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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커플생활매뉴얼

부모님 모시는 문제로 다투다 헤어진 커플

by 무한 2012. 12. 20.
부모님 모시는 문제로 다투다 헤어진 커플
M양(29세, 회사원)은 2주 전 프로포즈를 받았다. 그간 M양은 결혼 얘기를 안 하는 남자친구 때문에 '나랑 연애만 하려는 건가? 아니면 결혼까지 생각하는 건가?'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남자친구가 청혼을 한 것이다. 드디어 나도 웨딩드레스를 입어보는구나, 라는 생각으로 그녀가 들떠있을 때, 남자친구가 몇 마디 이야기를 덧붙였다.

"그런데 결혼하면, 혼자 계신 우리 어머니 모시고 순천에서 같이 살았으면 한다."


그녀는 그 자리에서 대답하지 못했다. 며칠 후, 남자친구는 자신을 향한 그녀의 마음이 어느 정도인지 알겠다며 이별을 통보했다. M양은 헤어지고 싶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시골에 내려가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겠다고 대답할 수도 없기에 며칠을 앓았다. 마음에 구멍이 난듯 찬바람이 휑휑 불어 닥치는 나날이었다.

조율을 좀 해 보고자 남자친구에게 연락을 해 보았지만, 답은 오지 않았다. 이대로 끝낼 수는 없다는 생각에 친구에게 상담을 했다. 친구는 그녀에게 노멀로그를 소개해 주었다. 좋은 친구다. M양은 아주 잘 온 거다. 마음에 난 구멍을 메워줄 매뉴얼 오늘도 무료로 발행하니, 망설이지 말고 읽길 바란다. 출발해 보자.


1. 남자가 잘못 했네.


효도는 셀프를 기반으로 해야 한다. 자신이 먼저 본인의 부모님과 상대방 부모님께 잘 하면, 곁에 있는 사람도 알아서 잘 하는 법이다.

그런데 자기가 해야 할 몫까지 모두 상대에게 떠맡기는 사람들이 있다. 본인은 며칠에 한 번 부모님께 전화 하고, 명절이 되어야 찾아가 뵙는 게 전부면서 상대에게는 부모님과 같이 살며 알아서 잘 챙기도록 요구하는 사람이다. 본인은 마음으로 효도하고 상대는 몸으로 효도하는, 뭐 그런 거다. 

지나가는 50대 이상의 아주머니 셋을 잡고 물어보길 바란다. 그 중 둘은 분명 저런 '효도의 도구'가 되어야 했던 경험을 가지고 계실 것이다.

어떻게 보면 남자친구의 말은, 참 치사하고 야비하다. 'YES'라는 답을 하지 않으면, 밑도 끝도 없이 나쁜 사람 되는 일밖에 남지 않으니 말이다. 예컨대 "집에 데스크탑도 있고 노트북도 있으시죠? 컴퓨터가 없는 사람들을 위해 한 대만 기부해 주세요."라고 누군가 요청했다고 해보자. 그대는 두 컴퓨터 모두 다른 용도로 쓰는 거라 거절을 했다. 그러면 '컴퓨터 두 대 있으면서, 둘 다 가지려는 욕심 많은 사람.'이 되고 마는 것이다. 

부모님을 모시고 시골에 사는 것에 대해 M양과 '논의'를 한 게 아니라, 일방적으로 '통보' 했다는 것도 문제다. 저건 "부모님 모시고 시골에서 살자. 안 그러면 결혼은 없다."라고 말한 것과 같다. M양이 망설이자 남자는 '마음의 크기'를 알았다면서 이별까지 통보를 했다. 통보가 습관화 된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는 혼자 결론을 내고, 그 결론을 통보한 뒤 상대가 응하지 않으면 그냥 인연을 끊어 버린다.(둘은 앞서 다른 문제로 다투다가 두 번 헤어진 적 있는데, 그 두 번에서 모두 남자친구는 '이별통보'를 했다.)

그는 유교 전통의 해로운 부분들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 것과 동시에, 이기적이다. 난 사실 M양이 그에게 저 말을 똑같이 했을 때, 그가 어떤 표정을 짓는지 한 번 보고 싶다.

