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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연애오답노트

장거리 연애도 이겨냈는데 결국 헤어졌어요.

by 무한 2015. 12. 19.

뭐가 더 힘들고 안 힘들고를 이야기하는 게 좀 이상할 순 있겠습니다만, 우리끼리니까 툭 터놓고 말하자면 '장거리 연애' 중에서도 그 힘듦의 정도가 좀 덜할 수 있는 상황이 있습니다.

 

- 상대가 나를 더 좋아할 때.

- 상대만 멀리 간 게 아니라 나도 멀리 갔을 때.

- 내가 연애에 할애하는 마음이 적은 상황일 때.

 

예컨대, 제가 현재 중요한 시험을 준비하는 중이고 제 친한 친구는 미국에 가 있다면, 우린 종종 '언제 한 잔 하냐'라는 대화는 나누겠지만, 서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까닭에 또 나름 알아서 잘 살아가지 않겠습니까? 친구가 내년 7월이나 되어야 한국에 들어온다고 해도, 제가 오매불망 그를 그리워하기보다는 '때 되면 오겠지'하는 생각으로 지낼 수 있는 것이고 말입니다.

 

친구와 연인은 그 경우가 다른 것 아니냐고 물으실 수 있는데, 앞서 말했듯 우정에 할애하는 마음 정도만 연애에 할애하고 있다면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화요일 저녁에 만나자 청했더니, 그 날은 드라마를 봐야 한다는 대답이 돌아오는 그런 관계처럼 말입니다.

 

물론 '2년간 장거리 연애를 했다'는 사실만 아는 지인들은,

 

"너희는 2년간 장거리 연애를 하고도 지금까지 사귀고 있으니까, 분명 평생 갈 거야."

 

라고 이야기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마음이 멎어버린 연인에게, 지인들이 작성해준 축하의 문장들을 흔들어봐야 소용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 문장을 제게 들이미시며

 

"다들 그렇게 말했는데…, 왜 우리는 이렇게 되는 거죠?"

 

라고 하시면 전, 괜히 머리나 한 번 더 긁적이게 되는 것이고 말입니다. 그러니 이제 이 시점에서 아무 소용도 없어진 거리나 기간의 이야기를 하는 건 그만두시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함께 들여다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출발하겠습니다.

 

 

1. 살이나 빼. 꺼져. 구라까지 마.

 

사귄 기간이 2년이든 4년이든 6년이든, 상대에게 저런 말들을 쏟아내기 시작하면 그 관계는 언제든 무너질 수 있습니다. 제가 이런 얘기를 하면 Y양은

 

"저런 말 말고 달달하게 한 말들도 많은데, 왜 저런 말들만 적어두신 거죠? 그렇게 적으시니 제가 이상한 사람 된 것 같네요."

 

라고 하실 수도 있는데, 저건 '달달한 말들도 많이 했으니 그걸로 퉁칠 수 있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느 친구 하나가

 

"넌 애교도 많고, 또 요리 뿐만 아니라 쿠키랑 과자도 만들 줄 알고…. 정말 네 남자친구가 되는 사람은 행운이겠다."

 

라는 달달한 이야기를 Y양에게 한 적 있는데, 그 친구가 감정이 격해진 어느 날은

 

"그만 좀 먹어라. 요리 해서 네가 다 먹냐. 내가 너라면 다른 거 다 접고 살부터 빼겠다."

 

라는 이야기를 한다면, Y양은 저걸 퉁칠 수 있으시겠습니까?

 

제가 소제목에 적은 Y양의 말들은, '새끼'가 들어간 말을 제외하고 골라 적은 겁니다. 가장 최악의 말들을 적은 게 아니라, 필터링을 한 번 거쳤는데도 저 정도란 얘깁니다. Y양은

 

"제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친절하지만, 정작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잘 못하는 편입니다."

"부모님이나 남친, 친구에게 좀 함부로 말하는 편이라는 지적을 들어 고치려 노력 중입니다."

 

라고 하셨는데, 그게 고쳐지지 않으면 그 누구를 만나 연애하든 결국 이별하게 되거나, 상대의 애정이 전부 바닥나 Y양은 '처음처럼 날 좋아해 달라'는 이야기만 하게 될 것입니다.

