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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4)

용기 내어 다가간 그녀, 하지만 썸남은 연락두절

by 무한 2014. 3. 12.
용기내어 다가간 그녀, 하지만 썸남은 연락두절
그러니까 이쪽에서,

"제가 그때는 잠시 미쳤었는지…."

라며 무슨 일을 저질렀으면, 상대는 그 일로 하여금 이쪽을 이상한 사람으로 볼 수도 있거든요. 이걸 가볍게 생각하시면 안 돼요. 진아씨가 A4용지 20매를 꽉 채워서 솔직하게 사연을 주셨으니, 저도 솔직하게 말씀드릴게요. 진아씨, 상대에게 '좀 이상한 여자' 판정 받았을 가능성이 높아요.


1. 심각한 판타지.


진아씨가 현재 짝사랑하는 모습은, 여고생 시절에 어느 남자 선생님을 사모하기도 하는 그런 것과 비슷하거든요. 선생님은 늘 나보다 높은 곳에서 나를 가르쳐 주고, 또 일깨워 주시니 자연스레 가지게 되는 뭐 막연한 동경 같은 거 있잖아요.

진아씨의 이상한 모습이 처음엔 티가 안 나요. 초반엔 진아씨 혼자 속으로만 환상을 키워가니까요. 그래서 둘의 관계가 평범한 관계처럼 보이고, 진아씨가 최초로 '한 번 시도해 봐야겠다'며 들이대도 그냥 귀여워 보일 수 있죠. 거의 전 내용을 다 각색 요구한 까닭에 예를 들어서 설명할 수는 없는데, 여하튼 '서로 연락하는 사이'가 되기 전까진 진아씨의 호감표현이 살짝 당돌해 보일 수는 있어도 이상하게 보이진 않아요.

그런데 중반으로 넘어가면서 진아씨는 급속도로 이상해지거든요. 부담스러운 요구들을 하기 시작해요. 저도 노멀로그를 운영하며 '부담스러운 제안'을 받은 적이 몇 번 있어요. 자세한 내용은 밝힐 수 없지만, 전 사실 부담스럽거든요.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초면에 다짜고짜 하지 않을 요구들을 하시는 분들이 좀 무섭게 느껴지기도 하고요.

바로 진아씨가 그래요. 남자입장에서 보자면, 진아씨가 부담스럽고 무섭게 느껴질 수 있어요. 상대는 그저 자신이 주최한 강습회에서 진아씨를 수강생으로 만난 것이니, '강습회에서 만난 인연'으로 생각할 수 있거든요. 그런 관계에 으레 존재하는 '형식적인, 또는 의무적인 호의'를 발휘해 진아씨를 만난 것일 수 있고 말예요. 그런데 진아씨는 그가 잘 받아주자, 이제 혼자 속으로만 환상을 키울 것 없이 그에게 대놓고 들이대도 된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그래서 진아씨의 동네로 오라는 요구를 끈질기게 하기도 했고, 현실에서의 그가 진아씨가 상상했던 모습과 다른 모습을 보이면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로 그를 대하기도 했죠.

좀 더 솔직하게 말해도 되나요? 현실에서의 진아씨는 상대에게 별 감흥이 없어요. 이거 놀랍지 않아요? 정말 절실하게 그 사람을 원하는 것처럼 진아씨가 말은 하는데, 막상 만나면 그에게 감흥이 없는 거예요. '그 사람' 때문에 가슴이 뛰는 게 아니라,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하고 있다는 것' 때문에 가슴이 뛸 때 나타나는 전형적인 증상이에요.

진아씨는 상대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상대라는 사람에 대해 진아씨가 마음대로 만든 이미지를 좋아하는 거예요(일반적으로 연애가 초반의 이런 '환상'의 도움을 받아 시작되는 건 맞지만, 진아씨의 경우는 그 정도가 심해요.). 각색을 너무 많이 요청해서 본 이야기를 다룰 수 없으니, 진아씨가 나를 좋아한다고 가정해 볼게요. 저는 매일 밤 북극성을 찾아요. 그럼 진아씨는 이런 저에 대한 이미지를 만들거든요.

