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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5)

이십대 후반, 친구들이 하나씩 떠나갑니다.

by 무한 2016. 9. 9.

이번 한 주 동안 연애사연은 많이 다뤘으니, 오늘은 불금을 맞아 ‘대인관계’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한 남성대원의 사연을 함께 살펴보자.

 

사연의 주인공은 스스로 그간의 삶으로 인해

 

- 언제 멀어질지 모른다는 대인관계에 대한 조바심.

- 채워지지 않은 인정에 대한 욕구.

- 감정기복.

- 타인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태도.

- 불완전하게 형성된 자존감.

 

등의 문제가 발생했다고 말하는 J군인데, 자신도 괴롭기에 엄청나게 분석은 많이 하긴 했지만 달라지는 게 없다고 한다. 이런 건 책 몇 권 봤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달라지는 게 아니니, J군의 문제와 함께 '길게 보며 차분히 실천해 가야 할 것들'에 대해 알아보자.

 

 

1. 베풀고는, 애정을 기대하는 게 문제다.

 

남은 가족이 아니다. J군이 하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남’에게서 가족 이상의 끈끈함과 애정 같은 걸 기대하고 있는데, 그러니 근본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대학시절, 저는 진심으로 대했다고 생각했던 후배들이, 어느 순간 필요할 때만 저를 찾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 용건 없이도 시간 내어 커피 한 잔 마시자는 연락 같은 건 제가 먼저 하지 않는 이상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게 정상이다. 후배가 선배에게 학업에 대한 정보 정도 질문하고 생일 때 챙겨주는 것 정도만 하면 되는 거지, 휴가를 같이 가자거나 어디서 단둘이 만나자거나 할 이유는 없는 것 아닌가. 과제 한 번 도와줬다고 해서 끊임없이 마음을 써가며 ‘세상에서 제일 친한 선후배’라고 여길 이유도 없는 거고, 밥 한 번 사줬다고 해서 후배가 졸병이라도 된 듯 이쪽을 졸졸 쫓아다니며 모든 일에 대한 자문을 구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J군이 ‘그들을 진심으로 대했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나쁘게 말하자면 ‘공명심’이라 할 수 있다. J군은 자신이 그런 호의를 베풀면 상대가 그 호의를 높이 평가한 후 J군과 도원결의라도 맺기를 바라는 것 같은데, 앞서 말했듯 과제 한 번 도와주고 밥 한 번 샀다고 후배가 J군에게 복종해야 하는 건 아니잖은가.

 

또, 무리를 하면서까지 상대가 부탁한 것 이상으로 베풀거나 도와주는 건, 그런 도움을 주는 J군 입장에서나 정말 큰 도움을 줬다고 생각하는 거지, 도움을 받는 입장에서는 사은품 정도를 하나 더 받는 것 정도의 고마움밖에 느끼지 못 할 수도 있다. 심한 경우, J군이 지인에게 자동차 블랙박스와 하이패스 기기를 준다 해도, 지인은

 

‘이왕 줄 거면 가져와서 설치도 좀 해 주지…. 사실 당장 필요도 없는 건데 저거 받으러 또 서울까지 오라고 하네….’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내 공명심과 오지랖으로, 상대는 사실 그렇게 절실하게 원하지도 않는 호의를 베풀어 놓곤, 그것으로 인해 앞으로 서로는 서로를 위해 바람잡이가 될 수 있는 친밀한 사이가 되는 거란 착각은 하지 말았으면 한다. 그렇게 누군가를 도와주는 것으로 탄탄한 대인관계가 마련되는 거라면, 난 추석에 추석인사 하려는 ‘그간 매뉴얼로 사연이 발행된 사람들’로 인해 정신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의 사람에게 메시지가 올 뿐이다. 몇 주 전까지 제발 도와 달라고 톡을 보내던 사람은 이제 살만해진 건지, 새벽에 카톡 게임초대나 보내고 있고 말이다.