 

자신을 우습게보거나 함부로 대하는 사람과 같이 있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Y양은 절대 그럴 마음이 있었던 아니었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Y양의 말과 행동과 태도는 Y양이 '상대를 우습게보고 함부로 대하는 사람'임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럼 남친은 왜 사귀면서 그 부분을 한 번도 이야기하지 않다가, 헤어질 때에야 그런 말을 한 걸까요?"

 

그게 저도 참 안타까운 부분 중 하나입니다. 사실 Y양도 처음부터 저랬던 건 아닌데, Y양이 폭주하며 저런 말들을 뱉어내도 그가 그저 '을'의 자세로 그러지 말아 달라고만 말하니, Y양이 뱉어내는 말들은 그 수위가 점점 높아지고 말았습니다. 물론 그도 버티고 버티다 힘들어 '이런 식이라면 계속 만나기 힘들 것 같다'는 걸 피력한 적 있습니다만, 그땐 Y양도 정신줄을 놓은 상태라

 

"연애 초반 때랑 졸X 변했어. X새끼. X라 변한 새끼. 다 보여 마음 식은 거."

 

라는 말만 하고 말았습니다. 그럼 또 그는 당장의 위기에서 벗어나려

 

"아니야. 그렇게 말하지 마."

 

라는 대답만 할 뿐이었고 말입니다. 다 받아주고 참아주고 이해해주는 것만이 능사가 아닌데, 계속 그러다 보니 결국 Y양은 막장까지 드러내게 되었고, 그는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된 거라 저는 생각합니다.

 

 

2. 협박, 위협, 저주, 내팽개침.

 

사연신청서를 꾹꾹 눌러 적어간 Y양은 전혀 이상해보이지 않습니다. 후회하는 그 마음이 제게 그대로 전달되며, 남친에 대한 미안한 마음까지도 전부 느껴집니다.

 

그런데 현실에서 Y양이 하는 행동을 보면, 그냥 악에 받쳐있는 사람 같습니다. 누구한테든 그냥 퍼붓고 싶어 하는 사람처럼 보이고, 남의 속을 긁어서라도 상대를 반응하게 만들려는 사람 같습니다. Y양은 우겨서라도 이기려고 하고, 본인이 잘못을 해놓고도 본인 자존심을 절대 안 다치려 발악하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겁니다. 제가 버스에서 누군가의 발을 밟았다고 해보겠습니다. 상대가 얼굴을 찡그리며 불쾌하다는 표정으로 저를 바라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잘못은 제가 한 거니, 전

 

"죄송합니다."

 

라고 말하며 사과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마 제가 아닌 Y양이 발을 밟아 저런 일이 일어났다면, Y양은 상대의 표정을 확인하곤 그냥 가만히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상대가 화를 내면,

 

"제가 발 밟은 대신 아저씨는 얼굴 찡그리면서 표정으로 욕했잖아요. 그럼 된 거 아닌가요? 아니라고요? 그럼 제가 뭘 더 어떻게 해드릴까요? 사과요? 제가 죄송하다는 말을 한다고 발이 나아지시겠어요? 그러지 말고 그냥 제 발 똑같이 밟으세요. 제가 한 번 밟았으니, 아저씨도 제 발 한 번 밟으세요. 그럼 되잖아요."

 

라고 할 것 같습니다.(물론 실제로 이런 일을 벌일 것 같다는 얘기는 절대 아닙니다. Y양은 오히려 모르는 사람들에게 더 예의바르고 친절하니, 곧바로 사과했을 거라 저는 생각합니다. 이건 그저 Y양이 남친에게 했던 말과 행동들을 토대로 만들어 본 상황이라고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Y양이 남친에게 했던 협박, 위협, 저주, 내팽개침의 말들을 여기다 옮겨 적진 않겠습니다. 다만, 카톡대화에 등장하는 그런 대목들을 보면서 저는

 

'이 두 사람은 왜 사귀고 있는 거지? 이건 그저, 한 사람은 그저 폭주하는 상대를 진정시키는 임무를 맡고 있는 것 같고, 다른 한 사람은 상대가 무력하게 당하면 당할수록 더욱 강도를 높여 괴롭히는 것 같네.'

 

하는 생각을 했다고 적어두겠습니다.

