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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커플생활매뉴얼

데이트는 단조롭고, 남친은 피곤하다고만 합니다.

by 무한 2016. 10. 20.

만 명이 있으면 만 가지의 서로 다른 형태의 연애가 있을 수 있는 것이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만나기로 한 날 아침에 여친이 “굳모닝~!”이라고 하자

 

“넵.. 미안한데 컨디션이 안 좋아요.. 다음에 봐요.”

 

라는 이야기를 하는 남자와의 관계는, 정리해야 하는 게 맞다. 여친이 “출근했어?”라고 물으니,

 

“웅.”

 

이라고 답한 후 아무 말도 없는 남자와 만나다 보면, 스트레스성 탈모로 인해 고통 받게 될 가능성만 높아질 뿐이다.

 

상대가 몰라서든 못 돼서든, 아무 애정도 보여주지 않는 이런 사람을 이해하겠다느니, 존중하겠다느니 하며 만나진 말자. 이쪽이 상대를 더 좋아해서 헤어지기 힘들다면, 최소한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자. 그래야 같은 상황을 되풀이해서 겪게 되는 걸 막을 수 있는 거지, 그냥 혼자 서운해 하는 것 정도로 넘어가면, 나중엔 더 예의 없고 더 마음대로인 상대를 경험하게 될 뿐이다.

 

이런 남친을 만나 시달리고 있는, H양의 이야기를 함께 살펴보자.

 

 

1. H양이 추구한다는 ‘개념녀’는 잘못된 개념이다.

 

H양은 자신이

 

- 속물근성을 보이지 않아야 하며, 이해하고 존중하며 진지하게 만나야 한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걸 강하게 밝히던데, 난 H양에게

 

“그래야 하는 이유가 뭔가요?”

 

라는 질문을 하고 싶다. H양이 ‘개념녀’를 추구하는 이유는 H양 말대로 지속 가능하며, 보다 성숙한 연애를 위해서이지 않은가?

 

그런데 지금 H양이 하고 있는 연애를 보면, 밥과 술과 모텔을 제외하면 상대와의 접점이 하나도 없는 연애일 뿐이다. 그냥 H양 혼자 다 이해하고, 존중하고, 참고 넘어가기로 한 까닭에, 상대는 ‘이보다 더 쉬운 연애는 없다’는 마음으로 H양을 만나게 된 것이다.

 

난 H양이 저 ‘개념녀’의 모습을 너무 강박적으로 추구한 까닭에, ‘상대의 호의와 친절을 받으면 온 몸에 두드러기가 돋게 되는 병’같은 것에 걸린 사람처럼 행동하게 된 거라 생각한다. 덮어두고 무조건 저자세로 나가며 상대를 이해하는 게 존중이 아닌데, H양은 ‘존중’을 잘못 이해했는지 그러고 있다.

 

이해는 상대가 양해를 구할 때 하고, 존중은 상대가 그 관계에 그만큼 마음을 쓰며 집중하고 있을 때 하자. 고심 끝에 한 말과 아무렇게나 한 말은 그 질량이 다른데, 상대를 존중한다며 후자의 말들까지 의미 깊게 여기는 건 맹목적인 거다. 또, 애정이라는 게 오고 가는 서로의 챙김 속에 싹트는 것이지 일방적으로 퍼주며 다 맞춰준다고 생기는 게 아니니, 이 이상한 희생정신과 양보와 이해는 그만 내려놓길 권한다. 무조건 안 받고 다 퍼주는 건 ‘개념녀’가 아니라 ‘바보’이니 말이다.

 

 

2. 최소한의 예의도 갖추지 않는 사람에게 매달리지 말자.

 

내가 H양 사연을 읽으며 가장 당황했던 부분은, 만나서 하는 거라고는 쉬다 가러 가는 것 밖에 없는 남친에게, 그것도 쉬러 가서도 피곤하다는 말만 달고 있는 남친에게 투정을 부리자, 그가

 

“다음부터 피곤할 것 같으면 안 볼게요.”

 

라고 대답한 지점이다.

 

이건 뭐, 대체 그가 H양을 얼마나 우습게 여기고 있으면 이 따위로 대답할 수 있나 싶다. 남친이 저 따위의 이야기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H양은 겁을 먹곤 ‘안 보자는 건 아니고 피곤하면 말을 미리 해달라는 거다’라며 숙이고 들어갔는데, 그러자 그는

 

“알았어요. 정말 피곤하면 말해줄게.”

 

라고 대답했을 뿐이다. 이런 대답도 H양은

 

“고마워요~”

 

라는 말로 받았고 말이다.

 

상대가 임금님이어도 이렇게까지 저자세로 모시기만 해선 안 되는 거다. 난 대체 상대가 얼마나 대단하길래 H양이 이렇게까지 쩔쩔매는지, 무슨 약점이라도 잡힌 게 있는 건지 신청서 윗부분의 신상명세를 몇 번이나 다시 확인했다. 그런 부분은 전혀 없었고, 이게 다 H양이 상대가 저 따위로 굴어도 전부 이해하고 존중하겠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으니 벌어진 일이었다.

 

쩔쩔매며 뭐든 다 맞추려는 H양 덕분에 오만해진 그는, 심지어

 

“H양은 스타일을 좀 바꿔보면 더 좋을 것 같아..”

