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연애매뉴얼(연재중)/천오백자연애상담

‘이 여자 아니면 안 돼’라는 마음이 사라지고, 쉽게 포기합니다.

by 무한 2017. 2. 22.

광수씨는 이걸 무슨 ‘뭐뭐뭐패스’같은 정신과적 문제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닌지 고민하던데, 그건 몇 번의 연애를 경험하며 이성, 또는 연애에 대한 환상이 많이 깨졌을 때 자연스레 찾아오는 증상이니 너무 걱정할 것 없다. 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폰 배경화면을 내가 찍은 사진으로 설정하고 벨소리를 내가 좋아하는 노래로 바꾸는 등의 일을 했지만, 기기변경과 번호이동을 몇 번 경험하고 난 지금은 그냥 순정상태 그대로 쓰고 있다. 뭐 대략, 이것과 비슷한 거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렇다손 치더라도 광수씨의 그 무덤덤함과 빠른 포기는 남들보다 살짝 더 심한 편인데, 그렇게 된 이유를 나는 아래의 세 가지 지점에서 찾을 수 있었다.

 

A. 여자가 먼저 호감을 보이거나 다가오는 식으로 관계가 시작됨.

B. 일단 다 베풀고 잘해주고 챙겨주면 연애가 알아서 될 거라 생각함.

C. 기분이 상하면 곧바로 카톡방을 나가버리는 등 극단적인 행동을 함.

 

 

 

우선 광수씨는, 조건이 좋다. 그냥 좋은 정도가 아니라 주변 사람들이 ‘내가 아는 사람 중 제일 잘 사는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할 정도로 좋으며, 자신의 사업도 잘 이끌어가 서른이 되기 전인 지금 이미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아두었다. 때문에 주변에 호의를 보이는 사람이 많으며, 결혼 적령기에 가까워진 지금은 먼저 다가오는 이성도 있을 정도다.

 

그러면 좋은 거 아니냐고 할지 모르지만, 키질을 해봐야 걸러낼 수 있는 알곡과 쭉정이는 그 양이 많으면 많을수록 거르기 힘들며, 풍요로운 환경 속에서라면 굳이 귀찮게 키질을 할 마음이 안 생길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래서 광수씨를 보고 다가오는 사람과 광수씨의 조건을 보고 다가오는 사람을 구별하는 일이 버거워졌으며, 이제 ‘거르는 것’에 신경을 쓰다 보니 상대라는 사람을 알아가는 것보다 상대를 관찰하고 평가하는 일에 더 열중하게 된 것 같다.

 

 

그리고 저런 태도는, 두 번째 ‘점점 무덤덤해진 이유’인 ‘호의와 친절을 베풀고 연애를 기대함’이라는 태도와 만나 더욱 부정적인 문제를 만들고 만다. 광수씨는 상대가 먹고 싶은 거 사준다고 하고, 가고 싶은 곳 데려가 준다고 하고, 하고 싶은 거 같이 해준다고 하는데, 그게 상대와의 어떤 교감이나 관계에 대한 설렘이 기반에 있어 그러는 게 아니다. 썸녀가 생기면 으레 그러는 레퍼토리에 가깝다. 분명 뭘 사주겠다며 호의를 베푸는 것이지만, 나쁘게 보면 그건 그렇게 해서 상대가 ‘OK’를 하는지를 보려는, 또 그렇게 몇 번 만난 뒤 고백하면 사귀게 될 수 있을 거란 마음에서 던지는 떡밥에 가깝다.

