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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6)

40대 남자의 연애, 진짜 최선을 다했는데 썸녀는 왜 식었죠?

by 무한 2022. 1. 18.

김형, 여자가 데이트든 대화든 둘 사이의 무언가에 대해 '재미없다'는 뉘앙스로 말하는 건,

 

-뭘 할 지 뻔히 다 보이는데, 그걸 진짜로 뻔히 다 해서, 나도 뻔한 리액션만 해야 함.

 

인 상황이란 얘기야. 김형과 내가 서로 좋은 관계가 되겠다며 매일 아침마다 날씨 얘기하며 인사하고, 좋은 하루 보내라고 빌어주고, 저녁이 되면 오늘 하루 어땠냐면서 격식차려 묻고 주례사식 축복만을 빌어준다면, 일주일만 지나도 부담스러우며 대답해 주는 것 자체가 의무로 느껴질 것 같지 않아?

 

김형의 사연을 읽으면서, 읽는 내가 다 지겨울 정도였어. 김형과 썸녀와의 대화는, 내가 우리 큰어머니랑 대화할 때랑 비슷하거든. 잘 계시죠, 건강하시고, 가족들 다 행복해야죠 아프지 말고, 저 양화대교요. 이런 느낌.

 

40대 남자의 연애, 진짜 최선을 다했는데 썸녀는 왜 식었죠?

 

40대는 불혹이라고 하잖아. 근데 김형은, 갈대 같아. 이럴까봐 쩔쩔매고, 저럴까봐 전전긍긍하고, 그러다 보니 전부 다 상대에게 말해서 확인을 받으려 하고, 조금이라도 상대 반응이 부정적이면 그걸 얼른 지우려 고해성사하듯 자초지종을 얘기하고, 둘의 관계에 대해서도 자꾸 말로 정의하고 동의를 받으려 해. 

 

"우리가 친해지려면 연락도 자주 해야 할 텐데, 내가 몇 번 실수를 했던 것때문에 연락하는 걸 좀 무서워했던 것 같아. 카톡을 다시 읽어 보니까 반성할 지점들이 많이 보이더라고."

"내가 오늘 만들어 준 음식은 A와 B라는 건데, A는 이러이러하게 먹고, B는 저러저러하게 먹어. 맛은 모르겠지만 지금 네가 요리해서 뭐 먹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라서 혹시 귀찮아서 끼니 거를까봐 만들어 봤어. 맛 괜찮으면 언제든 그냥 이야기 해줘. 만드는 데 어려운 것도 아니고, 금방 만들어서 갖다줄 수 있으니까."

"내가 뭐 잘못말한 게 있나? 지금 다시 읽어봤는데 뭘 잘못한 건지 모르겠어. 반응이 이렇다 보니 내가 무슨 말을 못 하겠네. 별 의미 없이 한 얘기라면 내가 미안해. 괜히 내가 오버해서 날선 것처럼 느꼈나 봐. 안 그래도 힘들텐데 내가 괜히 더 신경쓰게 한 것 같아서 미안하네."

 

아마 요즘애들한테 위의 멘트를 보여주면,

 

"안물 안궁. TMI 어쩔티비."

 

라고 반응할 거야. 상대가 김형에게 '질문 좀 그만 해라'라고 한 적 있지? 김형은 그 말에 총 맞은 것처럼 또 무너졌지만, 그 말은 김형의 해석처럼 '질문 자체를 하지 말아라'가 아니라, '답정너인 의무적인 질문은 제발 좀 하지 마라'라는 의미야. 주말에 만나고 밥 먹을 약속 잡을 때 김형이 말하는 방식을 봐봐. 

 

"퇴근해서 잘 왔나? 저녁 먹었나? 가족들도 다 계시나?"

"이번 주 금요일에 쉬나?"

"점점 추워진다던데 금요일에 봐도 괜찮으려나?"

"박람회나 콘서트나 뮤지컬이나 뭐 그런 것 중에 뭘 좋아하나?"

"A가 유명한 뮤지컬이라고 하는데, 그거 보는 거 괜찮나?"

"뮤지컬을 보고 밥 먹는 게 낫나, 아니면 밥 먹고 뮤지컬 보는 게 낫나?"

"근처에 중식, 양식이 유명하던데 어느 게 더 낫나?"

"만나는 건 거기서 만나는 게 낫나, 아님 집에 갔다가 가는 게 낫나?"