'북극성을 매일 찾는다니! 이 사람은 별을 보며 사는 낭만적인 사람이구나.
이런 남자라면 이러이러한 모습이 있을 거고, 또 이러이러한 모습도 있을 거야.'



라면서요. 전 그냥 제가 담배를 피우는 장소가 발코니고, 발코니 창문이 북향으로 난 까닭에 담배 피우러 갈 때 북극성을 찾는 것뿐이에요. 그런데 진아씨는 여기에 살을 붙여서 실제의 저와는 전혀 다른 남자를 하나 만들어 버리죠. 그러고는 제가 그 사람일 거라고 믿는 거예요. 아니라고 부정하진 마세요. 진아씨는 그라는 사람 자체보다 그의 소품이나 취미들에 관심을 많이 뒀고, 또 그가 별 생각 없이 한 말이나 행동에 엄청난 의미들을 부여했으니까요.


2. 어긋나는 의사소통.


전에도 한 번 말했던 것 같은데, 저희 집 신발장 센서등에는 검정 테이프가 붙어 있어요. 센서가 너무 예민한 까닭에 테잎으로 1/3쯤을 가려두었거든요. 가리기 전까지는 거짓말 조금 보태서 거실에서 움직여도 센서등이 켜질 정도였어요. 화장실 가려는데 갑자기 신발장 쪽 센서등이 켜지면 깜짝 놀라기도 하고, 또 필요 없이 불이 들어오면 전기료도 많이 나갈 것 같아서 가려두었죠.

사람의 센서도 이렇게 테이프로 가려둘 수 있다면, 저는 진아씨의 센서를 좀 가려두고 싶어요. 진아씨는 너무 예민하거든요. 창작하는 입장에서는 그게 득일 수 있지만, 현실에서 사람들과 어울려 살 때에는 그게 독이 될 수 있어요. 예민한 만큼 작은 신호에도 상처를 받을 수 있고, 그러다 보면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 다음부터는 무작정 피하기만 할 수 있으니까요.

"…그가 정색하며 말했습니다."


아니에요. 그렇지 않아요. 제가 보기엔 그가 정색한 게 아니거든요. 그냥 지금까지 웃고 있던 표정을 잠시 거두고 진지하게 말하느라 그런 것일 수 있어요. 그런데 진아씨는 극단적으로 해석을 해요. 역시 진아씨의 요청으로 인해 둘의 대화를 가져다가 살펴볼 수는 없는데, 진아씨는 상대가 작은 농담만 해도

'저 말의 의미는 뭐지? 나 들으라고 한 말인가?'
'지금 저 말은 저번에 한 말과 조금 어긋나는데, 뭐가 진실이지?'



하며 분석하려 들거든요.

음, 우선 이 얘기부터 할게요. 사람들은 진아씨가 생각하는 것만큼 진아씨에게 관심이 없어요. 진아씨가 옷과 안 어울리는 머리띠를 했든, 아니면 옷과 안 어울리는 구두를 신었든 별로 신경 쓰지 않아요. 진아씨가 재채기를 했다고 해서 그걸 계속 불쾌하게 생각하지도 않고, 진아씨가 상대의 말에 대답을 잘 못했다고 해서 진아씨를 바보로 보지도 않아요. 오히려, 진아씨가 '그때 내가 그랬던 걸 가지고 상대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거야.'라며 혼자 끙끙 앓다가 뜬금없이 그것에 대한 변명이나 부연설명을 하려 하면, 그걸 더 이상하게 봐요.

그리고 진아씨가 예민한 센서를 가지고 있든, 아니면 점쟁이 뺨치는 직관을 가지고 있든, 진아씨의 생각이 '확정된 사실'은 아니라는 걸 늘 염두에 두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인간관계에서 마음의 문을 닫는 횟수가 많아지거든요. 왜? 한 번 아니라고 생각하면 아니라고 아예 확정 판결을 낸 후 상대가 무슨 얘기를 해도 믿지 않으니까. 오로지 내 판단만 믿는 실수를 하는 거예요. 심지어 그게 착각이어도 말이죠. 더불어 그게 슬픈 예감이면, 내가 맞아도 슬픈 거고, 틀려도 슬픈 일이 되어 버리고 말아요(이 경우, 슬플 것이라고 예감한 뒤 상황을 그렇게 만들어 버리니까).