"오빠, 결혼하면 우리 부모님 모시고 우리 집에서 살자."


아 잠깐만. 저건 오히려 좋아할 지도 모르겠다. 남자는 여자의 집에서 '손님'이 되고, 여자는 남자의 집에서 '도우미'가 되는 해로운 전통도 있으니 말이다. 여하튼 조건이 걸린 청혼에 대해서는 그게 무엇이든 받아들이지 않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남자친구의 말을 그대로 인용하자면, 남자친구에겐 '그 조건을 수용하지 않으면 결혼 할 생각이 없을 정도의 마음'만 있는 것이니 말이다.


2. 대화의 프레임 바꾸기.


저 상황에서 M양은 남자친구의 말에 대답을 하기보다, 대화의 프레임을 바꿨어야 했다. 단순히 부모님을 모시고 시골에서 사냐 안 사냐의 문제가 아니라 복합적인 문제가 결합되어 있다는 걸 알렸다면, '속물적인 여자'라는 황당한 누명은 쓰지 않았을 것이다.

매뉴얼을 통해 소개한 적 있는 이야긴데, 지난 추석에 '대화의 프레임'을 바꾼 한 대학생의 글을 본 적이 있다. 게임기 두 대를 가지고 있는 한 대학생에게 큰아버지가 한 대를 달라고 하는 상황이다.

큰아버지 - 하나는 철민(사촌동생)이 줘라. 두 대나 있잖아.
학생 - 이게 같은 게임기가 아니라서, 할 수 있는 게임이 달라요.
큰아버지 - 하나만 하면 되잖아. 두 대씩이나 있으면서, 욕심 부리지 말고 하나 줘.
학생 - 음… 그럼, 큰아버지 댁에 차 두 대죠? 한 대 저 주시면 안 돼요?
큰아버지 - …….



꼭 저렇게 상대의 말을 되돌려 주라는 건 아니지만, '지금 내가 놓인 상황에 네가 놓이면 어떨지'에 대해 알려 줄 필요가 있다. 무언갈 요구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처하기 싫은 상황에까지 상대를 몰아넣는 경향이 있으니 말이다. 뭐 묻은 개가 뭐 묻은 개를 나무라는 태도로 나오는 상대에겐, 뭐가 묻었는지를 말해줘야 한다.

상대의 말에 쉽게 대답을 할 수 없을 땐, '무엇 때문에 쉽게 대답을 할 수 없는지'까지를 전부 다 털어놓는 방법도 있다. 내가 M양의 입장이라면 직장과 생활에 대한 문제, 내 부모님에 대한 문제 등을 꺼내놓을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님 모시고 시골에서 살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게 아니라, 이런 문제들 때문에 쉽게 대답할 수 없다는 걸 상대에게 알리는 것이다. 그러면 '내 부모님 모시고 시골에서 살 수 있는 여자인가'만을 생각하던 상대는, 저 문제들까지 함께 고려해서 생각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또, '사랑 받고 싶은 마음''내 인생'에 대한 이야기도 꺼내야 한다. 한 남자의 아내가 된다는 게 오로지 가정을 꾸리기 위해서 인 것은 아니니 말이다. 상대는 현재 자신의 인생에 M양을 편입시킬 수 있는가 없는가를 고민하고 있으니, 그런 상대에게 M양이 도구나 수단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시킬 필요가 있다.

사랑을 확인하는 것 역시, 지금처럼 상대만 M양의 사랑을 측정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게 아니라는 것도 알게 해 주어야 한다. 현재 상대가 보이는 태도는 이쪽의 감정이나 생각, 인생에 대해서는 소홀하게 생각하며 본인이 원하는 것만 말하는 면접관 같은 태도라는 것도 환기시켜 줄 필요가 있다. M양이 상대와 연애를 하고 있는 것이지, 결혼하기 위해 지원한 지원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3. 다급해서 매달리면 끝장이다.


어떻게 해야 다시 상대의 곁으로 돌아갈 수 있는지를 묻는 M양에게, 난 먼저 자신의 감정을 차분히 들여다보길 권해주고 싶다. 다급할 때에는 외로움이나 우울함, 심심함이나 안타까움 등을 모두 사랑이라 착각하는 실수를 저지를 수 있다.

