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연애매뉴얼(연재중)/연애오답노트

연애 중인데 자꾸 제가 호구라는 생각이 듭니다.

by 무한 2016. 7. 19.

이형의 사연을 국호수(국립호구수사연구원)에 보낸 결과, 98.72%의 확률로 호구에 가까운 것이란 결과가 나왔습니다. 호구에는

 

- 능동적 호구

- 수동적 호구

 

의 두 타입이 있는데, 이형은 그 중 후자에 속합니다. 이형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상대의 설계와 너무나도 당당한 태도 때문에, 어쩔 수없이 계속 호의를 베풀고 희생을 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저랑 친한 후배 한 명이 저와 여친의 모든 상황을 알고 있는데, 그 후배는 제가 너무 여친을 못 믿고 의심을 많이 하는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충고를 들었습니다.”

 

그 후배가 그런 얘기를 한 건, 이형이 헤어질 생각을 내비치지 않으며 그냥 연애 중 힘든 부분에 대해 토로하니 그런 걸 겁니다. 사실 그 관계가 이형만 참고 견디면 돌아가는 것에 전혀 문제없습니다. 여친은 현재 동거의 가능성도 열어둔 데다가, 이형과의 결혼도 생각하고 있다는 걸 직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만약 두 사람이 결혼하게 될 경우, 전 이형이 1, 2년 내로 ‘이혼’, ‘합의이혼’ 등의 키워드로 검색을 하고 있게 되리라 확신합니다. 제가 왜 이렇게 생각하는지는 아래에서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1. 그녀는 자기 인생을 제대로 살고 있지 않은 사람입니다.

 

고시생 중 합격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겠습니다만, 그런 고시생 중에도

 

- 취업은 싫고 시험 준비 할 뒷받침은 되니 ‘고시생’타이틀 걸어 놓고 노는 사람.

 

이 분명 있습니다. 이들은 사실 ‘백수’에 더 가까운데, 문제집을 구입을 하긴 했고 가끔 공부하는 모습도 보이긴 하니 ‘고시생’으로 여겨지곤 합니다. 비슷한 사례로는, 그냥 등록금 내면 입학이 가능한 대학원에 발을 들여 놓은 뒤 몇 년 쯤을 다니다 말다 하는 사례, 유학을 핑계로 외국에 나가있긴 하지만 거기서 ‘내년부터 공부하겠다’고 매년 미루며 그저 하루하루 여행하며 보내는 사례 등이 있습니다.

 

이형은 아무리 봐도 여친이 공부를 제대로 하는 것 같지 않다고 하셨는데, 정확히 보신 겁니다. 공부를 하겠다는 사람이 수도권 외곽에서 서울 중심부에 있는 카페까지 와서 친구랑 공부하겠습니까? 정말 공부에 집중하고 있는 사람이 새벽 네 시까지 술 마시며 놀겠습니까?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는 사람이 공부하는 날보다 스트레스 푼다며 놀러 다니는 일이 많겠습니까? 시험에 정말 합격하고자 하는 사람이 동호회 활동을 하며 거기서 사람들 만나 커피 마시고 맛집 찾아다니고 하겠습니까?

 

물론 어릴 땐 뭘 모르니까 저렇게 방황도 좀 하고, 넘치는 자유를 어떻게 하지 못하며 방종의 함정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스물 대여섯 정도라면 말입니다. 그런데 이형의 여자친구는 서른이 넘지 않았습니까? 그 상황에 그러고 있다는 건, 좀 심각한 겁니다.

 

이형이 이런 걸 전혀 모르며

 

‘그냥 원래 다들 이렇게 연애하다가 결혼하면, 남자가 돈 벌어오고 여자가 살림하나보다.’

 

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면, 저도 이런 얘기까지 해가며 둘의 연애나 결혼을 반대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 중엔 월 600을 벌어 아내가 550을 써도 그러려니 하며 사는 경우도 있으니 말입니다. 물론 언젠가는 갈등이 생기고, 그땐 아내가 아이들에게까지 ‘너희 아빠가 이상한 사람’이라는 세뇌를 시켜 편 가르기를 하는 문제가 벌어지긴 하는데, 그건 나중 문제고 여하튼 한 10년은 정신없이 흘러가는 까닭에 ‘부부’로 살 수 있긴 합니다.

 

하지만 이형은 지금 분명 뭔가가 잘못되어 있다는 걸 느끼고 있고, 그녀가 동거나 결혼에 대해서도 적극 찬성하긴 하지만 그게 함정인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을 지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와중에 둘의 이야기를 다 아는 후배가 ‘여친을 믿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하니 혼란스러워 하는 중이고 말입니다.

