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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5)

사내 심남이, 떠보는 걸까 아니면 장난일 뿐일까? 외 1편

by 무한 2016. 6. 3.

노멀한 흰색 옷걸이 네 개를 사용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곤, 니퍼로 자르고 구부려가며 임시 고양이 텐트를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니퍼 뒤쪽에 손가락 놓고 있다 찡겼는데, 지금도 욱신욱신하다. 안쪽에서 혈관이 터진 듯 피부 안쪽으로 피가 보인다. 건드리면 오히려 그 부위는 감각이 없고, 주변 피부의 감각이 120배 정도 예민해진 듯 만지는 손가락의 지문이 다 느껴진다.

 

새끼 고양이가 대체 뭐라고 내가 이러고 있는 건진 모르겠지만, 어제부로 녀석들이 상자를 탈출하기 시작한 까닭에 새로운 안식처를 만들어주고 싶었다. 이젠 녀석들이 서서 바둥거리면 높이가 28cm인 우체국 4호 박스 끝에 손톱이 닿는데, 그렇게 손톱을 건 뒤에 턱걸이 하듯 몸을 당겨 박스 밖으로 나온다. 박스를 닫고 그 위를 옷으로 막아두었는데도, 어떻게 나온 건진 모르겠지만 검은 녀석이 탈출해서 나와 있었다. 아마 누런 녀석의 등을 밟고 서서 빠져나온 게 아닌가 추측해본다. 누런 녀석은 못 나왔으니까.

 

여하튼 고양이 텐트를 만들어 놓고 나니 뿌듯하긴 하다. 이건 나중에 고양이 소식 전하는 포스팅에서 소개하기로 하고, 불금이니 금요사연모음 출발해 보자.

 

 

1. 사내 심남이, 저를 떠보는 건가요 아니면 그냥 장난인가요?

 

H양은 내게

 

“무한님. 혹 제 사연을 다루게 되신다면 제가 확실히 ‘역시 아니구나’하고 완벽히 짝사랑 중임을 직시할 수 있게 저도 모르게 의미부여하고 있는 부분을 모두 부정해주셨으면 합니다. 반대로 그럴 일 없으리라 여기고 있지만 정말, 만에 하나, 그 분도 제게 관심을 가지고 계신 것 같다면, 제가 어떻게 다가갈 수 있을지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난 49:51의 확률로 후자 쪽이 좀 더 가능성이 높다고 대답하겠다.

 

“같이 술 마시던 사람들이 모두 가고 나서, 그 분과 저만 남았어요. 제가 ‘친구들과 술 마시고 나면 노래방 가는데, 아쉽네요.’라고 말하자, 그 분은 ‘가면 돼지.’라며 근처 노래방을 가자고 하시더라고요. 가서 즐겁게 잘 놀고 나왔는데, 그 분이 ‘이제 H양이 회사에서 내 노래 제일 많이 들어본 사람이 된 거야.’라고 하시더라고요. 무슨 얘긴가 했더니, 원래 노래를 잘 안 하신대요. 며칠 후 다른 회사 사람들과 얘기하다가 노래 얘기가 나왔는데, 정말 몇 년간 같이 일하면서 그 분이 노래 부른 거 들어본 사람이 없더라고요.”

 

이 정도면, 일단 그냥 가보는 거다. ‘노래 제일 많이 들어본 사람’에서 ‘같이 팥빙수 제일 많이 먹어본 사람’, ‘같이 처음으로 영화 본 회사 사람’, ‘서로의 집에 처음으로 방문한 회사사람’ 뭐 이런 식으로 엮어 가면 되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 분이 저를 대하는 건, 그냥 동생 대하듯 대한다는 게….”

 

그런 H양은, 상대를 회사 상사 이상으로 대했는가? 오히려 처음부터 ‘난 연애나 결혼 생각 없다’고 회사 사람들에게 이야기 한 건 H양 아닌가? 그렇게 H양에게로 향할 수 있는 길을 다 봉쇄해 놓고는, 상대가 봉쇄된 곳 근처까지만 다가오는 것 같다고 말하면 곤란하다.