 

남이 부탁을 하면, 무리가 되지 않는 선에서, 그 순간 형편에 맞게 도와주거나 거절하면 된다. 당장 누가 부탁을 하니 이쪽의 능력을 인정해주며 친해지고 싶어서 다가왔다고 생각하지 말고, 그냥 필요하니 부탁을 했다고 생각하자.

 

물론 나도 결혼하는 친구가 A에게 먼저 축가 부탁을 했다가 A가 거절하니, 그 얘긴 쏙 빼고 내게 처음 부탁하는 것처럼 말해서 실망을 한 적이 있는데, 그래도 그와는 계속 친구로 지내고 있다. 이런 친구도 있고 저런 친구도 있는 거며, 또 필요에 의해 부탁을 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이걸 곧고 높고 날카로운 기준만을 세워 놓은 채 거기에 어긋난다고 다 단두대로 보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이게 나와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것’이라는 걸 기억해 뒀으면 한다.

 

 

2. 친구와 가치관이 대립할 때도, 친구니까 넘어가야 합니까?

 

당연한 거다. 내 의견과 상대의 의견이 다를 경우 ‘맞지 않는 부분’에 대해 어필을 해볼 순 있겠지만, 내 의견에 수긍할 것을 강요하거나 ‘저런 생각을 하는 상대는 틀려먹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 의견일치가 안 되어 답답한 상황이라면, 내가 느끼는 답답한 만큼 상대도 똑같은 양의 답답함을 느끼고 있다고 전제하는 것이 ‘존중’아닌가.

 

최근 J군이 친구에게 한 행동에 대해 이야기 한 걸 보자.

 

“남친이 있는 이성친구가 있습니다. 그런데 연애 중이면서 남친을 두고 다른 남자와 소개팅을 하는 등 제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기에 열을 내며 비난했습니다. 당장 가서 솔직히 말하고 헤어지든 하라고, 가서 뺨이라도 맞으라고 했습니다.”

 

저건 가치관이 대립해서 생긴 문제라고는 하긴 좀 그렇지만, 여하튼 J군이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는 방식은 불편하고 불쾌하다. 저런 태도는 ‘주관이 뚜렷한 것’이 아니라 ‘권위적인 것’이며, ‘날카로운 언행’을 하는 게 아니라 ‘폭언’을 하는 거다.

 

친구라면 친구가 남들이 다 손가락질을 하는 일을 저질러도 곁에 앉아 함께해 주고, 그 후에 타이를 수 있어야 하는 건데, J군은 남들이 가만히 있을 때에도 자신이 가장 앞장서 팔까지 걷어붙인 채 친구에게 손가락질을 한다. 이러니 자연히, 대화도 하기 싫고 만나기도 싫어지고 마는 것 아니겠는가.

 

J군은 스스로에 대해

 

“정의를 추구함.”

 

이라고 말했는데, 정의를 추구한다는 사람들이 가장 쉽게 빠질 수 있는 함정

 

- 고지식한, 인간 혐오론자가 되는 것.

 

이라는 점을 늘 염두에 두었으면 한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정의를 이루기 위해 스스로의 몸가짐을 주의하는 것보다, 자신이 재단해 놓은 정의에 어긋나는 사람을 만나면 혐오의 송곳니를 드러내며 물어뜯는 일에 더 열심을 낸다. 자신과 똑같은 태도를 보이는 사람을 만나 비난받으면,

 

“이럴 때 감싸주고 이해해주고 내 편이 되어주는 것이 친구 아니냐.”

 

라며 다시 또 상대 탓을 하려 들기도 하고 말이다. J군 역시 저것과 비슷한 태도를 보였던 것은 아닌지, 한 번 돌아보길 권한다.

 

 

3. 멀리하기, 세트로 멀어지기.

 

남자끼리 이랬다는 게 잘 믿어지지 않겠지만, 난 내 친구 J군과 학창시절

 

“너와 난 점점 멀어질 것 같다.”

“네가 안 그럴 줄 알았는데, 그래서 실망이다.”

