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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연애오답노트

마음 열지 않던 여친이 시간을 갖자고 하네요.

by 무한 2016. 12. 6.

만약 S군이 둘 중 누구에게 더 많은 과실이 있는 거냐고 묻는다면, 난 망설임 없이 80% 이상의 과실이 S군에게 있다고 대답하겠다.

 

내가 S군에게 작은 사이즈의 마블 캐릭터 티셔츠를 선물한 뒤

 

“난 이거, 정말 널 생각해서 어렵게 구한 거야. 그런데 넌 입지를 않네. 작다고? 좀 끼게 입어도 되는 거잖아. 내가 준 선물을 네가 정말 소중히 생각했다면, 너는 한 번이라도 입었겠지.”

 

라는 이야기를 한다면, S군은 어떤 기분이 들겠는가? 나아가 내가, 그걸 두고 1주일 뒤에도, 한 달 뒤에도 계속 그 ‘실망이다’의 분위기만 풍기고 있다면 어떻겠는가? 내가 정말 계속 이럴 거라면, 차라리 선물을 안 주고 서운함이나 실망도 내비치지 않는 게 더 나은 일 아닐까?

 

이게 S군의 근본적인 문제이며, 이것 때문에 여친은 숨이 막혔던 거고, 그래서 부담스러움을 드러내면 S군은 또 여친이 부담스러워하는 것에 대해 서운해 했던 거다. 분명 ‘좋은 마음’으로 시작된 것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한 쪽은 계속 서운해 하고 다른 쪽은 부담스러워 하게 되는 일의 반복. 그럼에도 불구하고 S군은 ‘여친이 마음을 열지 않아서, 마음을 여는 속도가 느려서’라는 걸 갈등의 원인으로 오해하고 있던데, 이런 S군의 사연을 오늘 함께 살펴보자.

 

 

1. 상상과 실제는 완전히 다를 수 있다.

 

예전에 자전거 국토종주와 관련해 한 번 한 적 있는 이야긴데, 아주 편안한 상태로 방구석에 앉아 남들의 여행기를 읽으며 계획을 짤 때와 실제로 그 국토종주 구간을 달리며 오르막 몇 번 경험하고 허허벌판에서 식당도 보이지 않아 주린 배를 움켜쥐고 있을 때의 느낌은 완전히 다르다.

 

자전거를 타고 20km쯤 달리는 게 방에 앉아 머리로 생각할 땐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게 컨디션 100%의 멀쩡한 상태로 20km를 달리는 것과 이미 100km를 달린 뒤 20km를 더 가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일 수 있다. 몸은 땀으로 다 젖어 축축하고, 목과 손목은 비명을 질러대며, 자전거에서 내렸을 때 다리가 저절로 덜덜덜 떨리고 있는 상황이면, 팬티바람에 컴퓨터 앞에 앉아 지도 보며 ‘하루 120km가 아니라 150km를 타도 괜찮지 않을까?’라며 그저 편하게 생각했던 자신을 원망하게 될 수 있다.

 

위의 이야기에 S군의 연애를 대입하자면,

 

- S군은 편안하게 앉아 지도를 보며 생각하는 사람.

- 여친은 직접 필드에 나가 활동하고 있는 사람.

 

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건 S군도 이미 이야기 한 내용인데, S군 역시 자신이 해외여행을 가보니 여친이 왜 해외로 가족여행을 갔을 때 연락을 제대로 못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지금도 바로 그런 문제가 벌어지고 있는 거다. 여친은 가족들과 가깝게 지내고, 여친 집안은 김장도 친척들과 모여서 하며, 또 자매들끼리의 사이도 가깝다. 반면 S군은 외동이며, 부모님과는 연락을 잘 하지 않는다. 만약 S군도 ‘가족 외식’이라는 걸 하고, 김장철이면 부모님과 함께 친척집에 김장하러 같이 가며, 형제처럼 지내는 지인과 자주 연락한다면 그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S군은 자신의 입장에서만 여친을 평가하며, 나아가 ‘안 그래도 되는 일’을 여친이 한다고 생각해 버린다. 예를 들자면,

 

- 김장 그거 그냥 핑계대고 안 가고 나랑 놀 수 있는 거 아닌가?

- 가족끼리 밥을 먹느라 연인을 그냥 놔두는 걸 이해할 수 없네.

- 평일에 잘 못 보면 주말은 온전히 연애에 할애해야지, 왜 자매들과?

- 이런 건 다 이해해야한다 쳐도, 그럼 연락은 왜 자주 안 하는 거?

 

등의 생각을 하며 분노를 축적하는 것이다.

 

난 S군이 곧 여친과 헤어질 거라 예상하는데, 헤어지고 난 후엔 S군이 위와 같은 생각들로 분노만 축적했던 것에 대해 땅을 치고 후회하리라 생각한다. S군은 내가 매뉴얼을 통해 자주 이야기 한

 

- 혼자 전력질주를 하며, 상대보고 빨리 따라오라고 윽박지르는 모습.

