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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커플생활매뉴얼

남자친구에게 상처를 입히는 고슴도치녀, 문제는?

by 무한 2012. 12. 12.
남자친구에게 상처를 입히는 고슴도치녀, 문제는?
크리스마스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에 대해 얘기하던 한 장거리 커플이 싸운다. 남자는 26일에 수원에다가 커피숍을 오픈하는 까닭에 정신없이 바쁘다. 여자는 대구에 사는데, 24일에 수원으로 올라가 오픈 준비를 돕고 크리스마스까지 함께 보낸 뒤 내려오려는 계획을 세웠다. 그 계획을 남자에게 말했더니 남자는

"오픈 준비하느라 바쁘고 정신없을 텐데, 괜찮겠어?
와서 괜히 고생만 하게 될까봐 걱정이네."



라고 대답했다. 여자는 기분이 상했다. 오픈 준비한다고 요즘 내내 연락도 잘 하지 않으면서, 올라가서 돕겠다는 말에 미지근한 반응을 보이는 남자가 괘씸했다. 그때는 바쁠 것 같으니 그럼 다른 날 만나자고 하든지, 아니면 그냥 올라가겠다는 말에 고맙다고 답하든지 했으면 차라리 나았을 텐데, 별로 만나고 싶은 생각이 없는 사람처럼 저런 대답을 하니, 여자는 빈정이 상한 것이다.

곰곰이 생각하다보니 이건 자존심까지 상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말했다.

"그럼 우리, 크리스마스는 그냥 알아서 각자 보내자."


저 말은, 모든 남자들의 마음에 경계경보를 울리는 말이다. 저게 여자친구가 판을 엎었다는 신호라는 걸 남자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다. 사연에 등장한 남자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여자친구의 기분을 수습하려 애를 썼다. 하지만 이미 한 번 빈정이 상한 여자는, 상황을 점점 극단까지 몰고 가 버렸다. 

둘은 상견례까지 마친 사이로, 내년 중순에 결혼 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런데 지금 상황으로 봐서는 그게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난 또 매뉴얼을 적는다. 출발해 보자.


1. 차라리 화를 내는 게 낫다.


화났으면서 화 안 난 척 하는 게, 상대를 얼마나 피곤하게 만드는 줄 아는가? 내 친구 중에 '화 안 난 척'을 특기로 가지고 있는 M군이 있다. 어느 날 친구 생일파티에 M군과 함께 자리했을 때 이런 일이 있었다.

M군 - 난 먼저 가 볼게. 생일 축하한다. 담에 또 보자.
친구A - 야, 왜 가? 더 놀다 가.
M군 - 아냐, 나 가봐야 해.
친구B - 너 이따가 나랑 같이 가기로 했잖아.
M군 - 미안하다. 나 먼저 갈게.
친구 C - 왜? 아까 군대 얘기해서 삐쳤어?
M군 - 아냐. 지금 가봐야 해서 그래.



M군은 군대 얘기 때문에 삐친 거였다. 공익근무를 한 M군을 소재로 한 친구가 농담을 했는데, 그걸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던 거다. 바로 자리를 뜨면 소심해 보일까봐 27분 정도를 끓는 속을 한 채 버텼고, 일어나서 집에 간다고 할 때에도 화난 게 아니라며 다른 핑계를 댄 거다. 

가고 싶지 않은데 분위기에 휩쓸려 당구장이나 노래방에 가게 되었을 때에도 M군은 "나 먼저 가볼게."라며 일어선다. 여럿이 대화를 하는 중에 자신이 잘 끼어들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M군은 또 얼마간 침묵하며 빈정상함을 증폭시키다가 "나 먼저 가볼게."라며 자리를 뜬다. 때문에 M군과 함께 하는 자리에서는 계속 M군의 눈치를 보며 잊지 않고 말을 걸어줘야 한다. 안 그러면 또 어느 순간 퇴장해 버릴 테니 말이다.

