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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2)

솔로부대 간부급 여성을 위한 연애매뉴얼

by 무한 2010. 8. 24.
이미 빠질 솜털도 다 빠졌고(응?), 연애의 막장까지 가 본 것만 두 세 차례, 누군가의 소개로 새로운 사람을 만나 봐도 예전 풋풋함 대신 상대의 시큼한 땀 냄새가 밀려오는 나이. 대대적인 성형이나 성격개조, 다이어트를 통해 다시금 연애에 심폐소생술을 해 보지만, 나이라는 넘사벽에 밀려 그저 연하남 진로상담을 해주거나 술자리에서 테이블 정리나 해야 하는 상황.

육감은 뱃살과 함께 성장해, 좋지 않은 예감이 들면 어김없이 그 찜찜함이 현실이 되고, 뭔갈 배우거나 익혀야겠다고 취미활동을 해 보지만 머리로 하는 건 녹이 슨 듯 하고, 몸으로 하는 건 다음 날 근육통을 동반한 몸살기운만 찾아온다. 그러다 어느 날 누군가를 만나,

'아, 이번엔 정말 사랑인가?'

하는 느낌이 들어 급방긋 모드로 전환하지만, 그 설렘도 잠시, 수영, 사이클, 마라톤의 철인3종경기 같은 연애를 정신력으로 하다보면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는 패닉 상태가 되고, 그러던 중, '이전에 보낸 차가 똥차가 아니라 벤츠였나봐', 하는 생각으로 옛 사랑에게 연락을 해 보기도 하지만, 그건 이미 죽은 아들 곧휴 만지기(응?). 아 잠깐 눈물 좀 닦고.

이러다 보면, 이시영의 <It is The End>에 나오는 노랫말 처럼,

Yes, on my life, no more of friend,
그래, 내 인생에서, 더 이상 친구란 없어.
no more of love to me, no more faith to me.
더 이상의 사랑도, 더 이상의 믿음도.
Yes, on my life, no more of sadness no more of happiness,
그래, 내 인생에서, 더 이상의 슬픔도, 더 이상의 행복도
no more of loneliness.
더 이상의 외로움도 없어.


- 이시영, <It is The End>중



이런 아노미 상태가 찾아오기 마련이다. 사춘기 시절 성립된 자아가 길을 잃으면 가장 기본적인 욕구들만 충실히 수행하며 살게 되는데, 잘 먹고, 잘 자고, 그러다 보면 그냥, 어휴, 더 얘기하다보면 이 글이 '매뉴얼'이 아닌 '안티글'이 될 것 같으니 설명은 이만 접어두고, "어머 저거 내 얘기."라며 눈시울이 붉어진 대원들을 위해 그간 '사회적 합의(응?)'로 인해 쉬쉬했던 이야기들, 오늘은 까놓고 그 대응책을 살펴보자.


1. '연애 사춘기' 중인 상대를 만나면 눈물이 많아진다.
 

앞 뒤 가리지 않고 하얗게 불태우는 사랑을 '연애 사춘기'라고 정의하자. 이전 매뉴얼들에서 이야기 했듯, '연애 사춘기'에는 과감해지고, 뒷일은 생각 안 하기 마련이며, 오로지 이 세상에 둘 만이 존재하는 듯 사랑하게 된다. 뭐, 여기까진 좋지만 그 질풍노도의 시간이 지나가면 덜컥, 겁이 나는 경우가 많으며 점점 현실과 이상의 차이를 느끼게 된다.

그러니까, 얼마 전까지 만난 지 한 달도 안 되어 결혼 운운 했던 상대가 갑자기 극도로 소심한 모습을 보이거나 우리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 보자고 이야기 한다면, 상대는 그동안 '연애 사춘기'를 보내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연하남과의 연애에서 발생하는 빈도가 높으며, 나이와 관계없는 특징으로는, 상대의 격렬한 구애로 인해 사귀었지만 도리어 사귄 후 상대가 칼자루를 쥐고 아무렇게나 관계의 끈을 끊어 버리는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급류다. 금방 가까워지고, 빠르게 진행되고, 강한 물살에 떠내려 올 때까진 좋겠지만, 그 후엔 너무 멀리 와 버렸음을 깨닫게 된다. 속도감 때문에 미처 돌보지 못한 사이, 여기저기 상처가 나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 급한 물살은 '집착'으로 변해 당신의 보트를 뒤집어 버리기도 한다. 눈물이, 많아진다.


2. 코치가 될 것인가 연인이 될 것인가?


연애는 안하고 상대의 심리상담, 진로상담, 연애상담을 하고 있는 대원들이 있다. 뭐, 연인 사이에 충분히 나눌 수 있는 이야기지만, 모든 대화가 '상담'이 되어 버리는 것은 '연인'이 아닌 '상담자'가 될 위험이 있다. 한 대원이 보낸 사연을 보자.

남자 : 지희가 내 방명록에 글 남겼더라.. 한 번 보자고.. 
여자 : 그래?...
남자 : 음.. 한 번 볼까 하는데.. 
여자 : 그럼 내 생각 하지 말고 만나 봐봐.. 아무 죄책감 없이. 
         그리고.. 이번에 나랑 끝을 내든, 그 여자 기억에서 끝을 내든.. 결정해..


믿기 어렵겠지만, 저 두 사람은 연인사이다. 사연의 여성분은 사귀기 전 부터 남성분의 '과거연애사'를 들어왔고, 그에 대한 솔루션을 제시하다가 친해졌다. 둘이 연애를 시작한 이후에도 남성분의 '과거연애사'강의는 계속 되었고, 여성분은 쿨한 척, 아무렇지 않은 척, 연기하며 속만 까맣게 태운 것이다. 

