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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천오백자연애상담

상처받기 싫어서, 남친에게 먼저 이별통보 하고 싶어요.

by 무한 2019. 7. 10.

P양의 사연을 받을 때마다 느끼는 건데, P양의 연애는 코어가 두 개인 것 같다.

 

-현실의 무덤덤한 연애

-자기최면을 건 애절한 연애

 

P양과 남친의 현실적인 연애 모습을 보면

 

-카톡 몇 번 하다가 귀찮으면 P양이 씹기도 함.

-남친이 긴 데이트 하고 싶어 해도, P양이 그러고 싶지 않으면 핑계 대고 가버림.

-만나기로 했다가도, P양이 준비하고 나가는 걸 귀찮아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함.

 

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그다지 호감이나 관심이 없는 것 같은데, 둘의 관계에 대한 P양의 설명은

 

-전 진짜 좋아하는데, 남친이 헤어지자 할까 봐 겁나요.

-겉으로 티는 절대 안 내지만, 제가 남친에게 집착하는 것 같아요.

-남친에게 말 한마디를 할 때도, 머릿속에서 엄청 계산하고는 하게 돼요.

 

라는 것으로, 그 괴리감이 상당하다. 사연에 털어놓은 그 마음의 1/3만 현실에 쏟거나 상대에게 표현해도 충분히 사랑받으며 행복한 연애할 것 같은데, 본심을 감춘 채 ‘연애에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대외적인 태도’로만 상대를 대하니, 현실에선 당황스럽게도 연인과 가볍고 별 의미 없는 대화만 나누게 될 뿐이다. ‘내가 이렇게 하면 상대가 어떻게 나오나’를 보려 떠보다가, 상대로 하여금 그냥 다 하기 싫게 만드는 일로 이어지기도 하고 말이다.

 

상처받기 싫어서, 남친에게 먼저 이별통보 하고 싶어요.

 

여기서 봤을 때 P양의 연애가 어떻게 보이냐 묻는다면, 난 대략

 

A.상대와 알게 됨.

B.큰 호감도 없고 대화가 재밌는 것도 아니었지만, 상대가 열심히 들이댔기에 대화함.

C.그러다 이쪽이 답장 띄엄띄엄하고 읽씹까지 해서 흐지부지됨.

D.그렇게 끝인 줄 알았는데, 상대에게 다시 연락이 와서 또 연락 주고받음.

E.상대가 리액션 잘해주고 적극적으로 들이대기도 하니, 나쁘지 않다 싶어 연애 시작.

F.연애한다는 건 신났지만, 귀찮을 때도 있고, 일부러 어떻게 나오나 떠보려 상대를 괴롭힘.

G.상대가 지쳐가는 것 같으면 이쪽이 조급해짐. 이별로 상처받을 것 같고 해서 무서워도 짐.

 

이라는 패턴으로, 상대만 바뀌어 가며 진행되는 것처럼 보인다고 대답하겠다.

 

P양은 이십 대 중반의 나이에 ‘짧은 연애까지 합하면 수십 번’의 연애를 했다고 하는데, 저런 식의 연애는 사실 횟수로 카운팅을 해선 안 된다. 저건 여행으로 치자면 공항에만 들렀다가 나온 것과 같아서,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 독일 뭐 다 다녀왔다고 해도 그저 경유만 해서 돌아온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다. 한 나라를 가도 공항에서 나가 시내도 가보고 시장도 가보고 해야지 다른 나라를 경험했다고 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P양과 비슷한 패턴의 연애를 하는 대원들을 보면

 

가족 및 친한 친구 >>넘사벽>> 아는 사람, 남자친구, 모르는 사람

 

이라는 극명한 선을 갖고 있기 마련인데, 그런 까닭에 연애를 해도 남친을 ‘타인’으로만 둔 채 둘의 거리를 좁히지 못하는 걸 볼 수 있다. 물론 연인이란 간판이 걸렸으니 보고 싶다, 사랑한다, 뭐 그런 말들을 하긴 하지만, 그건 현재 연애 중이니 연인 역할을 하며 말해주는 일종의 ‘서비스’인 거지, 실제로는 상대와의 대화를 귀찮아하거나 만나는 걸 부담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걸 참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비유하자면, 엄마에게 엄마라고 하는 게 아니라 옆집 아줌마에게 엄마라고 하기로 하곤 엄마라고 부르는 느낌과 비슷하달까. 연인과는 ‘사귀는 사이’이니 친구를 사귈 때처럼 그렇게 사귀면 되는 건데, 인간적으로 상대와 가까워지기보다는 ‘사귀는 사이를 연기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P양을 비롯한 이런 대원들에게 난,

 

-답안을 제출하듯 대화하지 말고, 그냥 솔직하게 하고 싶은 말 하기.

-연애에 웃을 일과 기쁜 일, 좋은 일, 행복한 일만 있어야 하는 건 아니라는 걸 기억하기.

-연애엔 상처와 간섭과 다툼의 과정도 반드시 어느 정도 포함된다는 것도 기억하기.

-말로 티 안 내려 아무리 노력해도, 행동으로 누구나 알 수 있게 티가 난다는 걸 잊지 말기.

 

정도를 염두에 둔 채 그냥 좀 편하게, 자기가 하고 싶은 연애를 해보길 권해주고 싶다. 내 마음을 보여주고 나란 사람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상대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궁금해 하며 알아가야 지속 가능한 연애를 할 수 있는 거지, ‘연애 시~작!’ 했다고 해서 ‘예쁜 여자친구로 보일법한 말이나 태도’를 연기하며 상처받지 않으려 마음도 안 주고 감추기만 한다면 얼마 안 지나 얼른 그 무대에서 내려오고 싶은 마음만 들 수 있으니 말이다.

 

 

더불어 P양에겐 하나 더 해주고픈 말이 있는데, 그건 연애를 하면 유치해지고 아이 같아 지는 건 맞지만 그게 그냥 ‘어리고 별 생각 없이 단순해 보이는 것’이 되면 안 된다는 것이다. P양은 나름 ‘애교’라고 생각해서 그러는 것 같은데, 유치원생이 이래땅 저래땅 하며 1차원적인 감정표현하는 것처럼 내용도 없고 의미도 없는 멘트를 하는 건, 이제 나이에도 맞지 않으며 상대에겐 철이 없거나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일 위험이 있다.

 

사연신청서를 적어 내려간 P양은 전체를 조망할 줄 알며 어느 지점에서는 자신의 말이나 행동이 상대에게 어떻게 보일지까지를 예리하게 판단하는 똑똑이처럼 보였는데, 카톡대화 속 P양은 채팅으로 알게 된 오빠랑 사귀기로 한 뒤 밥 머거떠? 나 보고 시포? 우리 언제 만낭? 같은 멘트를 하는 사춘기 여중생처럼 보였다. 선배 대원 중에 불혹을 넘었음에도 여전히 연애만 하면 그런 혀 짧은소리와 의미없는 멘트만 하다가, 결국 헤어지고 나서는

 

“나랑 사귀었던 애들은 왜 단 한 번도 다시 전화를 안 하냐. 아 빡쳐.”

 

라는 말을 하는 대원도 있긴 한데, 여하튼 이거 나이들 때마다 그때그때 어느 정도 최신화 안 하면 귀여워 보이는 게 아니라 상호작용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닌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는 걸 잊지 말길 바라며, 다음 연애는 포장지 뜯고 바리케이트 치운 채 진짜 P양의 모습으로 자연스레 만나봤으면 한다. 자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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