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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2)

연애에도 포기해야 할 순간이 찾아올까?

by 무한 2010. 2. 17.
우중충한 주제를 잡아서 미안하지만, 백화점 가판대의 블링블링한 이야기들 말고 벗겨진 포장지가 쓰레기통에 들어가 있는 일이라든지 A/S로 고생하는 고객의 이야기라든지 하는 부분같은 '포기'에 대해 이야기 하는 까닭은, 널리 알려진대로 모르는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 보다, 사랑하는 사람을 모르는 사람으로 만드는 일이 훨씬 어렵기 때문이다.

생각해보자,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다면 선천적인 여린마음을 제껴두고서 다짜고짜 사진이라도 찍어달라고 하면 된다. 무슨 소리냐고 하겠지만, 스스로 모델이 되어서 욜라 웃긴 포즈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유는, 피기도 전에 지는 것 같은 지금을 그나마 사진으로 찍어서 혼자 감상한다고 해두자. 그러다보면 걔 마음도 자연스레 열릴 수 있다. 거기서부터는 당신 몫이다. 멍석이 깔려도 쭈뼛거린다면 더 할 말 없다.

그러나 그 상대와 연애를 시작했다고 해보자. 마침 상대도 외계인을 기다리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으니, 잘 맞아 떨어졌고 같이 엽기포즈로 사진을 찍어대며 인연의 끈을 묶었다. 여기서 급전개를 시키자면, 안타깝게도 상대의 옛사랑이 찾아왔고, 마음의 저울은 그쪽으로 기울어져 버렸다. 당신은 그 옛사랑에게 "아우, 썁쌕끼" 라는 어원없는 욕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겠지만, 파티는 끝났다. "날 사랑했는지만 솔직히 말해줘." 라며 초사이어인이 되고 싶은가? 이 물음에 "네."라고 대답해버린 대원들을 위해 매뉴얼을 시작한다. 아프겠지만, 합리화의 쉴드는 잠시 걷어두길 부탁한다.


1. 그 사람은 당신을 이용한 게 아니다


"왜 헤어졌는지 이유를 알고 싶어요." 라는 메일이 왔다. 사랑은 둘이 해 놓고, 이별의 이유를 나에게 묻고 있으니 동물원에 갔다가 며칠 전 코끼리가 죽은 이유를 나에게 물어보는 사육사를 만난 느낌이지만 그래도 이놈의 오지랖은 또 레이더망을 편다. 누가 카메라를 산다고 얘기만 해도 최저가 검색에 중고 시세까지 조사해 링크로 보내주는 슬픈 짐승이여.

선을 봤습니다. 저는 31살, 그 남자는 34살, 알아주는 기업 10년차 직원이고
성실하기로 소문난 총각이였어요.. 탤런트 아무개를 닮았다는 첫인상을 받으며
이미 그에게 마음을 빼앗겼던 것 같습니다. 좀 무뚝뚝했지만..
저에게는 깍듯하게 대해주고 애쓰는 모습이 보이더군요..
그 이후로는 정말 행복한 순간이었어요. 남자의 자상함에 더 끌렸습니다.
지방 출장을 다녀왔다며 과일 상자를 보내고.. 선물을 사주고..
기다리는 순간에 연락을 하고, 제가 연락하면 기다렸다고 하고..
커플링을 했을 때 쯤, 그가 집안 얘기를 털어놨습니다..
결혼하고 싶다는 얘기도 함께 하더군요..
저는 대답하지 않고 생각해 보겠다 했습니다. 속으로는 안심했습니다.. 좋았구요.
암튼 그렇게 청혼까지 받았는데.. 그가 이상하게 변해갔습니다.
말도 많이 하지 않고.. 투덜대기 시작하더군요..
저는 만나면서 두 번 정도 이런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혹시 마음이 변하면 미리 말해달라고.. 그는 절대 그런일 없다고 했지만..
그 말은 진실처럼 느껴지지 않았어요.
올해 1월이 되면서 그와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세차를 해야 한다.. 피곤하다.. 핑계를 대면서 약속을 하지 않더군요..
그러면서도 매일 하루에 몇 번 씩은 전화를 합니다.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그래도 믿었습니다. 청혼까지 했으니까요..
1월 마지막 주에 전화를 하더니, 주말에 만나서 결혼에 대해 좀 더 깊게..
이야기를 하지고 합니다. 저는 좋다고 했죠. 그런데...
만나기로 한 당일, 그가 잠수를 타 버렸습니다. 전화도 문자도 안되고..
하루종일 아무 연락도 없었습니다.
(이후, 여성분의 폭풍같은 통화 러쉬와 남자분의 말줄임표 방어가 있었다.)
그리곤 메일을 보냈습니다. (내용이 지극히 사적이라 옮기진 않습니다.)
그는 메일을 읽었지만 회신은 하지 않았습닌다. 이 사람 뭔가요?
정말 절 이용한 건가요?
너무나 어이없게 끝난 이 인연...
허무하기 짝이 없습니다


우선, 남자분에게 보내셨다는 메일을 사연 원문에는 그대로 붙여넣기 해 주셨는데, 솔직히 얘기하면 나도 그 메일을 읽고 절대 답장할 수가 없을 것 같다. 왜? 그건 마치 장발장에게.