 

이형과 비슷한 처지에 놓였던 선배 대원들 중엔 ‘그래도 이 부분만 빼면 상대는 괜찮은 사람이니까.’라는 생각으로 애써 못 본 척 하며 연애를 지속하거나 결혼하게 된 대원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이 부분만 빼면’이라고 생각했던 부분이 훗날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의 문제로 찾아왔다는 걸 꼭 기억해두셨으면 합니다.

 

 

2. 여행경비 반반 내자고 말해도, 상대는 여행가고 싶어 할까요?

 

이형 같은 후원자가 있다면, 저도 고시준비를 하고 싶습니다. 공부하라고 전자기기 사주고, 스트레스 풀라며 여기저기 데려가고, 만나서 뭘 먹든 한 번도 빠짐없이 다 결제해주고, 공부가 안 된다며 친구들과 술 마시고 있으면 집에 태워다주겠다며 데리러 오고, 영화를 보러 가든 여행을 가든 알아서 다 준비해주고….

 

반 년 넘게 만나면서 그녀가 데이트 중 쓴 돈이 얼마입니까?

 

3,800원.

 

이래도 되는 관계가 있다면, 저는 매일 만날 겁니다. 웹서핑 하며 해보고 싶거나 먹고 싶은 거 생기면 연락하고, 그러면 알아서 데리러 오며 비용도 지불하고 집에도 데려다 주지 않습니까? 태블릿이 후져서 인강 보기 어렵다고 말하면 태블릿도 신제품으로 사주는데, 마음이 있든 없든 이런 관계라면 탕웨이의 말처럼

 

“노치지 아눌꼬에요~”

 

할 수 있습니다.

 

전 그녀가 이번 여름 이형 휴가에 같이 여행가자고 한 것도, 늘 그래왔듯 자신은 입만 가지고 가면 되니 들떠서 말을 꺼낸 거라 생각합니다. 못 믿으시겠다면, 으리으리한 숙소 사진을 보여주며 여기 어떠냐고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럼 그녀는 수영장까지 딸린 그 숙소를 보며 기뻐할 텐데, 그러고 난 뒤 그녀에게 선불로 예약을 해달라고 말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럴 경우 그녀가 공부나 다른 핑계를 대며 여행갈 때가 아닌 것 같다고 할 것이라는 것에 제 우리은행 통장을 걸겠습니다.

 

이형이 그녀에게 선물을 주며 “넌 언제 오빠한테 선물 하나 줄 거야?”라고 물었을 때, 그녀가

 

“난 오빠한테 사랑을 주잖아.”

 

라고 말한 건 농담이 아닙니다. 그녀는 정말로 자신이 할 도리는 이형을 만나주는 것만으로도 차고 넘치게 해주는 거라 생각하는 거지, 귀여운 답변을 한 게 아닙니다. 그게 아니라면 반 년 넘게 만나는 동안 겨우 3,800원만 쓸 수가 없습니다. 돈 보탤 거 아니면서 여행가자는 이야기 할 리도 없고, 사달라는 말만 안했지 계속 불평하며 이형이 사주도록 유도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을 반 년 넘게 경험했으면서, 아직까지 상대의 본심을 그렇지 않을 거라든가, 아니면 훗날 뭔가 달라질 거라 막연한 생각만 하고 있다면 이형에게도 문제가 있는 겁니다. 이건 제가 늘 얘기하는 건데, 상대의 말이 아닌 행동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녀가 말로는

 

“오빠가 좋지 않으면, 내가 왜 오빠랑 사귀고 있겠어?”

 

라고 하지만, 그 좋아한다는 증거를 어디서 찾을 수 있습니까? 공부해야 한다며 툭하면 전화 꺼두지만 나중에 알고 보면 다른 사람 만나서 놀러 갔다 온 것에서 찾을 수 있습니까? 같이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연애하는 걸 들키면 좀 그렇다며 비밀연애로 해두자는 것에서 찾을 수 있습니까? 설마, 그녀가 이형이 혼자 사는 집에 들어올 생각을 하며 결혼까지도 염두에 둔 것 같다는 걸 ‘좋아한다는 증거’라 생각하시는 건 아니리라 믿습니다.

 

 

3. 즐거우십니까?

 

아주 단순한 질문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즐거우십니까? 이형이 그 관계에 즐거움을 느끼는 부분이 있다면, 전 그게

 

- 상대가 어려워하는 부분을 이형이 물질적인 것으로 해결해 줬을 때, 그녀가 기뻐하는 것을 보는 것에서의 즐거움.