 

만약 광수씨가 오늘부터 A라는 여자와 친해지기로 한 거라면, 그녀에게 뭐 좋아하는지, 이번 주말에 그거 먹으러 같이 갈 수 있는지 등을 묻는 게 대화의 8할일 것 같다. 뭐 네가 좋아하는 걸 해주겠다고 하는 것도 능력이나 매력이라면 그럴 수 있겠지만, 그냥 일단 그렇게 다 퍼주는 걸로 상대가 온 맘 다해 광수씨를 좋아하길 바라는 건 잘못된 생각이며 방법일 수 있다. 특별한 구실이 없어도 대화할 수 있고, 또 굳이 꼭 뭘 해주지 않아도 만날 수 있는 그런 사이를 만들어 가봤으면 한다.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 건, 광수씨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대신 관계의 단절을 생각해버리며, 광수씨에 대한 상대의 리액션이 100% 긍정적이지만은 않을 때 마음이 차게 식어버리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썸 타는 사이든 연인사이든 매번 전부 긍정적일 순 없는 거고 사정이 있기에 양해를 구할 수도 있는 건데, 광수씨는

 

“저도 그 지점에서 더 칭얼대거나 그러지도 않았고. ‘알았다’하고는 더 묻지도 않았어요.”

“상대가 정말 무례하다고 생각했고 마음대로 제게 그러는 것에 짜증이 났어요. 하지만 그래도 한번쯤은 그럴 수 있다 생각하며 아무 말 안 하고 넘어갔어요.”

 

라는 식으로만 대응하고 만다. 짜증나서 확 팽개치거나, 상대가 무례하고 몰상식한 태도를 보이는데도 다 이해해주는 척 하며 그냥 넘어가고 마는 것이다.

 

이래버리면 상대와 조율할 수 있는 타이밍은 전부 다 놓치게 되며, 그렇게 혼자 차곡차곡 쌓아두고 있다가 나중에 “난 이미 너에 대해 포기했다. 마음속에서 떼어내는 작업까지 완료했다.”라며 이별을 선고하는 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늘 좋은 평가와 리액션만 들을 수 있는 것 아니며, 서로 ‘다른 사람’인 둘이 맞춰가기 위해선 광수씨도 자신의 진심을 상대에게 꺼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는 걸 기억했으면 한다. 그리고 ‘눈 한 번 딱 감고 호구짓 한 번 해준다’고 생각하며 넘기는 일이 반복되면, 상대는 광수씨를 호구로 보게 될 뿐이라는 것도 잊지 말길 바란다.

 

 

끝으로 지금 연락 중인 썸녀와의 관계에 대해 한 마디 하자면, 그녀는 광수씨를 호구로 보곤 이용하려 드는 게 확실하다. 광수씨는 그녀가 광수씨보다 어리니 살짝 애처럼 생각하는 것 같은데, 광수씨가 스무살 일 때 지금 그녀의 나이 또래 이성들이 어떻게 보였는지 생각해 보길 바란다. 알 거 다 알고, 필요에 따라 연기도 할 수 있으며, 남자들이 자신의 무엇에 관심을 가지는지도 다 알 나이다. 아닌 척 하지만 결국 와라가라 하면서 광수씨를 가지고 노는 게 분명하니, 이 시간 이후로 그녀를 광수씨의 삶에서 영원히 차단하길 권한다.

 

광수씨는 내게

 

“저도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하고 싶어요. 그래서 그만큼 만나보려고 노력하는 편이기도 하고요.”

 

라고 말했는데, 그런 노력은 어디까지나 ‘사람다운’사람을 만났을 때 해야 한다. 상대가 그런 사람인지 아닌지를 가리는 것을 너무 어려워할 것 없다. 자기가 뭘 좋아하고 뭘 먹고 싶은지에 대해서는 구구절절 이야기하지만 광수씨에겐 묻지 않는 사람을 거르면 된다. 그리고 광수씨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것이 없는 사람을 거르면 된다. 일단 이 정도만 걸러도 지금보다 시간과 돈과 에너지를 허비할 일이 적어질 거라 난 생각한다. 자 그럼, 새로운 마음으로 새로운 사람과 시작해 보시길!

 

카카오스토리에서 받아보는 노멀로그 새 글! "여기"를 눌러주세요.

 새 글을 편하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 공감과 추천, 댓글은 제게 큰 힘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카카오뷰에서 받아보는 노멀로그 새 글과 연관 글! "여기"를 눌러주세요.

 새 글과 연관 글을 편하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