 

라는 이야기까지를 했다. 둘은 만난 지 아직 세 달도 지나지 않았는데, H양의 이해와 존중을 먹고 무럭무럭 자라난 그의 오만함은 벌써부터 지적질을 시작한 것이다. 난 H양이 이 부분에 대해서는 분명 화를 내리라 생각했는데, 황당하게도 H양은

 

“구체적으로 말해주면 더 좋겠네요~”

 

라고 받았다.

 

상대가 오랜 시간 연락이 안 되어도 그냥 잤다고 하면 그만이고, 전화 통화 가능하냐고 하니 어딜 좀 가는 중이라 안 된다고 하고, 야근해야 한다는 말로 못 만난다는 말을 대신하는 것까지를 H양이 전부 이해하고 있으니, 상대에게 H양은 ‘그래도 되는 여친’이 되고 만 거다. H양은 세상엔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 수 만큼의 다양한 연애가 있다는 이야기를 하던데, 이처럼 아주 기본적인 예의도 갖춰지지 않은 관계까지를 ‘다양성’이라는 이름으로 이해하려 노력하진 않았으면 한다.

 

 

3. 무슨 관념 같은 걸 자꾸 내밀지 말고 그냥 연애를 좀….

 

연애는 정말 H양이 좋아하는 사람이랑 하자. 그게 어려우면, 역시나 최소한 관심이 있으며 말이 잘 통하는 사람과 하자. H양은 소개팅 첫 날 상대와 술 먹곤 진도를 다 나간 뒤 그때부터 사귀기 시작한 거라 했는데, 두 사람은 지금보다 오히려 그 때가 더 친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너무 어떤 관념에 맞춰 연애하려 하지 말고, 그냥 같이 있으면 좋은 사람과 맛있는 것 먹고 좋은 것 보러 다니는 연애를 좀 했으면 좋겠다. H양은

 

“남자들은 연애 중 여자친구와의 관계에서….”

“여자는 원래 답정너이기 때문에 제가 바라는 건 쓰지 않겠습니다.”

“남자와 여자는 다르지 않은 하나의 인간인데….”

 

라며 계속 ‘관념’에 대한 이야기만을 하는데, 왜 그렇게 거기에 집착하며 ‘무엇은 어찌해야 한다’는 걸 자꾸 정의하려 드는지 모르겠다.

 

그게 너무 심해지다 보니, H양은 자신 역시 한 사람의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의존적인 여자, 남자의 호의나 친절이나 헌신을 받는 여자’에 대해서는 혐오의 감정까지를 느끼게 된 것 같다. 그래서 자신은 그런 여자들과는 달라지겠노라며 ‘성숙한 연애’를 하려 했지만, 결과는 연애도 아니고 엔조이도 아닌 이상한 관계를 지속하게 되었다.

 

억지로 노력하지 말자. 99%의 사람들이 가성비 최고로 치는 모 구스다운점퍼도, 내가 입었을 때 팔이 짧아서 못 입는다면 그건 못 쓰는 거다. H양이 말하는 ‘관념’들이란 남들이 입을 모아 그게 제일 나은 것 같다고 말하는 것에 불과할 뿐이니, 그걸 더 캐내고 좇으려 들지 말고, 그냥 H양이 가장 H양 다운 모습으로 할 수 있는 연애를 하길 바란다. 덜컥 사귄 뒤에 남들이 말하는 정도를 걸어가려 노력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만나면 즐거운 연애를, 좋아하는 사람과 하는 게 중요한 거다.

 

 

그리고 이게, 그냥 보통의 대인관계에서는 별로 이런 모습을 보이지 않으며 오히려 고자세를 취하는데, ‘연애’와 관련되기만 하면 이런 모습을 보이는 대원들이 있다. 사연의 주인공인 H양 역시, 내게 보내는 메일에는

 

“제곧내. 읽고 상황 정황이 더 필요하시다 싶으시면 얘기해 주시오.”

 

라는, 좀 당황스러운 멘트를 적어 보냈다. 오타라고 보기에도 애매한 게, 신청서 역시

 

“~라는 건지는 잘 아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만.”

 

이라는 투로 작성된 까닭에, 난 속으로

 

‘이 사람이 어디에서 뺨 맞고 와서는 여기에서 화풀이 하네….’

 

하는 생각까지를 하기도 했다. 남친을 대할 때에는 ‘이보다 더 순종적일 수 없는’ 모습을 보이면서, 연애가 아닌 보통의 대인관계에서는 오히려 반대의 보습을 보이니 말이다.

 

H양이 더욱 괴로운 건, 이처럼 극단적으로 다른 두 캐릭터로 살아야 하기 때문일 수 있다. 그러니 그러지 말고, 연애에도 그냥 H양이 자연스레, 편하게 보여줄 수 있는 모습으로 임하길 권한다. 연애가 그렇게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하고 참고 인내만 해야 하는 것이라면, 사람들이 뭐하러 연애를 하겠으며 마조히스트가 아닌 이상 누가 오래 연애를 지속하겠는가. 예쁘게, 멋지게, 칭찬 받을 수 있게 연애를 해야하는 것 아니니, H양이 행복할 수 있는 연애를 하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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