 제가 먼저 고백했는데, 종교 때문에 거절당했어요.

by 무한 2018. 2. 16.

이건 ‘여자가 먼저 고백’한 것이나 ‘종교 때문에’ 라기보다는, 그냥 별로 안 친하며 호감이 크지도 않았기에 그런 결과가 나왔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공정씨와 내가 어찌어찌 알게 되어 연락을 주고받게 되었는데, 그저

 

“잘 잤어요? 오늘 하루도 힘내서 보내요~!”

“밥 먹었어요? 점심 맛나게 드세요~”

“응 나도 월요일 오후 괜찮아. 그럼 저녁에 볼까?”

“나도 오늘 친구 만나~ 너도 친구 잘 만나고 잼난 시간 보내~”

 

정도의 이야기를 얼마쯤 나누다 내가 고백을 했고, 공정씨 입장에서 날 봤을 땐 그냥 ‘아는 남자1’ 정도의 의미 외에는 뭐가 없었기에 ‘나쁘진 않지만 연애하기에는 좀….’하는 생각을 하게 된 거라 보면 될 것 같다.

 

여자인 제가 먼저 고백했는데, 종교 때문에 거절당했어요.

 

 

공정씨는 내게

 

“전 그동안 제게 호감 표현을 한 사람 중에서 저도 호감을 느끼는 사람을 만나왔거든요. 그런데 이번엔 생전 처음으로 제가 먼저 더 적극적으로 행동했던 건데, 결과가 이러니 혼란스럽네요. 혹시 제가 너무 들이댔다던가, 아니다 싶은 행동을 했다던가 한 거라면 좀 알려주세요.”

 

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그 지점에서 문제를 찾자면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것’에 너무 열중한 나머지 먼저 만나자는 말, 사귀자는 말 등을 성급히 했으며 친해지는 과정보다 ‘빨리 결과를 알아보는 일’에 더 신경을 썼던 것.

 

이라 할 수 있겠다. ‘상대가 사귀고 싶을 정도로 좋은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연애를 하고 싶은데 마침 상대가 나타났고, 네 번 정도 만났으니 승부를 보려 한 것’이라 할까. 내게 별 교류가 없던 학교 여자 후배에게 어느 날 갑자기 연락이 와선, “오빠! 오늘 저녁에 맥주 한 잔 할까요?”라는 식의 대화로 세 번 정도 만났는데, 그 후 갑자기 여후배가 자기와 사귀는 거 어떻게 생각하냐며 묻는 느낌이다. 아직 서로, 서로가 누군지 잘 알지도 못하는데.

 

 

내가 걱정하는 건, 현재 공정씨의 고백을 거절한 상대에게 다시 연락을 할 경우 다시 잘 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이런 식의 ‘연애 이력 하나 더 추가하기’의 연애가 과연 공정씨에게 도움이 될까 하는 점이다. 이대로라면 남친이 생겨도 그와의 관계는 얕으며 그냥 외로움을 지우기 위한 ‘연애를 위한 연애’를 하게 될 수 있는데, 그런 관계는 대략 6개월에서 1년 정도의 기간만 지나도 권태롭게 느껴질 수 있다. 둘의 보금자리를 마련한 게 아니라, 상대의 집을 아지트 삼아 자주 찾는 것에 더 가까우니 말이다.

 

게다가 공정씨의 경우 진짜 속마음은 그렇지 않으면서 외향적으로 꾸며서 보여주거나 그저 ‘긍정적인 게 좋은 것’이란 생각으로 웃는 얼굴만 보여주곤 하기에, 그냥 그런 채로 꽤 길게 유지될 수 있다는 문제도 있다. 공정씨의 과거 연애를 돌아보면, ‘그 사람은 진짜 내가 최고로 애정했던 사람’이라 말할 수 있는 남친이 뚜렷하지 않으며, ‘그저 어쩌다 짝꿍이 되었던 옆자리의 사람들’이란 느낌이 더 강하지 않은가.

 

이성에게 인기가 많아 연애를 시작하는 게 크게 어렵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힘든 연애만 하는 사람들을 보면, 마치 눈에 띄는 외국인이 대시를 하면 수락해서 만나며 감정적인 부분들은 친구들의 집단지성을 사용해서 풀고, 말이 안 통하는 부분들은 얼마간 참다가 나중에 한 번씩 폭발해 이별로 위협하는 모습이 보인다. 그것에 상대가 사과하면 일단 사과를 받았으니 됐다고 생각하며, 또 얼마간 데이트하며 지낸다. 그렇게 3년을 만나도 무릎 이상 깊이의 얘기는 못 하지만, 어쨌든 둘은 사귀고 있는 것인데다 이별하기는 싫어 얼마간을 더 만나곤 한다. 그래 봐야 결국은 좁혀지지 않는 둘의 관계로 이별을 맞이할 가능성이 높지만 말이다.

 

연애가 고시 같은 거라 한다면 공정씨는 여러 가산점으로 인해 단기간에 합격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산점의 도움으로 합격한 것인 까닭에 실무에 대한 이해는 낮을 수 있으며, 사실 진짜 하고 싶어서 한 일이 아니라 가산점을 잘 받는 곳에 지원한 까닭에 밥벌이의 괴로움만을 느끼게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난 이제, 공정씨가 ‘단기 합격’이란 목표는 좀 내려두고, ‘평생직장’이 될만한 곳인가도 함께 보며 겪어 보다 판단하길 권해주고 싶다. 내가 이런 얘기를 하면 공정씨는

 

“네네. 근데, 이번 상대와의 가능성이나, 다시 연락해봐도 좋은지에 대한 얘기는 안 해주시나요?”

 

하며 급한 마음을 참지 못할 것 같은데, 둘의 관계는 5일 정도 연락을 하지 않고 지냈던 그때 이미 혼수상태에 빠져있었다는 대답을 해줘야 할 것 같다. 다음 사람과의 관계에선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냐, 수동적으로 대응할 것이냐’ 둘 중 하나 골라 포지션만 잡으려 하지 말고, 아침에 눈 뜨면 먼저 찾고 하루종일 마음 쓰게 되는, 아기강아지 분양받았다는 마음으로 둘의 관계를 돌봐봤으면 한다. 그러면 시나브로 무럭무럭 자라 위안되고 위로받는, 둘도 없는 사이가 되어 있을 테니 말이다.

 

자, 오늘 준비한 얘기는 여기까지다. 새해에는 노멀로그 독자분들의 생활에 생각지도 못했던 좋은 일들이 정신 차릴 새도 없이 펼쳐지길 바라며, 썸 탄 다는 얘기로, 연애 시작했다는 소식으로, 청첩장으로, 아이가 태어났다는 자랑으로 많이들 염장을 질러 주셨으면 좋겠다. 아, 이제 연애를 시작했다거나 결혼했으니 더는 물어볼 것 없다며 새벽에 카톡 게임 초대나 보낼 경우, 난 여린 마음 동호회 회장이라 즉시 차단하고 노트에 닉네임을 빨간색으로 적고 있다는 얘기를 전하며, 햄볶으시느라 정신없으시더라도 잠시나마 ‘아, 옛날에 노멀로그인가 모놀로그인가 하는 게 있었지….’하며 우리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겨주셨으면 한다. 아무튼 그럼, 다들 새해 복 그득그득 받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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