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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6)

다정하고 살가운 이 남자. 썸인가요, 어장인가요?

by 무한 2022. 1. 6.

사연에 첨부된 카톡대화를 읽고, 또 읽고, 또 읽어보아도 둘 사이엔 아직 뭐 아무것도 없는데, 그런 관계를 두고 

 

"이게 썸이라면 잘 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세요. 만약 썸이 아니고 어장이라면, 한 방 먹일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세요."

 

라는 요구를 하는 여성대원들이 생각보다 많다. 어느 대원은, 아직 상대와 말도 놓지 않았으며 상대 생일이 언제인지도 모르면서 그 관계가 썸인지 어장인지 빨리 판단해달라며 재촉하기도 하고, 또 다른 대원은 비슷한 상황에서 상대가 이쪽의 말에 필요 이상으로 격한 리액션을 해주었다며 '끼부리는 꾸러기'에 가깝지 않냐며 내게 얼른 동의하라는 요청을 하기도 한다.

 

미세플라스틱으로 인한 해양오염 문제가 심각한 오늘날 이 시점에, 바다 위에 떠 있는 병뚜껑 같은 걸 마음대로 삼켜버리곤 "고니요? 내가 아는 타짜 중에 최고였어요." 같은 이상한 소리를 하고 있는 대원들을 위해 준비했다. 그 관계가 썸인지 연애인지 아니면 그 어디쯤에 있는 건지 구별하는 방법. 함께 살펴보자.

 

 

1. 상대가 의도적으로 이쪽 마음을 들춰보려 하는가?

 

둘의 관계가 썸인지, 어장관리인지를 가장 간편하게 구별하는 방법은 

 

-상대가 이쪽의 마음을 들춰보려 계속 수를 쓰는가?

 

를 살펴보는 것이다. 이쪽 같은 사람이 이상형이라는 얘기를 하면서 자꾸 연애에 관한 질문을 하고, 자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면서 묻고, '기-승-전-떠보기' 식의 대화를 이어간다면 그건 어장관리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냥 음식 얘기가 나와서, 말하다 보니 엄마가 해줬던 음식 얘기도 하고, 그러다 자연히 어느 미드에 나온 음식 얘기로 이어지다 영화 얘기도 하고, 또 그러다 서로 어느 영화 추천해준 거 보겠다는 얘기 정도를 나누는 건, 현재 말도 잘 통하고 대화하다 보니 알아가는 즐거움도 있고 하기에 어울리는 중이라 생각하는 게 맞다. 세상의 모든 이성을

 

-나에게 마음이 있으며 나와 사귈 남자.

-그 밖의 무엇들.

 

딱 두 가지로만 나누어 생각해버리면, 조금만 친해져도 매번 썸인지 어장인지를 구별만 하려 하다 나이 오십이 될 수 있다. 누군가가 현재 내 허튼소리도 유쾌하게 들어주며 장단까지 맞춰주고, 더불어 아침저녁으로 안부인사까지 물어주며 감사하게도 대화에 성의를 가지고 임하는데, 겨우 싹이 튼 그 관계를 두고 '이 관계가 아름드리 나무가 될 것인가/아닌가'만 따지며 얼른 파낼 준비만 하고 있진 말자.

 

상대가, 이쪽에 반한 것처럼 분위기 잡아 거의 고백 다 받아놓고 인기만 즐긴 채 무성의하게 대하는 게 아니라면, 이번 주말에 만날 약속 잡아 맛있는 거 먹는 것에 더 열중해 보자. 

 

 

2. 정색하며 진지모드로 돌변하거나, 면박주는 게 더 문제. 

 

그냥 천성 자체가 활발하고 다정하며 살갑다거나, 아니면 오지랖이 넓은 타입이라거나,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며 기쁨을 느끼는 성향이라거나, 이성들과 어울리는 것에 익숙하다거나, 함께 드립을 치는 대화를 즐긴다거나 등의 이유들로 인해 잘 지내며 챙겨줄 수 있다. 

 

특히 이쪽이나 상대 모두 사회생활을 경험했으며, 몇 번의 연애경험도 있는 나이라면, 싫지 않은 이성과 단둘이 대화를 나눌 때 굳이 딱딱해지거나, 용건만 간단히 답한다거나, 리액션할 말이 있는데 억지로 삼키며 '사귈 사이가 아니니까'라며 이모티콘 정도로 막아버리진 않는다. 단둘이 밥을 먹었다고 해서 굳이 거기에 엄청난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주말에 동네에 놀러갈 테니 동네 구경을 시켜달라고 하거나, 함께 얘기했던 영화 같이 보러 가자고 말하는 것이 '반드시 사귈 생각이 있어야만 할 수 있는 일'이 꼭은 아닐 수도 있다.

 

물론, 이쪽이 상대에게 호감이 있으니까 아주 작은 프사 하나에서부터 크다고 할 수 있는 만날 약속에까지 어떻게든 거기서 의미를 찾아내고 해석해내고 싶은 마음은 이해한다. 하지만 그러다 혼자 답답해져서 고민하다 결국 축적된 화로 인해 정색하며 진지모드로 돌변하거나, 상대의 드립을 꼬투리 잡아 면박 주는 일은 하지 않았으면 한다. 크게 보면 별 문제 없이 잘 되고 있던 관계였는데, 그런 폭주와 급발진으로 인해 오히려 관계가 끝나버리는 경우가 많다. 

