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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생활과여행/물고기가좋다

오렌지 클라키(애완가재)의 탈피와 먹이싸움

by 무한 2011. 1. 17.
수의학자 앨런 쇼엔은 이런 말을 했다.

"그저 사람에게 식량이나 제공하고 애완동물로서 기쁨이나 주는 것보다 더 많은 의미가 동물에게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우리 앞에는 놀라운 가능성이 나타날 것이다."

- 앨런 쇼엔


가재에게 더 많은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봐야 가재는 게 편이라는 건 훼이크고, 아무튼 이 녀석들은 내가 어항 앞에 다가가면 깜짝깜짝 놀라고, 말없이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녀석들도 날 가만히 바라본다. 어제는 네 마리가 미동도 없이 약 5분 정도 나와 눈을 마주치고 있었다.

어머니께 '나와 가재들이 나눈 교감'에 대해 말씀드렸더니, 어머니께선 한숨을 쉬셨지만, 어쨌든 함께 라서 즐거운 가재들과의 동거. 오늘은 '오렌지 클라키' 어항에서 일어난 탈피소식먹이다툼에 대한 이야기를 좀 나눠볼까 한다. 출발해 보자.



▲ 이번 '탈피'의 주인공 오팔이.


"가재 탈피 하는 거 보러 오셨다면서요? 어디까지 알아보고 오셨어요? 탈피는 무료로 보여드릴 수 있는데, 제가 중국산이 아니라 미국산 이거든요. 탈피는 무룐데, 집게발 삼만 원, 더듬이 칠만 원, 먹이 오만 원 해서, 십오만 원에 보여 드릴게요. 다른 가재 찾아 가 봐야 저보다 싸게 보여주는 가재 없어요. 현금으로 하실 거죠? 십삼만 원에 해 드릴게요. 현금영수증 없이요."

그래서 이름이 오팔이다.



▲ 탈피 2.4초 후의 모습. 누워서 바둥거리다가 웅크리며 쑤욱, 빠져 나왔다.


탈피각에서 막 벗어나온 녀의 몸속엔 뭉게구름 같은 것이 가득 차 있다. 전에 키우던 사슴벌레 유충도 번데기로 변하기 직전, 몸속에 저 뭉게구름 같은 것들이 가득 차 있었다. 저 구름 같은 것들이 몸속에서 꿀렁꿀렁 거리며 내부 조직들을 구성하는 것은 아닌가, 추측해 본다.



▲ 책상 위에 탈피각을 올려놓고 한 컷. 눈을 제외한 모든 부분들이 남아 있다.


치가재의 탈피각은 작은 충격에도 쉽게 바스러진다. 탈피각의 위치를 좀 바꾸려 더듬이를 손으로 잡았는데 바삭, 하곤 바스러져 버렸다. 막 탈피를 마친 가재는 자신의 탈피각을 먹어 영양을 보충한다는 주장도 있기에 위의 탈피각은 사진만 찍고 다시 물속에 넣어줬다.

탈피를 하기 전까지, 오팔이는 그동안 뭘 하며 지냈을까?



▲ 오팔이의 탈피 전 어항생활 모습. 먹이로 넣어 준 새우를 '찜(응?)'하고 있다.


새우를 집게발로 잡고 올라탄 뒤,

"이거 딱 내 꺼. 아무도 손대지 마."

라며 선포하고 있는 모습이다. 하지만 하이에나를 닮아 늘 배고픈 다른 녀석들이 그냥 둘리 없다. 오팔이의 선포를 비웃으며 다른 가재들이 먹이를 빼앗으려 다가온다.



▲ 다른 녀석이 다가오자, 오팔이가 먹이를 든 채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모습이다.


저 먹이다툼이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가재들에게는 목숨과 직결되는 문제다. 먹이다툼 시 방심했다간 더듬이나 집게발 등이 잘릴 수 있다. 물론 다음 탈피 시 더듬이나 집게발이 새로 생기긴 하지만, 잘못하면 재생이 안 되는 곳에 상처를 입어 죽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가재들의 세계를 너무 냉혹하게 볼 필요는 없다. 사람의 먹이다툼은 이보다 훨씬 더 무서우니 말이다.