 

을 보이고 있는 것이고, 이러면 이별은 필연적인 것이 되며, 상대가 좀 천천히 가자고 사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단 여기까지 와. 빨리.’라고 말한 S군 자신의 모습을 이별 후에야 되돌아보게 될 테니 말이다. S군은 신청서에도 온통 ‘상대가 너무 느리다’는 이야기만 적어두었던데, 난 상대가 느린 게 아니라 S군이 빠른 것이며, 이럴 땐 S군이 상대에게로 가 발 맞춰 걸어야 하는 거란 얘기를 해주고 싶다.

 

 

2. 심술! 심술! 심술!

 

S군이 첨부한 카톡대화 첫 페이지에 있는 문장을 보곤, 난 둘에게 이별이 멀지 않았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음…, 가족일인데 내가 가지 말라고는 못하지….”

 

주말에 김장하러 가야 할 일이 생겨서 못 만날 것 같으니, 평일에 보면 어떻겠냐고 물은 여친에게 S군이 한 말이다. S군이 실망과 서운함으로 인해 저런 태도를 보인 건 이해하지만, 저 말을 듣는 상대의 기분이 어떨지도 한 번 생각해 봤으면 한다. 저건 분명 안 하느니만 못한 말이며, 할 필요도 없고, 해서도 안 되는 말이라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이후 S군이 ‘평일 만남’에 대해 미지근한 태도를 보이자, 여친은 그럼 자신이 토요일 오후에 내려가니 오전에 만나 아침을 먹는 건 어떠냐는 제안을 했다. 그 제안에 대해 S군이 한 말을 보자.

 

“나 아침 안 먹잖아…. ㅋㅋ 난 하루에 1약속을 중시하는 편이라.”

 

‘돌려 까기’가 등장했다. 저 상황에서 S군은 주말에 여친이 데이트를 안 하고 김장하러 간다는 것에 이미 빈정이 상해, 여친이 무슨 얘기를 하든 다 저런 식으로 돌려 까기 시작한 것이다. 여친이 대안을 제시해도 그냥 심술을 부리며 밀어내고, 여친이 ‘종일 데이트만’을 생각하는 게 아니라는 것에 대해 저렇게 돌려 깐다.

 

S군의 카톡대화엔 이런 불필요한 심술이 너무 많으며, 그 빈도 역시 잦다. 여친이 아버지 생신선물을 사러 백화점에 가 둘러보느라 전화를 안 받기만 해도,

 

S군 – 통화할래?

(40분 뒤)

S군 – 안 되겠네…. 다음에 하자.

 

라는 카톡을 보낸다. 정말 통화하고 싶은 거면 그냥 전화를 걸든가!

 

여기서 S군의 태도를 보면, 상대에게 ‘서운해 할 거리’를 만들려는 사람 같고, 일을 진행해가는 태도 역시 ‘실망할 거리’를 만들어가려 작정한 사람 같다. 부정적인 에너지를 잔뜩 풍기며 상황 역시 부정적으로 만들어가며 또 징징징징. 보는 내가 다 답답하다.

 

어차피 결국 또 이럴 거라면, 여친에게 잘해줄 필요 없으며 그녀에게 헌신할 필요 없다. 물질과 몸과 시간으로 호의를 베풀면 뭐하는가. 정신적, 정서적으로는 꼬장을 부릴 뿐인데.

 

“대가를 바라고 베푼 저의 잘못도 있지만, 저는 여친이 좀 더 이 관계에 집중을 해줬으면 하는 마음에 그랬던 겁니다.”

 

정말 냉정하고 객관적이게 생각해 봐야 한다. S군은 정말 ‘행복’을 위해서 그러는 게 아니라, ‘불만족’을 충족시키려 사소한 것 하나를 가지고도 트집 잡아 꼬장을 부리는 거다. 이 모든 일은, 사실 상대를 위해서도 아니고 서로를 위해서도 아닌, 오로지 S군의 만족을 위해 벌이고 있는 것 아닌가.

 

S군이 바라는 연애를 위해 현실의 상대를 억지로 구겨서라도 그 틀에 맞추려 하는 것. 바라는 대로 상대가 잘 따라와주지 않으면 심술 부려 상대에게 상처를 내서라도 복수하려 드는 것. 그러면서도

 

“3일이고 일주일이고 한 달이고, 생각할 시간 필요하면 말해.”

 

라며 자신은 다 이해하고 받아주고 용서해주는 사람인 것처럼 행동하는 것. 그래서 결국 어떤 갈등이 일어나든 결국 결론은 전부 상대 잘못인 것처럼 상황을 몰아가는 것. S군의 이런 태도를 오래 버틸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걸 잊지 말았으면 한다. 여친은 저 ‘주말에 못 만나는 것’을 두고도 하루종일 그걸로 꼬장부리는 S군을 다 받아줬는데, 그 정도면 정말 보살급의 인내심으로 버틴 거다.

 

 

3. 원하는 걸 말하지도 못하면서 재촉.

