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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6)

상대에 대한 호감보다 동정심이 앞서는 남자들의 문제

by 무한 2017. 9. 20.

왜 그렇게들 상대를 불쌍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걸까? 상대가 아직은 좀 어린데다 이쪽에서 보기엔 그다지 행복하지 않은 것 같아서?

 

가만히 보면 상대보다 불쌍한 건 이쪽인데, 그것에 대해서는 전혀 눈치 채지 못한 채 상대에 대한 동정심과 가여움을 기반으로

 

‘내가 챙겨줘야 쟤는 진짜 제대로 챙김 받을 수 있는 거지.’

 

라는 이상한 생각을 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특히 같은 모임에서, 상대가 대여섯 살 아래며 몇몇 이성들의 대시를 받고 있을 때면, 그녀에게 대시하는 세력들을 ‘악의 무리’로 단정 지은 채 그런 대시를 받는 그녀를 가여워 하거나, 자신이 나서서 그녀를 구해줘야 한다고 생각하곤 한다.

 

만약 이쪽이 교회오빠이며 상대가 대여섯 살 아래고, 그 와중에 교회에서 좀 날라리로 여겨지는 이성과 상대가 친해지는 것 같으면, 십중팔구 이 ‘어린양 구하기’의 프로세서가 발동하곤 한다. 원래 그 둘을 다 탐탁찮게 여기고 있었는데, 그녀와 대화를 해보니 그녀는 나쁜 사람이 아니며 그냥 가여운 것 같기에, 이젠 자신이 나서야겠다고 얘기하는 것이다.

 

상대를 자신보다 아래 레벨로 보며, 자신이 그녀에게 구원이 될 거라 생각하는 남자들. 오늘은 그들을 위해 매뉴얼을 발행하기로 했다. 출발해 보자.

 

 

1.따지고 보면, 그건 그냥 심술일 수 있다.

 

이쪽이 그렇게나 염려하고 있는 상대의 대인관계는, 사실 정상일 수 있다. 이쪽과 상대는 노는 무리가 다르기에 그렇게 인맥이 형성된 거지, 이쪽이 가는 길만이 올바른 길이며 상대는 길을 잘못 들어 어둠의 골짜기로 걸어 들어간 게 아니란 얘기다.

 

어느 모임에서나 완장 찬 사람들은 그들끼리 친하고, 그 외의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친해지곤 하는 법이다. 그러다 자리 하나 맡으면 다른 무리로 옮겨지기도 하고, 역시나 자리를 놓고 내려오면 같은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 외에 원래부터 개인적인 친분이 두텁다거나, 비슷한 지역에 산다거나, 공감대가 많이 겹친다거나 하는 이유들로 무리가 형성될 수 있다.

 

내게 사연을 보내는 대원들은 대개 완장을 찬 쪽이다. 모임에서 간부를 맡고 있거나, 종교그룹에서 리더를 맡고 있다. 때문에 그들은 하나같이

 

“A라는 남자애가 있는데 걔는 사실 이러이러한 앱니다. 그런데 걔가 그녀에게 접근했고, 살짝 아웃사이더였던 그녀는 걔랑 친하게 지내더군요.”

“B는 절대로 좋은 애가 아닙니다. 그런데 B가 그녀에게 관심을 갖게 됐고, 그녀와 사적인 톡을 하며 모임에서도 둘이 수다를 떠는 걸 종종 목격했습니다.”

“C는 소문이 안 좋습니다. 그녀가 들어오기 전 다른 여자애에게 대시도 한 이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C가 그녀에게 말을 걸고, 집에도 차로 바래다주는 것 같습니다.”

 

등의 이야기를 하며, 내게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대책을 함께 세워주길 요구하곤 한다.