 

입장을 바꿔서 상대가, 둘이 드립치며 대화하던 중

 

"헐 뭐예요 ㅎㅎ 엑스는 무슨 엑스! 그런 거 아녜요. ㅎㅎ"

 

하며 넘어갈 수 있는 순간에,

 

"멍뭉씨는 말을 할 때 한 번 더 생각하고 해야 할 것 같아요. 전 아직 우리가 그런 농담까지 할 사이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친해졌다고 해도 저는 그런 농담하는 거 좋아하지 않아요."

 

라고 해버리면 뭔가 찬물 끼얹는 느낌도 들고, 앞으로 말할 때 뭐 또 꼬투리 잡히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에 말하기 조심스러워지지 않을까?

 

종종 여기서 더 나아가 상대는 누가 봐도 나쁜 뜻으로 한 말이 아닌데, 그걸 비뚤게 듣고는 면박 주듯 말해 차게 식는 경우들도 있다. 예를 들자면 "그 영화는 내가 쏠 테니, 멍뭉씨가 탕수육 쏴요!"라는 말을 듣고는 "왜 항상 그렇게 조건부냐. 만나는 것까지 다 계산하면서 하냐."라고 말해 밥상 엎는 건데, 신천에서 화정까지 상대가 차 몰고 오고, 전에는 양고기도 상대가 쏜 적 있음에도, 그건 생각 안 하고 문장 하나에 기분 팍 상해 그렇게 관계를 엎어버리진 말았으면 한다. 

 

3. 사귈 생각에만 빠져 급해지지 말고, 더 만나며 알고 놀자.

 

그러니까

 

"벌써 다섯 번째 본 건데, 별 말이 없네요. 이런 거면 그냥 어장 아닌가요? 절 뭐라고 생각하는 거죠? 그냥 심심할 때 만날 수 있는 사람? 이번 주 토요일에 만나기로 했는데, 이번에 만나서 우린 무슨 사이냐고 물어볼까요?"

 

라며 화가 나 있는 대원들이 있는데, 너무 급하게 생각하지 말자. 서두에서 말했듯 거의 매일 연락하고 다섯 번 만났지만, 따지고 보면 아직 상대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은 아주 적지 않은가. 상대 신발 사이즈도 모르면서 얼른 상대가 고백하고 행복한 연애를 펼쳐주기만 기대한다든가, 요즘 상대가 무슨 고민을 하는 중인지도 모르면서 빨리 내 연인이 되어 고민 다 들어주고 위로해주고 힘을 주길 바라진 말자. 

 

더불어 너무 혼자 다급해져선, 시작부터 내 해답지 아예 다 공개하고 '사귀자는 말만 기다리는 상황'을 만들지도 말았으면 한다. 그건 마치 영화의 결말을 이미 다 스포 당한 것 같아서 상대로 하여금 '아 이래 버리면 좀 그런데….' 하는 마음이 들게 할 수 있으며, '사귄다'는 결론을 지어 놓고 만나야 하는 의무나 부담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이쪽의 모든 리액션들 역시, 사귀자는 말 기다리며 베푸는 '의식적으로 만들어내는 모습'처럼 여겨질 수도 있고 말이다. 

 

매일 연락하고 이번 주말에 만나는 게 어렵지 않은 사이라면, 누군가와 머리를 맞대고 상대의 의도들을 추측해 보거나 미래를 점치려 애쓰기보다는, 만나서 더 알아가고 재미있게 놀면 된다. 언젠가 모 기업 CF에서 '행복한 사람만큼 곁에 두고 싶은 사람은 없습니다.'라고 썼던 문구처럼, 상대가 호감을 느낀 이쪽의 매력을 상대에게 더 보여줘야 하는 거지, 어느 순간부터 평가자가 되어 상대를 관찰만 하거나, 빨리 연애 시작 안 한다고 밀당 계획하거나 일부러 튕길 생각만 하다간 튕겨나갈 수 있다.

 

코로나 때문에 한정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아직 우리에겐 수많은 맛집과 분위기 좋은 카페들이 있지 않은가. 이미 둘의 관계는 시작되어 진행 중인 거고, 지금부터 둘의 추억 만들며 점점 정들어 물들게 하는 것만큼 효과적인 비법도 또 없으니, 고민은 이 글을 여기까지 읽는 것으로 마치고 얼른 소고기 사 먹으며 재미있게 놀길 바란다. 소는 내가 키울 테니, 걱정 말고 나가서 소중한 시간과 인연을 즐겼으면 한다.  


오늘 준비한 매뉴얼은 여기까지다. 긴 공백으로 인해 수많은 사연들이 쌓였고, 거의 대부분은 유효기간이 다 지나버리고 말았는데, 이 사연들을 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 중이다. 가장 도움이 절실했던 순간에 부재중이었기에 도움을 못 드린 점 죄송하단 말씀을 드리며, 다시 사연 보낼 일이 없는 게 가장 좋긴 하겠지만, 혹 나중에라도 사연 보내실 일이 생기면 '부재중 사연 보냈던 사람'이라는 문장 하나 적어주시면 최우선으로 소개해드릴 생각이다.

 

무책임하게 노멀로그를 방치해 두고 있던 순간에도 나보다 더 노멀로그에 자주 들러 주신 분들, 댓글과 메일과 카톡으로 안부를 물어주신 분들, 그리고 구남친 구여친도 잊었을 긴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들러 반갑게 맞아주시는 분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씀도 드리고 싶다. 적다 보니 무슨 연말 수상소감처럼 되어가고 있는데, 그간 뭘 하며 지냈는지는 따로 한 번 포스팅을 통해 정리하기로 하고, 불금이 얼마 안 남았으니 오늘은 조금만 더 힘내시라는 말로 마무리를 할까 한다. 하루만 더 자면 불금이니, 들썩들썩 할 준비 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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