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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3)

사귈 것처럼 들이대더니 다른 여자에게 간 남자

by 무한 2013. 1. 23.
사귈 것처럼 들이대더니 다른 여자에게 간 남자
사연을 보낼 때 카톡대화를 첨부해 달라고 하는 게, 꼭 '무슨 대화를 나눴나'만 보려는 건 아니다. 그것보다는 '어떻게 대화를 나눴나'를 보려고 하는 목적이 더 크다. 예를 들어 보자.

"실명노출 될까봐 카톡대화를 첨부하기 좀 그러니까, 그냥 제가 설명할게요.
주말에 친구 결혼식이 있다는 얘기랑 워크샵 간다는 얘기를 좀 나누다가,
그거 다 끝나고 나서 한가해지면 보기로 했어요."



자신의 이야기니 본인은 누가 결혼식에 간다는 건지, 누가 워크샵에 간다는 건지 잘 안다. 하지만 사연을 읽는 나는 한 번에 파악하기가 힘들다. 물론, 전후 문맥을 짚어 저 사건의 주인공이 '그 오빠'라는 걸 알 수는 있다. 하지만 같은 이야기라고 해도 어떻게 대화를 나눴나에 따라 의미는 전혀 달라질 수 있다.

A.
여자 - 오빠 주말에 시간 괜찮아요?
남자 - 이번 주는 친구 결혼식 가는데.
여자 - 그럼 다음 주는요?
남자 - 다음 주는 회사 워크샵.
여자 - 바쁜 남자군요. 우리 함 봐야죠. 워크샵 끝나고 시간 괜찮아요?
남자 - 그래야지. 워크샵 끝나면 연락할게.


B.
여자 - (카톡프로필에 있는 글을 보고) 무슨 사회 봐요?
남자 - 아, 친구 결혼식 사회 보기로 했어. 이번 주말에 ㅋ 잘 지내지?
여자 - 친한 친군가 보네요. 네 잘 지내요. 오빠는요?
남자 - 결혼식 끝나면 다음 주는 회사 워크샵 ㅠ.ㅠ
여자 - 빡시게 사시는 군요. (헤헷)
남자 - 나 워크샵 끝나고 고기 함 먹자. 어때?



수도 없이 예문을 만들 수 있지만, 서론이 너무 길면 지루해 질 수 있으니 저 두 개만 적도록 하자. 여하튼 같은 반올림이라고 해도 5에서 올린 것과 9에서 올린 것은 다르다는 얘기다. 대화를 나눈 시간이나 답장에 걸리는 지연시간 등도 중요한 참고자료가 되니, 되도록 붙을 거 붙고 뺄 거 뺀 설명이 아닌, 날 것 그대로의 카톡대화를 보내주기 바란다. 자 그럼, 출발해 보자.


1. 다 담는 남자


난 종종 세일 코너의 희생양이 되곤 한다. 할인판매 하는 책이나 비디오(DVD)를 보면 그냥 지나가지 못한다. 읽고 싶었던 책도 아니고, 딱히 흥미가 있는 분야의 것도 아닌데

'이게 500원이면 완전 거저야. 책 네 권이 담배 한 갑 값도 안 하네.'


라며 일단 사고 보는 것이다. 간혹 보석 줍듯이 건져 올린 책도 있으나, 대부분은 집에 돌아와 '근데 이걸 지금 내가 읽을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발코니에 쟁여 둔다. 그러다 일 년에 두 번 있는 '춘계, 추계 대청소'를 맞이하여 내다 버린다.

이 증세가 심각했을 때에는 나와 아무 관련 없는 책들까지 산 적도 있다. 오븐도 없으면서 오븐 요리책을 산다거나, 나중에 공부할 생각으로 원서를 구입한다거나, 그냥 왠지 사두면 도움이 될 것 같아서 건강관련 책을 산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이건 누구누구에게 읽어보라고 주면 좋을 거야.'라는 생각으로 책을 산 적도 있다.

사연에 등장하는 남자가 딱 저런 태도로 연애를 하고 있다. '오는 여자 안 막으며, 주변의 모든 여자에게 가능성을 부여한다.'라는 슬로건으로 저지르는 짓이다. 내가 집에 아직 안 읽은 책이 있어도 세일하는 책이 있으면 사오듯, 그 역시 소개팅으로 만난 여자와 애프터를 하는 중에도 또 다른 소개팅이 들어오면 흔쾌히 응한다. 다다익선의 정신으로 모든 여자와 일단 연을 맺는 것이다. 

