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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연애오답노트

연락도 없고 만날 의욕도 없어보이던 연인과의 이별.

by 무한 2016. 1. 30.

사연의 주인공인 K씨는 제게

 

"제가 잘못해서 이렇게 된 걸까요, 아니면 원래 그런 사람인 상대를 만나서 이렇게 된 걸까요?"

 

라고 묻고 계신데, 그게 그렇게 간단히 답을 드리긴 좀 어렵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두 분의 관계엔 세 가지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근본적으로 문제가 되었던 순으로 적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A. 상대가 K씨를 결혼상대로만 좋게 생각한다는 문제.

B. K씨의 헌신이, 이기적인 상대를 만나 엉망이 되었다는 문제.

C. K씨가 헌신적이긴 하지만 다정하거나 안정적이진 않다는 문제. 

 

각 문제에 대한 설명은 아래에 적도록 하겠습니다.

 

 

1. '결혼상대'로만 좋게 생각한다는 문제.

 

결혼까지 생각하며 연애를 하는 중이라는 여성대원들 중 몇은, 종종 제게 아래와 같은 질문을 하곤 합니다.

 

"A는 지금 사귀고 있는 남친인데, 정말 제게 잘하고 헌신적이긴 하지만 재미없고 따분합니다. B는 구남친인데, 재미있고 유머러스하지만 조건이 별로고 자기가 잘 생긴 걸 알아서 인기관리를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A와 헤어지고 B를 만나는 게 좋을까요, 아니면 결혼상대로는 A가 좋으니 A와 계속 만날까요?"

 

저는 K씨가, 여자친구에게 저 '현남친 A'와 같은 존재로 여겨졌다고 생각합니다. 둘은 이전에 여친의 이별통보로 인해 한 번 헤어졌다 다시 만난 것인데, 그때의 카톡대화는 첨부되지 않았기에 정확하게 짚어보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그녀가

 

"처음 만났을 때 호감이 없었다."

"계속 만나 봐도 어떤 감정이 생기질 않는다."

"떨어져 있을 때, 보고 싶다거나 연락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질 않는다."

 

라는 말로 이별통보를 한 것, 그리고 재회를 요청할 때

 

"결혼에 대해 생각하다보니 오빠 생각이 났다. 그래서 연락했다."

 

라며 다가온 것을 보면, 99.72%의 확률로 제 예측이 맞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후 다시 사귀게 되었을 때, K씨가 연락 좀 달라고 노래를 불러도 연락 없던 그녀가, 난생 처음 보는 남자와는 연락처를 주고받은 뒤 연락하고 지냈던 것 역시 제 예측의 증거가 될 수 있고 말입니다.

 

상대가 K씨를 결혼할 상대로 좋은 사람이라 생각해 사귀긴 하지만, 그 이외의 큰 애정은 없다는 것. 그게 두 사람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여자친구 입장에선 '만나면서 좋아질 수도 있으니까'라고 생각하며 사귄 것일 수도 있는데, 어쨌든 만나 봐도 애정이 생기지 않으니 이별통보를 하지 않았습니까? K씨 역시 그녀의 이별통보에 수긍했고 말입니다. 그렇게 두 사람이 헤어졌을 때 그걸로 끝이 난 거라면 좋았을 텐데, 안타깝게도 두 사람은 재회를 하고 맙니다.

 

재회 뒤 둘의 관계는, 오로지 여자친구의 선택에 따라 그 운명이 결정 지어졌습니다. 그녀가 자기시간을 갖고 싶다고 하면 K씨는 며칠이고 기다렸고, 그녀가 부담스럽다며 헤어지잔 이야기를 하면 또 헤어졌습니다. 그러다 그녀가 다시 노력해보자고 연락하면 또 노력하기로 한 채 만났고, 그러다 그녀가 피곤하니 만나는 걸 줄이자고 하면 한 달이 넘도록 못 만나기도 했습니다.

 

대화 역시, 둘의 대화는 애정이 느껴지는 연인간의 대화로 보이질 않습니다. 여친이 자신이 말하고 싶을 때 신나서 자기 얘기를 하면, '팬클럽 회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남친이 열심히 리액션을 해주는 것에 가깝습니다. 반대의 경우는 아예 존재하질 않습니다. 남친이 할 말이 있어 말을 걸어도, 그녀가 별로 대답하고 싶지 않으면 답이 안 오는 경우도 있을 정도입니다. 저는 K씨에게 묻고 싶습니다. 이런 연애는 왜 해야 하는 걸까요?

 

 

2. 헌신적인 남자와 이기적인 여자가 만났을 때의 문제.

