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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6)

특강 강사였던 남자 선생님들, 제게 호감이 있었던 걸까요?

by 무한 2019. 5. 7.

지지난 주였나, 마트에서 열무와 얼갈이를 싸게 팔길래 난생처음 물김치를 담가봤다. 풀을 쑤고 뭐 하고 하는 복잡한 과정 없이, 절인 후 그냥 다른 재료를 갈아 넣어 물과 함께 놔뒀더니 맛있는 물김치가 되었다. 정성과 손맛이 들어간 어머니의 정통 물김치보다 내가 담근 게 맛있다는 게 충격이긴 했지만(내일이 어버이날인에 어머니 죄송합니다.), 여하튼 난 그렇게 간편하게 담근 물김치를 끼니마다 꺼내 시원하게 들이키고 있다.

 

뜬금없이 물김치 얘기로 매뉴얼을 시작한 건, 이번 사연의 주인공인 L양이 빈속에 김칫국을 시원하게 들이켜며, 한 사발 더 마셔도 되냐고 내게 물었기 때문이다.

 

“무한님 그 얘기는…. 이 모든 게 그냥 제 기대일 뿐이라는 거죠?”

 

솔직히 난 너무나 분명하게 “네,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는데, L양이 상상의 날개를 펴고 너무나 높이까지 날아간 까닭에, 그러지 말고 그만 내려오라고 하기가 미안하다. L양은 막 너무나도 진지하게

 

“근데 여자의 촉이라는 게 있잖아요? A쌤이 B쌤을 대신해 제게 물었던 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듭니다. 그러니까 매뉴얼을 써주실 때, B쌤이 제게 관심을 가지고 있을 경우 그걸 자연스레 피하며 A쌤과 잘 될 수 있는 방법을….”

 

라는 뉘앙스의 이야기를 신청서에 적었는데, 거기에 대고 내가

 

“아닙니다. A도 B도 이쪽에는 관심이 없으니, 그런 고민은 하지 마세요.”

 

라며 ‘지금껏 살아오면서 다 맞았다’는 L양의 촉에 대한 이상 문제를 말하는 건 잔인한 일 아니겠는가. 그래도 그렇다고 ‘너에게 호감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던 L양의 지인들처럼 그냥 막 희망만 던져줄 순 없는 일이니, 그런 의미에서 차가운 농촌남자 다운 몸쪽 곡괭이질이 들어간 거라 생각해 줬으면 한다. 놀라서라도 양손에 든 김칫국 사발 내려놓길 바라며 하는 곡괭이질.

 

특강 강사였던 남자 선생님들, 제게 호감이 있었던 걸까요?

 

그러니까

 

-이십 대 후반 이후 또래의 강사에게 강의를 듣는 것.

 

은, 꼬꼬마시절 진짜 뭔가를 배워내기 위해 수업을 듣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일일 수 있다는 것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십 대 후반 이후의 수강은 좀 더 설렁설렁하며 친목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강사 역시 ‘교육’ 보다는 ‘교육 서비스’에 가까운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그런 까닭에 많은 대원들이 그걸 ‘이성적인 호감’으로 오해하곤 하는데, 그건 이쪽이 사교적이며 능동적으로 대화를 이끌어가는 타입일수록 얻어지기 쉬운, 친목에 가깝다고 보는 게 맞다.

 

L양은 ‘강사 B가 내성적인 타입인 것 같은데 나에겐 엄청 친절했으며 잘 가르쳐줬다’고 했는데, 기본적으로 강의를 업으로 하는 서른 넘은 사람들은 누구나 그 정도의 교육 노하우를 갖고 있기 마련이며, 강사로 활동할 정도인데 쭈뼛거리며 눈치 보고 수강생에게 말도 못 하는 사람은 없다고 볼 필요가 있다.

 

또, L양은 수업 중 강사가 뭔가를 지도하려 하면 그걸 농담으로 받은 적도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그런 수강생인 L양에게, 강사A와 B 둘 다 좀 더 편안하고 친근하게 대한 거라 할 수 있겠다. 다른 수강생들이 다 “네, 감사합니다./아니요, 괜찮아요.”라고 대답할 때 L양은 그것과는 달리 드립을 섞어 치기도 하니, 그런 L양에게 강사들도 더 친근함과 호의를 보인 것이다. L양보다 더 사교적이며 활발한 다른 수강생이 들어왔을 때 강사들이 그 사람에게 더 그랬던 것처럼, 그 사람 이전엔 L양이 그런 존재였다고 생각하는 게 맞는 일이라 난 생각한다. 이걸 두고 L양은

 

“A쌤이 그 사람을 좋아하는 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고….”

