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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2)

헤어지자고 말하기 전 알아야 할 것들

by 무한 2010. 10. 27.
어떻게 하면 관심있는 사람과 친해질 수 있냐고 묻는 메일들 사이로, "웃으면서 이별할 수 있는 법을 알려주세요."라거나 "아프지 않게 헤어질 수 있는 방법은 뭔가요?"라고 묻는 사연들이 있다.

그 사연들 중에는 경찰의 도움을 받아야 할 정도로 심각한 상대의 '집착'과 '폭력', 습관적인 바람기, 서로 가지고 있는 연애관이나 인생관이 다른 경우 등 둘의 인연의 끈을 놓는 것이 나은 경우도 있지만, "잘 사용하던 프린터인데 인쇄가 안 되네요. 쓰기도 오래 썼는데, 새로 바꿔야겠죠?"정도의 느낌인 질문이 대부분이다.

"잉크만 교체하시면 됩니다, 고객님."


이라고 대답해 주고 싶은 사연들이 많단 얘기다. 잉크만 교체하면 될 걸 멀쩡한 프린터를 새것으로 바꾸곤 얼마 되지 않아 "역시 같은 문제가 발생했네요. 이젠 새 프린터를 살 여력도 없는데 어쩌죠? 도와주세요."따위의 이야기를 한다.

뜬금없이 '프린터'얘기를 해서 그닥 와 닿지 않는다면, 왜 빨리 불타오른 관계가 금방 식어버리는지를 프린터 얘기와 연관 지어 생각해보길 권한다. 열정적으로 엄청난 양의 사랑을 출력했다면, 그만큼 잉크가 빨리 닳지 않겠는가? 사랑에도 분명 리필은 필요하다. 헤어지자고 말하기 전 알아야 할 리필의 방법, 함께 살펴보자.


1. 말 한 마디로 만드는 천 냥 빚


며칠 전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다가 손을 데었다. 오랜만에 먹는 장어라 꼬리부터 공략해 들어가는 중이었는데, 알탕과 함께 공기밥이 나왔고, 서빙하시는 분이 테이블 구석에 공기밥을 내려 놓으시길래 내 쪽으로 옮기려 공기밥을 집었다가 "퐈이어!"라는 비명을 지르게 되었다. 

괜찮냐고 물으며 물수건을 가져다주시는 아주머니 손을 보자 손가락 마디마디 철갑을 두른듯 보였고, 손만 따로 떼어놓고 보면 "저것은 아르마딜로 입니까?"라고 물을만한 굳은살이 박혀 있었다. 그게 다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한 '어머니'의 모습이라는 얘기는 잠시 접어 두고, 이 이야기에서, 당신에게 아무렇지 않은 말이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는 감당하기 어렵고 견디기 힘든 것일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해 보자. 

1. "정말 돈 주고 보기 아까운 영화였어."
2. "야, 놀지 말고 공부라도 해."
3. "재미없다. 가자."


천 냥 빚을 지게 만드는 무궁무진한 멘트들이 있지만, 그 중 가장 최근에 사연으로 도착한 멘트 세 가지다. 따로 떼어놓고 보면 '의사표현'이라는 것에서 별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적절하지 않은 상황에 저런 멘트를 사용했다면, 상대에게 '좌절감''모욕감'등으로 바뀌어 전달되기도 한다. 

영화관 데이트를 계획해 영화를 고르고, 오징어에 콜라까지 준비해 영화를 보고 나왔는데 상대는 영화 내용과 캐스팅, 배우의 연기력 등에 불만을 품고 불평만 한다. 뭐, 둘이 쿵짝이 맞아 집에 돌아오는 길 주전부리로 영화 뒷담화를 나누는 거야 둘의 공감대를 느낄 수 있게 만들 수도 있지만, 어느 대원은 상대의 저 이야기를 "내가 계획한 영화관 데이트의 총체적 실패."로 받아들일 수 있단 얘기다. 

특히 이 증상은 남성대원들에게서 자주 찾아볼 수 있는데, 수소문해서 찾아간 음식점에서 상대가 "맛 별로다. 괜히 왔어."라는 이야기를 하거나, 무리를 해 가며 계획한 데이트에서 상대가 "재미없다. 가자."라는 이야기를 했을 경우, 그 별로인 맛과 없는 재미에 대한 책임이 스스로에게 있다고 생각해 버리는 것이다. 