 

K씨는 여친이 K씨에게 했던 무례하고 잔혹한 일들에 대해 신청서에 길게 적어주셨는데, 그건 그녀의 잘못이 맞습니다. 그런데, 그걸 온 몸으로 감당하고만 있었던 K씨도 그 상황을 만드는데 일조하셨다는 걸 잊지 마셨으면 합니다. 맹목적으로 맞춰주거나 싫은 소리를 전혀 안 하는 것, 그리고 그녀가 친구에게도 하지 않을 행동들을 했을 때에도 그것에 대해 반발하지 않고 참기만 하는 것, 그건 절대 착한 게 아니며 전혀 로맨틱하게도 보이지 않습니다.

 

상대의 의사와는 별 상관없이 칭찬 받고 싶어서, 또는 점수 따고 싶어서 하는 헌신 역시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예컨대 상대가 다음번에 만날 때 이어폰 좀 빌릴 수 있겠냐고 하면, 다음번에 만날 때 빌려주면 되는 겁니다. 여친이 분명 당장 필요한 게 아니라고 말하는데도 억지로 지금 가지고 갈 테니 집 앞으로 내려오라고 할 필요 없는 거고, 잠깐 한 번 듣고 말 거라고 얘기했는데도 굳이 새 모델을 알아봐서 서프라이즈 선물을 해주려 할 필요 없는 겁니다.

 

저런 식의 헌신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관계가 끝장나는 것 아니며, 만약 정말 그런 이유로 끝장 날 관계 같으면 거기서 마침표를 찍는 게 분명 몸과 마음 모두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뭔가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어떻게든 상대를 기쁘게 만들려고 하는 것. 그런 강박적인 헌신을 하려드는 것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K씨 입장에선 자신에 대한 그녀의 애정이 느껴지지 않으니 그렇게라도 해서 마음을 좀 얻어 보려 애쓴 것일 수 있겠습니다만, 그런 태도로 인해 'K씨'라는 사람의 모든 매력이 '맹목적으로 헌신하는 남자'라는 타이틀에 가려 보이지 않게 될 수 있다는 걸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유명한 육아 명언 중에

 

"아이를 망치고 싶다면 원하는 것을 모두 들어줘라."

 

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K씨가 바로 저런 태도로 상대를 대했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 결과, 그녀는 괴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모든 희생과 호의는 K씨가 보이고 자신은 받기만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게 되었으며, 나아가 어렵고 힘들다고 말하면 K씨가 알아서 다 해주려드니 그걸 교묘하게 이용하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필요한 것 얻어내고, 해야 할 일 대신 시키며, 그럴 때에만 즉각즉각 대답하고 보답하듯 애정표현을 했던 것입니다.

 

물론, 이게 전부 K씨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그녀가 가지고 있던 자체의 문제들이, K씨의 맹목적인 헌신과 만나 더 큰 문제가 된 것이라고 보는 게 좀 더 정확할 것 같습니다. 헌신적인 남자가 상대의 '이기적인 모습'을 기형적으로 부풀리게 되는 것에도 그 한계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그녀는 그 한계를 넘어서 있습니다.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놀러 갔다 오는 동안 본인의 일을 남친에게 다 맡기고, 그 와중에 또 놀러 갔다 돌아오는 날 데리러 오도록 주문하는 건, 염치를 아는 사람이 할 행동은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걸로 끝이 아니라 그녀는 놀러 갔다 온 곳에서 만난 남자와 몰래 연락했는데, 이런 일들로 미루어 이건 그녀 자체에 대한 문제도 포함이 된 것이라 보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3. 헌신적이지만 다정하진 않고 불안하다는 문제.

 

제가 K씨의 부탁이라면 가리지 않고 들어주는 친구라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K씨는 컴퓨터를 하나 새로 맞추겠다며 제게 조언을 부탁했고, 저는 그 부탁을 받자마자 일단 제 돈으로 부품들을 다 구입한 뒤 하나 조립해주겠다고 말했습니다. 나중에 부품 값만 달라면서 말입니다.

 

그처럼 저는 K씨의 든든한 조력자인데, 동시에 뭔가가 마음에 안 들면 심통을 부리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컴퓨터 조립이 거의 완성되어갈 때, 저는 K씨에게 모니터를 HDMI로 연결하는지 아니면 DVI로 연결하는지를 물었는데, K씨에게 대답이 없습니다. 그러자 아래와 같은 대화를 시작합니다.

 

무한 - 모니터 HDMI연결이야, 아니면 DVI연결이야?

(잠시 후)

무한 - 대답이 없네….

(잠시 후)

무한 - 부탁을 해놓고 나몰라라 하는 건 좀 아니지 않나?