진아씨 자신을 보세요. 상대의 말이나 행동 중 하나가 진아씨 레이더에 걸리면, 진아씨는 거기에만 집중하느라 상대의 다음 말은 듣지도 않아요. 손꼽아 기다리다 만나게 되어도 어떤 부분이 마음에 걸리면, 진아씨는 집에 갈 생각을 하죠. 또, 잘 만나고 돌아와서도 진아씨에게 슬픈 예감이 찾아오면, 황당하게도 진아씨는 상대에게 다시 안 볼 것처럼 말을 하기도 해요. 그러니 상대 입장에선 갈피를 잡을 수가 없는 거예요. 극단적이고, 변덕이 심하니까.

앞으로는 어떤 감정이 들든 간에 딱 하루만 더 참았다가 판결을 내려 보세요. 제가 보기엔 이것만 성공해도 진아씨가 가진 문제의 절반은 해결될 것 같거든요. 나 보러 강릉으로 안 오면 인연을 끊겠다는 식의 태도를 보여서 강릉까지 보러 갔는데, 그렇게 보고 돌아가는 길에 여자가 '마지막 인사'같은 걸 카톡으로 보내오면, 저 같아도 그 여자를 다시는 만나기 싫을 것 같아요.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이게 대체 뭐하는 짓인가, 하는 생각이 들겠죠.


3. 강사인 그 남자.


개인적으로 요즘 강사는 '교육직'에서 점점 '서비스직'으로 넘어가는 것 같다고 생각해요. '교육 서비스'가 된다고 해야 할까요. 여하튼 예전과 같은 강사의 권위는 점점 사라지고, 수강생들의 비위를 맞추거나 강의 후에도 수강생들과 친구처럼 지낼 수 있게 노력하는 것이 더 중요해 진 것 같아요.

게다가 예전에는 교육을 하고 나면 '몇 기 수강생 모임'같은 카페 위주의 활동을 했잖아요. 그러다가 점점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지면 저절로 그 모임이 와해되기도 했고요. 그런데 요즘은 SNS의 발달로 인해서 언제든 다시 연락이 닿기도 하고, 단체 카톡방을 만들어 놓으면 꼼짝 없이 잡혀서 강사들은 전보다 큰 '대화할 의무'를 부여받는 것 같아요.

그래서 최근엔 세미나와 관련된 사연이 참 많이 오거든요. 강사와 연락처를 주고받는 것도 어렵지 않고, 또 그렇게 한 번 연락처를 받아두면 집에서 TV를 보다가도 강사에게 말을 걸 수 있어요. 저 위에서 말한 '강사에 대한 동경' 같은 걸 가지는 사람에겐 상황이 엄청 편리해진 거죠. 근데 강사 입장에서도 앞서 말했듯 지금은 '교육 서비스'를 해야 하는 시대인 까닭에 자신이 받는 질문들에도 성실히 답변해 줘야 하거든요. 진아씨가 강사라고 생각해 보세요. 이전 수강생 중 한 명이 무언가를 부탁하는데, 거기에 대고 바로 거절할 순 없는 거잖아요.

그리고 무엇보다-이건 저도 느끼는 점인데-, 맹목적으로 호감을 표현하는 사람의 호의를 거절하면 끔찍한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거든요. 요즘말로 하자면, '빠가 변하면 까가 된다'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 사람은 내가 생각하는 그 사람일 거야.'


라는 생각을 하며 다가갔다가, 그에게 실망하게 되면 모든 방법을 총동원해 밟기 시작하는 거예요. 빠든 까든 어쨌든 관심은 있는 거니까요. 그게 좋은 쪽이냐, 나쁜 쪽이냐의 차이일 뿐이지.

