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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5)

그녀의 나쁜 남친을 몰아냈습니다. 그런데 제 기회는….

by 무한 2015. 9. 25.

인호씨, 그녀는 인호씨와 똑같은 '사람'이야. 이걸 그저 적혀있는 문자로만 생각하지 말고, 여러 생각을 하며 느껴봐. 느껴보라는 말이 좀 이상하긴 한데, 여하튼 느껴야해. 그녀도 인호씨처럼 생각할 줄 알고, 인호씨처럼 감정이 있으며, 인호씨처럼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중이야. 딱 10분 정도만, 인호씨라는 사람을 완전히 지워버리고 인호씨가 그녀가 되었다고 생각해봐. 그럼 그녀가 하는 모든 것들도 인호씨가 하는 모든 것들만큼이나 의미가 있으며 그녀도 인호씨처럼 생각할 수 있다는 게 느껴지지?

 

그녀의 입장에서 인호씨를 바라보기도 하고, 또 그녀의 입장에서 미래를 그려보기도 하며, 또 그녀의 입장에서 연애나 대인관계까지를 생각해 봐. 인호씨가 바라보는 그녀의 입장에서 말고, 정말 인호씨가 그녀가 되었다고 생각하면서 바라봐 봐. 이러면 지금까지 그저 예쁜 인형처럼만 느껴지던 그녀가, 이젠 한 사람으로 느껴지지 않아? 인호씨가 느끼는 어떤 감정이든 그녀 역시 동일하게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봐봐.

 

내가 왜 뜬금없이 이런 이야기들을 꺼내며 시작했는지는, 아래에서 자세히 설명해 줄게.

 

 

1. 인형 조종술.

 

인형 조종술은 소설가 김동인에 대해 배울 때 나오는 말이야. 백과사전의 설명을 잠시 소개하자면, 아래와 같아.

 

"인형 조종술은 김동인이 말한 일종의 창작방법론이다. 위대한 예술가는 자신이 창조한 세계를 인형 놀리듯 자유자재로 조종할 수 있어야 한다는 데에서 유래된 개념이다. 즉 예술가는 마치 신이 세계를 창조한 것처럼 작품을 창조하고, 그렇게 창조한 세계를 마음대로 지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호씨가 예술가라면 합격일 거야. 인호씨는 철저히 시나리오를 다 짜고, 그 안에 포함된 인물들까지를 조종하려 하는 타입이거든. 상대에게 마음을 고백하기 전에는

 

'겨울에 눈이 내리면 고백 해야지. 그 전까진 이러이러하게 진행해 나가고….'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상대가 겨울이 되기 전에 인호씨의 친구와 사귀게 되었다는 걸 안 뒤엔

 

'그 친구가 어떤 사람인지를 확실하게 알려줘야겠어. 필요하다면 과거에 일어난 일들까지도 지금 일어난 것처럼 만들어 그녀에게 위기감이 들게 만들어야지.'

 

하는 생각으로 그 둘의 관계에 균열을 냈지. 예술가로서는 합격일지 모르겠지만, '친구'나 '연인'으로서는 아니야. 자신이 만든 시나리오대로 남들을 조종하려는 사람을 곁에 두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인호씨의 조작은 그녀에게 발각되었고, 결국 그 둘이 깨어지는 것과 동시에 인호씨와 그 둘의 관계도 끝나고 말았지. 그녀는 인호씨가 조작까지 해가며 이간질을 했다는 것에 치를 떨었고, 인호씨의 친구이자 그녀의 남친인 그는 조작까진 몰랐지만 어쨌든 인호씨의 폭로로 헤어지게 되었다는 걸 알았기에 절교했지.

 

사실 이 정도 경험까지 했으면 인호씨는 자신이 뭘 잘못한 건지 알아야 하거든. 그런데 여전히

 

"일 년 정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 년 정도 지나 그녀와 저의 관계가 다시 회복되면…."

"가능성이 없다면 만들어서라도 다시 도전하고 싶습니다."

"무한님은 어떻게 해야 회복이 가능하다고 보시는지요? 그리고 회복에 걸리는 시간은?"

 

따위의 이야기만 하고 있어. 깊은 관계의 가장 중요한 덕목인 신뢰와 진실성에서 탈락인데 무슨 가능성이 있고 회복이 되겠어. 그녀는 바비인형이 아니고, 또 연애라는 게 그녀를 인형이라 생각하며 앉혀 놓고 티파티 하는 거 아니잖아. 인호씨는 신뢰를 잃은 거야. 시간이 지나면 마음은 좀 괜찮아질지 모르겠지만, 깨진 신뢰가 저절로 다시 붙진 않을 거야.

 

 

2. 인호씨가 지금 생각하는 그게, 정말 사실일까?