(잠시 후)

무한 - 이 컴퓨터는 그냥 내 돈 주고 산 셈 치고 내가 쓸 테니까

무한 - 넌 그냥 하나 새로 사서 써.

무한 - 이거 보면 카톡이든 전화든 연락 줘라.

(잠시 후)

K씨 - 진동으로 해놓고 밖에 있어서 연락 온 줄 몰랐네.

K씨 - 그래. 컴퓨터는 내가 알아서 구입할게.

무한 - 집이야? 다 조립해 놨으니까 갖다 줄게.

K씨 - 아니야. 그냥 메이커 제품 사서 쓸게.

무한 - 네가 필요한 대로 맞춰 놓은 거잖아. 갖다 줄게.

K씨 - 알아봐주고 조립해준 건 고마운데, 넌 내가 잘못한 사람인 것처럼 말하잖아. 

무한 - 선까지 다 연결해 주려고 물어본 건데 대답을 안 했잖아.

K씨 - 그러니까. 그냥 사서 쓸게. 나도 사서 써봐야 뭘 알지.

무한 - 그냥 이거 써. 내가 선까지 다 줄게. 부품 값 안 줘도 돼.

K씨 - 아냐. 진짜 그냥 사서 쓸게.

무한 - 그래. 그냥 사서 써라.

 

말로 다 설명하긴 좀 어렵지만, 분명 뭔가 '드럽고 치사한' 느낌의 심통들이 담겨있지 않습니까? 저래버리면, 그간 베푼 헌신과 호의가 전부 의미 없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K씨는 상대를 위해 뭔가를 '대신 해주는' 헌신을 베푸는 사람이긴 합니다만, 다정한 사람은 아닙니다. 아주 단순하게, '죽으라고 하면 죽는 시늉까지 하는 사람'은 그만큼 마음이 있다는 것이니 다정하기도 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습니다. 더 많이 좋아하고 반했다는 이유로 상대에게 채무가 있는 사람처럼 행동하는 것일 뿐, 정말 다정해서 그런 건 아닙니다.

 

또, 언제나 자신의 일보다 상대의 일을 최우선에 두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은 자신의 감정조절을 못해 극단적으로 행동하며, 상대를 접대하듯 모시지 않으면 끝장이라는 불안을 안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 위의 대화예시에서 제가 무슨 말로 대화를 마무리 지었습니까?

 

"그래. 그냥 사서 써라."

 

제 모든 일을 다 미뤄둔 채 K씨를 위해 컴퓨터부터 조립해 준 제 행동과, 저 "그래. 그냥 사서 써라."라고 말한 행동 사이의 그 간극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불안해하던 상황이 현실에서 벌어지려고 하자 제가

 

"그냥 이거 써. 내가 선까지 다 줄게. 부품 값 안 줘도 돼."

 

라고 말한 부분도 유심히 보시기 바랍니다. 저걸 헌신이나 호의라고 말하긴 어려운 것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저런 일들을 저지르고 난 후, 제가 컴퓨터를 가져다 K씨 집 앞에 놓곤 "문 앞에 놨으니까 가지고 들어가. 난 간다."라고 말한다 해서, 그게 멋있거나 로맨틱 한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이 지점에 대해 곰곰이 고민해 보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연애가 빈약한 애정 위에 세워졌거나,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관계일 때 위와 같은 문제들이 자주 발생합니다. 상대와 만나고 있을 땐 불만이거나 서운한 점에 대해서 말도 꺼내지 못하고 있다가, 헤어지고 난 뒤

 

1. 나의 헌신 사례

1-1. 자소서 대필

1-2. 출퇴근 셔틀

1-3. 선물공세

(중략)

9. 그녀의 이기적 태도

9-1. 문전박대

9-2. 연락두절

9-3. 이성친구와 연락

(중략)

결론 - 누가 잘못한 것인가?

 

라는 사연을 보내는 사례가 많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상대에게 다시 연락이 오면,

 

"최선을 다해서 다시 모시겠습니다. 전과 같은 일은 이제 벌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헌신으로 섬길 것을 약속드립니다. 죽기 직전까지 참아보겠습니다. 그나저나 식사 하셨습니까? 일단 밥부터 사겠습니다."

 

라고 말하며 다시 고난의 길을 걷는 대원들도 있고 말입니다. 몇 달 후에 다시 연락하게 되었다고 해서, 또 무작정 맞춰가 보기로 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게 아닙니다. 무엇이 왜 문제가 되는지에 대해선 K씨도 이제 알게 되셨으니, 상대와 다시 만나든 새로운 사람을 만나든, 위와 같은 문제를 다시 만들진 마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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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이 불금인지도 몰랐을 정도로 열심히 읽고 쓰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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