서로 지켜주고 보호해주며 늘 함께 할 거라 믿었던 사람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차가운 멘트를 하는 경우도 상대에겐 상처가 된다. 공부 관련 멘트의 경우, 직장을 그만두고 3개월간 방황하는 여자친구에게 남자친구가 한 말인데, 결국 저 말이 이별의 씨앗이 되고 말았다. 자극을 주기 위해 꺼낸 멘트일 수도 있지만, 꽤 많은 나이 때문에 취업도 어렵고 그렇다고 공부를 다시 시작하자니 늦은 마음도 들어 갈피를 못 잡고 있는 여자친구에겐 발등을 찍힌 것만큼이나 아픈 일이 된 것이다. 
 
누가 참이고 누가 거짓이다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이별은 언제나 '쌍방과실'인 경우가 대부분인 까닭에 위의 이야기들도 상대의 입장에선 반대의 사연으로 변할 수 있다. 요점은, 나에게 아무렇지 않은 말이라고 해서 상대에게도 아무렇지 않으리라곤 생각하지 말자는 거다. 이러한 천냥 빚들은 둘 사이를 지탱해주는 '믿음'으로 조금씩 갚아지게 되는데, 계속해서 빚만 내다간 그 믿음을 다 끌어다 쓰게 되어 결국 무너지게 된다.

당신이 어머니에게 자주 쓰는 "내가 알아서 할게."와 같은 말을, 어머니가 아닌 다른 사람은 받아내기 힘들다. 철갑을 두른 아르마딜로 같은 손을 한 어머니는 당신의 멘트에서 '단절' '배신'을 느껴도 당신을 위해 아낌없이 희생을 반복하시겠지만, 공기밥에도 데일 정도로 얇은 이해심을 가진 다른 사람들은 당신의 그 멘트에 둘의 관계를 정리할 수 있다.

혹시, 그동안 편안함이나 익숙함을 빌미로 아무 말이나 함부로 내뱉진 않았는지 생각해 보자.


2. 이별의 촉매, 열등감과 피해의식


지난 매뉴얼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지만, 어린 시절부터의 다양한 경험들이 당신도 모르는 사이 당신에게 '열등감'이나 '피해의식'을 만들 수 있다. 초등학교 시절 운동회를 떠올려보자. 한때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유행어가 있었듯, 반에서 가장 빠르지 않다면 운동회 날 응원석에 앉아 박수를 치며 응원을 해야 한다. 반대표로 뽑혀 열심히 달렸다 하더라도 다른 반 녀석이 더 빨리 달리면 1등은 그 녀석의 차지가 되고, 같은 반 아이들의 실망스러운 표정과 허무하게 끝난 경주의 여운을 감당해야 한다. 나이가 들수록 책임의 무게는 무거워지고, 이러한 것들이 축적되면 당신은 작고 초라하며 겁이 많은 사람이 될 위험이 있다.

자신이 그리고 있는 미래의 모습과 현재 처해있는 상황의 차이가 클 수록 이 '열등감'과 '피해의식'을 담는 주머니의 크기는 커진다. 자신에게 아직 닥치지 않은 일에 대해 걱정하고, 혹시나, 어쩌면, 만약에, 등을 도구로 삼아 상대를 의심한다.

"내가 지금 잘 나가거나 돈이 많았다면, 넌 그렇게 함부로 하지 않았을 거야."


뭐, 그런 가정이라면 멀리 갈 것도 없이 가까이에서 찾을 수도 있지 않은가? 예를 들어, 당신이 손톱만큼의 이해심만 더 가지고 있었더라도 이 일로 이런 상황까지 만들진 않았을 것이다. 가정법을 써가며 상대를 나쁜 사람 만들거나 자신의 의심을 정당화 시키지 말란 얘기다.

하나 더, 연애하며 상대방에게 걸핏하면 인생을 포기하겠단 얘길 하는 대원들이 있는데 왜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삶을 담보로 협박이나 하고 있는가? 되는 일 없고, 돈 없는 게 상대의 탓인가? 늘 "난 비참해. 난 실패했어. 열심히 했지만 안 돼."라고 말하는 대원들도 있는데, 그런 얘기만 늘어놓는다면 친구라도 만나기 싫어지는 법이다. 받아주고 격려해주고 위로해주다 지쳐 더 이상 버틸 힘이 없다는 상대에게 "것봐, 너도 나랑 헤어지고 싶어 하잖아. 그래, 차라리 날 버려. 잘 한 선택이야."라고 말하고 있는가? 그게 진심이라면 인연의 끈 뚝 자르고 찌질한 모습 보이지 않길 권한다. 대놓고는 연락도 못 하면서 미니홈피에 이상한 글 올리고 발신자표시제한으로 전화나 건다면 상대는 당신의 이름만 들어도 소름이 돋을 테니 말이다.