1. 왜 빵을 훔쳤나?
2. 범죄를 하려고 미리 계획했던 것 아닌가.
3. 잡히고 난 뒤 미안하다고 하면 해결 되는가?
4. 이 메일을 비웃겠지만, 확실한 맺고 끊음을 위해 썼다.
5. 메일을 무시하고 삭제해도 상관 없다. 이래야 내 마음이 정리된다.
6. 이렇게라도 해야 뒤통수를 맞은 찝찝한 기분이 깨끗해 질 것 같다.
7. 다시는 너같은 녀석을 손님으로 맞이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메일을 보낸 것과 같으니 말이다. (혹시 장발장이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을 위해, '배가 고파 우발적으로 빵을 훔친 사람' 정도로 설명해 두겠다.) 좀 더 쉽게 얘기하자면, 그 남자분에게 보낸 메일은 반박을 필요로 하는 '고소장'이 아니라, '판결문'에 가깝다. 게다가 메일에 '무시하거나 삭제해도 상관없다.'고 해놓고 왜 회신을 하지 않냐고 물으면, 뭐라고 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메일에 자세히 적어주시지 않은 '고모님'의 이야기나, '집안사정'이라는 변수가 있으니 그 남자의 마음이 왜 돌아섰는지는 함께 살펴볼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다. 두 분이 존대를 하셨던 것 같은데, 남자가 잠수를 마친 다음 날 통화에 여자분이 야자를 트며 아드레날린을 분출한 것이나, 커플링을 팔아먹는다는 이야기를 한 것은 '자빠링'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얘기하자면, 

 

"아니 말을 하라고... 니 생각을 말해보라고..."
"......."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너 뭐니? 내가 우스워?"
"아니요"
"그럼 만만해 보이니?"
"아니요"


전화통화 내용 중 이 부분, 이건 얽힌 실타래를 푸는 것이 아니라 가위로 싹뚝싹뚝 잘라 버리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이 이후에 다시 이성을 되찾아 존대를 하며 "처음부터 마음이 없었나요, 아니면 중간에 변한건가요? 궁금합니다." 라고 보낸 것은 무서울 정도다. 그래도 남자는 분명 답변을 했다. 주목하자.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게 인력으로 되는 게 아닌가 봅니다. 잘 지내세요."


이 답변을 듣고 일주일 후에 보낸 메일은, 본인의 판결문이며 인연을 끊겠다는 통보로 밖에 읽히질 않는다. 정리해보자. 집안과 집안의 소개로 만난 사이에 '이용'이라는 말은 좀 안어울린다고 생각한다. 무슨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는지, '고모님'이 그 남자분에게 전화를 했던 것 같은데 그 대화내용은 무엇이었는지 나도 궁금하다. 내 오지랖은 아직도 배가 고프다.(응?)

배신감에 치가 떨리고 상대에게 필살기를 써서 치명상을 입히고 싶겠지만, 그를 고문해서 무얼 알아내든 나아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이쯤에서 놓아두자. 더욱 궁지로 몬다면, 서로 상처가 되는 말을 내뱉는 모양밖에는 되지 않는다. 그리고 혹시나 해서 이야기 하자면, 더이상 커플링 얘기는 하지 말길 바란다. 그걸 돌려주려고 하시는 것 같은데 "이걸 어떻게 할까요?"라고 상대에게 묻지 말란 얘기다. 그건 사랑하던 시기 둘이 나누어 낀 것이므로, 당신 꺼다.

커플링 처리가 어렵다면 두 분 다 착불로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 탄현동.. 농담이다.


2. 그 사람은 내가 아니다

 

난감이 해질녘 동네 하천의 피라미처럼 물 위로 튀어오르는 사연.

선으로 만난 만큼 조건과 집안환경, 능력을 다 서로 알고 만났습니다. 어느 날 자기집은 궁합을 따지는 집이라면서 생년월일시를 교환하자고 하더군요. 그 부분은 저희집도 비슷해서 교환을 했는데, 왠지 기분이 안 좋더군요. 궁합 안 좋으면 헤어지는 거 아닌가 해서요.

