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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연애오답노트

갈수록 짧은 연애를 하게 되는 조급증 그녀.

by 무한 2014. 5. 21.

갈수록 짧은 연애를 하게 되는 조급증 그녀.

나도 참 급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누군가 내게

 

"무한님, 제가 임진강에 쏘가리 서식지 알고 있는데

언제 한 번 같이 가시죠. 포인트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라는 이야기를 하면, 그 '언제 한 번 같이 가자'는 말이 이번 주 내의 어느 날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게 몇 주 후의 어느 날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때문에 난 저 이야기를 하신 분에게

 

"이번 주말에 시간 되시나요?

말씀하신 쏘가리 서식지에 함께 다녀왔으면 하는데, 어떠신가요?"

 

라는 톡을 보낼 것이다. 내가 기대하는 건 긍정의 대답이고, 그 대답을 들으면 난 또 신이 나서 오늘부터 낚시용품과 촬영용품을 준비할 것이다. 아니, 좀 더 솔직히 말하면 주말에 시간 되냐고 묻는 게 아니라

 

"오늘 시간 되시나요? 전 밤낚시도 괜찮아요."

 

라고 말할 것 같다. 얼마 전 중국에다 주문한 망원경 용품이 몇 주가 지나도록 오지 않아 그냥 국내에서 중복구매 한 후, 나중에 도착한 물품을 중고로 팔아버린 것만 봐도,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저런 내 급한 모습은 쏘가리와 낚시를 향한 열망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주 작은 희망만 가지고 한 말에 상대가 승낙했을 때 느껴지는-서로의 마음이 일치했다는- 희열이 느껴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난 버스커버스커의 <꽃송이가>라는 노래가 처음 나왔을 때,

 

"넌 한 번도 그래 안 된다는 말이 없었지."

 

라는 가사를 참 잘 썼다고 생각했다. 조급증을 앓고 있는 사람에게, 돌이켜 보았을 때 저것보다 더 축복처럼 느껴지는 일이 또 있겠는가.

 

 

1. 조급증 안고 잘 살아가는 방법. 

 

나 역시 이 조급증을 없애기 위해 셀 수도 없을 만큼 마음을 비우는 연습을 해 보았지만, 잘 되지 않았다. 내게 그건 발 대신 손으로 걷는 연습을 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웠고, 몇 번은 잘 참다가도 어느 순간 상대에게 '내 기대와 다른 대답'을 듣게 되었을 경우 낙심하며 상대를 미워하기까지 하는 못된 습관이 나오게 되었다. 지금도 완전히 그 습관을 버리진 못했지만 그래도 몇 가지 원칙을 세운 덕에 '조급증 안고 잘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했다. 이 방법을 사연을 보낸 P양과 공유할까 한다.

 

ⓐ요구는 맨 나중에. 그 전에 상대의 상황 먼저 살피기.

 

주말에 주꾸미 먹으러 가자는 이야기를 할 거라면, 그 전에 상대가 주말에 시간을 낼 수 있는지를 먼저 묻는 것이다. "토요일에 주꾸미 먹으러 가자."라는 말을 꺼내 "나 토요일에 결혼식 가는데."라는 대답을 듣는 게 아니라, 토요일에 특별한 약속이 있는지를 먼저 묻는 것이다. 별 것 아닌 것 가지만, 이건 '내 제안이 통째로 거절당했다'는 절망에 빠지는 걸 막아주는 좋은 예방책이 된다. P양의 사연을 보면 상대에게 이것저것 전부 요구한 후 상대가 그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을 경우 크게 낙심해 극단적인 복수를 하는데, 요구를 나중에 하는 습관을 들이면 갈등이 생길 일이 현저하게 줄어든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내가 가장 바쁜 순간을 떠올려 상대에게 대입하기.