조금이라도 마음이 상하면 자꾸 그 부분에 손을 대 더 아프게 만들어 놓고는, 결국 판을 엎어 버리거나 퇴장해 버리는 모습. 그 모습이 사연을 보낸 대원에게서도 보인다. 그런 행동을 하는 본인은 자리 뜨고 나면 속이라도 시원하겠지만, 남은 사람에겐 피곤함이 점점 축적된다.

그러느니 차라리 화를 내는 게 훨씬 낫다. 상대가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내는 것에 대해 미지근한 태도를 보이면 "넌 지금 내게 모욕감을 줬어.(응?)"라며 장난스레 서운함을 표시하거나 "우와! 데이트 신청도 안 하더니 지금 내가 친히 가주시겠다는 데도 리액션 안 하는 거?"라며 꼬집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다짜고짜 크리스마스 각자 알아서 보내자고 한 뒤, 남자가 수습하려 하자

"나 화 안 났는데? 각자 알아서 보내는 게 나을 것 같아서 한 말인데?"


라며 '화 안 난 척'을 하면, 상대는 뼛속까지 피곤해지는 법이다. 그러지 말자.


2. 진심으로 미워지게 만드는 행동, 비꼬기.


위에서 말한 '화 안 난 척'을 하고 나면, 대개 상황은 엉망이 되어 버린다. 그 행동을 하는 쪽에서는 약간의 즐거움까지 느끼며 계속 아니라고 잡아떼고, 상대는 "그래, 알았다. 화 안 났다고 해라. 이젠 나도 모르겠다."라며 손을 놓아 버리기 때문이다.

이젠 '화 안 난 척'도 할 수 없게 되면 이쪽에선 다시 분노를 표출할 새로운 방법을 찾는다. 비꼬기. 몇 발짝 떨어져서 돌을 던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래 잘 됐네. 난 애들이 스키장 가자고 했는데 스키장이나 가야겠다."
"바쁘면 1월에도 각자 할 거 하면서 지내자. 나도 내 시간 좀 갖지 뭐."
"앞으론 나도 내 할 일에 열중하면서 살아야겠다. 그게 맞는 거겠지."



저 말에 남자는 또 반응한다. "것 봐. 너 화 난 거 맞잖아. 내가 미안해. 잘못했어. 그러니까 그러지 마."라며 다시 수습을 하려 한다. 이쯤에서 화해를 하면 참 좋을 텐데, 아직 분이 안 풀린 여자는 다시 또 '화 안 난 척'을 하기 시작한다.

"화난 거 아닌데? 난 진짜 스키장 가려고 한 말인데?"
"각자 할 거 하면서 지내도 난 괜찮은데? 진짜야."
"오픈하면 자기 바빠질 거니까, 나도 좀 바쁘게 살려고 마음먹은 것뿐인데?"



참 얄밉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남자도 슬슬 화를 내기 시작한다.

"그렇게 비꼬면 마음이 편해? 이건 해답이 안 나는 감정싸움이잖아."
"넌 꼭 나보고 미안해하라고 쿡쿡 찔러대면서 일부러 상처 주는 것 같아."
"어느 때는, 넌 어떻게든 나에게 부담을 주려고 애쓰는 것처럼 보여."



하 제발, 여기서라도 "그랬구나. 미안해. 난 서운한 마음에…."라면서 화해를 했으면 좋겠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녀는 '피해자 모드'로 포지션을 바꾼다. 그 얘기는 아래에서 살펴보자.  


3. "난 피해자야. 내 잘못이 아니야."라는 필살기.
 

참 특이한 건, 거의 모든 사람들이 '피해자 모드'로 들어가는 것과 동시에 말을 길게 한다는 거다. 그 전에 한두 마디라도 했으면 좋았을 말들을 아껴놓고 안 하다가, '피해자'로 포지션을 바꾸며 쏟아 놓는다. 대개 장문의 문자나 카톡, 메일 등을 활용한다는 공통점도 있다.