 

S군은 여친이

 

“난 솔직히 지금도 많이 노력하고 있다. 난 원래 이렇게 하는 사람이 아닌데 오빠가 자꾸 그런 것에 대해 말을 하니까 지금 노력하고 있는 거 아니냐.”

 

라는 이야기를 했다고 말했는데, 이걸 착각하면 안 된다. 내가 매뉴얼을 통해 ‘난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다’라는 이야기를 하는 게 문제가 된다고 말한 상황은, 상대가 잘못을 저지르고도 의도나 본성을 핑계로 무마하려 할 때의 상황이다. 아니면 불성실이라 무성의에 대한 핑계로 저런 이야기나 할 때를 말하는 것이고 말이다. 

 

그녀가 저 이야기를 한 건 경우가 완전히 다르다. 그녀는 정말 많이 노력했고, 노력하고 있었으며, 저 이야기를 하기 이전에도 S군에게

 

“그러면 오빠는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

 

라고 물었다. 그런데 S군은 위에서 말했듯 아무 답도 안 주면서 그냥 계속 꼬투리를 잡거나 꼬장을 부리고, 건수 하나 잡은 사람처럼 심술을 부리지 않았는가. 그녀 입장에서는 S군이 이것도 싫다, 저것도 마음에 안 든다, 하고 있기만 하니

 

“너 그럼 대체 나한테 바라는 게 뭔데? 말을 해봐. 그렇게 해줄게. 나도 지금 엄청 노력하고 있는 건데, 너는 답도 없이 심술만 부릴 뿐이라면, 나도 이젠 진짜 더 못할 것 같아.”

 

라는 말을 저렇게 한 거라 보면 되겠다. 그럼 또 S군 입장에선 상대의 불성실하고 무성의한 것 같은 태도가 문제인데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거라 생각하기에, ‘나는 이렇게까지 했는데 내가 잘못이라고?’라는 마음이 되는 거고 말이다.

 

난 S군에게,

 

“원하는 걸 명확하게, 구체적으로 설정하고 전달하세요. 상대가 그걸 듣고 할 수 있는 건지 없는 건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그런 걸 제시하세요. 뭘 원하는 건지 확실히 말하지도 않으면서 그냥 서운해하고 섭섭하면, 그게 사람 미치게 하는 겁니다.”

 

라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S군이 여친에게 자신이 바라는 걸 표현한 이야기들을 보자.

 

“적절하게 추억을 쌓자.”

“우리 한 번 잘해보자.”

“좀 더 연애에 집중해줬으면 한다.”

 

막연하다. 구체적으로 뭘 어떻게 하자는 건지도 모르겠고, ‘우리’라고 표현은 하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상대보고 더 잘하라는 말일 뿐이다. 그 ‘잘하라는 것’이 뚜렷하게 뭘 말하는 건지도 알 수 없고 말이다.

 

예컨대 S군이 바라는 게 ‘상대가 나와 여행을 가고 싶어 하는 것’이라면, 그것만 바라고 있지 말고 여행 얘기를 꺼낸 뒤 계획을 같이 짜자. 그냥 그러면 된다. 제안하거나 리드하면 되는 걸 가지고 S군은 상대가 저절로 그렇게 해주길 바라고만 있으니, 이건 뭐 입사를 위해 이력서 넣고 면접 보러 간 것도 아니면서 합격전화가 걸려오길 바라고 있는 모습이 되고 마는 것 아닌가.

 

 

당장 같이 할 수 있는 게 수 천 가지인데, S군은 ‘아직 안 되는 것’만을 바라보며 거기에만 몰두해 상대에게 실망과 서운함을 어떻게든 표현하려 애쓰고 있으니, 계속해서 갈등이 생기며 상대는 부담을, S군은 실망과 서운함을 거듭해서 느끼게 되는 거다.

 

또, 여친으로 하여금 ‘시간을 갖자’는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도록 몰아간 건, 따지고 보면 S군 아닌가. 그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이번 주말에 한 번 못 보는 것’ 때문에 심술이나 부리다가, 결국 이렇게 되고 말았다. 한 번의 주말을 참지 못해, 남은 평생의 주말을 그녀와 남남으로 지내야 할 상황에 봉착했다.

 

S군은 이전의 연애들도 한 달 이내로 짧게 했다고 했는데, 이런 태도로 연애를 했던 거라면 그건 당연한 일일 수 있다. 이건 사귀자마자 상대에게 ‘내가 잘해줄 테니, 넌 내가 원하는 사람이 돼라.’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과 같은데, 이것에 부담을 안 느낄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사귄 지 한 달도 안 된 사람에게 수 년 연애한 연인들의 그것과 같은 확신과 애정과 끈끈함을 원하는데, 그걸 줄 수 있는 사람은 또 몇이나 되겠는가. 이런 일들은 S군이 바라는 연애 판타지에 상대를 우겨넣어 맞추려다 벌어지는 일들이니, 앞으로는 현실에서, 현실의 상대와, 현실적인 연애를 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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