저희집에서 먼저 궁합을 보기 시작했는데, 3곳에서 안 좋게 나오더군요, 그쪽은 정식으로는 안 보신 것 같고 간략히 인터넷 같은 곳이나 대충 보신 것 같았는데, 무난했다 봅니다. 그쪽은 반대하는 것 같지 않았어요. 중간에 그 사람이 바빠서 헤어질 뻔한 사건이 있었는데, 그때 저는 궁합 때문에 그렇구나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어요. 나중에 보니 그 이유 때문은 아니더군요. 새해가 되면서 저희집에선 다른 곳에서 궁합을 두 번 봤는데, 이전과는 다르게 좋게 나오더라구요. 저도 마음이 편해지면서, 궁합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싶기도 하고 그냥 받아들여 졌습니다.

그런데, 이번 설날, 그쪽 집에선 친척들이 다 모여서 철학관도 가고 유명한 점집도 가고 했었나봐요.

"나 헤어져야 할 것 같아. 어머니가 정식으로 궁합을 보셨는데, 결과가 시원치 않다고 하시더라고. 좋은 인연은 될 수 있는데 결혼 상대는 아니래. 그간 정도 많이 쌓였는데, 서로 더 깊어지기 전에 이만 선을 그어야겠다. 만나서 얘기하지 못해서 미안해. 잘 지내."

이런 문자가 오더군요. 올 것이 왔나 싶기도 하고 가슴이 덜컹 내려앉고 떨리기에 일단 전화를 해봤는데, 역시 안 받더군요. 왜 미리 궁합보고 만나지 시간 보내다 이제 봤는가 싶기도 하고, 아니면 궁합을 미리 봤었는데 고민하다 이제 말하는 건가 이런 생각이 교차하기도 하고.. 아직도 실감이 안 나네요.

 
이 외에도 종교의 차이라든가, 집안의 경제력 차이 등등 '사랑'과는 별 관계 없는 것들이 뒤통수를 치는 사연들이 많았다.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그런 이유들로 헤어질 수 있냐고 말하고 싶겠지만, 헤어질 수 있다. 그런 이유들로 전쟁도 일어나고 총구를 들이대기도 하지 않나. 나와 그 사람은 사랑하지만, 그 사람은 내가 아니라는 마음을 가지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다. 사주 하나로 헤어질 수 있는 사람이라면, 지금 헤어진 것이 다행일 수 있다는 얘기를 드리고 싶다.

물론, 위의 상황에 내가 봉착해 있다면 어떻게든 해결책을 찾을 것이다. 그 쪽에서 '궁합'을 중요시 한다면 좋은 궁합이 나올 때 까지 개명을 해서라도 사랑할 것 같다. 세익스피어의 말대로, 장미는 어떤 이름으로 불리워도 향기로울테니 말이다. 그러나 마음을 그만 놓아두라는 이야기를 적어둔 까닭은, 사연에서 상대방 뿐 아니라 이쪽역시 궁합을 봤고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둘다 궁합이 좋지 않다고 믿으며 진행하는 연애는, 사소한 다툼이 생겨도 궁합탓으로 돌릴거라 생각한다.



이번 매뉴얼에서 '포기'라고 이야기 하는 부분은, 그 사람을 마음속에서 내려놓는 것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오히려 이별의 원인을 어떻게든 상대의 입으로 증언하게 만들려는 행위나 사실 듣고 싶은 말은 긍정적인 이야기면서, 부정적인 답변만 내놓게 만드는 질문을 내려놓자는 얘기다.

"도대체 이유가 뭔데? 말해봐."
우주는 왜 원자들이 스스로에 대해 궁금해 하는 능력을 가지도록 허락했을까에 대해 답하시오, 같은 느낌이 든다.

"날 사랑하긴 했던 거야?"
페루 나스카 평원의 문양은 누가, 언제, 왜, 어떻게 그린 것인지를 설명하시오, 정도의 느낌.

 
질문이 너무 어렵다는 소리가 아니라, 답을 듣는다고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는 것을 전하고 싶다. 사랑의 유효기간을 만년으로 하더라도 만년 후에는 이별이 올 수 있다. 그 순간이 빨리 찾아왔다고 생각하자. 넘어져서 울기만 하지 말고, 일어나 좀 더 멀리까지 걸어가 보는 거다. 거기엔 분명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 무언가가 있을테니 말이다.





▲ 늦었지만, 또 뜬금없지만, 박민규 작가의 이상문학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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