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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4)

남자친구의 궤변에 시달리는 여자 외 1편

by 무한 2014. 3. 7.
남자친구의 궤변에 시달리는 여자 외 1편
스펙이나 배경이라는 게 연애에 이렇게까지도 영향을 끼치는 구나, 하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앤디 워홀이 한 말이던가요.

"유명해져라. 그렇다면 당신이 똥을 싸도 사람들이 박수를 쳐 줄 것이다."


라고. 실제로 피에로 만조니는 <예술가의 똥>이라는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자신의 대변을 깡통에 밀봉해 작품으로 내 놓은 것이죠. 90개의 깡통을 만들었다고 하던데, 그 중엔 미술관에 전시 중인 것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1993년에는 그 깡통 중 하나가 7만5000달러(한화 약 9000만원)에 팔렸다고 하네요.

이런 일은 연애에서도 일어납니다. 상대의 스펙이나 배경이 좋기만 하면, 그가 똥을 싸도 이쪽에선 박수만 치고 있는 일 말입니다. 보통의 남자가 그랬으면 당장 연락을 끊어버렸을 일도, 상대의 스펙과 배경이 좋으면 도리어 이쪽에서 반성을 합니다. 예컨대 상대가

"난 너에게 사과만 하는 관계에 빠지지 않기 위해 사과를 하지 않는다."


라는 피콜로 더듬이 빠는 소리를 해도, 그가 명문대를 나와 전문직에서 종사하고 있으면, 저 말에 뭔가 심오한 이유와 철학적인 사유가 담겨 있는 거라며 그냥 받아들이는 겁니다.

언젠가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인간 조종'에 관한 내용을 방송한 적이 있습니다. 성공하게 만들어주는 생활 프로그램이라는 말에 속아, 한 여자가 자신의 아이들을 죽인 내용이었습니다. 그 조종을 한 건 죽은 큰 딸 친구의 엄마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아이를 죽인 엄마는 평소 당차게 사회생활을 하는 그녀를 부러워했고, 성공의 방법을 물었습니다. 그러자 조종을 한 그녀는 '성공 프로그램'이 있다며 그 프로그램에 따르라고 했죠. '몇 시에 청소기를 돌려라. 몇 시에 밥을 해라.' 등의 내용이었습니다. 전화로 그 내용을 전달해 줬죠. 그러다 나중에는 '아이들을 재우지 마라. 아이들을 데리고 집을 나가라. 아이들을 죽여라.'라고 지시합니다.
 
어떻게 저런 말도 안 되는 지시에 다 따르냐고요? 의사가 "코끼리 코를 하세요. 토끼뜀을 뛰세요. 진료를 위해 필요합니다."라고 하면 거부하는 사람 없이 다 따른다는 실험도 있었는데, 그것과 비슷한 거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1. 남자친구의 궤변에 시달리는 여자.


재개발로 인한 해택을 보기 위해 다 허물어져 가는 집에 살고 있던 친구가 있습니다. 지붕은 진작 내려앉았고, 샤워를 하려면 물을 끓여서 해야 했던 집이었습니다. 먹기 위해 사둔 식료품들과 물이, 마치 이재민을 위한 구호물자처럼 보였던 것으로 저는 기억합니다. 마당의 갈라진 시멘트 틈 사이로 무성하게 자라있는 잡초, 화장실을 수리하려면 큰돈이 드는 까닭에 집 앞에 가져다 두었던 이동식 화장실도 기억납니다.

뭐, 그렇게 해서 훗날의 이득이 보장된다면야 저도 그럴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제 주변만 봐도 가진 모든 걸 다 쏟아 부어 집을 짓느라, 완성되기 전까지는 텐트에서 생활했던 지인도 있고 말입니다.

K양이 재개발을 기다리고 있는 거라면, 저도 그 폐가 같은 남자친구 옆에서 K양이 더 머문대도 말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건 재개발이 아니라 연애지 않습니까?

"이전 연애를 할 때 내가 무조건 사과하고 참아야 하는 게 싫었다."