 

라고 하던데, 그럴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것 역시 기반은 ‘부담스럽지 않게 대할 수 있는 수강생에 대한 친근함과 호의’라고 보는 게 맞겠다.

 

 

뒤풀이 자리에서 강사 A가 했던 질문들은, 바로 옆자리에 앉아 있는데 뻘쭘하게 아무 말도 안 시킬 수 없으며, 그가 생각하는 L양 역시 수업 중 드립을 칠 수 있을 정도의 센스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니 질문을 한 거라 할 수 있다.

 

L양은

 

-A쌤이 내게, 요즘 썸타는 사람이 없는지를 물었다.

 

라는 걸 두고 그 안에 깊은 의미가 담겨 있으며, 혹 그게 자신을 좋아하는 B강사를 대신해 요즘 썸 타는 사람이 있는지를 확인해주려는 질문 같다고 생각하던데, 보통은 그런 질문들을 별 의미 없이 하곤 한다. 무슨 일 하는지에 대한 얘기를 나눈 뒤 더 이렇다 할 주제가 없으면, 요즘 연애 중인지 썸을 타는 중인지 정도를 물을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나아가 ‘소개팅을 해주겠다/시켜달라’라거나, 이상형 얘기, 또는 과거 연애사 공유 등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여하튼 그러고 나서 사적인 연락 등 눈에 띄는 액션이 있지 않은 이상 그건 그냥 ‘침묵을 깨기 위한 주제선정’ 이었다고 생각하도록 하자.

 

“그런 대화 별로 안 좋아한다는 제 대답에 대해, A쌤이 ‘이 분도 그런 스타일’이라고 한 건 뭔지도 궁금해요.”

 

그건 그 뒤에 나온 대화를 보면 알 수 있다. 그가 ‘연애보다 일, 또는 자기계발을 우선순위에 두는 사람’의 이야기를 한 게 바로 ‘그런 스타일’이라 보면 되겠다. 그리고 그가 애매할 법한 그런 대답을 한 건, 사실 그는 별 생각 없이 “그럼 요즘 썸 타는 사람 없어요~? ㅎㅎ”정도로 말을 한 건데, 그걸 L양이 다큐로 받으며 “저 그런 대화 별로 안 좋아해요.”라고 받으니 민망함 반, 어색함 반의 상황에서 얼른 주제를 바꾸고자 그렇게 말했을 가능성이 크다. 어쨌든 그 대화 이후 L양이 먼저 공적인 질문을 핑계로 말을 걸었을 때에도 그는 대답만 해주고 말았으니, 그렇게 눈에 보이는 그의 태도가 바로 L양이 내게 물은 ‘A쌤은 저에게 호감이 있는 게 맞나요?’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라고 생각했으면 한다.

 

-내게 호감이 있는 것 같으면, ‘사실 내게 필요는 없지만 그와 가까워질 수 있는’ 다음 특강도 신청해서 듣겠다.

 

는 L양의 말에 대해선, 일단 그에게선 L양에 대한 아무 호감도 보이지 않는다는 대답을 해줘야 할 것 같다. 그래도 굳이 L양이 다음 특강까지 신청해 듣는다면 굳이 말리진 않겠지만, 강의 내용보다 상대와 어찌어찌 잘 될 수 있을 것 같은 기대 하나 때문이라면 진지하게 다시 생각해 봤으면 한다. 이렇게 말하면 그 분위기나 미묘한 눈빛 같은 걸 내가 몰라서 이렇게 결론짓는 거라 할 수 있는데, 난 L양의 사례보다 훨씬 복잡하며 경계가 모호한 ‘1:1 개인수업’ 사연까지도 질리도록 봤다는 얘기를 적어두도록 하겠다. L양은 다음 특강이 별로 필요하지도 않으면서 시간과 돈도 많이 할애해야 하는 거라고 했는데, 그런 거라면 굳이 겨우 ‘처음 느낀 그대 눈빛’ 같은 것 때문에 무리하지 말길 바라며,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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