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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4)

궁합 때문에 흐지부지 되어버린 썸 외 1편

by 무한 2014. 7. 3.

궁합 때문에 흐지부지 되어버린 썸 외 1편

이십대 초반의 일로 기억한다. 그때 한창 어울리던 친구 중에 부모님 말씀을 정말 잘 듣는 친구가 있었다. 하루는 그 친구와 낚시를 갈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 친구는 자신이 낚시를 처음 가보는 거라면서

 

"그럼 라면이랑 물은 내가 사갈게. 거기서 고기 같은 것도 구워먹을 수 있나?

아니다. 차라리 가기 전에 마트 들러서 장을 봐갈까?"

 

하는 이야기까지 하며 들떠 있었다. 난 우리가 낚시 하러 갈 곳이, 그 친구가 기대하는 그런 장소가 아니라 물도 좀 더럽고 주변에 풀과 벌레가 많은 곳이라 살짝 걱정했던 기억이 난다. 그 친구는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에 나오는 그런 낚시를 기대했던 것 같은데, 실제 우리가 하게 될 낚시는 동네 하천 어느 곳에 낚싯대를 드리운 채 더위, 벌레, 냄새와도 싸워야 하는 그런 낚시였기 때문이다.

 

여하튼 우리는 그렇게 내일 갈 낚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바람이 잔뜩 들어간 채 헤어졌는데, 저녁에 그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나 낚시 못 갈 것 같아. 엄마한테 얘기했더니, 

나 올해 물가에 가면 안 좋대."

 

이건 대체 무슨 경우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시절부터 방목으로 자라난 나에겐, 꼬꼬마도 아니고 성인식까지 마친 나이에 부모님 허락을 받는 다는 것도 낯설었고, 물가에 가면 안 좋다는 그런 얘기를 믿는다는 것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김이 빠졌지만, 뭐라 할 말이 없어 그저 알았다고 대답했던 기억이 난다. 몇 년 뒤에도 그 친구는, 다른 친구의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우리 누나 결혼 앞두고 있어서 장례식에 못 갈 거 같다.

이럴 때 장례식장 가면 안 된대. 정수한테 잘 좀 말해줘."

 

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난 그의 태도를 보며 종교나 믿음과 관련된 문제로 거취를 결정하는 건 그러려니 할 수 있지만, 저렇게 살다간 우정이든 사랑이든 다 깨지고 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다. 처음에 그 친구가 오겠다고 한 걸로 봐서는, 장례식장에 갈 준비를 하다가 부모님께 "누나 결혼 앞두고 있는데 장례식장 가는 거 아니다."라는 말을 듣곤 오지 않기로 한 것일 텐데, 삶을 전부 부모님의 통제 속에서 살아버리면 나중에 그 책임은 누가 지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지 받은 대로 사둔 곳 땅값이 올라 그 친구네 재산이 더 늘었다는 게 함정이긴 하지만….

 

 

1. 궁합 때문에 흐지부지 되어버린 썸.

 

난 S양의 썸남도 위에서 말한 내 친구와 비슷한 타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가 이전에 사귀던 여자와 집안 문제로 헤어졌다는 것도 그렇고, 부모님께서 궁합을 보신다고 했다며 S양에게 생년월일시를 물어간 것도, 그에겐 '자신의 감정' 보다는 '부모님의 생각과 궁합 결과'가 더 중요한 게 아닌가 싶다.

 

그가 S양에게 호감을 가진 게 맞냐고 물어본다면, 난 그런 것 같다고 대답하겠다. 단, 사연 속에서 보이는 그의 연애관은 일반적인 사람들의 연애관과 좀 다른 것 같다는 말도 꼭 덧붙이고 싶다. 그는 호감이 가는 사람이 생기면, 상대를 자신에게 맞도록 최적화 하는 것에 열을 올리는 타입인 것 같다.

 

-이러이러한 건 안 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말하기 보다는 이렇게 말했으면 좋겠다.

