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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5)

허무하게 끝난 첫 연애, 돌릴 수 없을까요? 외 1편

by 무한 2015. 10. 2.

규환씨, 난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낚시를 했어. 얼마 전 추석 때 내가 이 얘기를 하니까, 사람들이 좀 이상하게 생각하더라. 혼자 다녔냐, 미끼는 어디서 샀냐, 대체 왜 낚시를 하게 되었냐, 등의 질문도 이어지고 말이야. 동네 밭 옆에 거름 모아둔 곳에서 지렁이 잡아다가 자전거 타고 낚시 가는 게 이상한 건가?

 

여하튼 어느 날은 그렇게 낚시를 하다가, 정말 큰 붕어를 잡게 된 거야. 지금 생각해 보면 별로 특별할 것 없는 붕어인데, 당시엔 어릴 때니까 엄청 커보였지. 난 녀석을 잡자마자 짐을 다 꾸려 집으로 돌아왔어. 녀석을 담았던 봉지의 물은 오는 동안 다 새고, 집에 왔을 땐 얼른 녀석을 물에 넣어주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 난 욕조에 물을 받아 거기서 키울 생각이었어.

 

그런데 엄마가, 안 된다는 거야. 내 생각에 지금 이 붕어는 정말 어마어마하게 크고 귀한 녀석인데, 엄마는 그냥 갖다 놔주래. 해가 진 이후라 다시 가서 놔줄 수도 없는 상황이었는데, 엄마는 뭘 어떻게 하든 절대 욕조에 물을 받아 녀석을 키울 순 없다는 거야. 그렇게 내가 애원하고, 부탁하고, 빌었지만 엄마는 절대 안 된다고 하셨어. 때문에 그보다 더 실망할 수 없을 정도로 실망한 난, 울며 녀석을 현관문 밖에다 집어 던졌지. 그 이후론 기억이 잘 안 나. 내 태도에 분노한 엄마가 옆에 있던 흰색 옷걸이를 들곤, 무차별 폭격을 시작하셨거든.

 

저런 꼬마를 오늘 규환씨가 목격하게 된다면, 어떤 생각이 들 것 같아? 그 꼬마가 좁은 생각으로 요동치는 감정을 어쩌지 못한다는 것도 보이고, 정말 아무 것도 아닌 일로 잘못을 저질러 혼나는 것도 보이잖아. 그 외에 당장 욕조에 물을 받아 고기를 키운다고 해서 대체 무슨 이득이 되는지, 욕조에 붕어를 키우느라 가족들이 겪어야 하는 불편은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 등에 대해서도 생각과 대책이 없는 까닭에 그냥 답답해 보일 수도 있고 말이야.

 

규환씨의 연애를 보는 내 심정이 그래.

 

 

 

1. 허무하게 끝난 첫 연애, 돌릴 수 없을까요?

 

규환씨는 상대라는 사람이 좋아서가 아니라, 상대와 연애하고 싶어서 시작한 거야. 규환씨는 연애를 하고 싶었는데 마침 그때 상대가 눈에 들어오니, 일주일 정도 열심히 들이대서 관심을 끈 뒤 고백했고, 연인이 된 거잖아. 내 생각엔 이게 가장 근본적인 문제 같아.

 

저렇게 시작했다 하더라도, 이후 서로가 어떤 사람인지, 요즘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엇이 되고 싶은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를 알아가면 괜찮아. 그런데 사귀기로 한 이후, 규환씨는 또 상대가 얼른 연애에 올인하며 풍덩 빠지기만을 바랐거든. 그걸 단계별로 정리하자면 아래와 같아.

 

ⓐ 상대와 얼른 사귀게 되길.

ⓑ 상대가 어서 연애에 풍덩 빠지길.

ⓒ 상대와 내가 스킨십 진도를 다 나갈 수 있길.

ⓓ 권태와 허무.

 

붕어를 욕조에서 기르는 것에 대한 허락을 받았다고 해보자고. 그런데 그냥 놔두면 죽으니까 산소도 공급해 줘야 하고 먹이도 넣어줘야 하잖아. 그래서 열심히 수소문 해가며 장비도 구하고 사료도 구해서 넣어줬어. 그런데 키우다 보니 물갈이도 일주일에 한 번은 해줘야 한다네? 그래서 물도 갈아줬어. 하지만 그렇게 기르다 보니, 이게 힘들기만 하고 아무 의미도 없는 거야. 그래서 어느샌가부터 방치해 두기 시작했고, 결국 붕어를 돌보는 건 엄마의 일이 되고 말았지. 엄마도 지쳐서 이제 그만 갖다 놔주라는데, 이젠 갖다 놔주는 것도 귀찮아. 뭐, 대략 이렇게 변하듯 규환씨의 마음이 변한 거지.

 

그녀가 헤어짐을 말하면서, 또 헤어지고 나서 규환씨에게 한 말이 뭐야?