 

의심해서 미안하지만, 난 인호씨의 말을 100% 다 믿을 수 없어. 추측과 상상이 많이 개입된 사연을 읽다 보면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들에 턱턱 걸리곤 하는데, 인호씨의 사연이 그렇거든. 이건 칼에 베인 상처냐, 아님 넘어져서 생긴 상처냐를 보는 것만큼이나 내게 명확한 일이기도 해.

 

인호씨가 사연에 이전에도 사연을 보낸 적 있다고 해서 난 그걸 다시 열어보기도 했어. 그런데 그 사연과 이번 사연을 대조해 보면, 역시나 인호씨가 마음대로 각색하고 편집한 부분들이 금방 눈에 띄더라고. 이전 사연에는

 

"그녀가 제 컵을 깨서 비싼 컵으로 사준 적도 있고…."

 

라는 부분이, 이번 사연에서는

 

"그녀는 제게 컵을 선물해준 적도 있고…."

 

라고 고쳐져 있더라고. 평소에도 그녀가 인호씨에게 호감이 있었다는 증거로 둔갑되어서 말이야.

 

인호씨를 비난하거나 탓하려는 건 아니야. 내가 이 얘기를 꺼낸 건, 인호씨의 위와 같은 태도가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태도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걸 말하기 위해서야. 인호씨가 사연에 적은 대부분의 말들이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어차피 얼마 안 가 그런 일이 벌어졌을 겁니다."

"아마도 그것 때문은 아닐 겁니다."

"그건 정말 확신합니다."

"저는 그에게 그런 존재였습니다. 그러니 제게 그런 거겠죠."

 

라는 거 알아? 인호씨가 내 동생이었다면, 난 인호씨를 강제로 잡아 끌어서라도 그 자의식과 상상의 나라에서 끄집어냈을 거야. 인호씨가 하는 말 8할이 추측이고 상상이거든. 그러면서 현실에서의 남의 모습을 자신의 이상적인 잣대에 맞춰 재단한 후 혼자 맞서겠다며 나서기도 하고, 스스로를 무결한 상태의 사람이라 여기며 타인과의 다름을 황당하게도 '상대의 인간적인 결점'이라고 해석하기도 해. 이게 뭐야? 사실 객관적으로 따지자면 이번 사건에서 가장 나쁜 행동을 한 건 인호씨잖아?

 

여기서 보기엔 그녀가 인호씨와 만나 밥을 먹는 거나 다른 남자와 만나 밥을 먹는 거나 그냥 '친한 사이'라서 그런 것처럼 보여. 그런데 인호씨의 해석은 그렇지 않지.

 

- 그녀가 다른 사람과 밥을 먹는 건 그냥 친구니까 그러는 것.

- 그녀가 나와 밥을 먹는 건 데이트.

 

저렇게 생각해 버리거든. 사람이니까 그럴 수 있는 게 당연하긴 한데, 인호씨는 상대도 당연히 인호씨와 같은 생각일 거라고 너무 굳게 믿어버려. 그것을 사실이라 여기며 다른 일들까지 연결해서 생각해버리기도 하고. 이래버리면 이때부턴 그냥 판타지의 세계로 들어가 버리는 거야. 현실을 봐. 인호씨가 '그녀도 그럴 거야'라고 만들어 낸 판타지 말고, 현실에서 그녀가 인호씨에게 한 마지막 말이 뭐야?

 

"난 널 다신 안 볼 거야."

 

저 말까지 들었으면 정신이 번쩍 들어야지. 회복의 가능성? 회복에 걸리는 시간? 가능성이 없다면 만들어서도? 지금이라도, 정신 차리자고.

 

 

3. 인호씨가 원하는 것, 내가 권하는 것.

 

인호씨가 내 동생이라 생각하며 솔직한 얘기를 좀 해볼게. 인호씨가 이전 사연을 보내며 신청서에 적었던 말 있잖아.

 

"전 특히 여자가 설레여 하는 포인트를 발견할 때는 멈추고 기록하며 여자가 남자에게 느끼는 매력의 본질을 파악하는 연습을 했습니다.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싶으면서도 제게 흥미가 생기셨죠?"

 

인호씨처럼 그러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야. 특히 스물넷을 전후한 남성대원들이 자주 그러는데, 그렇게 나오는 대원들을 볼 때마다 난

 

'이건 또 어떤 종류의 이상한 사람인가?'

 

하는 생각밖에 들지 않아. 몇 년 후에 읽으면 손발 로그아웃할 게 분명한 흑역사를 생중계로 목격했다는 생각을 하지, 특별하다거나 흥미롭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곧 서른이 될 대원들 중에도 저러는 대원이 있는데, 그런 대원을 보면서는 그냥 깊은 한숨만 나올 뿐이고 말이야.

 

지금 인호씨가 바라는 건 이 게임을 유리한 국면으로 만들어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이겠지. 찾아가서 사과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또는 다시 볼 때까지 연락을 하는 게 좋은가 안 하는 게 좋은가, 사과를 한다면 어디서 만나 무슨 얘기를 꺼내는 게 좋은가, 만약 그녀의 반응이 부정적이라면 그땐 어떤 차선책을 마련해야 하는가, 같은 거 말이야.