 

저렇게 한 번 폭주하더라도, 얼마 뒤 눈물의 재회나 화해를 해 다시 만나면, 모든 게 그냥 다 잘 해결된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늘 얘기하듯, 그 과정에서 피로는 사라지지 않고 계속 쌓이게 됩니다. 감정이 격해질 때면 늘 이별부터 말하는 상대를, 결국 감당할 수 없게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충격과 공포의 이야기가 될 수 있으니 일단 복근에 힘을 꽉 주고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Y양은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을 전혀 하지 못 합니다. 빙빙 돌려서 다르게 말하거나, 마음과 다르게 반대로 표현할 뿐입니다. 분명 마음으로는 자식을 사랑하지만, 

 

"네가 뭘 할 줄 아냐. 네가 하는 게 다 그렇지."

 

라늘 말 밖에 할 줄 모르는 어떤 엄마처럼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연애가 지금까지 이어져 왔던 건,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그걸 다 받아주고 이해하는 남자친구의 희생 때문이었습니다. '덕분'이 아니라 '때문'이라고 쓴 건, 저것 역시 바람직하다고만은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Y양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남친에게 너무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이별 후 남친에게 한 말은

 

"만나서 나한테 욕을 하든 날 때리든 마음대로 해라."

"나도 너에 대한 정 떨어지게 만들어 줘라."

"넌 당분간 다른 여자 만나지 마라. 나는 다른 사람 만날 거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이 부분이 정말 이상하며 완전히 잘못 되어 있다는 걸 얼른 깨달으셔야 합니다. 혼자 감정정리를 할 때에만, 또는 속으로 생각할 때에만 애틋하고 미안한 마음 가지지 마시고, 옹알이 수준이어도 좋으니 그 마음을 표현해야 합니다. 정작 해야 하는 그 말은 못 한 채,

 

"넌 내가 다른 사람 만나도 상관없어?"

 

라며 마지막까지 찔러만 대고 있으면, 이별 후에도 상대에게 '이름조차 다시 듣고 싶지 않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걸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3. 이십대 초중반의 연애, 빠지기 쉬운 함정.

 

이 부분 역시 Y양에겐 씁쓸할 수 있겠지만, 지금이라도 돌이켜 봐야 하는 부분이니 한 번 같이 살펴봤으면 합니다.

 

얼마 전 매뉴얼에서 이야기 했듯, 연애는 '도피처'가 될 수 있습니다. 생활을 위해 해야 할 일을 미뤄둔 채 그저 연애에 매달릴 수 있다는 얘깁니다. 시험을 앞두고 괜히 안 보던 책을 보거나 청소를 하는 것처럼, 책을 펴고 문제를 풀어야 하는 시간에 '연락 없는 상대'에 대해 불만만 품거나, 상대와 만나서 놀면 공부에 대한 부담감과 불안감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으니 자꾸 만날 약속만 잡으려 들 수 있습니다.

 

빈번하게 일어나는 사례 중 하나는, 스물 두세 살쯤 연애를 시작해 스물 예닐곱 살 쯤 연애가 끝나 가는데, 그 시점에 돌아보니 그냥 상대와 같이 논 것 말고는 아무 것도 이루어 놓은 게 없는 사례입니다. 친구들은 이미 자리를 잡은 채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중인데, 이쪽은 스물 두세 살쯤 꿈꾸던 것을 아직도 꿈만 꾸고 있을 뿐 뭔가 한 게 없습니다. 그간 부지런히 뭔가를 한 것도 아니고, 연인이 있으니 꾸미는 것에서도 손을 놓은 지 오래고, 마음만 먹었던 자격증 시험은 아직도 준비 중이고, 그런 기간이 계속되니 자신감이나 자존감은 바닥을 드러낸 채 계속 부정적인 생각만 하게 되는, 이런 함정에 빠지고 만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 이별까지 겹치게 되면

 

"가장 힘든 시간에 버팀목이 되는 연애를 하기로 했었는데, 어떻게 제가 가장 힘들 때 상대가 떠나가는지…."