사연을 보낸 대원의 '피해자 선언서'를 보자.

"오픈 때문에 바쁘다는 거 알아. 그래서 연락 없어도 이해했던 거고.
오빠한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서 내가 올라가려고 했던 거였어.
그런데 오빠는 우리가 연락을 못 하거나 못 만나는 걸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 같더라.
난 친구들이 스키장 가자고 해도 당연히 주말은 오빠랑 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거절했어.
그런데 오빠는 내가 올라간다고 해도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이 반기지도 않았잖아.
내가 뭐 하러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앞으로 나도 좀 내 생활에 신경 쓰면서 바쁘게 살기로 마음먹은 거야.
오빠가 부담 없이 커피숍 일 할 수 있게
바쁘면 1월에도 각자 할 일 하면서 지내자고 한 거고.
난 부담을 주려거나 비꼬려고 한 게 아니라, 저렇게라도 이해하려고 노력한 거야."



무슨 뜻인지는 잘 알겠다. 잘 알겠는데, 저건 오해의 소지가 다분할 뿐더러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상대를 나쁜 사람 만드는 일이라고도 볼 수 있다. 상대는 아래와 같이 받아들일 수 있다는 거다.

"난 오빠에게 기대했는데, 오빠는 날 실망시켰어.
기대한 내가 바보지. 앞으로는 기대 같은 거 안 하고 살기로 했어."
"난 이해하려고 노력한 것일 뿐야. 내 잘못은 없어."
"오빤 날 방치해뒀고, 나에 대한 고마움도 모르지. 오빠가 가해자야."



저 얘기를 들은 상대는 억울한 마음에 자기 사정을 얘기하고, 자기도 충분히 노력하고 있다는 얘기를 하며, 꼭 자신만 가해자는 아니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녀는 "시끄럽고, 내 절절한 사연부터 가슴으로 이해하라고. 그러고 나서 빨리 내게 잘못을 빌어. 내가 피해자인데 왜 오빠가 피해자인 척 해!"라는 뉘앙스의 이야기로 맞받아 칠 뿐이다. 결국

"그래 항상 네 잘못은 없고 다 내 잘못이지."
"네가 한 행동에 난 어땠을지, 그런 건 상관없다는 거지?"
"그만해라. 짜증난다."



라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만다. 남자는 '과연 얘랑 함께 살 수 있을까.'라는 생각까지 품게 된다. 여자는 여자대로 왜 이런 상황까지 오게 된 건지 가슴아파하며 운다. 


이번 매뉴얼의 첫 문장을 기억하는가?

"크리스마스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에 대해 얘기하던 한 장거리 커플이 싸운다."


저기서 시작해서는, 참 멀리까지도 왔다. 서운할 때 서운하다고 말하고, 화가 났을 때 화가 났다고 말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마음에도 없는 말 툭툭 던지면서 상대의 반응 떠보지 않았으면 또 얼마나 좋았을까. 마음이 울퉁불퉁 해진 까닭에 어쩔 수 없이 그런 일들을 저질렀다 하더라도, '나만 피해자'라는 걸 주장하지 않았다면, 둘의 이야기는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사연을 보낸 대원은, 연락을 하면 화난 남자친구의 차가운 목소리를 듣게 될까봐 연락을 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겁먹지 말고 어서 연락하자. 서로 남남처럼 지내다 보면 거기에 익숙해져 버린다. 그러니 보고 싶은 마음을 숨기지 말고, 전화해서 보고 싶다고 말하기 바란다. 주말에는 달려가서 남자친구와 뜨거운 포옹도 좀 하고 말이다. 사랑만 하기에도 모자란 시간, 등 돌리는 건 그만하고 다시 뜨겁게 사랑하자!



▲ 가시를 세운 채로 안아달라고 하면, 상대가 아프잖아요. 가시를 빼고, 자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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