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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생활과여행/뭐해낚시가자

노멀로그 팽개쳐두고 2년 동안 다닌, 낚시 기록

by 무한 2022. 1. 14.

왼쪽 검지에 굳은살이 박였다는 건, 낚싯바늘을 그만큼 많이 묶었다는 증거다. 왼쪽 엄지의 지문이 살짝 벗겨졌다는 건 그만큼 어식 어종들의 입을 벌려 아래턱을 잡고는 바늘을 뺐다는 증거다. 오른쪽 팔꿈치 부분에 만성 테니스엘보나 골프엘보를 달고 있다는 건 그만큼 정자세에 신경 쓰지 못할 정도로 캐스팅을 많이 했다는 증거다. 그리고 윗니 뒤쪽 입천장에 살짝 물집이 잡혔다는 건 방금 컵라면을 너무 빨리 먹으려다 데었다는 증거다.(응?)

 

 

노멀로그를 2년여간 팽개쳐 두고 한 일은, 대부분 낚시를 생각하거나, 낚시를 준비하거나, 낚시 영상을 보거나, 낚시를 하러 가거나, 낚시를 다녀와서 고기를 손질하고 또 손질법을 공부했던 것이다. 친가 외가를 통틀어 아무도 낚시를 좋아하지 않지만, 난 개인적으로 내 이런 성향이 외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생각한다. 바다 '해'자를 쓰는 해미 김씨인 외조부, 그리고 아예 본관이 '용궁'인 외조모의 유전자 속엔, 바닷고기들을 거부할 수 없는 뭔가가 있는 것 같다. 뉴올리언스 식으로 말하자면 아쿠아맨 뭐 그런….

 

각설하고, 2년 동안 다닌 낚시 기록을 정리해둘까 한다. 알다시피 남자들은 대개 멀티태스킹이 안 되는 까닭에 난 낚시나 회뜨기에 집중할 땐 사진을 찍지 못했다. 그런데 그나마 얼떨결에 찍게 된 몇 장의 사진이 있어, 그걸로 이야기를 꾸려볼 예정이다. 실제로 낚시를 간 곳과 잡은 고기의 종류는 더 많았다는 걸 미리 밝혀두며, 출발해 보자.

 

▲ 서해, 석문방조제 우럭

 

먹기 좋게 정리된 후에 찍은 사진이라 체형이나 체색 등은 잘 안 보일 수 있는데, 청갯지렁이에 아주 활발하게 반응하던 녀석들이었다. 중날물 이후 수심 1.2m~50cm 정도를 주고 동동동 띄워주다 보면 쑥, 하고 찌가 빨려 들어간다. 위의 사진엔 양념이 된 김밥이 있는데, 양념 안 된 가장 노멀한 김밥 위에 초장 바른 회를 얹어 먹으면 현지에서만 먹을 수 있다는 '낚시꾼 김초밥'을 먹을 수 있다.

 

▲ 동해, 어느 해변에서 잡은 붕장어

 

2021년 봄, 유난히 동해에서 도다리와 붕장어가 많이 잡혔다. 최다어와 최대어 기록을 모두 경신했는데, 미끼로 염장지렁이, 꽁치, 오징어 뭘 쓰든 지겹도록 나왔다. 역시 먹기 좋게 잘린 후의 사진이라 잘 보이진 않는데, 상단 중앙부의 큰 거 두 점이 최대어인 붕장어의 모습이다. 저항도 별로 없이 그냥 릴이 안 감길 정도로 무겁기만 해 통발 같은 걸 건 줄 알았는데, 물 밖으로 나온 녀석은 아나콘다급 붕장어였다. 

 

▲ 남해, 통영 어느 방파제 돌돔과 숭어

 

횟감으로는 4대 돔 중 최고존엄이라는 돌돔과 숭어를 함께 떠먹었는데, 당황스럽게도 숭어가 더 맛있었다. 계절이 그럴 계절이어서 그랬겠지만, 서해에서 잡았던 숭어와는 완전히 다른 고기처럼 느껴지는 남해의 숭어였다. 숭어 손질은 두 번 째였는데, 잊지 않고 '숭어밤'까지 손질해서 알뜰하게 챙겨 먹었다.

 

▲ 서해, 당진 어딘가에서 우럭

 

이 즈음부터 텐트를 치고 하는 '야영낚시'를 했던 것 같다. 한겨울엔 어차피 고기도 먼바다로 나가 없기에 야영을 하지 않긴 하지만, 여하튼 텐트에서 잘 때 가장 힘든 건 '추위'나 '못 씻음'이 아니라, 잠들만하면 금방 떠서는 익혀 죽이려는 듯 비추는 태양이라는 걸 확실히 알게 되었다.

