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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연애오답노트

연애만 하면, 부모님께서 제 남친을 비난하십니다.

by 무한 2016. 11. 28.

이건 이미 결론이 난 사연이긴 하다. 사연의 주인공인 J양은 이후 어머니와 얘기를 나눴고, 어머니께서는 ‘남친의 조건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솔직한 이유를 말씀해주셨다. 그래서 결국 또 J양이 마음정리 하는 쪽으로 결론이 났으며, 그렇기에 J양도 연애가 끝난 마당에 더는 매뉴얼이 필요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데 난, 이 사연에서 볼 수 있는 몇 가지 문제점을 J양이 깨닫지 못하면, 다음번에도 다다음번에도 같은 일이 반복될 뿐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연애는 이렇게 헤어지면 끝이고 끝이 났으니 더 고민할 것도 없겠지만, 지금까지의 J양 연애사 내내 따라다닌 문제는 지금 잠시 잠복해 있을 뿐 다음 사람을 만나면 또 고개를 들게 될 거란 얘기다.

 

그래서 난 J양이 생각해 봐야 할 문제들을 이 매뉴얼을 통해 하려 하는데, 걱정이 되는 게 하나 있다. 그건 J양 부모님께서 딸인 J양에게 하신 말씀들이, 밖에서 타인들이 봤을 땐 분노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이다. 독자 분들께서는 이 부분을, ‘부모님의 입장에선 J양이 딸이니까’ 하실 수 있는 이야기들로 생각하며 조금만 더 너그럽게 읽어 주시길 좀 부탁드리고 싶다. 사연을 소개해 J양 부모님에 대한 비판만을 불러일으키려는 건 아니니, ‘J양이 어떻게 해야 좀 더 나은 상황을 접할 수 있을지’를 함께 고민해 주셨으면 한다. 출발해 보자.

 

 

1. 부모님 눈에는 ‘완벽한 딸’로 보인다는 문제.

 

일부 부모님들께선, 당신들의 자녀에 대해 근자감을 가지고 계신 경우가 있다.

 

‘얘가 피아노를 계속 쳤으면 콩쿠르들을 다 씹어 먹었을 정도로 대단했을 거고, 의대에 갔으면 지금 의사가 되었을 거고, 법대에 갔으면 판사가 되었을 것.’

 

이라는 것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계시는 거다. 중학교 때 반장 한 번 한 걸 두고 내 자식은 리더십 부분에서 능력치 만렙을 찍었다고 생각하신다거나, 학원 선생님이 수학을 잘 한다고 말한 적 있는 걸 가지고 내 자식은 인간 전자계산기라고 생각하신다거나, 해외 자유여행을 다녀온 걸 두곤 외국계 기업에선 왜 이런 외국인과 회화가 가능한 인재를 뽑지 않는 거냐고 생각하실 수 있다.

 

반면, ‘남의 자식’에 대해선 그와는 정 반대의 태도를 보이시기도 한다. 쟤는 좋은 회사를 들어가긴 했지만 인성이 글러먹었다거나, 의사가 되기는 했지만 시키는 것만 할 줄 아는 것 같다거나, 집에 돈이 많아서 그런 거지 능력으로 보면 우리 애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낫다거나, 하는 식의 생각을 하는 걸 말한다.

 

이런 생각을 근본으로 한 ‘연애 반대’에 대해서는 작년 쯤 소개한 적 있다. 같은 학교에 다니는 동기와 사귀는 걸 두고,

 

“너는 원래 공부 잘했는데 수능을 망쳐서 그 학교 간 거다. 겨우 그 학교 간 애들이랑은 레벨이 다르다. 지금 사귀는 애는 같은 학교 같은 과를 다니니까 동등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라고 말한 사례 말이다. 충격과 공포의 이런 일들은 생각보다 꽤 많이 벌어지고 있고, 그 말을 부정하지 못한 채 그대로 받아들이기만 하는 대원들 중 일부는, 서른일곱, 여덟, 아홉까지 계속 그렇게 ‘부모님의 평가’에 따라 연애의 폐업을 반복하기도 한다.

 

사연의 주인공인 J양이, 현재 이런 상황에 놓여 있다. 물론 J양이 J양 부모님의 말씀처럼 고학력자이며 연봉도 평균 이상인 건 맞다. 그런데 그렇게 조건만 놓고 따질 거라면, 그것만 따질 것이 아니라 성격이나 외모, 집안의 재력, 부모님의 사회적 지위, 출신학교 등을 따져봐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어떤 조건을 비하하려 하는 얘기가 아니라 아주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고자 예를 들자면, 박사학위를 딴 사람이라고 해도 부모님이 경제적으로 그에게 의지하고 있는 경우와, 부모님이 건물을 하나 가지고 계신 건 완전히 다른 조건일 수 있다. 그런데 ‘박사학위’라는 게 같다고 해서 무작정 똑같은 조건을 바라고 있는 건, 저 누구는 의사랑 결혼했으니 이쪽도 의사랑 결혼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게 J양을 기죽이려 하거나 비난하려는 게 아니라, 그 ‘현실화 업데이트’가 되지 않으면 다가왔던 좋은 사람 다 보낼 수 있기에 하는 말이다. 아래에서 자세히 얘기하겠지만 J양은 부모님 말씀을 마치 ‘진리’인 것처럼 여기며 그저 수용하고 마는 버릇이 있는데, 이러다가 만약 상황이 안 좋아져 부모님이 상대 탓을 멈추고 J양을 탓하면 그땐 정말 멘붕에 빠질 수 있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부모님과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들을 나눠보며 시각을 재조정 해보길 권한다.