진아씨가 그렇다는 얘기는 아니에요. 다만, 강사인 그 남자 입장에서 보자면 진아씨가 저렇게 변할 가능성도 분명 있는 거거든요. 실제로 진아씨는 그와의 만남과 에피소드 등을 같은 수업을 들었던 수강생들과 친구들에게 털어 놓기도 했어요. 그 중 한 사람은

"그가 네가 좋아한다는 걸 알고는 그걸 즐기는 거 아니냐. 그냥 '선수'같다."


라는 말을 하기도 했죠. 진아씨가 사연신청서에 적은 것처럼 자세한 이야기를 한 건 아니고 그저 '만나서 데이트도 했는데 연락이 없다'는 식으로만 이야기를 했으니, 그 얘기만 들은 사람은 당연히 저런 편파적인 결론을 낼 수 있거든요.

글쎄요. 이 상황에서는 판정을 내리기 힘든 것 같아요. 분명 그도 진아씨한테 호의를 보이려고 노력한 부분이 있거든요. 진아씨가 물어 본 것에 대해 열심히 설명을 해 준 것이라든가, 진아씨의 요구를 들어줬던 부분들. 그런 부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진아씨에게 열정적으로 들이대거나 하지 않았다고 '선수'라고 단정 짓긴 어려운 것 같아요.

다른 이성 친구들이 있는 것에 대해서도, 그가 외톨이에 친구 하나 없는 사람이어야 할 이유는 없는 거잖아요. 안 그런가요?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입장에서 진아씨를 제외한 다른 수강생들에겐 답장조차 하지 않아서는 안 되는 거고 말예요. 제가 문제 하나 낼게요. 진아씨가 봐야 하는 시험이 어려워요. 그럼 왜 문제가 쉽지 않냐고 스트레스 받으며 더 쉬워지길 기대하는 게 나을까요, 아니면 공부를 좀 더 해서 시험에 도전하는 게 나을까요?


진아씨가 서울에 왔다가 지갑을 잃어버리고는 터미널에서 누군가에게

"제가 지금 강릉에 가야 하는데, 지갑을 잃어버렸거든요.
제가 원래 이렇게 누구에게 부탁하거나 하는 거 잘 못하는 타입인데,
용기내서 이렇게 부탁을 드립니다. 돈 좀 빌려주세요."



라고 이야기를 한다고 해봐요. 진아씨 입장에서는 정말 큰 용기를 내어 말을 꺼낸 거겠지만, 상대에겐 그냥 '다짜고짜 돈 빌려달라는 부탁'으로 느껴질 수 있는 거잖아요. 부탁을 받은 상대가 초면에 돈을 빌려주긴 어려우니 일단 사정이나 좀 들어보자고 하니까, 진아씨는

"안 빌려 줄 거면 사정은 뭐 하러 듣나요? 됐어요."


라고 말해요. 이럼 안 되는 거잖아요. 이래놓고

"저 사람은 애초부터 저에게 돈을 빌려줄 생각이 없었던 거죠?
사정을 들어보자고 한 건 그냥 거절하면 나쁜 사람 될까봐 그런 거죠?"



라고 물으면, 아무도 대답해 줄 수 없는 거고 말예요.

'매뉴얼에서 밝히지 말아달라'며 적어주신 그 계획은 괜찮은 것 같아요. 그걸 계기로 대화가 이어질 수 있으니까요. 상대에게 문제를 던져놓고 답을 선택하라고 재촉하는 건 '용기 내는 것'이 아님만 기억하시면 될 것 같아요. 문제는 진아씨가 푸세요. 그리고 책임도 진아씨가 지세요. 에라 모르겠다 하며 상대에게 다 미뤄놓고 책임도 상대보고 지라고 하는 건, 용기가 아니라 민폐일 뿐이니까요.



▲ 벚꽃놀이 시즌이 보름 후면 시작됩니다. 연애의 겨울잠 주무시는 분들 얼른 깨어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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