저런 얘기만 하면 앞으로 참지 않고, 사과하지 않는 것에 대한 면죄부를 갖게 되는 겁니까? 저 말을 구실로 면죄부를 달라는 사람도 이해하기 어렵지만, 바로 면죄부를 발행해주는 K양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난 원래 다정하지도 않고 무뚝뚝하다."


라는 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보통의 관계에서 저런 이유를 핑계로 연인을 방치해 두면, 그 연애는 종말을 맞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K양은 참고 이해하려 합니다. 이게 오로지 그의 스펙과 배경 때문이라고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이번에는 '맞춰가는 연애'를 하려는 K양의 다짐, 그리고 좀 더 상대를 이해해 보려는 노력도 포함되어 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그의 '스펙과 배경'이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건 인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상대가 보통의 남자였다면, K양이 진작 정리했을 테니 말입니다. 

사실 이 관계는 처음부터 제대로 된 관계가 아니었습니다. K양은 남자친구의 "처음 만난 날 네가 계산을 했기 때문에 다시 만나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난 네가 마음에 들었어도 안 만났을 것이다."라는 말을 칭찬으로 받아들이고 있는데, 전 그 말을 오만이라고 봅니다. 저 말은, '내 시험을 네가 통과했고, 넌 이제 시험으로부터 자유로운 몸이다.'라는 뜻이 아닙니다. '넌 1번 문제에 통과했다.'라는 얘깁니다. 좀 감이 잡히시지 않습니까? 지금도 K양은 그의 시험을 받는 중인 겁니다. 5번과 6번 문제쯤 와서 두 개 연달아 틀린 것이고 말입니다.

남자가 말은 참 잘 합니다. K양을 그 폐가 같은 환경에 살게 만들어 놓고는, K양이 혹 견디지 못하고 나가버릴까 '희망'은 계속 줍니다. "3년을 만나나 3개월을 만나나 똑같다고 생각한다."라는 식의 말로, 사귄 기간이 얼마 되지 않는 K양을 안심시킵니다. 결혼이 멀지 않았다는 암시를 하면서 말입니다. 물론 실질적인 계획 같은 건 없습니다. 그냥 암시만 할 뿐입니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해도 되겠습니까? 제가 보기엔 그의 태도가 사람을 가지고 노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결혼을 암시하는 말을 해 놓고는, K양이 조금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꺼내면 "아직 서로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데 그런 얘기를 하는 건 좀 이른 것 아니냐."라는 식으로 대답합니다. 김칫국을 상에 놓긴 했지만, 그게 너 마시라고 둔 건 아니라는 식입니다. 그래놓고는 또 그 말에 K양이 "내가 너무 성급했던 것 같다."라고 말하면, 그는 다시 태도를 바꿔 "그럼 우리는 1년 안에 결혼 못 하는 거냐?"라는 말을 합니다. 그럼 또 K양은 혹시 잘못 대답했다가 그의 '결혼하려는 마음'을 없애는 게 아닐까 싶어 긍정적인 대답을 합니다.

혹시 저 말을 듣고 K양은 또 '그럼 오빠는 1년 안에 결혼 하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라고 생각하고 계십니까? 훗날 K양이 "전에 오빠가 1년 안에…."라는 이야기를 꺼내면, 그는 아마 "난 그냥 물어 본 것뿐이잖아. 내가 언제 1년 안에 결혼한다고 했어?"라고 대답할 겁니다.

K양은 그의 궤변에서 빠져 나올 수가 없을 겁니다. 그는 누가 봐도 믿지 못할 행동을 해 놓고도, K양이 의심스러워하면 K양의 불신을 탓합니다. 또, 그는 K양이 무슨 얘기를 하든 '그건 네가 과민반응 하는 거다.'라는 식으로 몰아갑니다. 이게 참 대단한 방법인 것 같습니다. "난 구여친이 과민반응 하는 게 싫어서 헤어졌다."고 일단 판을 깔아 놓고는, 현여친이 뭘 하든 "그건 과민반응이야. 내가 과민반응 하는 거 제일 싫어한다고 분명 말했을 텐데."라며 사과 받는 것으로 이끌어 갈 수 있으니 말입니다.