 

라는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따지고 보면 그간 상대를 버팀목으로 둔 채 그냥 기대고 있었거나 연애에 젖어 아무 것도 돌보지 않고 있었던 사례가 대부분입니다. 상대는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러 학원도 다니고 어디서 모집한다는 인턴에도 응시하고 하며 바쁘게 살았는데, 그런 상대에게 사랑이 식은 것 같다느니 바빠진 건 아는데 왜 연락을 소홀히 하냐느니 하는 불평만 늘어놓고 있었던 것입니다.

 

Y양의 경우는 어땠는지, 진지하게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꿈과 희망으로 가득 차 멋진 사회생활의 출발을 하겠다는 계획은, 해야 할 일들을 계속 미룬 까닭에 '좀 더 길게 가져야 할 것 같은 취업준비기간'으로 변하지 않았습니까? 이십대 초반엔 사람들에게 가능성만으로도 인정받았지만, 이젠 그것들을 내밀어 칭찬받기엔 어색해진 나이가 되지 않았습니까?

 

냉정하게 말하자면, 지금 Y양이 진정 걱정해야 하는 건 연애나 재회가 아니라, 그간 읽지는 않고 그저 펼쳐두고만 있었던 Y양의 삶입니다. 그게 훨씬 중요한 일이며, 그게 훨씬 심각한 문제고, 또 그게 Y양이 모든 신경을 집중해 처리해야 할 일입니다. 지금 남친이 돌아온다고 해서

 

재회 -> Y양 취업 -> 결혼 얘기 오고감 -> 결혼 -> 해피엔딩

 

이라는 시나리오가 실현되는 거라면, 저도 Y양에게 이런 이야기 안 하고 어떻게든 상대를 잡을 방법만 함께 고민할 겁니다. 하지만 이 상태로 재회를 하면 Y양이 또 다시 그에게 기대고만 있게 될 가능성이 높고, 연애로 도피해 얼마쯤 더 시간을 보내다보면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는 상태로 곧 서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전 Y양에게, 당장은 그간 연애를 하며 돌보지 않고 있었던 것들부터 돌보길 권해주고 싶습니다. 얼핏 보면 그게 다 이별로 인해 엉망이 된 것처럼 생각될 수도 있겠지만, 자세히 보면 그게 엉망이 된 건 이별 때문이 아니라, Y양의 무관심과 미뤄둠 때문이라는 걸 발견할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Y양이 구남친에게 재회를 요청하며 매달리고 있는 지금, 그는 과거 Y양이 자신을 대했던 방식 그대로 복수하듯 Y양을 대하고 있습니다. Y양이

 

"하루 이틀 사귄 건도 아닌데 어떻게 이렇게 끝내냐. 난 그게 안 된다. 내가 힘들어 하는 것도 당연한 거니 네가 날 이해해줘야 한다."

 

라는 억지를 부리면, 남친은 짜증난다는 말로 대답을 대신 하는 상황인데, 이래 버리면 마지막까지 엉망인 연애가 될 뿐입니다.

 

Y양은 오래 사귀며 상대와 결혼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누셨다고 했는데, 그 결혼을 '해외여행'이라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Y양은 해외여행을 갈 '동행자'는 있었지만, 아무 준비도 안 되어 있던 겁니다. 막연히 나중에 같이 가자는 약속만 해놓았을 뿐, 아무 준비도 하지 않았습니다. 상대가 여행경비를 마련하고 여권을 발급받고 캐리어를 사는 동안 Y양은 '너 바쁜 건 이해하는데 왜 이렇게 연락을 안 하냐? 처음 마음이 식은 거냐?'라는 말만 했을 뿐입니다.

 

이런 시점에서 상대에게 돌아와만 달라고, 아니면 괜찮아질 때까지 만이라도 옆에 있다고 말하는 건 더욱 Y양 스스로를 짐처럼 보이게 만들 뿐입니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머리 질끈 묶고, 체크리스트 만들어 하나씩 부지런히 준비해 나가시길 권합니다. 긴 연애 끝났다고 인생 끝난 거 아닙니다. 거기서 잃어버린 4년이네 5년이네 하고 있으면 계속 시간만 더 가버리고 맙니다. 올해 초 서른이 넘어 기타를 처음 배운 제 지인은 지금 웬만한 대중가요는 다 칠 줄 압니다. Y양은 2015년을 어떻게 보내셨습니까? 늦지 않았습니다. 지금이라도 부지런히 가면 되는 겁니다. 함께 가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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