 

라는 내용의 메일을 주고받곤 했다. 여린마음동호회원인 두 사람이 서로에게 불만을 표현하는 방식이었는데, 여하튼 그땐 자전거 타고 집에 확 가 버리곤 저런 메일을 보내기도 했지만, 아직까지 잘 지내고 있다.

 

친구뿐만 아니라, 가족과도 마찬가지다. 같이 사니 자꾸 갈등 생길 일이 많아져 나가서 살겠다며 싸우기도 하고, 또 어느 땐 가족임에도 불구하고 무신경한 모습을 보이는 것에 불만을 품다가 싸우기도 한다. 하지만 그랬다가도 서로 챙길 것 챙기고, 먹을 거라도 하나 사다지고 와 같이 먹다 보면, 그런 건 잠시 서로의 감정이 격앙돼 그런 일이라는 걸 말하지 않아도 알기에, 스스르 녹곤 한다. 왜 그랬는지에 대해 차근차근 이야기를 꺼내면 서로의 마음을 좀 더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도 하고 말이다.

 

그런데 J군은, 그 갈등이나 싸움으로 인해 관계가 완전히 파탄 나버렸다는 생각에 도망을 쳐선 울타리를 세운다. 이젠 서로 원수가 된 것이며, 만약에라도 상대가 공격해오면 몇 배로 갚아주겠다는 생각으로 무기만 배치하고 있는 것이다.

 

J군이 더는 상처 받지 않기 위해 그렇게 울타리를 치는 게, 바로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행동이다. 문까지 굳게 걸어 잠근 채 아예 교류를 끊고 있으니, 이해와 용서와 반성은 물 건너가 버리고 만다. 어쩌다 상대와 마주치는 일이 있어도 그건 마음속에 남은 앙금을 휘젓는 일이 되어 버리며, 스스로는 그 때의 일이 떠올라 앙심을 품거나 자려고 누웠다가도 괘씸해서 벌떡벌떡 일어나게 된다.

 

대인관계는 시작보다 유지가 훨씬 중요하며 어렵다. 오늘 J군과 내가 만나 급하게 술잔을 마주치며 앞으로 잘 해보자는 이야기를 하면 얼마간 호형호제하며 지낼 수 있겠지만, 어떤 갈등을 계기로 J군이 울타리를 치면 우리는 끝장인 거다. 그러면 우린 둘 다 속으로 ‘쟤는 날 만나면 복수하려 들겠지?’하는 생각만 하고 있을 수 있고, 우리가 함께 알았던 사람들을 서로 보기 불편해 그들까지 멀리하게 될 수 있다. J군이 누군가에게 자신만이 정의인 듯이 굴며 폭언을 한 까닭에, 그 사람과 관련된 모임의 사람들과도 전부 연이 끊어진 것처럼 말이다.

 

아래는 만화 <베르세르크>에 등장하는 명대사다.

 

“도망쳐 도착한 곳에 낙원 따윈 없어.”

 

J군은 사람들에게서 멀리 벗어놔도 봤고, 또 키를 한껏 높인 울타리도 쳐 봤지만, 그 안엔 평화와 안식이 아닌 외로움과 후회가 있지 않았는가.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역시 누군가와 멀어지는 게 두렵다. 좋은 관계가 엎질러질까 두렵기도 하고, 상대의 마음이 내 마음 같지 않을 때 실망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레 겁을 먹고 미리 도망쳐 멀어지진 않으며, 멀어지면 또 멀어지는 대로 느슨해진 인연의 끈을 유지하며 살고 있다. 나 외의 다른 사람들도 대부분 다 이렇게 살고 있으니, J군도 타인에게 걸고 있는 기대는 좀 내려두고, J군이 힘들지 않을 만큼만 대인관계에 마음을 썼으면 한다.

 

 

J군에게 딱 세 가지만 더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첫째는

 

- 원래 이십대 후반이 되어가며 사람들과의 관계는 정제되고, 자연스레 인연의 끈은 느슨해지는 것.