 

또, 난 뭔가 이어질 듯 말 듯 할 때마다 H양이 폭탄을 터트리는 게 좀 안타깝다. 상대가 뭘 사주겠다고 하면 같이 먹을 수 있는 것 정도를 대야지, 거기서 왜 4차원스러운 대답을 하고 마는가. 아니, H양이 내게 ‘소원 들어주겠다’고 말했는데 내가

 

“난 건물주가 되고 싶어. 그게 내 소원이야.”

 

따위의 대답이나 한다면, H양도 그저 벙 찔 것 아닌가.

 

같이 장난치는 것도 좋지만, 드립을 쳐야 할 때와 진도를 나가야 할 때는 구분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상대는 오히려 H양이 자신에게 장난을 치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고, 진지하게 진도를 나가보려 하다가도 할 말이 없게 만드는 H양의 태도에 물러서게 될 것이다.

 

그리고 카톡! 메시지는 물음표로 끝내라고 내가 지겹도록 이야기하지 않았는가. 스승의 날 과거 은사님께 안부카톡 하나 보내듯 다 써서 보내면 안 된다. “즐거운 금요일 보내세요.”가 아니라, “불금인데 저녁에 뭐 하시나요?”로 이어가야 한다. 호감 가는 사람에게 메시지 보내는 게 버거워 그저 자체종결하기 쉬운데, 그러지 말고 ‘다음 이야기’로 이어지는 다리 하나 놓는다고 생각하며 카톡을 보내보길 권하다.

 

H양이 연애에 대한 회의적인 태도만 보이지 않았어도, 이 관계는 이미 무난하게 진행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상대가 H양에게 연애나 결혼에 대해 회의적으로만 생각하지 말라고, 인연이 닿는 사람과 만나게 될 수 있는 거라고 말했을 때 H양은 뭐라고 대답했는가.

 

“인연이 있다면 벌써 만나지 않았을까요?”

 

‘연애, 결혼 거부자’라는 캐릭터를, 그렇게까지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걸 꼭 기억하길 바란다. 그렇게 찬물 쫙쫙 끼얹어 대고 있으면 누구라도 H양에게 다가가기 어려운 법이다. 현재 H양은 상대가 사적으로 하는 일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니, 그 부분을 기회 삼아 다시 다가가 보길 권한다. 상대가 하는 거 좀 도와주고 같이 팥빙수 먹으러 가면 된다. 파이팅.

 

 

2. 회사에서 제게만 차가운 그녀, 어찌해야 할까요?

 

영수씨, 뭐가 어떻게 되길 바라지만 말고 일단 생각을 해봐. 상대는 회사에서 같은 부서 A양이랑 단 둘이 일해. A양은 그녀보다 먼저 들어와서 일하던 사람이야. 그리고 영수씨는 A양이랑 대판 싸우고 투명인간처럼 지내왔어. 그런 와중에 새로 들어온 그녀에게 호감을 느낀 거잖아.

 

A양이 그녀에게 영수씨에 대해 좋지 않은 이야기를 했겠지? 둘이 근무하며 A양은 그녀에게 영수씨와 친하게 지내는 건 배신, 배반, 쿠데타라고 말했을 거야. 그럼 이 와중에 영수씨가 할 수 있는 건 뭐야? 두 가지잖아.

 

① A양이 65세 정년퇴직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퇴직하면 고백한다.

② A양과의 관계를 풀어, A양과 함께 일하는 그녀의 부담을 덜어준다.

 

65세가 될 때까지 기다리고 있을 순 없으니, 영수씨는 2번을 택해야 할 거야. 그런데 영수씨는 현재 저 보기에도 없는 ‘3번’을 택한 채 답답해하고 있는 중이거든.

 

③ 그녀가 아예 날 무시를 해주든가, 부담스럽다고라도 말해줬으면 좋겠다.

 

이게 뭐야? 영수씨 상대에게 뭐라고 얘기한 적 있어? 상대랑 카톡한 적은? 이런데 뭘 어떻게 알고 그녀가 나서서 ‘부담스럽네요’라고 말을 해? 그리고 타 부서긴 하지만 어쨌든 계속 마주쳐야 하는 사이인데, 그녀 입장에선 영수씨에게 무슨 얘기도 못 들은 상황에서 일부러 무시할 순 없는 거잖아?