물심양면으로 상대를 지원하다 그저 '스폰서'가 되어버린 경우도 많다. 이건 그 도움을 받는 상대에 따라 결과가 다르겠지만, 강조하고 싶은 것은 양념 반, 후라이드 반처럼 조화를 맞추자는 거다. 연애에 있어 일방적인 희생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사람의 특성상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위험이 크고, 아홉 번 안 도와주다 한 번 도와주면 '좋은 사람'이 되지만, 아홉 번 도와주다 한 번 안 도와주면 '나쁜 사람'이 될 가능성도 크니 말이다. 도와주고 안 도와주고를 떠나, 매뉴얼에서 늘 이야기 하듯, 서로 손을 반반 내밀어 맞잡자는 거다.

연애를 하며 분명 상대에게 '코치'가 돼야하는 상황도 있을 것이다. 친구, 연인, 누나, 동생, 다양한 배역으로 여러 가지 매력을 발산할 수 있고 서로에게 도움이 될 수 있으며 근본적으로 이것이 '연애하는 이유'일 테니 말이다. 단, '전담코치'나 '수석코치'가 되진 말자. 당장은 기대오는 상대를 당신이 버틸 수 있겠지만, 조만간 당신도 지칠 테니 말이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3. 다 안다고 말하지 말자.


허리 윗부분으로 자아가 생기는 나이를 지나, 허리 아랫부분에도 자아가 생기게 되면, 윗부분의 자아는 딱딱해진다. 누가 뭐라고 하든 내가 꽂히지 않으면 귀에 고구마를 박게 된단 얘기다. 솔로부대 간부급의 생활을 오래 하다보면 누군가가 챙겨주고 보호해 주는 일에 대해 거부반응을 갖게 된다. 자기의 일은 스스로 하는 교육을 받고, 혼자서도 잘해야 한다는 프로그램을 보며 자라서 그 반응은 더욱 심해진다.

상대가 채워야 할 당신의 빈 공간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자. 세상에서 제일 좋은 저장매체라고 해도, 이미 내용물이 꽉 차 있으며, 그 내용물을 지우거나 초기화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쓸모없는 것 아닌가. 딱딱하게 굳은 부분들의 견고함을 자랑하지 말고, 말랑말랑하고 하얗게 비어있는 부분들을 보여주자. 그 부분에 상대가 사랑을 그릴 수 있도록 말이다.


4. 결혼 얘기는 월드컵을 함께 보고 나서 하자.


당장 결혼해야 할 급박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면, 결혼 얘기는 월드컵 대회주기인 4년 정도 만나 본 뒤에 꺼내자. 너무 늦는 거 아니냐고 반문하는 대원들도 있겠지만, 털매미도 성충이 되어 울기 전 까지 땅속에서 유충으로 4년을 보낸다. 그렇게 4년을 보내고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바깥구경을 하고 굿바이, 하는 것이다. 유지매미와 참매미의 경우는 7년을 땅 속에서 보내는데, 매미 이야기를 계속하면 무슨 곤충 매뉴얼 같으니까 연애 얘기로 돌아오자.

기한을 4년으로 딱 정해서 "이제는 우리가 결혼해야 할 시간." 이런 이야기를 하라는 게 아니고, 결혼 얘기를 쉽게 꺼내지 말자는 거다.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메일로 도착한 사연들에서는 결혼을 목적으로 연애하는 듯 너무 빨리 '결혼 얘기'를 꺼내는 경향이 있다. 특히 '결혼적령기'에 접어든 솔로부대 간부급 대원들은 연애 시작 후 영화 보고, 놀이동산 가고, 함께 밥을 먹는 일을 마치고 나면 신혼여행을 가고 싶어 하는데, 너무 빠른 '결혼 얘기'는 상대에게 부담이 될 수 있으며, 아직 풀 문제가 많이 남은 자신에 대한 '해답지'를 보여주는 일이 된다. 전에 이야기 했듯, 답을 알면 문제를 풀기 싫은 법 아닌가. 

그리고 '결혼을 전제로 만나는 사이'에 목숨을 걸지 말자. 내가 요즘 꽂힌 '자전거'만 하더라도, 자신에 맞는 안장을 찾기 위해서는 2주 정도 사용해 보거나, 착용 후 장거리를 달려봐야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당장 '체크리스트'를 가지고 상대를 잴 것이 아니라, 가능하다면 많이 만나보고 대화하며 상대를 파악할 시간을 갖자. 반대로, 당신의 '체크리스트'에 상대가 합격 판정을 받았다 하더라도 그게 정말 상대의 본 모습이 맞는지 충분히 시간을 두고 알아보자.


어쩌면 그대에게 필요한 건, 어느 여성대원이 사연에 적어 보낸 이야기처럼,

한바탕 웃음으로 호탕하게 술 쫙 들이켜주고,
다음 날 모든 기억과 감정과 어지러운 속을
변기와의 대화로 위로받는 것
그렇게 연애의 한 장이 지나가는 것



일지도 모르겠다. 연애를 시작했지만 예전처럼 가슴이 뛰지 않는다는 한 지인과 대화를 나누다가, 타오르기만 하는 연애는 다시 오지 않을 수 있다는 내 말에,

"나도 알아. 알지만, 믿고 싶지 않은 것도 있는 거야."


라고 한 대답처럼, 위의 이야기들은 '알지만 믿고 싶지 않은' 것일 수도 있겠다. 

나도 그걸 알기에 오늘 매뉴얼을 적었다고 말하고 싶다. 당신이 "차갑지만, 내 남자에게만은 따뜻하고 싶은 여자"라는 것 말이다.




▲ 곧 '자전거 이야기' 연재를 시작할 것 같습니다. 다른 카테고리 근황도 함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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