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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연애오답노트

바쁜 남자친구와의 한 달 연애

by 무한 2014. 11. 29.

바쁜 남자친구와의 한 달 연애

제가 매뉴얼을 통해

 

"말보다 행동을 보세요."

 

라고 말한 것은 분명 맞습니다. 그런데 그건 이쪽에서도 상대에게 잘 하며 상대의 행동을 보라는 얘기였지, 이쪽에선 무심하고 냉정한 태도로 팔짱 낀 채 있으면서 상대의 행동만 지켜보란 얘기가 아니었습니다.

 

시작이 너무 딱딱한 것 같습니다. 아래에선 좀 더 부드럽게 가보겠습니다.

 

 

1. 연애의 온도.

 

물이 섭씨 말고 화씨 몇 도에 끓는 줄 아십니까? 몰라도 괜찮습니다. 물이 화씨 몇 도에 끓는지 몰라도 라면이나 커피를 끓이는 데에는 아무 지장이 없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연애의 온도에 대해서는 좀 알고 있어야 합니다. Y양은 썸이 계속 가열되어 연애로 변할 때가 언제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건 바로,

 

전화기가 뜨거워 질 때입니다. 어제 제가 마트 문 닫을 시간쯤에 들러 한 팩에 만이천 원 인데 떨이로 두 팩 사면 만육천 원에 준다는 훈제삼겹살을 사가지고 집으로 올 때, 저희 단지 내에는 목적 없이 방황하며 전화통화를 하고 있는 한 어린 영혼이 있었습니다. 전화기를 붙든 채 미소를 지으며 서성이던 그 어린 영혼. 그냥 딱 봐도, 부모님이 계신 집에선 통화하긴 불편하니 집 밖으로 나와 썸남과 통화하던 영혼이 아니겠습니까?

 

제가 그러던 날들도 기억이 납니다. 이제 두 밤만 자면 공쥬님(여자친구)과 저의 기념일이기도 한데, 여하튼 당시 전 공쥬님과 썸을 타며 집 밖으로 나와 한참을 통화하곤 했습니다. 지금이야 뭐 망내 무료통화나 무제한요금제, 또는 m-VoIP 등의 서비스가 있으니 통화료가 크게 부담되지 않겠지만, 당시엔 오로지 온전히 통화요금을 부담하며 전화를 걸고 받는 방법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둘 중 한 사람이 전화를 걸어 오래 통화를 하게 되면, 중간에 꼭

 

"끊어 봐봐. 내가 다시 걸게."

 

라는 이야기를 하며 서로의 전화요금까지를 생각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이건 이제는 시간이 지났으니 말 할 수 있는 부분인데, 솔직히 저때 담이 자주 결려서 조금 힘들었습니다. 한 자세로 계속 통화를 하다 보니 피가 안 통하는지 팔이 떨어져 나갈 것 같을 때도 있었고, 전화기를 귀에 오래 대고 있어서 귓바퀴가 아플 때도 있었습니다. 또 날이 무척 추울 때엔 장갑을 껴도 손가락이 시리고 발가락이 얼어붙었는데, 당시 전 군대에서 전역한 지 오래 되지 않았을 때라 '혹한기도 버텼는데 이걸 못 버틸까.'하며 군인정신으로 버티기도 하였습니다. 그래도 그렇게 통화를 하고 집에 들어가는 길엔 마음속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듯 했고, 얼굴엔 미소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저는 보통 '썸에서 연애로 넘어가는 시기'에 저런 일들이 벌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좀 더 같이 있고 싶고, 좀 더 이야기를 하고 싶은 마음. 전화 끊기가 아쉬운 까닭에 먼저 끊어, 네가 먼저 끊어, 아니야 네가 먼저 끊어, 하거나 유치하게 하나 둘 셋 하면 같이 끊기로 하는 고따위 모습들. 사랑에 빠졌다는 걸 참 잘 보여주고 있는 사례들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말입니다. Y양의 연애에선 저런 모습들을 하나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Y양이 그 핑계로

 

"제 폰에 이상이 있어서 전화 통화는 하지 않았어요.

또 제가 통화를 즐기는 편이 아니라 전화에 신경 쓰지 않았고요.

집안 사정으로 못 받은 적도 있는데, 그럴 땐 꼭 사과와 설명은 했습니다."

 

라는 말을 하고 있긴 한데, 전 Y양에게 정말 그와 대화를 하고 싶고 그와 함께하고 싶은 게 맞냐는 질문을 하고 싶습니다. 태도로만 보자면 Y양은, 그와 별로 하고 싶은 얘기가 없는 사람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건 아래에서 이야기 할 내용과도 연관되는 부분이니, 아래에서 좀 더 자세히 이야기 하도록 하겠습니다.