 

김형. 상대랑 같이 걷다가 돌다리 만났다고 거기서 돌 하나하나 두드리고 있다간, 김형 손엔 피 나고 상대는 짜증나서 집에 갈 수 있어. 내가 늘 얘기하잖아. 필요한 거 말하면 해주겠다고 뒤를 졸졸 쫓아가지만 말고, 상대가 상상도 못했던 걸 앞에서 보여주라고.

 

"저도 해준 건 정말 많은데요? 앞에서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름 디테일까지 챙겨서 많이 해줬어요."

 

내가 선물 얘기도 하려고 했어. 김형, 선물은 

 

-내 돈 주고 사기는 좀 아까운데 남이 사주면 좋은 것.

 

을 주는 게 국룰이야. 그리고 가격을 떠나서, '우리 집에 있는데 나 안 쓰는 거' 주는 건 경우에 따라, 또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불쾌한 일일 수도 있어. 같은 가격이라도 '세트상품이라 뜯어서 남는 거 하나 주는 것'이랑, '상대를 생각해서 구입해 포장한 것'은 완전히 다른 의미로 느껴질 수도 있고 말이야. 물론 '세트상품 중 하나'를 주는 것도 나쁜 건 아니지만, 김형은 TMI라서 그걸 구입하게 된 계기와 선물하게 된 과정을 모두 말해버리잖아. 그건 스토리텔링이 아니야. 1절만 해야 하는 걸 4절까지 해버리는 거지.

 

아, 그리고 이걸 빼먹을 뻔 했는데. 선물을 줬으면 준 거야. 주고 나서 거기에 대한 부연설명 또 하고, 엎드려 감사인사 받은 뒤 손사레 치고, 이후에 또 그거 잘 쓰고 있는지 확인하고, 그렇게 2절 3절 질질 끌고 가지 마. 받은 거 마음에 들고 괜찮으면 다음에 또 뭘 해주겠다 같은 예고도 길게 하지 말고, 앞으로 나도 편하게 줄 테니 너도 부담갖지 말라는 얘기같은 것도 하지 마. 선물에 대해 그냥 김형은, '선물 주고 난 후, 정말 필요한 얘기가 아니라면 절대 선물에 대해 더 말하지 않기'라고 외워두는 게 가장 좋을 것 같아. 

 

 

여기까지 읽고 나니까, 그간 김형이 했다는 노력의 '양'이 문제가 아니라, '방향'이 잘못되었다는 게 좀 보이지 않아? 엘리베이터 타고 24층 가서 만나면 되는 걸, 김형은 '힘든만큼 노력이다'라고 생각하며 계단으로 올라가다 지친 거야. 그러다 상대가 '아까 도착했다면서 왜 안 오냐. 사람 기다리는데.'라고 하면, 김형은 또 '내가 한 걸음 한 걸음 계단으로 올라가는 정성은 모르고 화만 내네.'한 거고 말이야. 

 

김형과 비슷한 고민을 가진 대원들에게 이런 얘기를 해주면, 스스로 뭔가 새롭게 펼칠 생각은 안 하고 내 매뉴얼까지를 다 인용해가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어야 하는 걸, 계단으로 의미 없는 노력한 거라 하더라. 그래서 앞으로는 3층 이상은 계단 대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겠으며, 선물을 주고는 쓸데 없는 얘기를 안 하는 걸로 더욱 쇄신하여…."

 

따위의 메시지를 상대에게 전송해 버리는 일이 많거든. 그렇게 그냥 다른 방식의 '안물 안궁 어쩔티비'를 또 해버리는 거야. 하도 많은 사연을 보다 보니 나도 이제 이 사연이 대답을 듣기 위한 건지, 아니면 들은 대답을 써먹기 위한 건지 나름 촉이 서는데, 김형은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어. 지금 필요한 건 겉바속촉 찹쌀탕수육 오늘 저녁에 먹자고 제안하는 거지, 또 다른 방식의 고해성사를 하는 게 아니니까. 찹쌀탕수육은 소스 찍어먹는 것보다 맛소금 찍어 먹는 게 더 맛있다는 꿀팁까지 하나 알려주며 매뉴얼은 마치도록 할게. 다들 '아직 겨우 화요일'이란 생각에 힘겨우실 수 있을 텐데, 그래도 조금만 더 힘내시길! 불금 이즈 커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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