여자친구가 병원에 일주일을 입원해 있는데, 한 번도 안 찾아온다는 건 말이 안 되는 겁니다. 아무리 여자친구가 오지 말라고 사양했어도, 카톡으로 편의점이나 자판기 가서 음료수 뽑아 마시라는 말 따위나 하고 있는 남자와는 만날 필요가 없는 겁니다. 구여친이 병원에 간 적 있어서 트라우마가 있으니까? 그가 가족들 만나는 걸 불편해 하니까? 만약, 둘이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다고 하면, 그때도 혼자 가서 아이 낳고 혼자 아이 데리고 와서 혼자 키우실 생각이십니까? 전 궁금합니다. K양이 이런 남자를 계속 붙잡으려 하시는 이유가 뭔지.


2. 인기 많은 남자 동료와 진도를….


최대한 많은 각색을 요청하셨으니 저도 간단하게만 적도록 하겠습니다.

L양이 집에 안 들어간 것이 가장 치명적인 실수입니다. 저는 사연을 읽으며

'얜 왜 집엘 안 들어가? 뭐 하는 거야?'


라는 생각을 여러 번 했습니다. 물론 여자가 집에 들어가지 않아도 알퐁스 도데의 <별>에서처럼 그 곁에서 조용히 머물러주는 남자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욕구가 휘몰아치는 이십대 중반에, 각 소주 일 병 이상씩 한 상황에서, 쉬다 가자는 얘기를 했더니 망설임 없이 따라오는 여자에게, 자장가만 불러 줄 남자는 많지 않은 것 아니겠습니까?

"그건 제가 잘못했다는 걸 알아요. 그런데 그 분은 어떤 생각으로 그러신 거죠?"


생각이랄 게 있겠습니까? 그가 어떤 생각으로 L양을 만났는지는, 이미 둘의 대화에 나옵니다.

"제가 L씨를 이성으로 봤다면, 영화를 보자고 하거나 했겠죠.
그냥 같은 회사 다니고 같은 동네에 사니까, 치맥 한 잔 하자는 거였어요."



저게 상대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L양은 저 말에 "저는 사실 호감이 있어요. 호감이 있으니까 이렇게 나온 거죠."라고 답합니다. 그러고는 집에 들어가질 않습니다. 맥주 마시고, 또 소주 마시러 가고, 노래 부르러 가고…. L양이 그렇게 집에 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으니까 상대가 떠봅니다.

"집에 안 들어가셔도 돼요? 저랑 더 노실 거예요? 쉬다 갈까요?"


저 말에 L양은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가 어떤 감정으로 진도를 나간 건지 궁금하다고 하셨는데, 정말 모르셔서 물으시는 건가요? 아니면, L양이 생각하고 있는 그거 말고 또 다른 어떤 감정이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에 물으시는 건가요? L양이 생각하시는 그거, 맞습니다.

"술 때문에 진도를 나간 실수 말고, 제가 가진 문제들을 알고 싶어요."


그것 말고는 다른 문제가 안 보입니다. 그래도 하나 집어 보자면, 진도가 다 나가고 난 뒤에야 의미를 엮어보려는 시도라고 할까요. 진도를 나갈 때까지는 아무 얘기도 하지 않고 있다가, 진도가 나가고 난 뒤에야 카톡으로 구구절절 L양이 하고 싶은 말을 적어 보냅니다. 후회는 없고 사실 너에게 호감이 있어서 그랬던 거다, 라는 얘기 말입니다. 그 말에 상대는 뭐라고 답했습니다.

"네, 저도 즐거웠어요."


그 분은 그냥 '원나잇'이라고 생각한 겁니다. 이것에 대해 L양은,

"그러면 왜 지금까지 연락을 하면 그가 연락을 받아주고,
또 진도를 나간 후 인연을 끊어버리지 않는 건가요?"



라고 묻는데, 우선 둘이 앞으로 계속 볼 일이 있기에 '아는 사이'라는 관계로 묶어둘 수 있습니다. 진도만 나가 놓고 인연을 끊어 버리면, '그런 남자'로 여겨질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지금처럼 진도를 나간 후에도 농담 따먹기 식의 수다를 좀 떨면, 진도를 나갔던 건 '술김에 그랬던 실수'로 여길 수 있습니다.