지금 당신의 모습 그대로를 사랑해 인연의 끈을 꼭 붙잡고 있는 상대를 왜 아프게 하는가? 감사하고 사랑하기에도 짧은 시간을 의심과 피해의식으로 낭비하지 말자.


3. 어떻게 사랑했는가?


그간 어떻게 사랑했는지 묻는다면 뭐라고 답할 생각인가? 그냥 남들 하는 것처럼 영화보고, 밥 먹고, 전화 하고, 가끔 여행 갔다고 얘기할 것인가? 그렇다면 남들 하는 것처럼 헤어져도 별로 이상하지 않다. 종종 오랜 기간 사귀었다거나 사랑하기 때문에 이러이러한 일도 해봤다는 것을 내세우는 대원들이 있는데, 중요한 것은 '어떻게 사랑 했는가''얼마나 사랑 했는가'가 아니다.

연인셀카를 찍어서 올리고, 함께 여행을 가고, 커플티를 입고, 커플링을 하고, 이런 것들 말고, 당신이 상대에게 보금자리가 될 수 있었는지, 당신이 자부하는 그 '큰 사랑'을 상대에게 어떻게 표현했는지가 더 중요하단 얘기다.

흔들어 깨우는 듯한 문자메시지나 메신저 말고, 옆에 나란히 눕는 듯한 메일이나 편지는 얼마나 써 봤는가? 눈을 바라보고 사랑한다고 말한 것은 몇 번인가? 의무적으로 보거나 먹는 영화나 식사 말고, 함께 살아있음을 느끼며 한 데이트는 무엇이었는가? 이 물음에 답을 하란 얘기가 아니다. 그간 당신이 '어떻게' 사랑했는지를 생각해 보잔 거다.

연애의 시작은 월급날과 같다. 잔고가 가득하니 마음도 든든하고, 들뜬 분위기로 평소 봐두었던 것들을 하나 둘 지른다. 지를 때만 하더라도 별 걱정이 없다. 그 일에 몰두하게 되고, 기다림과 기쁨으로 잠들고 일어나길 반복한다. 그렇게 '즐거운 생활'을 하다가 정신을 차리면, 어느새 잔고는 반 이하로 줄어있고 덜컥, 겁이 나기 시작한다. 만원 단위의 지출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모습은 사라지고, 백 원짜리까지 챙기게 되는 것이다. 지갑이 얇아지면 자존감도 같이 얇아지고, 작은 일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기 시작한다. 움츠리고, 망설이고, 머뭇거린다.

그 기간 동안 노력하지 않았다면, 다음 '월급날'은 찾아오지 않을 것이고, 결국, 파산이다. 연애 역시, 서로에게 보금자리가 된 적이 없고, 그저 마음의 즐거움을 쫓아 하루하루 보낸 거라면 그 기간이 만년이라 하여도 이별의 말 한마디에 남남이 된다.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둘의 '단단한 기반'이라고 할 수 있는 디딤돌은 무엇이 있는가?


이와 같은 과정들은 그 누구를 만나도 벌어질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지나가는 일 처럼 잠깐 겪는 대원도 있을 것이고, 위의 세 가지 고비를 모두 맞는 대원도 있을 것이다. 그런 순간이 찾아온다면, 단순히 "미안해, 앞으로 잘 할게."라는 사과나 무리해서 마련한 선물따위로 넘기지 말고, 이러한 사실들을 터놓고 이야기를 나눠보자.

예를 들어, 상대가 은근히 말에 가시를 담아 자극을 하려 한다면, 그것을 받아치기 위해 더 뾰족한 가시를 말에 달 것이 아니라, 그 '가시 돋힌 말'이 지금 둘의 시간과 감정을 낭비하게 만들고 있으며, 그보다 좋은 해결책은 앞으로 이러이러한 것들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렇게 약속을 하고, 그 약속을 지키면 되는 거다. 그게 둘의 뿌리를 더 깊게, 더 단단히 만들어 줄 테니 말이다.





▲ 미워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시길 권합니다. 추천도 잊지 마시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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