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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글모음/노멀로그다이어리

노멀로그 누적방문자 1000만명에 즈음하여

by 무한 2009. 12. 16.


1.

"우와~ 자유다!! 끝났어!! 이야아아아아아-"

군대 위병소에서 예비군 모자를 쓰고 나오며 "행정반, 위병조장 상병 조짬내 입니다. 금일 전역자 위병소 통과했습니다." 라는 무전을 들었던 어느 날 처럼, 세상이 아름다웠다. 난 내가 <끝>이라고 쓴 것이 자랑스러웠다. 확실한 것도 없고, 결정된 것도 없고, 여전히 불안은 호주머니 가득 들어있었지만 아, 벌써 겨울이 이만큼이나 와 있었구나. 돌보지 못했던 모든 것들이 고개를 들었고, 고맙게도 곁에 있어 주었다.

난 기회가 되면 이 멍청한 작가지망생의 이야기를 글로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소설가 김홍신씨가 TV프로그램에 나와 "하루에 20장씩 씁니다." 라고 하는 얘기를 듣곤, A4용지 10장 분량의 단편도 끝내지 못하고 빌빌대는 자신을 자책해, 각성을 돕는 커피와 한숨을 돕는 담배를 물곤 풍차를 향해 돌진했다.

가자! 로시난테!

말발굽 소리를 요란하게 내는 키보드로 맥박처럼 뛰고 있는 커서를 오른쪽으로 민다. 아무리 글을 써 넣어도 커서는 따라잡히지 않는다. 쓰지 않고 읽기만 해 비만에 걸린 생각들은 커서를 따라잡지 못하고 지친다. 휴지와 마주 앉아 술을 마시다가, 휴지에게 왜 술을 마시지 않냐고 혼냈다는 선배가 생각났다. 그 선배가 술을 쏟았을 때, 그 쏟은 술을 휴지로 닦다가, 휴지가 자신보다 술을 더 잘 마신다는 걸 깨닫곤 시를 썼다고 했다. 높아지기만 한 눈은 나를 보지 못하게 한다. 회색곰 왑이구나! 나보다 더 높은 곳에 낸 발자국을 보며 움츠러든다. 김홍신씨가 나왔던 프로그램을 다시 돌려보자, A4용지가 아니라 200자 원고지 20장이라는 걸 알게 된다. 아직 희망은 있구나.


2.

악플이 늘었다. 블로거들의 한 해를 평가하겠다는 수상식의 밥상이 차려지자, 난 닭고기를 싫어하는 데 왜 닭고기가 밥상에 올라왔냐며 투정을 하는 사람이 보인다. 최고의 반찬이라면 다들 즐겨먹는 김치 따위 말고 고급스러운 너비아니 정도가 되어야 하지 않겠냐는 사람들도 있다. 별 대꾸를 하진 않지만, 도로에서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다 만나면, "숭헌… 좌회전은 제발 우물쭈물 대지 말고 가라고. 신호도 짧은데. 페에엥-" 같은 얘기를 해 주고 싶다.

트위터에 관한 이야기 중에서 '내신 때문에 친구에게 공책을 보여주지 않던 세대' 라는 부분을 읽은 적이 있는데, 글쎄, 그게 아버지가 IMF로 거지 되는 꼴을 두 눈으로 목격하며 유년기를 보낸 세대에만 한정되는 건지 모르겠다.  뒤늦게 찾아본 '시골의사'와 '권지예'의 표절시비를 보며, 떨어진 깃털 모아 새들의 여왕이 되고 싶어하는 까마귀의 얘기는 참 잘 썼다는 생각이 든다.

순위가 당락을 결정짓는 것에 길들여진 까닭에 나도 노멀로그가 몇 번째로 꼽히고 있나 들여다 볼 때가 있다. 엄지로 꼽힐 때에는 뒤가 서늘하다. 매복을 하고 있어야 할 병사가 오줌을 누러 나왔다 횃불을 든 적군에게 포위당한 듯 다리가 후들거린다. 아파트 옥상에서 멀리 날릴 준비를 했을때, 하얗게 질리던 종이비행기가 생각난다. 종이비행기엔 고소공포증이 없던가. 묻지도 않고 날린다.  떨어지는 것이 겁나긴 나나 종이비행기나 피차일반 일 텐데 말이다.


3.

도무지 설 줄 모르는 나의 등신(等神)을 책으로라도 애무해 보겠다는 이야기에 날 선 말이 들려온다. 그래, 댁의 말대로 라면, 동주도 허세에 지나지 않는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롭다니, 미니홈피에 올려두면 "퍼가요~♡"의 댓글은 많이 받겠다. 타는 목마름으로, 라는 시를 쓴 이에게는 냉장고에 물 있다며 운운.


4.

후방으로 가고싶다. 그게 힘들다면 전방으로라도 가고 싶다. 최전방의 고지엔 고라니나 맷돼지만 남겨두고 나에겐 좀 일용할 양식이 준비되었으면 좋겠다. 다음 링거가 비축되어 있는지 확인도 못한 채 또옥, 또옥, 떨어지는 오늘만 바라본다. 크리스마스에 산타가 온다면, 뭐 하다 이제 왔냐며 아구창이나 한 대 갈겨주는 하극상을 벌이고 싶다. 산타의 멱살도 잡을 수 있을 정도로 입이 바짝바짝 탄다.


5.

오늘 밤만 자고 일어나면 책이 나올 것 같다. 책들이 창고에서 얼어죽지 않도록 사람들이 안전한 가정에서 보살펴 주었으면 한다고, 운운.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동주는 언제 읽어도 좀 짱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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