초반에 이걸 구별하는 것은 어렵다. 내가 가벼운 마음으로 산 책이라 해도 당장 그 책이 내 손에 있으니 펼쳐보는 것처럼, 그 역시 현재 만나고 있는 사람에게 열정을 쏟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 가벼운 마음은 행동으로 드러난다. 내가 그렇게 산 책을 몇 페이지 읽다가 발코니에 쟁여 두는 것처럼, 그 또한 몇 주간 들이대다가 관계를 방치해 버린다. 그러다 새로운 여자를 만나면 또 새로운 여자에게 다시 들이대기 시작한다.

"곧 사귈 것처럼 들이대더니, 갑자기 소개팅을 해 주겠다느니 하는 얘기를 하는데
이 남자 대체 뭐죠? 절 떠보려고 소개팅 시켜준다는 얘길 하는 건가요?"



그건 내가 식물도감을 구입해 숲해설가인 친구 H군에게 선물하는 것과 비슷한 거다. 책을 샀다고 다 소장하겠다는 뜻은 아니잖은가. 일단 사 와서, 이 책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나눠 줄 목적을 가졌던 거다. 세일하는 물건이 있으면 일단 장바구니에 담아두는 것처럼, 그런 태도로 연애에 임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기억해 두기 바란다.


2. 특징은?


위에서도 말했지만, 분명하게 구별할 수 있는 확연한 특징 같은 건 없다. 다만 그간 도착한 사연들과 주변에 서식하고 있는 '인연 수집남'의 행동을 보면 몇 가지 공통점이 있으니 그걸 적어둘까 한다.

ⓐ 연애관, 결혼관 얘기만 하고 정작 어쩌자는 말은 없다.
잘 다듬어 온 자기소개서를 발표하듯 그들은 자신의 연애관이 어떻고, 결혼관이 어떻다는 식의 이야기를 한다. 대개 그런 이야기들은 이쪽과 진지하게 만나 볼 생각이 있을 때 꺼내는 법인데, 그들은 그런 마음이 없이도 "남들과 같은 방식으로 연애하는 건 진부하다고 생각한다."라거나 "결혼을 한 후에도 서로 존중할 수 있게 존대를 하고 싶다." 따위의 이야기를 한다. 이런 말을 들은 여자들은 김칫국을 마시기 마련인데, 오호통재라. 저 말에 무서운 반전이 포함되어 있음을 잊지 말자. "그게 너라고는 말하지 않았다."라는 반전 말이다.

ⓑ 좋아한다는, 또는 호감이 있다는 얘기는 쉽게 한다.
이것저것 가릴 것 없이, 그는 그냥 만나기만 하면 바로 이쪽에 호감이 생긴다고 보면 된다. 길거리에서 사은품 나눠주듯 호감을 뿌리는 남자라고 할까. 때문에 연애가 급한 여자나 남자의 호감이 아쉬운 여자들은 즉시 그와의 연애를 꿈꾸게 된다. 게다가 열정적이라는 공통점도 있기에 고민할 틈도 주지 않고 "나 지은씨한테 호감 있어요."라는 말도 스스럼 없이 한다. 지은양은 얼마 전 그가 '아는 언니'에게도 똑같은 말을 했다는 걸 이미 알고 있지만, '그래도 그 언니한테는 저 사람이 애프터는 하지 않았으니까.'라며 합리화를 한다. 그 아는 언니는 이미 눈치 채고 첫 만남에서 로그아웃 한 건데 말이다.

ⓒ 스킨십 요청과 예고 없이 벌어지는 잠수.
사귀자는 말 없이 만남을 질질 끄는 와중에, 그들은 자꾸 이쪽의 애정을 요청한다. 과거의 옛 사랑 얘기를 꺼내 위로를 구하는 남자도 있고, 이것저것 예쁜 짓을 했으니 뽀뽀를 해 달라고 요청하는 남자도 있다.(특이한 경우로 자꾸 머리를 쓰다듬어 달라고 하는 남자도 있었다.) 아무튼 계속 그렇게 연인처럼 지내며 분위기를 띄워 놓고는 어느 순간 예고 없이 긴 잠수에 들어간다. 여자는 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애를 태우다가, 대부분 궁금함이 자존심을 이기는 순간 연락을 한다. 그럼 그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조만간 밥 한 번 먹어요." 식의 대답을 한다. 여자는 자신이 무슨 실수를 했기에 이런 일이 벌어졌나 열심히 고민을 한다. 당연히 답은 찾을 수 없다. 몇 페이지 넘기다가 그만하면 됐다 싶어 발코니에 책을 쌓아두는 건데, 거기에 무슨 이유가 있겠는가.

이 외에 하나같이 데이트 끝자락에 '악수'를 청한다는 공통점이 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일반적인 남자들 또한 '악수'를 청하는 경우가 많으니 굳이 따로 특징으로 분류하진 않겠다.(사귀자는 말 없이 악수-포옹-뽀뽀 식으로 진도가 나간다는 것만 적어두겠다.) 