 

 

2. 해줘요 증후군.

 

부킹대학 필라델피아 연구소에서는

 

확실한 계획이 세워져 있어야만 마음을 놓는 사람들은

연애 시 '해줘요 증후군'의 증상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제 지인 중에도 즉흥적으로 뭔가를 하는 것에 치를 떨며, 숙소와 식당이 확실히 정해져야 여행을 떠나는 사람이 하나 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계획에서 살짝만 벗어나도 패닉상태에 빠지며, 더 즐거운 일을 할 기회가 있더라도 자신의 계획에서 벗어나는 일이면 하지 않습니다. 뭐 이건 삶의 방식이니 가타부타 할 일이 아닙니다만, 그녀가 연애를 하며 상대에게 그것들을 요구한다는 건 좀 문제가 됩니다. 그녀는 상대에게

 

"끝나고 톡 하나 보내줘요."

"나올 때 카톡 보내줘요."

"자기 전에 카톡 보내줘요."

"아침에 카톡 하나 보내줘요."

"다 되면 얘기 해줘요."

 

라는 얘기만을 끊임없이 하기 때문입니다.

 

어디서 많이 본 멘트들이지 않습니까? Y양의 사연에서도 저런 멘트가 심심찮게 등장합니다. Y양이 안심하기 위해 상대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해달라고 요청하는 것 말입니다. 저런 멘트가 등장했다고 다 잘못된 건 아닙니다. 저 역시 공쥬님에게 저런 요청을 하고, 공쥬님 역시 제게 저런 요청을 합니다. 다만 우리의 저 멘트가 Y양이나 제 지인의 멘트와 다른 건, 우린 저걸 '다음 이야기'를 진행하기 위한 디딤돌로 사용한다는 점입니다.

 

"끝나고 톡 하나 보내줘요."

 

라는 멘트를 가져다가 살펴보겠습니다. 우리가 저 멘트를 사용하는 건, 당장은 뭔가를 하고 있어 대화를 할 수 없으니 끝나고 톡을 보내면 할 얘기를 그때 하자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Y양의 경우는 저 멘트를 '상대가 끝났다는 걸 내가 알기 위한 용도'로 사용합니다. 대화문을 하나 지어보자면,

 

남친 - 나 끝났어요~

Y양 - 네 수고 많았어요~ 얼른 들어가서 쉬어요~

남친 - 네네~

Y양 - 굿나잇~!

 

정도로 끝나고 마는 것입니다. 전 사실 Y양과 남친의 카톡대화를 읽으면서,

 

'이렇게 영혼 없이도 연애를 할 수 있는 거구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남친이 회사에 급한 일이 생겼다고 말하는데 거기다 대고 "얼른 처리하길 바라용~ ㅠㅠ"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남친의 가족이 아프다는데 "얼른 나으시길 기도할게요 ㅠ.ㅠ"라는 이야기를 하는 모습들 말입니다. 노멀로그 독자 분들만 하더라도 낯모르는 제가 눈이 아프다는 글을 매뉴얼에 짤막하게 적었더니, 어떻게 아픈 것이냐, 눈에는 뭐가 좋다, 이러이러한 증상이 동반되면 눈만의 문제가 아닐 수 있다, 라는 이야기들을 해주시는데, '여자친구'인 Y양이 '남자친구'인 그의 말에 그렇게 영혼 없이 반응하면 안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 와중에 Y양은

 

"오빠, 그럼 사는 김에 내 것도~"

 

라는 이야기도 하고 있으니, 그는 '내가 이 연애를 왜 하고 있는 거지? 난 자원봉사자인가?'하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3. 퐁당퐁당.

 

제가 보는 상황이 위와 같은 까닭에, 저는 Y양이 사연신청서 끝부분에 적은 '알고 싶은 것'이란 질문들에 대답하기가 참 곤란합니다. 전 이 연애가 Y양이 관계에 온전히 빠지지 않은 채 물가에서 퐁당퐁당 했기에 그 모습에 실망한 남친이 마음을 닫은 거라고 생각하는데, Y양은

 

"제 얘기를 들은 지인들은 저만 노력하는 것 같다고들 해요.

저만 연락하고 저만 궁금해 하는 것 같다고…."