 

난 그들에게, 그래도 괜찮으니까 그냥 좀 놔두라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상대도 바보가 아닌 까닭에 그 관계를 겪어가며 자신이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정말 너무 염려되는 부분이 있는 거라면 그녀에게 살짝 말해주면 되는 것이며, 만약 저런 모습을 보며 드는 감정이 질투라면 구경만 할 게 아니라 자신이 직접 마음을 고백하면 된다.

 

이 지점에서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는 문제는, 방금 이야기 한 것처럼 직접 말해주거나 고백하는 대신, 자신과 친한 쪽 사람들에게 말을 흘려 상황을 바꾸려 한다는 점이다. 그러다 결국 걸려선 “오빠, 뒤에서 제 얘기 하고 다니신다면서요?”라는 소리를 듣는 상황에 처하기도 하고, 친한 쪽 사람들에게 상대에 대한 미움이나 악감정을 심어준 까닭에 돌이킬 수 없이 엉망이 된 상황을 만들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건 지난달에도 한 번 관련 사연에서 말했던 것 같은데, 객관적으로 보자면 이쪽 역시 ‘나와 친한 무리’에 속한 이성들과 사적으로 대화도 하고 모임을 핑계로 단둘이 만나지 않는가? 그런 이쪽의 행동은 ‘착한 만남, 착한 연락’인 거고, 나랑 별로 안 친하거나 내가 미워하는 사람과 상대가 어울리는 건 ‘나쁜 만남, 나쁜 연락’인 걸까? 이쪽은 진짜 연애로 발전할 가능성이나 생각이 없는 사람들과 그러는 것이니 올바른 거고, 상대는 어쩌면 연애로 발전할 수도 있는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니 잘못된 걸까?

 

그런 식이라면, 그 모임에 들어오는 이성은 모두 절대 연애를 하지 않으며, 언제나 싱글인 상태로 이쪽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어야만 정상이며 바르다는 얘기가 되고 마는 것 아닐까? 큰일 난 듯이 대책을 세워야할 것 같다는 그 고민이, 사실은 이쪽이 싫어하는 사람과 상대가 가까워지는 것에 대한 심술은 아닌지, 상대가 나 말고 다른 이성과 더욱 친하기에 생겨난 비뚤어짐은 아닌지 꼭 한 번 생각해 보길 권한다.

 

 

2.그대는 상대에게 좋은 사람인 게 맞는가?

 

상대의 구원자가 되려는 대원들의 사연을 읽으며 내가 참 답답한 게,

 

-상대와 친하지도 않고 심지어 상대와 거의 적대시하며 지낸 적도 있는데, 이런 와중에 뭘 도와주고, 뭘 해결해주고, 뭘 어떻게 구원해주겠다는 것인가?

 

라는 지점이다. 상대를 이쪽이 생각하는 ‘악의 무리’로부터 구해내거나, 모든 힘듦과 얼굴에 그늘을 만드는 일로부터 구원해주는 것보다 중요한 건

 

-상대와 친해지는 것. 상대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것.

 

이 아닐까? 저 위에서 예시로 들었던 말들을 다시 가져와 보자.

 

“A라는 남자애가 있는데 걔는 사실 이러이러한 앱니다. 그런데 걔가 그녀에게 접근했고, 살짝 아웃사이더였던 그녀는 걔랑 친하게 지내더군요.”

“B는 절대로 좋은 애가 아닙니다. 그런데 B가 그녀에게 관심을 갖게 됐고, 그녀와 사적인 톡을 하며 모임에서도 둘이 수다를 떠는 걸 종종 목격했습니다.”

“C는 소문이 안 좋습니다. 그녀가 들어오기 전 다른 여자애에게 대시도 한 이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C가 그녀에게 말을 걸고, 집에도 차로 바래다주는 것 같습니다.”

 

이쪽이 ‘악의 무리’라고 생각하는 그 사람들은, 최소한 상대와 친해지려는 노력을 했으며, 연락을 해가며 그녀를 챙겼고, 모임이 파한 후 그녀를 집에 바래다주기도 했다. 이쪽은? 아무 것도 한 게 없고 말이다.