▲ 고래 싸움엔 새우등이 터지지만, 가재 싸움엔 새우 허리가 꺾인다.


딱딱한 것들에 매력을 느껴서 딱딱한 것들만 키우는 거 아니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그러고 보니 사슴벌레나 장수풍뎅이, 그리고 가재까지 모두 딱딱한 녀석들이다. 그 물음엔, "딱딱하고 말랑말랑하고를 떠나서, 그냥 말 없는 것들에 매력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라는 대답을 하고 싶다.



▲ 새우에 집중한 오팔이 뒤로, 먹이를 노리는 또 다른 녀석이 다가오고 있다.


지난 글에 한 독자 분께서 "자기보다 큰 먹이를 먹는 게 인상적.. 저도 돈까스에 앉아서 먹어보고 싶네요."라는 댓글을 달아 주셨는데, 난 아직도 동화 <헨젤과 그레텔>의 '과자로 만든 집'을 떠올리면 괜히 흐뭇해진다. '근데, 비가 오면 어쩌지? 개미가 들끓진 않을까?'라는 현실적인 고민까지 하고 있다. 나란 남자, 이런 남자.



▲ 다툼이 있을 때엔 꼭 저렇게 더듬이를 V(브이)자로 세우며 위협한다.
 

먹이다툼이 있고 난 후, 싸움에서 진 녀석들은 깨끗하게 물러난다. 꽤나 긴 시간동안 승자에게 먹이를 독식할 수 있는 시간을 준다. 겁먹어서 그런 것인지, 그게 그들의 룰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 허머 치가재와 오클 치가재의 크기 비교를 위한 사진. 두 새우의 크기는 거의 똑같다.


먹이로 준 저 새우는 새우젓의 원료가 되는 바다새우다. 그 새우만한 오클이니 오클의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는 대충 가능할 수 있을 것이고, 그 오클과 비교해 오클의 집게발 크기 밖에 되지 않는 허머 치새우는 또 얼마나 작은지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 오클들은 주로 대부분의 시간을 이렇게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보낸다.


쑥스러움을 많이 타는 듯 보이는 허머와 다르게 오클들을 활발하다. 지금도 두 마리가 나와서 몇 시간 전 넣어준 당근을 뜯어 먹고 있다. 오팔이가 탈피 한 이후, 다른 녀석들도 탈피를 마쳤다. 탈피로 인해 녀석들의 몸집이 점점 커지며, 서로 마주치는 일도 많아졌다. 조만간 어항 레이아웃을 바꾸며 은신처를 정비해 줄 예정이다.



▲ 커진 몸집으로 먹이다툼 중인 녀석들.


이전 사진들과 비교해 보면, 탈피 이후 몸집이 많이 커졌다는 걸 알 수 있다. 뭐, 그래봐야 아직 새우를 조금 능가하는 크기지만.

자, 오렌지 클라키 어항은 여기까지 들여다보기로 하고, 마지막으로 공쥬님(여자친구)의 집에 살고 있는 백설이(화이트 클라키) 커플의 근황을 짧게 소개하자면,



▲ 백설이가 술래가 되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하고 있다.


백설이(암컷, 8cm), 대일이(수컷, 5.5cm) 커플이 살고 있는 어항이다. 화이트 클라키 수컷에게는 언제나 자신만만하게 세상을 살아가라는 뜻에서 이름을 '대일'이로 지어줬다. 화이트 클라키인 까닭에 성은 '백'씨고, 풀네임은 '백대일'이다.



▲ 이번엔 대일이가 술래를 하며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놀이를 하다, 백설이가 움직여 걸렸다.


하라는 짝짓기는 안 하고(응?), 알콩달콩 둘이 재미있게 놀고 있다. 순백색의 백설이와 비교해 대일이는 몸 전체에 핑크빛이 돈다.

이렇게 또 한 편의 가재 이야기가 끝났다. 무럭무럭 자라는 성장기인 까닭에 오렌지 클라키 치가재들은 보통 9일 정도의 주기로 탈피를 한다. 9일 동안 열심히 에너지를 저장하고, 열심히 움직여 9일 후 더욱 커진 집게발과 단단한 갑각을 갖게 되는 것이다.

'난 지난 9일 동안 충실하게 살아온 것일까?'

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 생각해 볼만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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