-넌 이러이러한 행동을 하는데, 난 그 행동을 싫어한다.

 

등의 주문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겉으로만 봐선 데이트 리드도 잘 하고 연락도 성실하게 하는 사람이지만, 그런 호의와 배려를 일순간에 걷을 수도 있는 사람이다. 부모님께서 그에게 S양과의 관계를 정리하라고 말씀하시거나, S양에게서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을 발견하게 되면 그는 쉽게 '남'으로 돌아갈 수 있다.

 

내게 도착하는 사연 중, 부모님의 도움으로 고학력, 고소득, 고스펙을 이뤄낸 사람들에게서 이런 모습들이 종종 보인다. 긴 학업과정을 밟거나 유학을 다녀오려면, 아무래도 자신의 힘만으로 다 이뤄내기 힘드니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면 그의 삶에서 부모님이 행사하시는 영향력도 커지고, 나아가 어떤 사람의 경우는 아예 그의 삶 전체를 부모님께서 디자인 하신 경우도 있다. 그래서, 미안하지만, 그 중 어떤 사람들은 부모님의 꼭두각시 같은 모습까지 보인다. 자신의 연애나 결혼조차도 부모님의 훈수에 따라 결정하곤 하는 것이다.

 

이쪽에서는 고학력, 고소득, 고스펙인 그의 후광효과 때문인지, 저런 모습들을 '가정적'이라든가 '효심이 깊은' 모습으로 좋게만 보곤 한다. 후광효과가 없었으면 당장 '마마보이' 평가를 받았을 텐데, 후광효과 덕분에 같은 행동을 해도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이다. 게다가 이쪽에선 '그가 나에게 잘 해주 것'만을 보는 경우가 많은데, 고소득자인 그는 돈을 쓰는 것에 별 어려움을 못 느끼니, '돈을 쓴 것=잘 해준 것'으로 단순 환원되어 역시 좋은 평가를 받기도 한다.

 

때문에 난 언론인 김어준이 

 

"돈이나 인맥으로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봐야,

그의 진면목을 알아볼 수 있다."

 

라고 한 이야기에 적극 동의한다. 비싼 선물로 마음을 돌리고, 직장까지 차를 몰고 와 예약한 음식점에 데려가는 데이트를 하는 건, 돈이 많으면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다. 가끔 내게

 

"그때 그가 제게 명품가방을 선물한 걸 보고,

그가 이 관계를 가볍게 생각한 건 아니라는 걸 알았어요."

"난생 처음 가보는 그런 곳에 그가 데려갔어요.

딱 우리 둘만 서비스를 받는 곳이었는데….

제게 마음이 없었다면 그가 그런 이벤트는 준비 안 했을 것 같은데요?"

"그냥 시중에서 파는 케이크가 아니라,

제 이니셜까지 들어가 있는 주문케이크였어요.

요즘 가장 핫한 케이크요. 그는 제게 이렇게까지 했던 사람이거든요."

 

라는 이야기를 하며 '그런 그가 왜 변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대원들이 있는데, 그가 선물한 물건이나 서비스의 가격이 그의 마음과 비례한다고 착각하진 말라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돈 많은 사람이 잠깐 백화점에 들러 사 온 선물보다, 여유가 없는 남자가 그 와중에도 여자친구에게 먹여주고 싶어 -자신을 위해서는 구매 할 생각도 못 하는- 체리를 한 팩 사 온 것이 더 높은 밀도의 마음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저 체리 얘기는, 무한님 얘기 인가요?"

 

나 돈 많다. 통장에 백만 원 넘게 있으니 띄엄띄엄 보지 마시길.

 

"사연 결론은 내 주셔야죠?"