 

대개 이쪽에서 상대에게 뭔가를 요구하는 순간은, 이쪽이 외롭고 심심하며 시간도 남아돌 때인 경우가 많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입장에서만 생각하는 까닭에, 여유로운 순간에 내가 말을 걸었으면 상대 역시 여유로운 상황 속에서 나처럼 대답을 할 거라 기대하게 된다. 그래서 상대의 답장이 늦거나 상대에게서 나중에 다시 연락하겠다는 대답을 들으면 상대가 일부러 바쁜 척을 하는 건 아닌지, 얼마나 중요한 일을 하기에 잠깐 대답도 못 하는 것인지 하는 생각들을 하며 실망하게 된다.

그렇게 쉽게 실망을 하기 전에, '상대가 지금 내가 가장 바쁜 순간일 때와 마찬가지의 상황에 있다면?'이라는 상상을 해보길 바란다. 학교 선생님을 썸녀로 둔 어느 남자 분이 '연락이 너무 힘들다. 답장도 느리다.'라는 불평을 하신 적이 있는데, 그건 차분히 생각해 보면 수업을 해야 하니까 그럴 수밖에 없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그래서 내가 매뉴얼을 통해 "상대가 한가할 시간에 연락하세요."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저 남자 분은 수업시간에 연락 몇 번 했다가 상대의 답이 늦자, 그것에 삐쳐서는 계속 자존심만 세우고 있다가 관계를 망치고 말았다. 퇴근 후에 연락을 했으면 됐을 것을 그 자존심만 세우다가….

 

ⓒ'나라면 안 그럴 것 같은데'라는 위험한 생각 버리기.

 

서로의 생활환경이 다른 까닭에 이해할 수 없어 실망하는 경우도 있다. 언젠가 내가 읽은 사연 중에는, '주말에 부모님 모시고 여기저기 다니느라 네 시간 동안 연락이 안 되었던 남자친구'를 이해할 수 없다는 여자 분의 이야기가 있었다. 그 여자 분은 "보통 여자친구를 만나고 싶어 하지 부모님과 그렇게 다니진 않잖아요?"라는 말도 했고, "저라면 저희 부모님과 있어도 얼마든지 통화할 수 있는데, 그는 나중에 다시 전화하겠다는 말만 하더라고요."라는 말도 했다. 그게 참 위험하다. '나라면 안 그럴 것 같은데'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문제는 전부 상대에게 있는 듯이 생각되기 때문이다. 상대가 '나'가 아닌 '너'라는 걸 잊지 말자. 외국 어느 지역에서는 식사 중에 트림을 하거나 방귀를 끼는 건 실례가 아니지만 코를 푸는 건 엄청난 결례라고 하던데, 이처럼 '너'나 '남'은 '나'와 다른 까닭에 생활방식의 차이가 생길 수 있는 것 아닌가. 각자 개인플레이를 하는 가정이 있는 반면 똘똘 뭉치는 가정도 있고, 집에서 통화하는 게 아무렇지 않는 가정이 있는 반면 부모님께 들키면 피곤해지는 가정도 있다. 이걸 두고 "너는 왜 그러냐? 너희 집은 왜 그러냐? 너희 부모님은 왜 그러냐?"하기 시작하면 둘이 갈라지는 건 시간문제라는 걸 잊지 말자.

 

ⓓ오늘만 날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조급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지금, 당장'에 목숨을 걸다가 모든 걸 망치는 경우가 많다. 당장 급하기 때문에 '꿩 대신 닭'의 마음으로 무언가를 저지르기도 하는데, 그럴 경우 대개 그 선택은 실망으로 끝나기 마련이다. 내가 당장 육각렌치가 필요해 사러 나갔다가, 원하는 사이즈가 철물점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대충 살 수 있는 걸 사왔다가 결국 못 쓰고 모셔만 놓고 있게 된 것처럼 말이다. P양의 경우를 보자. P양은 남자친구가 회사 사람들과 술을 많이 마셔 오늘 보기엔 좀 힘들다는 걸 알면서도 그에게 갔다. 그 시점에 이미 P양이 처음부터 원하고 있던 '맥주 한 잔 하며 이야기 나누기'는 불가능 했던 것이다. 하지만 P양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려는 마음이 강했고, 남친에게 갔을 때 남친은 "술을 더 못 먹겠다."라는 이야기를 한 까닭에 실망만 하고 말았다. 차라리 거기서 발걸음을 돌려 돌아왔으면 좋았을 텐데, 안타깝게도 P양은 '오빠한테 괜히 온 것 같다'는 생각만 하며 불편한 분위기만 조성하고 있었다. 안 되는 걸 알 면서도 기어코 가서는 결국 실망을 하게 되고 , 나아가 상대를 증오하는 마음까지 만들어 돌아오진 말자.