 

백 번 양보해 이전에는 호감이 크게 없어서 그랬다 치자. 그렇다 손 치더라도 이후 호감을 품고 다가갈 때 상대에게 벌인 일들을 보면 충격과 공포 그 자체다.

 

-전공자인 상대의 말을 무시함. 그래서 무시하지 말아달라는 말을 들음.

-상대의 지인이 다쳐서 병원에 입원했는데, 그걸 드립 소재로 삼음.

-나름 언중유골의 조언을 해준다고 하다가, 비꼬지 말라는 소리를 들음.

 

애초에 상대에 대한 존중 같은 것 없이 이쪽이 ‘도와주는, 구원해주는’ 입장이라 착각하며 상대를 대하니 은연중에 무시하고 있는 게 드러나거나, 자기 마음대로 상대를 ‘행복하지 않은 사람’으로 정의한 채 자극을 주려 하니 마찰이 생길 수밖에 없다. 상대가 호의적으로 이쪽의 얘기를 듣는 것 같으면 그땐 또 아무말대잔치 같은 걸 하다가 결국 실수를 저지르기도 하고 말이다.

 

돌직구를 던지자면, 이쪽이 혼자 감독이고 나머지 사람들이 선수인 게 아니다. 남들은 필드에서 뒤고 있는 사람들이고, 이쪽은 관중에 불과한 것일 수 있다. 이걸 착각하면 곤란하다. 상대와 필드에서 같이 뛰고 싶다면 호흡이 잘 맞는 동료가 되어야 하는 것이지, 필드 밖에서 ‘내 얘기 들어야 네가 잘 됨. 다 잘 되라고 하는 말’이라며 훈수만 하려 들어선 곤란한 것 아니겠는가.

 

억지로 상대의 대인관계나 삶에까지 개입하고 간섭해 이쪽이 바라는 상황만을 만들려고 하지 말고, 그냥 상대에게 ‘좋은 사람’이 되자. 그러면 누구에게 분위기를 만들어 달라는 도움을 요청하거나, 내게 의지하라며 선심 한 번 쓰고는 상대가 더 마음을 열지 않자 심술이 나 비꼬는 일을 피할 수 있다. 자신이 하는 말과 행동이 다 상대를 위하고 상대 잘 되라고 하는 것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자신이 정말 상대에게 ‘좋은 사람’인 건 맞는지 곰곰이 생각해 봤으면 한다. 멀리서 객관적으로 보면, 가장 상대를 곤란하게 하고 상대에게 독설이나 날리는 게 바로 자신일 수 있으니 말이다.

 

 

3.상대는 절대 불쌍하거나 불행하지 않다.

 

고민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누구나 다들 크든 작든 고민을 하며, 조증을 앓고 있는 게 아닌 이상 365일 24시간 매일 업된 상태로 살 순 없는 거다. 그런데 상대에게 동정심을 가진 채 자신이 생각하는 ‘바른 길’로 이끌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진 대원들은,

 

“너 요즘 볼수록 점점 더 피로가 쌓이는 것 같다.”

“이러이러한 점을 고치거나, 이러이러한 버릇을 들여 봐.”

“너 요즘 뭐뭐 때문에 신경 쓰고, 또 뭐뭐 때문에 스트레스 받지?”

 

등의 이야기를 꺼내며 자꾸 멀쩡한 상대를 힘든 사람 취급하고, 보통의 고민을 하고 있는 상대를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가곤 한다.

 

그러면서 자꾸 ‘지금의 넌 예전의 나를 보는 것 같다’ 따위의 이야기를 하거나, 자꾸 자신도 힘든 시절이 있다거나 지금도 힘들 때가 있다면서 훈수를 두려 하는 까닭에, 상대는 오히려 이쪽을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으로 생각하며

 

“너무 힘들면 좀 내려놓으세요. 그리고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라는 이야기까지 하는 사례도 있다.