 

▲ 동해, 어느 해변에서 도다리

 

한동안 도다리를 먹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들 정도로, 실컷 잡아 먹었다. 보통 도다리 바늘로는 세이코 12호를 쓰는데, 대물 장어를 잡기 위해 쓴 세이코 24호를 물고 나온 도다리도 있었다. 심지어 미끼도 염장꽁치였는데! 그날의 영광을 못 잊어 이후 동해만 거의 5주 연속으로 갔는데, 이후엔 겨우 서너 마리 나왔다는 게 함정이긴 했다. '5월, 동해, 도다리'를 기억하며, 2022년 5월을 손꼽아 기다리는 중이다.

 

▲ 남해, 양태, 성대, 전갱이 모둠 튀김

 

생선 보관이 신선하게 되지 않았을 땐, 탕이나 튀김, 구이로도 먹었다. 튀김의 단점은 생선 고유의 맛 대신 튀김옷 맛만 난다는 것. 대상어를 잡으러 갔다가 잡어만 나와 힘빠지는 날에는, 회 뜨는 수고가 아까워 다르게 먹곤 한다.

 

"무한님, 그냥 방생해 줄 수도 있잖아요?"

 

그런 거 없다. 난 진짜 먹으려고 고기를 잡는다. 잡은 고기는 먹는다. 복어랑 미역치, 독가시치, 황어, 망상어 빼고.

 

▲ 서해, 새만금방조제 돌우럭(개볼락)

 

돌우럭은, 탱탱한 식감으로는 따라갈 고기가 없다고 난 생각한다. 우럭회 한 점, 돌우럭회 한 점이 있다면, 누구나 눈 감고도 둘을 구별해 낼 수 있을 정도다. 돌우럭은 다 커봐야 겨우 한 뼘이라 타산이 안 맞기에 양식을 안 하는 것 같은데, 횟집에 등장한다면 광어와 우럭을 사뿐히 밟을 수 있을 정도의 식감과 맛을 가지고 있다. 좌측 뒤편에 보이는 건 서해 숭어인데, 하필 돌우럭과 비교하게 된 날이라 몇 점 먹고 모두 버렸다.

 

▲ 동해, 고성까지 올라가서 뜬금없이 농어

 

감성돔을 잡으러 간 거였는데, 뜬금없이 농어가 잡혔다. 사진만 보고는 작은 거 잡으냐고 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작고 소중한 농어 맞다. 그나저나 사진 속 도마가 지금은 보이질 않는다. 다이소 5천원짜리 도마이긴 하지만, 작고 가벼운 데다 동네 다이소 세 곳을 다 돌아 제일 예쁜 무늬로 고른 도마였는데…. 

 

▲ 남해, 여수 금오도 전갱이, 용치놀래기, 하나는 생각이 잘….

 

'먹지 않는 고기'로 분류했던 용치놀래기를, 처음으로 회 떠서 먹었다. 머리를 자르고 피를 뺐음에도 불구하고 회를 뜰 때까지 머리 잘린 채로 살아 있어서 놀랐다. 그 살은 또 얼마나 찰지던지, 들어가는 칼을 밀어낼 정도로 탱탱했다. 손으로 툭툭 쳐보면 인절미 겉을 치듯 찰진 느낌이라 기대가 컸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탱탱하고 찰진 겉과 달리 속은 뭉개지는 느낌. 물회나 회무침으로 먹으면 그러려니 하며 먹겠지만, 회로 즐기기엔 영 아니었다. 거기다 검푸른 핏줄 같은 게 빼곡하게 박혀 있어 미관상으로 별로였다.

 

▲ 서해, 석문방조제 우럭 심화편

 

우럭 낚시에 대해선, 이제 '고기가 있으면 분명 잡는다'는 수준까지 이르게 되었다. 낚싯바늘에 미끼를 꿰어 던지곤, 어느 정도 텐션을 유지하며 나는 미끼와 한 몸이 된다. <우럭을 유혹하는 서른네 가지 방법>을 차례로 시행하며 구미가 당기도록 만든다. 관심이 시들해질 때면 밀당도 해가며 우럭을 안달 나게 만든다. 그저 물에 떠다닐 뿐인 것들과는 완전히 달라 보이는 변칙적인 움직임 하나. 본능적으로 덥석 삼킨 우럭 입엔 이미 낚싯바늘이 뚫고 나와있다. 어느 만화에 나온 대사였던가. "난 먹지 않는 건 해치지 않아." 나 우럭 잘 먹음.

 

▲ 남해인지 동해인지, 아무튼 붕장어

 

붕장어 뼈를 튀겨 먹으면 그렇게 맛있다고 하길래 튀겨먹어 봤다. 인정.