 

위에서 말한 것들을 실천하다 보면, 그간 내 기대와 다르다고 해서 너무나 쉽게 상대에게 실망하고, 상대를 미워하거나 증오했던 일이, 대부분 오해였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주에 바쁘다고 대답한 상대가 다음 주는 어떠냐고 물어보는 일이 생기기도 하고, 나랑 노는 게 싫어서 다른 핑계를 댄다고 생각했던 상대가 먼저 연락을 해 오는 경험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판례가 무조건 '실망과 단절'밖에 없던 내 마음 속 작은 법원을 증축하는 거라 생각하며, 여유와 역지사지라는 단어들과 친해져 보길 권하다.

 

 

2. 빨간펜을 든 여자.

 

P양은 말한다.

 

"무한님이 말보다 행동을 보라고 하셔서 지켜봤는데,

행동은 이미 저에 대한 마음이 떠난 사람이더라고요."

 

난 P양에게 묻고 싶다.

 

"그럼 P양은 잘 했는가?"

 

가는 게 없으면 오는 것도 없는 게 당연한 거다. 내가 말보다 행동을 보라고 한 건, 이쪽에선 올바르게 생각되는 말과 행동을 하고 있는데 상대가 거기에 알맞은 반응을 안 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걸 보라는 거였다. 이쪽에서 아무 것도 안 하고 있으면서 상대가 어떻게 하나 구경만 하라는 얘기가 아니라 말이다.

 

P양의 과거 연애사를 쭉 돌아보면, 자신이 한 말과 행동은 접어두고 오로지 상대의 말과 행동만을 기준으로 이별통보 하는 습관이 있다는 걸 발견할 수 있다. P양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은 채 100점으로 놓고, 상대의 점수만 채점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아래와 같은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 내가 더 좋아하는 것 같아 자존심 상하게 만드니 감점.

- 말과 행동이 성의 없는 것 같아서 감점.

- 초반에 보였던 적극적인 모습이 사라져서 감점.

- 그런 거 챙기지 말자고 했더니 진짜 안 챙겨서 감점.

- 내가 바빠서 못 만났지만 상대가 나 바쁜 걸 너무 쿨하게 이해해서 감점.

- 전화를 빨리 끊으려 하는 느낌이 들어서 감점.

- 그가 손수 안주를 만들어 주긴 했지만 자기는 배부르다며 안 먹어서 감점.

- 연락 하라고 한 뒤 잠깐 자고 일어났는데 연락이 안 와 있어서 감점.

- 천천히 알아가자고 했는데 정말 천천히 알아가려고 해서 감점.

- 오빠 좋아하는 사람 만나라고 했더니 혼란스러워 할 뿐 강하게 부정하지 않아서 감점.

- 만나자고 할 줄 알고 기다렸는데 만나자는 말 없어서 감점.

- 자존심 상해서 연락 안 했더니 상대도 연락 안 해서 감점.

 

저렇게 가차 없이 가위표를 그으니, P양 옆에 누굴 데려다 놔도 결국 '0점'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러면서 P양은 지인들과 상의한 후,

 

"그가 제게 반하지 않아서 그랬던 것 같아요."

"지인들은 그가 그냥 연애나 한 번 하고 말려고 해서 그런 것 같다고 하네요."