 

"처음엔 집중하다가, 시간이 지나며 소홀해진다. 막대하고, 답장도 제대로 하지 않는다."

 

규환씨는 저 말을 곰곰이 생각해보며 반성했어? 아니잖아. 규환씨로 인해 상대가 힘들었을 거라는 것에 대한 죄책감보다, 재회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에 대한 분노가 더 컸잖아. 그래서 그녀에게 위해주는 척 하지 말라는 얘기를 하기도 했고, 앞으로 연락도 하지 말라고 말하기도 했지.

 

그래도 가장 많이, 또 열정적으로 사랑했던 사람이라 다시 만나고 싶다고? 잘 생각해 봐. 규환씨는 그녀를 가장 많이, 열정적으로 사랑했던 게 아니야. 그냥 이 연애에 앞뒤 안 가리고 올인하며 추격본능을 발휘해 목적하는 바를 달성하고자 헌신했던 거지.

 

규환씨는 그녀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어. 때문에 신청서도 휑하고, "~일 것으로 예상함.", "~한 것 같음."같은 추측성 대답만 적혀있지. 이건 글솜씨가 없어서 짧게 적었다고 볼 수 없는 거야. 그녀라는 한 사람에 대한 관심이 없었기에 알게 된 것도 없는 거라고 봐야 하는 거지.

 

"밤만 되면 연락하고 싶어서 미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제 제 잘못 인정하고 미안하다고 카톡도 보냈는데, 답장은 없네요. 하하…."

 

힘들지? 그런데 그녀는 더 힘들었을 거야. 그녀가 규환씨보다 더 힘들었을 수도 있다는 것까지 보라고. 이게 안 되면 다시 만날 가능성이 없는 게 아니라, 만나서는 안 되는 거야. 난 규환씨에게서 그녀에 대한 애정을 찾아볼 수가 없어. 지금 규환씨가 그녀를 다시 잡고 싶어 하는 건, 그녀에 대한 애정이 있어서가 아니라 재회에 대한 집착이 있어서거든. 정말 애정이 있는 사람이라면, 다시 만나고 싶은 전 여자친구에 대해 "저 여자의 의도는 무엇인지…." 따위의 문장을 적지 않을 거라고 난 생각해.

 

헤어진 뒤 규환씨는 그녀가 경악할 정도의 말들을 퍼붓기도 했잖아. 그렇게까지 해놓고, 이제와서 미안하다고 카톡 보냈는데 답장 없다고 또 그녀를 나쁜 사람으로 만들진 않았으면 좋겠어. 언제 또 변할지 모르는 규환씨의 감정에 맞춰주지 않으면 나쁜 사람이고, 당장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다 상대의 잘못인 건가? 지금까지 한 번도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이거나 그녀의 선택을 진심으로 존중한 적 없다면, 이번에라도 그래봤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어. 규환씨가 원했던 '재회의 방법'이 아니라서 미안하지만, 난 규환씨 자신을 위해서라도 그녀와 쉽게 재회하진 않는 게 좋을 거라 생각해.

 

헤어지기 전 규환씨는 솔직한답시고 그녀에게 "솔직히 너에 대한 마음이 식은 게 사실이다."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잖아. 지금 또 순간의 감정에만 이끌린 채 재회를 하게 된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재회를 요청할 땐 정말 내가 다시 잘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보니, 아닌 것 같다."라는 말로 그녀를 두 번 죽이게 될 수 있어. 그녀의 마음과 의도를 알려고 노력하는 건 접어두고, 그녀에게 규환씨는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먼저 생각해 봐. 그럼 규환씨도 답을 구할 수 있을 거야.

 

 

2. 매뉴얼 잘 봤어요. 그런데 막상 하려면 안 돼요.

 

주은씨, 연애 말고 '아는 남자'와의 관계부터 만들어 보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주은씨의 이전 사연을 읽고 전 주은씨에게 필요한 게 '첫 걸음'이라 생각했는데, 두 번째 사연을 받고 보니 주은씨는 아직 일어서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남을 잘 믿지 못함. 말이 많은 편이 아님. 개인적으로 표현을 잘 못해서 그렀지, 속으로는 정이 많다고 생각함."

 

이론과 실무에 큰 차이가 있듯, 대인관계도 그렇거든요. 누구나 속으로는, 영화를 보며 자신이 주인공이 되었을 때 이러이러한 걸 할 수 있겠다고 상상할 수 있는 것처럼, 그렇게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해보면, 달라요. 피겨선수 김연아 경기 보신 적 있으시죠? 그 경기 보면 잘하는 몇몇을 제외하고는 쉬운 것처럼 보이는 길에서 넘어지거나 점프 뛰다가 엉덩방아를 찧잖아요. 그걸 보면서

 

'밥 먹고 매일 저것만 탈 텐데 왜 아직도 저기서 넘어지나.'

'같은 피겨 선수인데 실력이 너무 차이나네.'