 

 

2. 엄청나게 순종적이며, 알아서 물러서는 문제.

 

내가 J양의 사연을 읽으며 가장 놀란 부분은,

 

“(어느 모임에서)문가에 예쁜 여자 분이 앉아있었는데 주문 받고 여러 일을 해야 하는 자리 같아서 힘들어 보이길래, 안쪽으로 앉으시라고 하고 제가 그 자리에 앉았어요.”

 

라는 부분이다. J양이나 그 분이나 ‘그 모임에 참석한 1人’임은 동일하니 굳이 그렇게 배려할 필요 없는데, J양은 ‘남들이 불편해 하는 자리’가 자신의 자리인 양 자리까지 바꿔가며 그곳을 택했다.

 

J양은 보통의 경우보다 열 배는 더 사람을, 특히 동성인 여자를 무서워한다. 그들로부터 결국은 괴롭힘을 당하거나 욕을 먹게 될 거라 생각하며, 그것을 더 악화시키지 않는 방법은 그냥 꾹 참거나 알아서 양보하거나 물러서는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런 태도는 J양이 자신의 어머니를 대할 때도 마찬가지라서, J양이 사귀는 사람에 대한 어머니의 평가가 부정적이면 J양은 그 자리에서 그냥 절망해 버리곤 한다.

 

여기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면 J양의 유년기와 학창시절, 그리고 가정사와 교유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그러면 너무 J양이 특정되며 공개적으로 할 수 있는 이야기도 아니니, 결론만 얘기하기로 하자. 난 J양에게

 

- 어찌되었든 나는 살아가야 하고, 타인은 그냥 타인이다.

 

라는 마음을 좀 먹길 권해주고 싶다. J양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그들이 내리는 평가가 J양을 정의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그런 건 개나 줘버리라고 생각해도 된다. 어쩔 수 없이 몸담고 있어야 하는 이전의 대인관계들에서야 힘이 약하면 당해야 하고, 또 싫은데도 억지로 만나야 했지만, 이젠 J양도 성인이고 얼마든지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 걸 선택할 수 있잖은가.

 

늘 얘기하지만, 지구에서 보내는 우리의 삶이 1,000년 쯤 되는 거라면 스스로를 갈고 닦고 둥글둥글하게 만들어 모두와 원만하게 지내는 것에 100년쯤 공을 들일 필요가 있다. 하지만 우리는 1,000년을 살 수 없고, 삼십대 중반을 넘어선 J양의 경우 앞으로 10년만 더 지나도 사십대 후반이 된다. 그때가 되어서도 남의 눈치를 먼저 봐야 하고, 누군가의 평가에 마음 아파하면서도 울며 수용해야 한다면 그 삶은 참을 인자만 새기는 수행처럼 여겨지지 않겠는가.

 

밥벌이를 하느라 마주쳐야 하는 대인관계는 그냥 딱 그쯤으로만 여기며, 좋은 사람 한둘과 연을 맺고 맛있는 거 먹으며 살아도 된다. 역시나 충격과 공포의 얘기처럼 들리겠지만, 부모님들께서 J양을 너무 힘들게 한다면 부모님과 물리적인 거리를 두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특히 J양 부모님의 경우 J양을 존중하며 J양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시기보다는 아직도 J양을 어린애처럼 생각하며 당신들께서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니, 이럴 땐 물리적으로 거리를 둬 J양의 사생활을 J양이 지켜나가는 게 좋은 방법일 수 있다.

 

난 J양 부모님께서 J양이 만나는 남자들에 대한 반대를 하시는 것엔, 부모님들이 J양의 이런 성향을 알기 때문인 점도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J양은 삼십대 중반을 넘어섰는데, 아직 십대 소녀처럼 순진하고 순수하다. 그래서 부모님들께서 보시기에 J양이 만나는 남자는 다 늑대나 도둑놈, 또는 J양을 휘두르거나 이용할 사람들로 보일 수도 있다.

 

그래서 더 J양을 지키려 하시는 걸 텐데, 이러면 J양은 정서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채 계속 부모님에게 묶여 있게 되고, 그런 까닭에 또 누군가를 만나도 부모님들께서 불합격 판정을 내리시는 일이 반복될 수 있다. 난 사실 이런 경우 먼저 부모님께 속을 터놓고 이야기 해보길 권하는데, J양의 경우 이미 수차례 시도해 봤지만 안타깝게도 오히려 부모님께선 그걸 ‘반항’으로 생각하시는 것 같으니, 사람을 바꾸기 어렵다면 상황을 바꾸는 것도 좋은 방법이란 얘기를 해주고 싶다. 