"전 별별 생각이 다 드는데, 제 쌩얼을 보고 변한 건지,

아니면 저희 집 사정을 알고 변한 건지…. 진짜 무엇 때문에 그의 마음이 변했을까요?"

 

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난 그가 왜 변했는지 알 것 같다. P양은 자신이 한 말과 행동에 대해서는 배제하고 있으니 발견하지 못하는 것 같은데, 가장 확실한 이유는

 

- P양이 심문만 할 뿐, 아주 작은 애정도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에

 

라는 것이다. 상대가 병원에 다녀와야 하는 까닭에 금요일에 만나긴 어려울 것 같다고 한 부분을 보길 바란다. 만약 그게 나와 공쥬님(여자친구)의 대화였다면, 공쥬님은 분명

 

"왜? 어디 아픈데?"

"그럼 병원 같이 가. 내가 점심시간에 나갈게."

"많이 아파? 약 먹은 거야? 약 사가지고 갈까?"

 

라는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그런데 P양은 어땠는가?

 

"병원 가느라 못 만날 것 같으면 만나자는 얘기는 왜 한 거야? 왜 이랬다 저랬다 해?"

 

라는 이야기만 하지 않았는가. 그래놓고는 삐쳐서 며칠 연락 안 하다가,

 

"그럼 우리 이번 주말엔 보는 거야?"

 

라는 말을 했고 말이다. 내가 아프다는데, 내가 아픈 것에 대해 묻기는커녕 만나기로 한 것이 취소된 것이 짜증나 틱틱거리는 여자와 만나고 싶어 할 남자는 없다. 다음 번 연애에서는 상대에게 '의무'를 이야기 하느라 '의지'를 꺾어 버리는 실수는 하지 말길 바란다.

 

 

난 혹시 P양이 이 글을 읽고 구남친에게 사과를 하거나 다시 다가가진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든다. 위에서 말한 것들은 P양이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것이 맞지만, 그렇다고 P양이 잘못한 부분들을 반성하며 구남친에게 다가가진 말길 권해주고 싶다.

 

난 그가 위와 같은 일들로 P양에 대한 정이 모두 떨어진 뒤, 그저 엔조이로 지내려고 했던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가 관계를 팽개쳐 두었다가 어느 날 연락해선 자신의 동네로 오라고 P양을 부르는 장면이 난 참 안타까웠다. 평소엔 방치해 두었다가, 술 마시자고 부를 때에만-혹은 같이 술 마실 때에만- 애정표현을 하는 남자와는 만나지 말자. 다시 천천히 시작해 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한 후 바로 스킨십 진도부터 빼려는 남자. 바로 그 시점이 '말보다 행동'을 봐야 할 때다. P양은 터놓고 이야기를 하려고 그의 동네로 갔지만, 그는 적당히 리액션 좀 해주다가 쉬다 가려고 하지 않았는가. P양은 이제 다시 잘 되는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그 날 이후로 그는 다시 P양을 방치해 두었고 말이다. 이 관계에 더는 미련 갖지 말길 바란다.

 

"이십대 후반이 되면서 마음이 급해지는 것 같아요.

결혼 못할 것 같은 불안감도 요즘 많이 들고…."

 

내가 급한 마음에 맞지도 않는 육각렌치를 구입했다가, 짐처럼 보관만 하고 있다고 한 얘기를 잊지 말길 바란다. 결혼은 겨우 육각렌치를 사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한 일이다. 상대와 남은 평생을 함께하기로 약속하는 것 아닌가. 깃털처럼 많은 날들이 남아 있으니, 커트라인 정해놓고 상대를 채점만 하는 일은 그만두고 상대와 함께 문제를 풀어보길 바란다. 결혼은 만점에 가까운 사람이 아니라, 문제를 함께 풀 수 있는 사람과 하는 게 맞다.

 

"무한님이 조급증이라니, 의외네요." 빨리 추천 버튼 좀 눌러주세요. 현기증 난단 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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