 

▲ 동해, 감성돔, 도다리

 

물고기 중에서 감성이 제일 풍부하다는(응?) 감성돔도 드디어 잡아서 회를 떴다. 수산시장이나 회센터에서 먹던 감성돔 보다 두 배 정도는 더 고소하다. 난 회를 뜰 때 민물을 묻히지 않고 뜨는데, 그래서인지 갓 잡아서 피만 빼고 떠먹는 감성돔의 맛은 정말 감동적이었던 것 같다. 대방어와 감성돔 둘 중에 어느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먹이겠냐고 물으면 난 대방어를 먹이겠다고 답하겠다.

 

"잘못 얘기한 거 아닌가요? 감성돔이 감동이라고 하고는 왜 대방어를 먹여요?"

 

감성돔은 감동이지만, 한겨울 10kg 이상인 대방어는 진리다. 동네 횟집에서 파는 대방어는 별로고, 수산시장에서도 대형 활어만 전문으로 파는 점포에서 사 먹어보길 권한다.

 

▲ 서해, 새만금 방조제 삼치, 갈치

 

삼치와 갈치도 내 어류도감에 추가했다. 미끼 없이, 메탈로만 잡은 고기들이라 더 의미가 크다. 삼치는 그 자리에서 회로 한 번 먹어보고 싶었는데, 회 뜰 시간은커녕 바늘에서 갈무리해 잘 넣어둘 시간도 부족했다. 피딩타임 딱 그때만 반짝 나오고는 입질이 뜸하기에, 대부분 잡자마자 아무렇게나 두고 다시 얼른 바다로 메탈을 던져 열심히 감는다. 갈치는 작아도 우리가 아는 그 갈치 맛이 나며, 삼치는 생각보다 담백하기에 와사비 푼 간장에 찍어 먹으면 딱 좋다.

 

▲ 남해, 전갱이

 

쉽게 많이 잡을 수 있음에도 그 맛이 뛰어난 게 무어냐고 묻는다면, 난 망설임 없이 전갱이라 답하겠다. 녀석들 무리만 들어와 있으면 잡는 건 일도 아니며, 손질도 쉽고 맛도 뛰어나다. 그 맛을 잊지 못해 오로지 전갱이만 잡으러 울진 가서 배를 타거나, 통영 가서 좌대를 탈까 하는 생각까지 했을 정도다. 튀김은 기대 이하. 전갱이는 무조건 회로 먹는 게 난 제일 맛있다. 소주 한 잔 마시고, 전갱이 회에 쌈장 찍은 마늘 하나 올려서 와사비 간장에 찍어 먹으면 베형의 <피아노 소나타 제14번 c#단조>가 연주되는 것 같다. 베형도 월광을 쓸 때 전갱이 회를 먹었던 게 아닐까. 그건 누구도 알 수 없다.

 

▲ 남해, 숭어, 감성돔, 전갱이, 자리돔

 

남해까지 갔다가 일찍 올라와 봐야, 막힌 길에서 시간을 다 버리게 된다는 생각으로 낚시나 좀 더 하고 올라가려 한 거였는데, 시작부터 큰 숭어가 잡혀주었다. 이후 지겨울 시간 없이 자리돔이 계속 나와주었으며, 기대하지도 않았던 감성돔까지 얼굴을 비췄다. 해질 무렵이 되니 전갱이들도 나오기 시작했다. 운전을 해야 했기에, 저 좋은 안주들을 두고는 소주 한 잔도 못 했다는 게 참 아쉽다. 그 아쉬움을 달래고자 난 또 날이 풀리면 갈 2차전을 준비하는 중인데….


위에 열거한 것들 외에 벵에돔도 잡아 '4대 돔 잡기'를 완수하긴 했는데, 직접 회를 뜨지 못했기에 벵에돔 낚시도 올해 다시 한번 갈 생각이다. 참돔도 회 떠먹을 크기는 아직 잡지 못했기에 겸사겸사 다녀올까 한다. 겨울의 상징인 도루묵 통발잡이는 물론 지난달에 다녀왔으며, 친척들을 불러 배불리 먹을 정도로 실컷 잡았다.

 

사실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을 게 아니라 시즌 끝나기 전에 얼른 송어도 가고, 볼락도 가고 해야 맞는 건데…. 얘기하다 보니 또 낚시가 마려워졌다. 다음 조행기부터는 먹기 좋게 다 썰기 전 사진들도 좀 첨부하겠다는 약속을 드리며, 오늘은 여기까지. 다들 불금 보내시길!

 

▼ 하트 버튼 클릭과 댓글은 다음 조행기를 부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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