 

라는 이야기를 하고 계십니다. Y양은 "그가 초식남인가요? 아니면 무심남?"이라는 질문을 하셨는데,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그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건 이미 연애 극초반에 증명되지 않았습니까? 그는 Y양을 배려해줬고, 존중해줬고, 챙겨줬던 사람입니다. Y양은 어떠셨습니까? 혹시 연애 초반에 Y양이 그에게

 

"나한테 잘 해 ㅎㅎㅎ"

 

라고 했던 말을 기억하십니까? 전 연애 중 Y양의 태도가 저 말을 벗어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Y양은 그것에 대한 변명으로

 

"예전 그 일로 상처를 받은 후, 저는 모든 기대를 싹 버리고

그때부터 철저히 개인주의자가 되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예전보다 상처를 안 받으면서 살긴 하는데

너무 무심하고 냉정한 사람이 되어버렸구나 하는 걸

이번 연애를 통해 느끼게 된 것 같습니다."

 

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그에게 한 번이라도 솔직하고 싶다면 차라리 그 부분을 이야기 해보시기 바랍니다. Y양은 저 얘기를 솔직히 하는 대신 그에게 '서로 맞춰가야 하고, 또 시행착오가 어쩌고저쩌고'하는 이야기를 하는데, 전혀 와 닿지가 않습니다. 영혼 없이 쓴 반성문을 읽는 느낌이 들 뿐입니다.

 

각색한 대화문을 잠시 보겠습니다.

 

[아침]

남친 - 굿모닝~ 나 일어났어요~

Y양 - 응! 나도~ 오늘도 홧팅!

남친 - 응응!

 

[점심]

Y양 - 맛점 했나요~

남친 - 아 지금 봤어. 갑자기 일이 밀려서

Y양 - 바쁘구나 ㅠ.ㅠ 힘내요~

 

[저녁]

남친 - 나 월요일 PT라서 이번 주말에 준비해야 할듯 ㅠ.ㅠ

Y양 - 응 어쩔 수 없지. 괜찮아~ 집이야?

남친 - 아니 팀 사람들이랑 저녁 먹는 중.

Y양 - 응 맛있게 먹고, 이따 연락줘요~

(시간이 지난 후)

Y양 - 나 먼저 자요. 잘 들어가고 자기 전에 톡 한 개 보내줘요~

 

깊은 사이가 아니라는 게 느껴지지 않으십니까? Y양은 저런 피상적인 대화만 한 것에 대해 '말하기 아직 이른 부분도 있고, 만나서 대화 할 시간도 많지 않았고'라는 이유를 대고 있는데, 그러는 동안 남친은 여전히 낯설고 어색한 Y양과의 관계에서 점점 멀어지고 말았습니다. 풍덩 뛰어들진 않은 채 물가에서 '퐁당퐁당'만 하고 있는 Y양에게서 말입니다.

 

 

남친과 Y양의 태도에 어떤 차이가 있었나를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좋은 예가 있습니다. Y양은 남친이 배고프다고 했을 때 알아서 잘 먹으라는 식으로 대답하지 않았습니까? 반면 남친은, Y양이 배고프다고 하면 그걸 자신이 함께 해결해야 할 과제로 느끼며 노력하는 쪽이었습니다.

 

또, Y양은 남친이 '바쁜 남자'라며 그의 연락과 관심이 부족한 듯 말하지만, 실제로 그는 Y양에게 충분히 다가왔었습니다. 그가 보자고 할 때, Y양은 뭐라고 대답하셨습니까?

 

"만나고 싶은데 오늘 나 너무 추해 ㅠㅠ"

 

당시 Y양은 친구랑 만나서 잘 놀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런 부분들에서 둘의 초점이 조금씩 계속 어긋났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건 객관적으로 보면, 상대가 보자고 하면 거절하면서 상대의 위치 변화는 계속 보고해주길 요청하는 좀 이상한 태도이지 않습니까?

 

좀 더 솔직하게 말해도 괜찮다면, 전 Y양이 그의 적은 연락으로 너무 힘들었다고 말하면서도 막상 연락을 하면 별 말도 하지 않고 그에게 관심도 보이지 않는 게 이상하게 느껴집니다. 정작 구입하면 읽지도 않으면서 책만 사 모으려고 하는 느낌이랄까요. 상대에게서 사랑을 받고 싶으시면, Y양도 상대를 사랑하시길 권합니다. '나를 예뻐해 주고, 나에게 잘 할 남자'만을 요구하다간, 이번처럼 곁에 다가온 좋은 사람도 떠나보내게 될 수 있으니 말입니다. 이번 주말 둘은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는 만남을 한다고 하니, 이번 만남에서는 그에게 인간적인 관심을 가지며 Y양의 솔직한 마음도 털어놔 보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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