 

궁합이 안 맞는다고 해서 한순간에 모든 호의와 마음을 접는 남자라면, 그는 그냥 궁합이 맞는 사람과 살게 놔두는 게 좋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궁합 문제가 발생하기 전까지 그가 베푼 호의들 때문에 S양은 미련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 위에서 말했든 그가 결제한 돈의 액수가 S양을 향한 그의 마음과 비례한다고 생각하진 말길 권한다. 우리끼리니까 하는 얘기지만, 아마 결혼까지 생각했다가 집안 문제로 헤어졌다는 그 여자 분에게도, 그는 S양에게 한 것과 똑같은 호의를 베풀었을 것이다. 그간 함께 준비하고 약속한 것들을, 엄마가 안 된다고 했다며 쉽게 취소하는 친구와는 놀지 않는 게 가장 현명한 선택이다. 그는 그냥 계속 부모님의 아바타로 살도록 내버려 두고 S양은 S양의 갈 길을 가자.

 

 

2. 우렁공주.

 

물론 기억합니다. 바로 어제 읽은 사연처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지요. 우렁각시와 인어공주를 반반 섞어 놓은듯한 사연. 구절구절마다 답답함과 안타까움, 그리고 슬픔이 박혀 있던 사연. 잘 하려던 의욕이 과해 과유불급의 실수를 계속하던 사연. 이제 갓 서른 줄에 들어든 것에 불과하지만 그 마음엔 칠십대 노인과 십대 소녀의 모습이 공존하던 사연.

 

P양 때문에 제가 "사연 신청서에 적지 않은 사연이 아니면 발행하지 않겠다."라는 이야기를 한 건 아닙니다. P양과는 전혀 상관없이 한 얘깁니다. 가끔 이런 오해를 하는 여린마음동호회 회원들 때문에 저도 참 골치가 아픕니다. 제가 매뉴얼에 "카톡으로 사연 보내지 마시고, 꼭 신청서에 써서 메일로 보내주세요."라는 이야기를 하면, 카톡으로 사연을 보낸 적도 없는 분들이

 

"무한님, 혹시 오늘 매뉴얼에 그 말, 저에게 하시는 말씀이신가요?

제가 어제 인사한 걸 그렇게 돌려서 말씀하신 건가요?"

 

라는 질문을 해오니 말입니다. 남의 사연에서 자신의 모습을 봤다며 그 글이 불편하다고 말씀하시는 분도 계시고, 매뉴얼에서 지인의 얘기라며 소개한 이야기가 자신의 얘기 아니냐고 묻는 분도 계시고, 다짜고짜 자신의 사연을 하찮다고 생각해 매뉴얼로 발행하지 않는 것이냐고 따지는 분도 계시고…, 이런 분들을 안심시켜드리기가 가끔 벅찰 때도 있긴 합니다. 그러나 저도 누군가 카톡 남김말에 적어 놓은 문장을 보고,

 

'저거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린가?'

 

하는 생각을 하는 여린마음동호회 회장인지라, 생각하면 할수록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인 것 같다고 결론 내어 버리는 그 불편한 마음을 잘 압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상대의 무서운 얼굴을 떠올려 본 적도 있고, 누군가 제게 실망을 하거나 날선 말을 하는 상상을 하기도 합니다. 경험을 통해, 그렇게 되지 않을까 불안해하면 결국 그렇게 되는 일이 많다는 것도 잘 알고 있고요. 여하튼 그건 그렇고.

 

"제 쪽에서 조금만 용기를 내서 실장님께 한 두 마디라고 건냈더라면,

이렇게 끝나지 않고 좀 더 나아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라는 P양의 말이 정답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오래 전 매뉴얼을 통해 P양에게 권했던 부분도 바로 그 지점들이고 말입니다. 하지만 P양은 제가 발행한 매뉴얼 하나하나에 '그럴 수 없는 이유'를 달며 답장을 보내셨었죠. 그럼 저도 할 말이 없는 겁니다.