 

“제 사수랑, 다른 부서 선배들이 그녀에게 제가 좋아한다는 걸 말했습니다. 제가 고민하고 있는지 못 보겠다며 가서 ‘영수씨가 좋아하는 거 알지?’라고 얘기한 적도 있고요. 또, 그녀랑 자주 마주치는 부서 사람들도 저를 생각해서 그녀에게 제 얘기를 계속 했고요.”

 

그게, 황당한 일이라니까? 당사자인 영수씨는 아무 얘기도 안 하는데 회사 사람들이 나서서 억지로 그녀에게 사귈 것을 종용하듯 말하고, 그런 와중에 그녀는 또 자신과 단둘이 매일 붙어 있는 A양에게서 영수씨의 험담을 들을 거 아냐.

 

“제가 다른 사람들에게 부탁하거나 선동한 건 아닙니다”

 

말렸어야지. 알아서 하겠다고 의사를 밝혔어야지. 누가 대신 뭐 해준다는데 부정하지 않았 가만히 놔두는 건 ‘암묵적 동의’인 거잖아. 그리고 영수씨가 무슨 얘기를 안 한 거라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알고는 이어주려고 해? 그 사람들이 영수씨 마음이라도 읽어서 대신 나서준 거야? 대체 누가 그녀랑 연애를 하려는 거야? 영수씨야, 회사 사람들이야?

 

“친한 동생의 말로는 그녀가 어장관리를 하는 것 같다고 합니다. 제게 관심은 없지만 제가 관심 가져주는 건 나쁘지 않으니 받는 것 같다고요.”

 

상황을 그렇게 만들어 갈 거면 그냥 관심을 꺼. 상대가 달란 적도 없는 관심 억지로 줘가며 결국 나쁜 사람 만들지 말고, 이럴 거면 그냥 아무 것도 하지 마. 그녀는 영수씨에게 그 흔한 ‘쪼꼬렛’ 한 번 얻어먹은 적 없고 둘은 서로의 전화번호도 모르는데 무슨 어장관리야?

 

“퇴근 후 말이라도 좀 걸어보려 해도, 그녀가 퇴근까지도 A양과 같이 하기 때문에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영수씨가 A양과 둘 중 하나가 죽기 전까지는 끝나지 않는 싸움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면, 좀 일찍 푼다고 생각하고 넓은 마음으로 다가가 봐. 거길 풀어야 다음 매듭인 상대와의 관계도 풀 수 있는 거잖아. 그러지 않고 만약 어쩌다 둘이 썸을 타게 된다고 해도, 그녀와 늘 붙어 있는 A양이 그녀에게 냉대하며 배신자 취급하면, 그땐 어떻게 할 거야? 그땐 물불 안 가리며 회사 떠나가라 A양과 한 판 붙을 거야?

 

그리고 하나 더. A양이 영수씨랑 사이가 안 좋다고 하더라도, 계속해서 상대에게 영수씨 뒷담화를 하거나 어떻게 행동해서 골탕 먹이라고 일부러 지시하진 않을 거야. 그 회사에 영수씨 밖에 없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까지 신경 쓰며 재 뿌리진 않을 거란 말이야. 그러니까 모든 걸 ‘이미 둘이 속닥거렸을지도 몰라’라며 의심의 눈초리로만 보지 말고, 억지로라도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노력해 봐. 지금 영수씨는 실체도 알 수 없는 적을 설정해 두곤 혼자 전투준비태세를 하고 있으니까, 가벼워질 수 있게 무기는 좀 다 내려두고 한 사람으로서 다가가 보길 바랄게.

 

 

글을 쓰는 중간에 분유 먹일 겸 나갔다가 텐트에 넣어봤는데, 들어갔다가는 얼른 나와서 텐트 밖에 매달린다. 그러다 텐트 입구를 물어대며 장난치기도 하고, 텐트 뒤쪽엔 뭐가 있나 자꾸 거기로 들어가려고도 한다. 그래도 다행히 들어가서 조는 듯싶었는데, 소리가 나자 얼른 다시 텐트 밖으로 뛰어나온다. 참사를 막으려면, 당분간은 박스에 넣어두는 게 좋을 것 같다. 큰 박스를 구해야겠다.

 

자 그럼, 다들 불금 보내시길! 퐈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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