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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으로 맞짱을 뜨러 간 부산싸나이

by 무한 2009. 10. 15.
그러니까, 2006년 8월, 난 어떤 계기로 인해 국군 Y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이비인후과와 비뇨기과가 함께 있는 6층 병동이었는데, 그곳에는 군병원의 맛을 본 후 퇴원하지 않고 군의관을 설득해 3개월가량 장기입원해 있는 병사들이 많았다.

빡빡한 야전부대와는 달리 군병원은 치료받는 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이 자유시간이었고, 식사를 한 후에는 치료를 돕기위한 명목으로 초콜릿, 아이스크림, 음료수, 과자 등 동두천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부식(간식)이 4개씩 나왔다. 면회를 할 수 있는 병원 입구의 건물에는 통닭이며 피자, 팥빙수들을 파는 가게가 일과시간 내내 오픈되어 있었고, 그 시간에는 365일 언제든 면회를 할 수 있었다.

단 한가지 단점이라면, 건물 자체가 금연시설인 까닭에 담배를 피울 수 없었다는 것인데, 그렇다고 안 피울 병사들이 아니었다. 우리는 샤워실에 모여 (언제든 뜨거운물이 나온다) 뜨거운 물을 틀어 놓고 수증기와 연기를 헷갈리게 하는 방법을 사용했고, 샤워실이라 간호장교(간호사)가 들어오지 못해 가끔 기간병(의무병)에게만 적발될 뿐, 큰 위험은 없었다.

담배를 구할 수가 없어 대부분 면회객을 통해 유입하거나 같은 부대의 병사들이 진료받으러 오는 날을 이용해 담배를 얻었는데, 부산에서 깡패로 활동(응?) 하다가 입대했다는 은규형(29세,비뇨기과입원)은 샤워실에서 대위(간부)의 명찰을 훔쳐 그걸 달고 다니며 담배피는 애들을 적발했다. 아, 물론 은규형이 감독을 하고 다녔다는 얘기는 아니다. 은규형은 담배피는 애들을 적발한 후, 그 담배만 빼앗고 모두 돌려보내줬다. 그리곤 그 담배를 자신이 피우는 고도의 전략을 사용했던 것이다.

602병동(비뇨기과)에서 은규형은 정신적인 지주였다. 형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수컷들의 판타지를 자극했다. 형이 입원하게 된 계기만 봐도 그렇다. 입대를 앞두고 재미있는 일을 찾던 중, 형은 술에 만취해 자신의 중요한 부분을 혼자 수술하게 된다. 자세한 이야기를 늘어 놓으면 19금이 될 수도 있는 까닭에, 많이 완화된 표현을 쓰자면, 형은 부족한 자존심을 위해 무언가를 중요한 부분에 넣게 된다.

외형은 만족했지만, 성능(응?)을 알 수 없었던 관계로, 형은 입대 후 첫 휴가에서 자신의 창작품을 사용했고, 그것은 아직 미완의 작품이었던 까닭에, 휴가 복귀 후 바로 602병동으로 실려온 것이다. 


*

날짜도 잊지 않는 2006년 8월 15일, 비가 쏟아지는 광복절 이었다. 평소와 다름 없이 은규형은 십자수지갑 만들기에 열심을 내고 있었고(당시 군인들 사이엔 십자수 지갑만들기가 대유행 이었다) 나는 한쪽귀가 안들리는 준이(23세,알고보니동네후배)와 훈련소에서 찬 바닥에 자다가 얼굴 반쪽이 마비된 병수(22세,샤워할 때 한쪽눈을 못 감아 항상 충혈상태) 와 함께 남자의 로망인 '자동차' 얘기를 하고 있었다.

녀석들은 아직 면허증이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입대 전 차를 몰고 다녔다는 내 얘기에 빠져들고 있었다. 그리고 이따금씩 난감한 질문들을 해왔다.

진 - 무한형, 그럼 드리프트도 해봤어?