 

다이어트라고 해 봅시다. 살을 빼기 위해 걷기 운동을 하려고 '마음만' 먹고 있는 사람은 별 걸 다 두려워 할 수 있습니다. 밥 먹고 몇 시간 이후에 걷는 게 좋은지, 한 번 걸을 때 얼마나 걷는 게 좋은지, 속도는 어느 정도로 내서 걸어야 효과적인지, 비 오는 날엔 걷질 못 할 텐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남은 뭘 먹으며 살을 뺐는지, 많이 먹어도 살 안 찌는 칼로리 낮은 음식엔 뭐가 있는지,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가공음식 중 칼로리 낮은 건 뭐가 있는지, 트랙을 도는 게 좋은지 아니면 보도를 따라 그냥 걷는 게 좋은지, 쇼핑몰을 돌아다니며 다이어트 하는 방법도 있다는데 그걸 해도 좋은지, 걷기 말고 자전거 타기를 하면 안 되는지, 걷는 것 외에 집에서 병행할 수 있는 운동엔 뭐가 있는지….

 

저런 고민을 할 시간에, 말 그대로 '닥치고 걷기'를 하면 성공적인 다이어트를 할 수 있습니다. 방 안에 앉아서 머리로 고민만 할 때엔 비 오는 날 운동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걱정이 될 수 있지만, 사실 장마철이라고 해도 미친 듯이 비가 쏟아지는 날이 많진 않으며, 비 역시 왔다 안 왔다 할 때가 많기에 우산을 쓰고 충분히 걸을 수 있습니다. 또, 나가서 걷다 보면 트랙이든 보도든 자신에게 맞는 걷기 스타일을 찾을 수도 있는 거고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P양에게 "그런 건 실제로 나가서 걸어보면 별로 문제가 되지 않으니, 일단 오늘 나가서 30분이라도 걸어 보세요."라는 이야기를 해 드렸는데, P양은 "제가 오늘 나갈 수 없는 건, 오늘 비 예보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직 걷기에 적합한 신발을 사지 못 해서 걸을 수가 없습니다. 운동복도 아직 없고요."라는 답장을 보내신 것과 같습니다.

 

"무한님이 말씀하신 거, 가까워지면 그런 관계가 될 수 없는 건 아니겠지만,

주위의 보는 시선들도 많고, 그런 자리를 갖는다는 게 어렵고 조심스러운 게 사실입니다.

여긴 말도 빨리 옮겨져서 식당 여사님들까지 소문을 다 알게 되고요…."

 

저건, 역시 다이어트에 비유하자면, 자신은 빨간 티셔츠 밖에 없는데 이걸 입고 나가면 너무 튀어서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진 않을까 염려하는 것과 같습니다. 남들의 눈이 그리 무서우면, 살을 빼고 싶다는 생각은 생각만으로 간직한 채 그대로 살아야지요. 빨간 티셔츠든 파란 티셔츠든, 어쨌든 내 인생 남이 책임져 주는 거 아니고 남들이 어떻게 보든 내가 하고 싶은 거 한다는 생각으로 나간 사람은 나가서 걸었을 겁니다. P양은 남의 눈이 무서워 지금까지 '생각만' 했고 말입니다.

 

"사실 고민이라기보다는, 실장님이 떠나시는 지금 아쉬움이 더 큽니다.

제 사랑은 이렇게 끝나는 것 같습니다.

실장님과의 연애나 결혼보다, 그냥 함께하는 이 순간들이 정말 좋았습니다."

 

P양의 취향은 존중합니다만, 저 개인적으로는 '대체 이게 뭔가?' 싶습니다. 저 말이 제겐

 

"비록 나가서 걷진 못 했지만,

제가 이렇게 운동에 관심을 갖고 다이어트에 대해 알아보던,

이 순간들이 정말 좋았습니다."