 

이라는 거다. 밥벌이와 연애 등을 위해 이젠 예전만큼 친구들과 어울릴 시간이 없기도 하고, 가까운 곳에 살거나 자주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게 아니라면 그 물리적인 거리로 인해 저절로 둘의 간격이 벌어질 수 있다. 예전엔 같은 취미를 가진 까닭에 친구와 어울리기 좋았지만, 이젠 서로 다른 취미를 즐기는 까닭에 이렇다 할 공감대가 없어졌을 수도 있고 말이다. 그러니 그걸 두고 ‘내가 뭘 잘못한 건지, 계속 친구들과 멀어지고 있다’고만 생각하진 말았으면 한다.

 

둘째는,

 

- 이전에 알던 사람에게 다시 연락해 잘 지내보기로 했어도, 상관없이 살아온 관성 때문에 흐지부지 될 수 있다.

 

라는 거다. 대인관계에 대한 결핍을 느끼거나, 위에서 말했던 것들을 깨달으며 이전의 관계를 회복하고자 누군가에게 연락할 수 있다. 그러면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것보다 상대가 훨씬 친절하게 받아주기에 이젠 서로에게 호의만 보이는 관계로 지낼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건 인연의 끈을 한 번 당겼기에 벌어진 일일 뿐이다. 앞서 이야기 했듯 대인관계는 그런 ‘시작’보다 ‘유지’가 중요한 까닭에, 상관없이 살아온 관성에 의해 J군이 바랐던 관계회복은 흐지부지 될 수 있다.

 

관계는 지금 뭔가를 해서 이전처럼 회복되는 게 아니라, 느슨해진 그 상태에서 다시 시작되는 거라 생각했으면 한다. 관성 때문에 흐지부지 된다고 J군에게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니, 이런 상황이 찾아왔다고 해서 포기하거나 절망하진 말았으면 한다.

 

셋째는,

 

- 심지도 않고 돌보지도 않았는데 저절로 열매 맺는 나무 없듯, 계속해서 마음 쓰고 가지치기 해가며 돌봐야 한다는 것.

 

이다. 풍성한 대인관계를 맺고 사는 게 좋은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러려면 사실 많은 부분을 대인관계에 할애해야하며 꾸준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만나서 밥 먹고 술 마시고 수다를 떠는 것에도 엄청난 시간을 쏟아 부어야 하며, 생일을 챙기고 경조사에 참석하고 곤란한 상황에 놓인 사람 도와주고 하다 보면 돈과 에너지도 그만큼 소비되기 마련이다. 그렇게 한다고 그들 모두에게 사랑 받을 수 있는 거냐면, 또 그런 것도 아니다.

 

우리끼리니까 하는 얘기지만 저것도 좀 체질과 성격에 맞아야 할 수 있는 거지, 연말연시 되면 술자리 참석하느라 두 달을 밖에서 보내야 하며 200장이 넘는 연하장 손 편지로 쓰고, 때 되면 SNS에 들러 댓글 남겨주고 좋아요 눌러주고 뭐 그러는 거, 나처럼 게으른 사람에겐 고문일 수 있다. 난 오늘 저녁 삼겹살 먹자고 하면 망설임 없이 “콜”할 친구들이 있어서 행복하니, J군도 모두에게 사랑 받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 들기보다는 ‘소수정예’의 친구들과 깜보가 되길 권한다.

 

노파심에 하나만 더 얘기하자면, 난 카톡에 등록된 친구 프로필만 읽어도 1시간이 그냥 지날 정도로 많은 사람들과 카톡친구를 맺고, 또 사랑하는 사람과 연애도 하고 있지만, 그래도 가끔 외롭다. 이건 영혼이 육신이라는 독방에서 수감생활을 하며 겪는 어쩔 수 없는 외로움이라고들 하던데, 이런 결핍을 원인을 ‘대인관계’에서만 찾진 말길 바란다. 난 조금 이따가 구름 사진 찍으러 나갈 걸 생각하면 외로움이 사라지고 갑자기 신나는데, J군도 자신을 가슴 뛰게 만들 뭔가를 꼭 찾았으면 한다.

 

자 그럼, 다들 불금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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