아, 그리고 저런 행동을 하는 남자들의 98%가 같은 혈액형이라는 놀라운 사실이 있는데, 혈액형 같은 구시대적인 미신을 믿는 독자는 없을 테니 여기에 적진 않겠다. 그저 재미로 한 번 들춰보고 싶으신 분들은 이 주소(http://goo.gl/vvOIz)를 타고 가서 확인하시기 바란다.


3. 공허한 질문들


이렇듯 열심히 이야기를 해도 아무 의미 없고 공허하기만 한 질문을 던지는 대원들이 있다. 유효기간 지난 떡밥을 부여잡고 묻는 대원들을 위해, 친절한 무한씨는 하나하나 대답해 주기로 결심을 했다.

Q. 어떤 연애를 하고 싶다, 결혼하면 뭐 할 거다. 그런 얘기는 왜 한 거죠?
A. 희망사항을 말하는 건 자유입니다.


Q. 그 사람이 애니팡 하트를 보내는 데, 이건 무슨 의미죠?
A. 하트 품앗이 하자는 뜻입니다. 하나 보내주세요.

Q. 제 연락에 꼬박꼬박 답은 해 줬는데, 마음이 없다면 왜 그런 거죠?
A. 인맥은 소중하니까요.

Q. 카톡 프로필에 외롭다는 글도 올리고 그러던데, 그건 뭐죠?
A. 불특정 다수를 향한 밑밥입니다. 밑밥을 뿌려야 고기가 모이거든요.

Q. 그 사람이 저한테 음식을 먹여준 적도 있는데, 그건 왜죠?
A. 맛있으니까 먹어보라는 뜻입니다.

Q. 조만간 밥 한 번 먹자는 말은 흔쾌히 하던데요?
A. 전 친구들에게 술 한 잔 하자는 말도 흔쾌히 합니다. 만나진 않더라도.

Q. 생일 때도 일할 정도로 바쁘다고 하던데, 그래서 그런 건 아닌가요?
A. 페북에 있다는, 그 다른 여자와 놀러간 사진은 뭐죠? 합리화는 적당히.

Q. 전 이제 어떻게 해야 하죠?
A. 좋은 사람들과 맛있는 거 먹는 걸 권해드립니다.

수집남이 다른 여자와 페북 댓글로 닭살 멘트를 주고받는 걸 목격한 뒤 손이 떨린다는 대원이 있었다. 잠깐의 잠수인 줄 알았는데, 그는 멀리 가서 다른 연애를 시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그에게 복수를 하겠다고 계획한다거나 과거에 정말 일말의 호감도 없었던 거냐고 묻는다거나, 뭐 그런 짓은 하지 말자. 그러면 정말, 한순간에 사람 추해질 수 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저런 수집남의 들이댐을 경험한 여성대원들 역시 처음부터 그에게 큰 애정이 있다거나 목숨 걸고 매달릴 만한 호감이 있는 건 아니었다. 대부분 가벼운 마음으로 소개팅에 나갔다가, 열정적으로 들이대는 그를 보고 김칫국을 마신 경우가 많다.

중반까지도 그가 아니면 안 되겠다느니, 아니면 어떻게든 그와 연애를 해야겠다느니 하는 다짐을 한 여성대원은 없다. '내게 곧 사귀자는 말을 하겠구나.' 정도로 흐뭇한 마음 정도를 지녔을 뿐이다. 그가 보이는 열정에 맞춰 리액션을 해주며 말 그대로 '만나보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상대가 잠수를 타거나 다른 사람과 연애를 시작한 이후에는, 갑자기 이쪽에서 다급한 모양이 되어 상대에게 매달린다. 이런 효과를 심리학에서 구체적 이론으로 설명해 둔 것이 있는데, 그에 대한 설명은 심리학을 전공하신 독자 분께서 댓글로 해 주시리라 믿는다.(난 책을 지인에게 빌려준 까닭에 인용이 어렵다.)

"난 정말 그에게 애정이 있고, 그는 내가 매달릴 정도로 매력적인 사람인가?"


라는 부분을 곰곰이 생각해 보길 권해주고 싶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지금 이 상황이 귀고리 한 쪽을 잃어버려 만사를 제쳐두고 몇 주째 귀고리만 찾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는 걸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게 정말 아끼던 것이나 큰 의미가 있던 귀고리도 아닌데, 그저 잃어버렸다는 것에 온통 마음을 뺏겨 생활을 접어두고 귀고리를 찾는 것 말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어 그를 잃고 나니, 이제야 제가 그를 좋아했다는 걸 깨달았어요."


레드 썬! 자기최면은 그만 걸길 바란다.

자 오늘은 비오는 수요일이니, 그대에게 빨간 장미를!



▲ 대청호 잘 다녀 오셨어요? 무료한 수요일을 달래줄 장난으로 너그러이 봐 주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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