 

라는 말처럼 들립니다. 어떤 건 그냥 손대지 않고 그대로 둘 때가 가장 아름다울 수 있다는 말엔 저도 동의합니다. 그런데 내게 오는 모든 인연까지 그냥 다 그대로 두며 "그대로 둘 때가 가장 아름다운 거겠죠?"라는 이야기를 하는 건, 문제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제겐 이게, 이제 실장님이 퇴사도 하게 되었고 그간 P양이 핑계로 들이대던 일들을 더 이상 핑계로 댈 수 없으니 '놓아주려 한다'라는 식의 합리화 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그간 뒤에서 열심히 우렁공주 역할하며 인형의 꿈을 꾸었으니, 이젠 앞에서 말 몇 마디 걸어 봐도 괜찮지 않을까요? 직장에서 함께 일하던 사람이 퇴사 후에도 연락을 해온다는 건 기쁜 일이며, 내가 몸담고 있던 곳의 소식을 듣는 건 추억을 걷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사이가 좋지 않은 동료였다거나 불미스러운 일로 퇴사를 한 거라면 좋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게 아니니 인연의 끈을 다시 한 번 당겨 본다는 생각으로 연락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이번엔 혹시 또 답이 오지 않거나 차가운 단답만 올까봐, 혹은 상대가 별로 반가워하지 않을까봐 걱정하십니까? P양의 사전에서 '걱정'을 지우지 않으면, P양에게 심남이가 생길 때마다 우리는 사람만 바뀐 똑같은 얘기를 하게 될 수 있습니다. 수습까지 도와드리는 제가 있는데 뭘 걱정하십니까. 일단 저지르고 함께 방법을 찾아보면 되는 겁니다. 그에게 지금 바로 연락하세요.

 

 

나이가 좀 있다고 해서, 마치 '연애 명예퇴직'을 한 사람처럼 멍하게 있진 말라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삼십대가 되었다고 해서 이십대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거나 '내가 몇 년 전에만 이걸 알았더라도….'하는 생각을 하는 대원들이 있는데, 그런 태도로는 사십대에 삼십대 시절을, 오십대에 사십대 시절을 계속 그리워하는 것 말고는 할 게 없다. 두 번째 사연에 등장한 P양 역시, 삼십대가 되었다고 해서 이젠 뭐 다 끝났고 꿈도 희망도 없다고 생각하는 노인처럼 스스로의 얘기를 하는데, 십 년 후 불혹의 나이가 되어 똑같은 후회를 할 게 아니라면 지금 얼른 바짝 삶에 당겨 앉아 후회되는 태도를 하나씩 교정해 보라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내 지인 중 하나는 서른이 되어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는 피아노를 치고 싶다는 생각을 오래 전부터 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린 시절에는 집안 사정으로 피아노학원에 다닐 수 없었고, 학창시절엔 공부 때문에, 취직 후에는 회사 업무와 인맥 관리 때문에 피아노를 배울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그냥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배우겠다는 생각만 하고 있다가, 어떤 일을 계기로 다 큰 어른이 되어 피아노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그의 친구들이 "아 또 무슨 피아노야?", "바이엘 뭐 그런 거 배우나? 체르니?", "피아노 선생님이랑 연애하려고?" 따위의 이야기를 하며 놀려댔지만, 그는 묵묵히 배웠고 지금은 친구들이 그에게 결혼식 축가와 연주를 부탁할 정도로 잘 치게 되었다. 그가 이제 피아노 학원 다니기엔 너무 늦은 나이라며 마음을 접었다면, 그는 지금도 피아노 연주는 '꿈'으로만 남아 있을 것이다.

 

그의 모습을 보며 자극을 받은 나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나도 그림을 잘 그리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하게만 가지고 있었지 선 한 번 제대로 그어 본 적 없기에, 지금이라도 시작하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물론 이게 마음먹는다고 다 되는 건 아닌 것 같다. 난 선을 똑바로 못 긋는 내게 정형외과적인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 고민을 잠시 하다가, 지금은 스케치북이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는 상태가 되었다. 내가 하는 일이 다 이렇지 뭐. 그래서 그림 말고 납땜하기로 했다. 글 올리고 납을 열심히 태워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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