또, 이미 진도를 한 번 나간 관계인데다가, L양이 그에 대한 호감과 관심을 보이고 있으니 계속 연락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 L양은 그를 만나고 싶어 하지만 그는 핑계를 대며 피하는 상황인데, 언제든 그가 부르면 L양이 또 달려갈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만나면 L양의 치명적인 약점인 '집에 안 들어가기'가 발동될 것이고, 그땐 다시 진도를 나가는 건 일도 아닐 수 있기에 그럴 수 있습니다. 일종의 '파트너' 형태로 생각하는 것일 수 있다는 얘깁니다.

"전 진심으로 그 분에게 호감을 느껴서 그랬던 거예요.
그런데 어떻게 절 파트너 따위로 생각할 수 있는 거죠?"



아, 지금 그 질문을 받으니까 생각난 건데, 비 오던 어느 날 제가 우산을 현관문 앞에 놓은 적이 있습니다. 사은품으로 받은 우산이었지만 크고 가벼워 제가 아끼는 우산이었습니다. 주류 회사의 로고가 찍힌 우산인데, 그 우산이 갖고 싶어서 배부른데도 계속 술을 시켜 받은 우산입니다. 일정 가격 이상이 되도록 술을 마셔야 받을 수 있는 우산이었기 때문입니다. 여하튼 그 우산을 바로 가지고 들어오면 현관이 젖는 까닭에, 잠시 현관문 앞에 세워두었습니다. 빗물 내려가는 쪽에 세워두면 물은 그쪽으로 흐르고 우산도 마를 테니까요.

그런데 그 우산이 없어진 겁니다. 뭐, 범인은 금방 잡았습니다. 청소하시는 여사님께서 그 우산이 누군가 버린 것인 줄 알고 가져갔다고 하시더라고요. 이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제가 진심으로 아끼는 우산이든 뭐든, 문 밖에 내다 놓으면 다른 사람은 그걸 누군가가 버린 걸로 생각할 수도 있는 겁니다. 버리는 거 아니니 가져가지 말라고 쪽지를 붙여 놔도, 가져가는 사람이 있는 게 사회 아니겠습니까? 집에 모셔 놓고 있어도 창문 깨고 들어와 훔쳐가는 일도 벌어지는데, 오늘날 이 시점에 "전 호감 때문에 그랬던 건데 어떻게 그걸 원나잇이라고 생각하죠?"라고 말하는 건, 슬프도록 순진한 질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첫 번째 사연의 주인공인 K양에게는 스스로 판단하라는 이야기를 더 해드리고 싶습니다. 매뉴얼을 근거로 삼아 그에게 따진다거나 하는 일 따위는 아무 소용없습니다. 제가 A4 200페이지의 글로 K양을 말린다고 해도, K양의 남친은 말 몇 마디로 그걸 쉽게 분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넌 누군지도 모르는 무한이라는 사람의 말은 그렇게 믿고,
네 남자친구인 내 말은 안 믿는다는 거지?
그럼 헤어지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겠네. 그 사람이랑 만나 봐."



라는 이야기면 끝입니다. 저런 말에 넘어가 '무한 말고 남자친구를 믿어야겠다.'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스스로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카톡대화를 보면 그는 자신에게 불리한 대화를 하게 될 경우 '본질'에서 회피해 '당위'의 문제로만 나아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거기에 넘어가 그의 말에 수긍만 하고 있으면, 아무 답도 구할 수 없다는 걸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 사연의 주인공인 L양에게는 '그가 내 연락을 받아주고 있으니, 이게 좋은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 아닐까'라는 생각을 그만 내려놓으시라는 얘기를 드리고 싶습니다. 그는 그냥 '대답 머신'처럼 L양의 질문에 대답을 해주는 것일 뿐, 대화를 하는 게 아닙니다. 그가 외롭고 심심할 때 이전과 달리 갑자기 상냥하게 나올 수 있는데, 그럴 땐 그 상냥함이 얼마나 지속되는지를 보시기 바랍니다. 모텔 앞에서는 모든 남자가 착해진다는 이야기를 제가 수 년 전에 한 적 있습니다.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자 그럼, 다들 블링블링한 후라이데이 나잇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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