 

난, 지금 당장 어떤 수를 써서 위기를 넘기려는 건 의미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 정말 운이 좋아 그녀가 인호씨의 마음을 받아준다 하더라도, 연애를 게임처럼 생각하며 인호씨가 바라는 대로 그녀를 조종하려는 태도를 보이면 그녀는 다시 치를 떨게 될 거야. 인호씨 혼자 짐작하곤 그걸 사실로 여긴 채 그녀를 추궁할 때면 그녀는 목 졸리는 느낌을 받을 거고, 진심을 털어 놓지 않은 채 그저 유리한 상황을 만들기 위해 연기하는 인호씨의 태도에 고개를 젓게 될 거야.

 

인호씨, 일단 현실로 나와. 나도 꼬꼬마시절을 문학소년으로 보내서 상상하는 취미도 있고 시나리오 떠올려 보는 것도 좋아하거든. 그런데 현실은 영화나 소설, 만화와 달라. 현실을 그렇게 살려고 하면 인호씨는 계속 감독이나 작가 역할을 하려 들게 될 거고, 상대는 그냥 인호씨 시나리오에 맞춰서 연기해야 하는 캐릭터 정도로만 여기게 될 거야. 꼭 연애가 아니라 인간관계에서도 그래. 인호씨가 친구에 대해선 한 말을 봐봐.

 

"그 친구에게 저는 그저 기르는 개였습니다. 개가 주인을 무니 내팽개친 거고요. 저 혼자만 그를 친구로 생각했었고, 그 친구는 전혀 아니었습니다."

 

아니야. 이건 너무 나간 상상력이고, 또 너무 극단적으로 내린 결론인 거야. 현실을 자꾸 저런 식으로만 생각하지 마. 그리고 인호씨는 현실을 살고 있는 거니까, 합리화 하며 정신승리 하거나 마음대로 왜곡해 결론 지으며 그걸 사실이라 믿지 마. 그래버리면 현실에서 인호씨의 판타지와 조금이라도 어긋나는 지점을 볼 때마다 관계들을 정리하는 일이 벌어지고 말 테니까.

 

 

인호씨가 내게 보낸 신청서를, 절대 인호씨의 전부이자 인호씨의 굳건한 생각이라 할 수 없지? 그건 인호씨의 여러 모습 중 한 부분에 대해 적은 글이며, 여러 마음 중 딱 그 때의 심정으로 적어 보낸 것일 테니까. 누구나 그렇듯 인호씨도 늑대와 같은 모습이 있는 반명 양 같은 모습이 있을 거고, 누군가에게 목숨이라도 걸고 사랑고백 하려는 모습이 있는 반면 누군가에겐 함부로 굴고 싶은 모습도 있을 거야.

 

다른 사람도 그래. 이걸 알아야 해. 인호씨가 보는 모습이 상대의 전부가 아니며, 상대도 인호씨 만큼이나 풍부한 감정과 여러 생각들을 가지고 있어. 그런데 인호씨는 빙산의 일각이라 할 수 있는 상대의 모습에 여러 의미부여를 한 후, 그냥 본인 시나리오 속 캐릭터로 만들어 버린단 말이야.

 

드라마와 영화를 보며 연애를 분석한 적도 있다고? 정말 그걸 진지하게 여기며 지금도 그게 정답일 거라 생각한다면, 답이 없는 상황이 되는 거야. 영화나 드라마 속 모든 캐릭터가 사실은 한 사람일 수도 있는 거거든. 배트맨과 조커는 한 사람의 내면에서 나온 캐릭터잖아. 그걸 그대로 가져와 현실에서 배트맨과 조커의 옷을 주변 사람들에게 입힌 채 혼자 그들이 정말 그렇다고 여기며 대하면, 답이 없는 거잖아.

 

현실로 나와. 인호씨가 사람과 연애를 보는 태도를 그대로 가져와 내가 인호씨를 보면, 인호씨는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정도로 이기적이며 남을 쉽게 기만하는 사람으로 볼 수 있어. 인호씨가 그녀의 남친을 보며 '저런 문란한 나쁜 놈'이라고 분하게 생각했지? 나도 그런 시각으로 인호씨를 보면 인호씨를 욕할 수 있는 거라고. 

 

여기까지 읽고 뭔가 느낀 게 있다면, 그걸 털어 놓으며 그녀에게 사과해. 발가벗겨지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자신에 대해 솔직히 털어 놓으며 하는 사과만큼 상대의 마음에 가서 닿을 수 있는 사과는 또 없는 거거든. 이번만큼은 머리를 굴리지 말고, 투박하게라도 진심을 털어놔 봐. 그럼 그 결과가 어떻든, 그 일을 계기로 인호씨의 영혼은 한 뼘이나 더 자랄 테니까. 알았지?

 

자 그럼, 다들 풍성한 한가위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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