 

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 말고는, 뭐가 없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말이 아닌 행동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녀가

 

“그 남자들은 아무 의미도 없으며, 오빠에 비하면 먼지 같은 애들이다.”

 

라는 이야기를 하긴 하지만, 그런 남자들에 둘러싸여 밤새도록 놀지 않습니까? 또, 이형이 커플 아이템을 사서 선물하면 그녀가 기뻐하긴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이형과 사귀는 걸 지인들이 모르니 함께 아는 사람들을 만날 땐 이형보고 그 아이템을 착용하지 말라고도 말하지 않습니까?

 

다시 같은 질문을 한 번 더 드리겠습니다. 정말, 이 연애 덕분에 즐거우십니까? 상대가 공부한다며 전화를 꺼두니 연락도 마음대로 할 수 없고, 또 주변 사람들이 사귀는 걸 모르니 전화를 걸어서는 안 되며 카톡으로만 대화를 해야 하고, 시험 결과 나온 날 결과가 좋지 않다며 그녀가 며칠 잠수를 타면 이형은 그냥 멍하니 기다리기만 해야 하는데, 즐거우십니까?

 

“자꾸 제가 호구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 혼자만 하는 생각이긴 하지만, 여친 입장에선 제가 돈 내주는 오빠니 끈을 놓지 않는 것 같아 보입니다. 왜 자꾸 이런 생각이 드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생각이 드는 게 정상입니다. 여기서 봐도 그래 보이니 말입니다. 둘의 카톡대화를 보면 상대가 하나둘 툭툭 던져주는 일상보고에 대해 이형이 리액션을 해주는 게 8할이고, 이형이 자신의 얘기를 하려고 하면 상대가 ‘긍정적인 대답이긴 하지만 분명 대충’인 대답을 해줄 뿐입니다. 두 사람이 연인임에도 불구하고 상대가 친구 만나 놀고 있는 동안 이형이 인터뷰하듯 계속 묻거나, 누구 만나서 어디서 놀 거냐는 식의 질문만 이어질 뿐이고 말입니다.

 

 

이형이 그녀의 인생까지 책임지며 살 자신이 있다면, 계속 사귀다 결혼까지 해도 괜찮습니다. 친구 만날 때에는 더치페이하고 매일 서울까지 오가느라 교통비도 쓰지만, 이형과 만날 땐 반년에 3,800원 밖에 쓰지 않는 걸 감당할 수 있다면 만나도 괜찮습니다. 다만, 이형이 이걸

 

‘시간 지나면 나아지겠지.’

‘시험에 합격하면 변하겠지.’

‘결혼하면 달라지겠지.’

 

라고 막연히 생각하는 중이라면, 그 생각이 바로 이형이 남은 반평생 중 하게 될 가장 치명적인 착각이 되리라는 얘기를 저는 해드리고 싶습니다. 이런 와중에 행여나 둘의 관계에 대한 상대의 성실도가 하락하지 않도록 백화점에 선물 주문해 놓고 있는 건, 언 발에 오줌 누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일입니다.

 

고시생 타이틀만 걸어 놓곤 놀러 다니고, 어제 공부 안 하고 실컷 논 후유증으로 오늘도 공부가 안 된다는 이야기를 하며, 데이트비용으로는 반 년간 3,800원 쓴 채 나중에 외제차 뽑아 달라는 농담을 하고, 남자들에 둘러싸여 새벽까지 술 마시거나 친구들과 노는 사진은 SNS에 올리고 있는 사람. 비밀 연애니 둘 모두를 아는 사람을 만날 땐 이쪽이 선물한 커플아이템 착용하지 말라고 하고, 노는 건 다른 사람이랑 다 놀곤 이형이 만나자고 하면 시간 없다는 이야기를 하거나 전화를 꺼두기도 하며, 스트레스 풀려고 놀고, 공부가 안 돼서 놀고, 시험에 떨어져서 놀고, 다시 시험준비 하면 못 논다며 또 노는 사람. 이런 사람과의 미래는 과연 어떤 모습일지, 딱 1시간만이라도 좋으니 정말 진지하게 고민해 보시기 바랍니다. 현명한 선택을 하시길 기원하겠습니다.

 

카카오스토리에서 받아보는 노멀로그 새 글! "여기"를 눌러주세요.

 새 글을 편하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 하트 버튼과 좋아요 버튼 클릭은 제게 큰 힘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카카오뷰에서 받아보는 노멀로그 새 글과 연관 글! "여기"를 눌러주세요.

 새 글과 연관 글을 편하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