"그렇게 헤어지고 나니까, 오빠가 너무 보고 싶고….
왜 헤어진 다음에야 정말 사랑했다는 걸 안다는 말이 있잖아요."



위험한 말이다. 좀 미안한 얘기지만, 내 입장에서 사연을 봤을 땐 M양이 남자친구의 제안을 수락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약간의 죄책감과 헤어진 다음에 찾아오는 공허함, 그리고 이대로 한 사람과의 인연이 끊어지게 된다는 것에 대한 불안 등을 모두 '사랑'으로 치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간의 연애가 어떤 모습이었나를 들여다보자. 소개팅으로 만났고, 만나서 밥을 먹거나 영화를 보거나 수다를 떠는 데이트를 했다. M양의 말에 의하면 둘은 속마음을 허심탄회하게 털어 놓고 맞춰보는 시간도 갖지 못했다. 친구와 밥을 먹고 있을 때 상대에게 전화가 오면, 친구와 밥을 먹고 있으니 나중에 통화하자며 끊을 정도로(그래놓고는 나중에 다시 전화하지 않아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서로가 서로에게 차지하는 부분은 그닥 크지 않았다.

친구들이 대부분 결혼을 했고, M양도 언젠가는 이렇게 연애를 하다 청혼을 받아 결혼하게 될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정말 그 사람과 함께하고 싶어서 프로포즈를 기다렸다기 보다는, '이러다가 프로포즈를 받게 되고, 결혼하게 되는 거겠지.'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가 결혼얘기를 꺼내길 기다렸던 건, 상대가 날 무슨 생각으로 만나고 있는 것인지 궁금해서 그랬던 마음이 더 큰 것이고 말이다.

우정이 밑바탕에 깔리지 않은 연대 같다고 할까. 당장 다른 대안이 없으니 함께 하고는 있지만, 둘 다 서로를 위해 희생할 정도로 상대를 생각하고 있진 않은 것이다. 때문에 상대는 M양을 '도구' 정도로 생각했고, M양은 그냥 '보통의 삶' 정도로 상대와의 미래가 펼쳐지길 바랐다.

"저건 여자에게 문제가 있는 거 아닌가요?
그 남자가 부모님 모시고 시골에서 살자는 얘기를 안 했으면,
저 여자는 청혼을 받아들였을 거 아녜요."



라는 얘기를 하는 대원들도 있을 수 있다. 그 대원들에겐 뒷면도 좀 보길 권해주고 싶다. 부모님 모시고 시골에서 살자는 얘기를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라면, 그는 그녀에게 청혼을 했을까? 그는 여자가 확답을 못하자 마음의 크기를 알겠다며 떠난 사람인데, 그 역시 딱 그 만큼만 그녀에 대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정말 M양과 함께 하고 싶어서 한 청혼이었다면, 자신이 제시하는 조건에 M양이 확답을 못했다고 그렇게 쉽게 등을 돌릴 수 있을까?


소풍가기로 정했던 날에 비가 오면, 우비를 입거나 우산을 쓰고 나오라는 얘기를 하는 대신 소풍을 미룬다. 다시 해가 쨍하게 뜨는 날에 소풍을 가는 게 맞는 것이니 말이다. 그런데 M양은 소풍을 앞두고 비가 오자, 옷이 젖든 말든 일단 예정대로 가기로 한 곳에 가려고 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에게 "조건을 수락할 테니, 결혼하자."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다.

애정이 있어야 할 자리에 조건이 있는 결혼. 그 결혼이 행복할까? M양을 존중하긴커녕 조건을 수락하지 않을 거면 헤어지자고 말하는 남자. 그와의 결혼이 즐거울까? 답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에 다급한 선택을 하지 말고, 문제를 차근차근 다시 한 번 읽길 권한다. 문제는 '부모님을 모시고 시골에 살 수 있는가?'가 아니라, '난 이 사람과, 또 이 사람은 나와 평생을 함께 보내고 싶어 하는가?'이다.



▲ 그런데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할 말을 잃었습니다. 이거 뭐야 무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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