 

조언은 상대가 구할 때만 하자. 이것만 지켜도 괜한 참견과 간섭, 오지랖의 문제 8할이 해결된다. 그리고 상대가 말하는 건 ‘심각한 고민’이라기보다는 ‘가벼운 불만과 불평’일 수 있다는 것도 기억하자. 그런 불만과 불평을 털어 놓으면서 후련해질 수 있기에 꺼낸 얘기지, 그걸 이쪽에게 해결해 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그런 불만과 불평을 하지 않기 위해 가져야 할 마음가짐 같은 걸 물은 것도 아니다. 그냥 들어주기만 해도 괜찮을 걸, 혼자 앞서나가며 상대를 개조하려 들지 말자.

 

더불어 상대가 이쪽이 해준 조언을 듣지 않았다고 해서

 

‘내 조언 안 들었지? 그럼 나도 모르겠다, 너 어떻게 되나 보자.’

 

라는 마음을 먹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얘기도 해주고 싶다. 그러면서 비꼬아 말하거나 선문답 같은 얘기를 하는 경우로 이어지기도 하는데, 그런 행동들이 오히려 상대를 더 힘들게 한다는 것도 잊지 말자. 상대의 보금자리가 되고 싶으면 푹신한 자리를 만들든가 아니면 말아야지, 그냥 내가 그러고 싶을 땐 상대가 필요 없다는데도 힘들 테니 누우라며 자리를 깔고, 상대가 누워 있으면 이건 네가 원할 때만 누우라고 깐 자리가 아니라며 비키라고 한다면, 그런 태도를 보이는 사람이 베푸는 다음 호의는 무서워서라도 안 받게 되는 것 아니겠는가.

 

상대를 ‘힘들어 하는 사람’으로 정의한 채, 상대가 거절하는데도 계속해서 호의를 받으라며 내밀다가, 어느 순간엔 또 ‘내가 그렇게까지 해줬는데 쟤는….’하며 심술이 나 날 세운 채 대하지 말자. 그러는 사람은 결코 좋은 사람이라 할 수 없으며, 동시에 그렇게 사적으로 삐친 걸 공적인 부분으로 풀거나 복수하는 것 역시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다. 이런 경험을 몇 번 거듭해서한 상대는 이쪽과의 관계에서 로그아웃 할 생각을 할 게 분명하니, ‘내가 그러고 싶을 때와 아닐 때’의 차이가 극단적인 것도 꼭 완화시켜 가길 바란다.

 

 

끝으로 하나 더 얘기해주고 싶은 건, 모임의 장이나 종교그룹의 리더 같은 걸 굳이 꼭 계속해야 하는 게 아니라면, 그 완장을 내려놔보길 권해주고 싶다. 오랜 기간 ‘모임장’으로만 참여한 까닭에, 은연중에 남들은 그저 ‘모임원’일 뿐이라는 시각으로 모든 관계를 바라봐 발생하는 문제도 있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 이유로 상대와 자신을 ‘동등한 관계’로 놓기 어렵다거나 자꾸 이끌려고만 하는 경향이 있다면, 완장 없는 ‘모임원’으로 돌아가 평등한 입장에서 관계를 맺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난 생각한다.

 

내가 상대에게 행복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거나, 내가 조금만 이끌어주면 상대가 행복해질 거라고 생각하는 건 오만이다. 그저 상대가 답답해 할 때 무엇 때문에 답답한지를 들어주고, 상대에게 기쁜 일이 있을 때 같이 기뻐해주며, 도움을 요청할 때 도와주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 생각하자. 딱 그 정도만, 이랬다저랬다 하지 않고 할 수 있어도 충분하다. 그리고 바로 그게 상대에게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 방법이니, 모임의 일을 핑계로 불러내 사적으로 만날 기회를 만들어 또 훈수 두려 하지 말고, 상대를 존중하며 애정을 가지고 다가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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