무한 - 드리프트? 당연하지. 그건 어릴 때 많이 했지. 근데 그거 해봐야 타이어만 닳지 별로 재미도 없어.

병수 - 우와..


대략 이런식의 대화가 진행되었다. 물론, 내가 사회에 있을 대 몰던 차는 겔로퍼 였던 까닭에 드리프트가 불가능 하다. 오토차량이었으며, 드리프트를 했다간 전복되어 바로 천국으로 가는 계단을 오르게 될 것이었다. 나는 대충 '카트라이더'를 하며 했던 드리프트를 적절히 사회의 경험과 섞어 이야기를 해 줬고, 녀석들은 완전히 내 이야기에 매료되었다.

진 - 형, 그럼 제이턴인가? 그.. 왜.. 막 달리다가 주차할 때 반대편으로 싹 들어가는거, 그것도 할 줄 알아?

무한 - 할 줄은 알지, 그런데 우리 동네에선 그런거 할 데가..

은규형 - 마, 니들 자동차 얘기하나?


정신적 지주답게 은규형은 우리 얘기에 적절히 끼어들었다. 뭔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언제나 훨씬 더 많이 알고 있던 은규형 이었기에 우리는 형의 이야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은규형 - 니 수원에 따운힐 하는데 있는거 아나?

무한 - 수원에?

은규형 - 그래. 우리 친구 중에 부산에서 중고차 하던 아가 있는데, 금마가 수원에 따운힐 배틀한다고 갔다 아이가.

무한 - 오..

은규형 - 금마가 부산에서는 유명했는데, 인터넷 하다가 시비 붙어가, 투숙하니끌고 함 붙으러 간기라.

무한 - 오.. 투숙하니(투스카니)..

은규형 - 금마 겁이 없어가, 경기로만 치자면 이깄을끼라

무한 - 응? 경기 안했어?

은규형 - 했다. 핸는데, 수원에 츠음 가보는그라 지리를 잘 몰라가꼬 산 중간에서 가드레일 박고 아래로 떨어졌다 아이가

무한 - 응?? 다쳤겠네?

은규형 - 뒤짔지

무한 - 뒤지..?? 헉...

'이..이 형.. 친구가 죽은 이야기를 태연하게 하고 있어...'

은규형 - 크레인으로 끄잡아 낸는데, 차가 마 완저이 박살났다 아이가

무한 - ......


은규형은 항상 이런식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형의 나이 열 일곱살 때, 친구들과 함께 슈퍼마켓을 털었는데, 한 밤 중이라 깜깜해서 아무것도 보이질 않았다고 한다.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들킬까봐 후레쉬는 켜지 못하고 오로지 손의 촉감에 의해서만 물건을 찾았는데, 비닐봉지에 푹신푹신하게 싸여있는게 식빵이라고 생각하고 그것만 엄청 담아 튀었다고 한다.

무한 - ㅋㅋㅋ 형, 식빵만 며칠 먹었겠네?

은규형 - 아이다. 식빵 인 줄 알았는데, 까보이까, 다 생리대다 아이가.

'앜ㅋㅋㅋㅋㅋㅋ 생리대 지못미 그걸 어따쎀ㅋㅋㅋㅋ'


아무튼 그렇게 은규형의 전설같은 얘기를 듣고 있는데, 창밖을 내다보고 있던 혁주(22세,이등병이지만휴가나갈때는병장오바로크)가 소리쳤다.

혁주 - 형, 형, 일루와봐. ㅅㅂ 완전 대박!

은규형 - 뭔데?

혁주 - 완전 끝난다니까? 빨리와봐. 대박이야.


그렇게 우리는 창가로 몰려들었고, 비가 하염없이 내리는 창밖에서 마치 군인들을 위로해주는 듯한, 그 엄청난 장면을 보게 되었던 것이다.


- 다음이야기에 계속...


기억에 의존해 쓰는 까닭에 사투리에는 틀린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게다가, 등장인물의 이름은 모두 한 글자씩 바꾸었습니다. 병수는 이름이 정확하지 않아.. 실명일수도..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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