 

 

3.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의 문제.

 

J양 어머니께는 참 죄송하지만, 난 J양이 어머니가 하시는 말씀에 그대로 순종할 경우, 이번 생에 누군가를 만나 긴 연애를 하거나 결혼을 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J양 어머니께서는 무조건 남자를 적이나 사기꾼으로 설정하신 채, J양에게

 

“이제 너에겐 당하는 일만 남은 거다.”

 

라는 뉘앙스의 말씀을 하시기 때문이다. J양 어머니께선

 

“남자가 너를 정말 좋아하는 거면, 이러이러했을 것이다.”

 

라는 가정을 하신 뒤 계속해서 비교하시는데, 거기엔 100% ‘받는 것’에 대한 이야기만 있다. 이렇게만 적어두면 어떤 말씀을 하셨길래 그런 건지 갸우뚱 하실 독자 분이 계실 텐데, 하나만 옮겨 적자면

 

“결혼 전에는 대우를 받아야 한다. 네가 돈을 왜 쓰냐. 남자는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에게 자기 돈 쓰지, 여자 돈 쓰라고 안 한다.”

 

라는 게 있다. 만약 J양이 남친과 중간지점에서 만나거나 남친이 있는 곳으로 간다는 걸 알게 되신다면, 역시나

 

“남자가 여자를 좋아하면 차가 없어도 집 앞까지 데리러 가는데, 넌 네가 간 거냐. 봐라. 이건 잘못된 거다.”

 

라는 반응을 보이실 것이다. 그러니까 이게, 보통의 경우보다 많이 심각하며 훨씬 집요한 형태로 이루어지기에 큰 문제다.

 

물론 J양도 저 말씀들을 곧이곧대로 다 수용하기만 하는 건 아니지만, 저런 말들에 상처를 받는 것과 동시에 J양 마음속엔 의심의 씨앗이 자라기도 한다. J양의 말을 보자.

 

“제게는, 엄마의 말들이 사실이 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함도 있어요. 제가 겪은 일들이나 제 상황에 대해 남친에게 이야기 하면, 그게 약점 잡히는 게 되지 않을까 하는 거요. 그리고 엄마의 말들처럼 남친이 정말 절 우습게보거나 더는 존중하지 않게 되는 건 아닌지 하는 것도 무섭고요.”

 

그렇게 될 가능성은 어떤 연인에게든 있다. 모두가 부러워 할 정도로 잘 사귀다가도 한 쪽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해 엉망이 될 수도 있고, 결혼 이후라도 긴장의 끈이 풀려 무례하거나 무관심해질 수 있다. 기타 줄을 잘 맞춰놓았다 하더라도 치다보면 어느 새 또 음이 안 맞을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다만 함께한다는 것엔 그 ‘조율’의 과정까지가 포함된 것이기에, 여러 커플들이 관계의 희로애락을 경험하며 조화를 이루어가는 거란 얘기를 해주고 싶다. 완전히 안심하고 신뢰할 수 있으며 변치 않을 완벽한 사람을 만나서 사는 게 아니다. 끊임없이 더하기도 하고, 빼기도 하며 균형을 맞춰가는 거다.

 

J양 스스로를 연애나 대인관계에 대해 결국 아무 힘도 못 쓸 바보로 생각하지 말고, 이젠 좀 어른답게 누군가를 만나봤으면 한다. 결국 J양이 한 선택에 대한 책임은 J양이 고스란히 져나가야 하는 것이니 말이다. 그리고 어떤 선택을 하든 결국 ‘하지 않은 선택’에 대한 후회는 존재하게 되는 법이니, 그걸 무작정 잘못된 선택으로 여기거나 얼른 포기해야 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말았으면 한다.

 

 

J양 인생의 핸들을 부모님께 맡기지 말고 꼭 J양이 쥐고 있길 바란다. J양의 선택으로 인해 부모님과의 사이가 서먹서먹해지더라도 그건 J양이 감수해야 할 부분이라 생각한다. J양은 정말 조건이 좋은 남자와 만나기도 했는데, 그땐 J양 어머니께서

 

"그런 남자 만나면 네가 너무 비교되어서 고생한다."

 

라며 반대하신 적도 있잖은가. 이런 부모님의 입맛에 완벽하게 맞추는 건 불가능한 일이니, J양이 보고 싶은 사람, 같이 있으면 좋은 사람, 미래를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을 만났을 때 용기를 내 결정했으면 한다.

 

끝으로 하나 더. J양 부모님께서 J양에게 말씀하신 걸 절대 연인에게 이야기해선 안 된다. 그건 연인이 노력해야 할 부분이 아니며, 고쳐야 할 부분은 더더욱 아니다. 함께 고민해야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일단 J양이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부분이니, 둘의 기반이 만들어지기도 전에 그 불공평의 결정체인 이야기들을 풀어놓진 말았으면 한다. 난 다음 연애부터는 ‘J양과 J양 부모님’이 아닌 ‘J양’이 연애를 할 수 있게 되길 기원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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