'내가 스케이트를 타는 거였으면 저 쉬운 동작에서 안 넘어지지.'

 

라는 해보신 적 없으신가요? 아니면 축구를 보다 결적적인 찬스에서 헛발질을 하는 장면에서 한숨을 쉬거나, 야구를 보다 공을 놓치고 마는 외야수를 보며 답답하게 생각하신 적은 없으신가요? 그게 참 그렇게 볼 때는 쉬운데, 막상 직접 해보면 느낌이 완전히 다릅니다.

 

'난 빙판 위에 서 있기도 힘든데, 이 빙판에서 걔들은 대체 무슨 짓을 했던 거지?'

'저 수 많은 사람들이 나를 쳐다본다고 상상만 했을 뿐인데도, 심장이 멎을 것 같아.'

 

등의 생각이 들며, 상상만 하고 있을 때와 달리 급격히 위축되기 마련이거든요.

 

주은씨가 곤란을 겪고 있는 것이 바로 저 지점입니다. 그래서 전 전에 일단 빙판을 한 바퀴 돌아보라고 권했던 건데, 주은씨는 아직 스케이트화도 신고 있지 않은 상태였던 것 같습니다. 상대에게 말을 걸 자신도 없고, 할 말도 없으며, 계속 상황이 더 안 좋아지는 것 같아 포기하려는 생각을 하는 중이라면, 연애는 좀 나중으로 미루고 '아는 사이'로 지내는 게 먼저인 것 같습니다.

 

멍석이 다 깔렸는데도 말 한 마디 못 한 채 더듬이로만 상대를 감지하지 마시고, 날씨 얘기나 밥 얘기라도 해보시길 권합니다. 식사시간에 만나면, 식사 하셨냐고만 물어도 됩니다. 그러고는 거기서 일 할 경우 식사를 어떻게 하는지 물어도 되고, 거기에 있는 걸 먹는지 아니면 나가서 사 먹는지 궁금했다는 식으로 물어도 됩니다.

 

위와 같이 말 거는 것 자체가 아예 불가능하며, 그냥 '쳐다본다' 거나 '멈칫했다' 같은 걸로만 혼자 시나리오를 써나가시면, 저도 어떻게 도울 방법이 없습니다. 뭘 사오는 문제라면 제가 가서 대신 사올 수 있습니다만, 제가 가서 그 사람과 친해질 거 아니지 않습니까? 말도 못 거신다면, 또는 그가 먼저 말을 걸었는데도 더 길게 대화를 못 하신다면, 거기서부턴 종교의 영역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새벽기도나 108배 뭐 그런 걸로 말입니다.

 

꼭 지금 그 상대와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어도 됩니다. 누구라도 괜찮으니, 이성과 10분 이상 대화는 걸 목표로 이야기를 해보시기 바랍니다. 아니면 모임 내에서 처음 보는 사람과 인사를 하고 통성명을 하고 간단한 대화를 나눠보는 것도 괜찮습니다. 주은씨는 이번 상대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이미 그 쪽도 저를 알고 있고…."

 

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그럴 리가 없습니다. 단골손님으로 와서 얼굴을 기억하는 게 주은씨에 대해 '아는 것'은 아니잖습니까? 그러니 주은씨 혼자 속으로 생각하는 것들을 상대 역시 똑같이 속으로 그렇게 생각할 거라 상상의 날개만 펴지 마시고, 날개는 잠시 접으신 채 땅에 내려와 발 딛고 냉정하게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상대는 주은씨 이름도 모르고, 뭐 하는 사람인지, 뭘 좋아하는지, 가족관계는 어떻게 되는지, 이번 주말에 약속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릅니다.

 

해 보기 전엔 알 수 없는 일을 두고,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며 걱정만 하고 있는 건 시간낭비일 뿐입니다. 주은씨가 첫 사연을 보낸 이후로 꽤 많은 시간이 흘렀는데, 그때부터 지금까지 주은씨가 한 건 상대가 일하는 곳에 손님을 찾아가 분위기 몇 번 살피다가 나온 것 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 눈이 마주쳤는데 창밖을 보는 척 했다가 다시 상대가 쳐다봐서 안 봤더니 그것 때문에 상대가 서운했는지 다시 쳐다보는 일이 줄었다는 눈 아픈(응?) 얘기 같은 건 그만 하시고, 입을 여시길 바랍니다. 화이팅.

 

 

풍성한 구름들이 대략 2배속의 속도로 흘러가는, 올해 들어 가장 신비한 하늘의 모습을 한 금요일이다. 이런 날엔 나가서 사진을 찍어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이렇게 글을 쓰고 있게 되었다. 사실 금요사연모음답게 한 편을 더 준비했었는데, 얘기를 하면 할수록 답답해지기도 하고 계속 글이 길어지는 사연이라 일단 다른 곳에 옮겨 임시저장을 해두었다. 그건 나중에 오답노트로 발행하기로 하자. 자 그럼, 다들 즐거운 불금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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