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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연애오답노트

전남친과 만나고는 있는데, 다시 사귈 수 있을까요?

by 무한 2015. 9. 18.

어제 오후 인터넷에 접속하려고 하니, APPCRASH라는 오류가 뜨며 익스플로러가 계속 그냥 닫혔다. 크롬, 오페라, 파이어폭스 모두 마찬가지의 증세를 보였고, 반나절을 매달려 방법을 찾아보았지만 전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포맷을 감행했고, 전에 사용하던 것처럼 만드느라 한참을 보내다가 이제야 겨우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포맷을 할 때면 늘 디테일한 부분을 놓치곤 한다. 윈도우는 잘 설치했지만 '내 문서' 폴더를 옮기는 걸 깜빡한다든가, 폴더를 다 챙겨도 PC카톡 대화 백업을 잊는다든가, 메일 프로그램 백업을 하지 않아 메일을 모두 날린다든가 하는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다. 이번엔 하나도 놓치지 않으리라 다짐했지만, 여지없이 실수를 하고 말았다.

 

실수를 한 부분은 'PC카톡 백업' 부분이다. 정말 멍청한 짓을 저질렀다고 밖에 표현할 길 없는 일이다. 백업해둘 것들을 전부 외장하드에 옮겨두고 난 뒤 PC카톡 백업이 떠올랐다. 그래서 다행히 백업까지는 성공적으로 받았는데, 그 저장위치가 포맷하려는 드라이브라는 것을 확인하지 않았다. 때문에 포맷 후 윈도우 설치를 마치고 제일 먼저 PC카톡을 복원하려고 열어보니, 외장하드엔 그 백업본이 들어있지 않았다. 이사 할 때 따로 잘 챙겨야 한다며 정성껏 박스 하나를 싸 놓고는, 그걸 이삿짐 트럭 옆 야외에 두고 온 것과 같은 짓을 저지른 것이다. 어이없고 속상해서, 삼십 분 동안 담배만 네 개비 정도 피운 것 같다.

 

이로써 답을 못했던 카톡대화창이 전부 사라지게 되었다. 전에 폰을 바꾸며 한 번 날리고, 윈도우 8로 갈아탄다고 한 번 날리고, 폰 초기화 한다고 또 한 번 날리고, 윈도우 10 갈아탄다고 또 한 번 날리고, 윈도우 10에서 강좌 재생이 안 되어 7로 갈아타다가 역시 한 번 또 날리고, 이번에 또 날리고…. 한참 고민하다가, 그냥 포기하고 여기서부터 재출발이라 생각하며 살기로 했다. 카톡을 보냈는데 대답이 없다고 날 미워하셔도 어쩔 수가 없을 것 같다. 여하튼 이런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는 걸 알려드리며, 언제나처럼 매뉴얼 시작하도록 하겠다. 출발해 보자.

 

 

1. 누구에게 무엇을, 왜 바라는가?

 

난 영등포에서 한 할아버지가 리어카에 파지를 싣고 가시다 쏟아 곤란해 하실 때 도와드린 적이 있다. 하지만 그 경험과 달리, 종로에서 다른 할아버지가

 

"어이, 그것 좀 주워와."

 

라는 이야기를 하셨을 때 무시하고 내 갈 길 간 적도 있다. 노인공경은 누구나 아는 얘기지만, 그걸 권리라 생각하며 아무렇게나 요구를 하는 건 상대를 불쾌하게 만들 수 있는 것 아닌가.

 

(우리끼리니까 하는 얘기지만, 그 한 번의 무시로 인해 여린마음동호회 회장인 난 두고두고 고통을 느껴야 했다. 아무래도 내가 좀 심했던 것 같다는 자책도 했고, 그냥 한 번 시키는 걸 하고 끝났으면 서로 좋았을 거라는 생각도 했다. 나아가 그 할아버지가 6.25 참전용사이며 나라를 지키기 위해 한때 목숨을 걸었던 적이 있었을 수도 있다는 상상도 했었다. 이제 누군가에게 상냥해 버리기조차 힘들어진 악다구니, 늘 아무 일도 없는 일상이기에 그냥 누가 시비라도 걸어 주었으면 좋겠다는 외로움, 뭐 그런 것까지를 직업병처럼 떠올려 봤던 것 같다.)

 

난 사연의 주인공인 S양이 연애할 때 보이는 태도가, 위 종로 할아버지의 그것과 닮았다고 생각한다. S양은 자신이 남들보다 행복하지 않은 유년생활을 보내왔다고 말하는데, 때문에 자신은 연애를 해도 그 결핍에 대한 보상이나 힐링을 연애를 통해 받고 싶어 하는 것 같다고도 말한다. 나도 그 말에 동의한다. 여기서 보기에도 S양은, 과거를 극복하지 못한 까닭에 쉽게 빈정대거나 크게 연관 없는 곳에서 자신의 가여움을 드러낸다. 

 

연인이 보호자가 되어주는 것 좋고 힘이 되어주는 것 좋고 뭐 다 좋은데, 상대 입장에서 정서적 간병인이 되어 매번 돌봐야만 하는 연애는, 결국 이별을 떠올리게 만든다. 더불어 한 부분에서 상대를 얕잡아 보게 되면 다른 부분들까지도 금방 얕잡아보게 되는 법칙이 관계에 적용되기도 한다. S양의 친구 중 누군가가 매일 자신이 얼마나 공부를 못하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S양에겐 그 친구의 철학이나 패션, 하는 행동 전부가 다 별 것 아닌 것으로 느껴지지 않겠는가. S양의 이전 연애에서도 바로 그런 효과가 나타났다. 구남친에게 S양은, 전 지점에서 자신보다 못하며 별 것 아닌 것 같은 사람으로 여겨지고 만 것이다.

 

난 S양에게, 언제까지 누가 도와주기만을 기다리고 있거나 누군가가 보상해 주길 기대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그런 마음을 내려놓지 않으면 누구를 만나든 상대에게 짐처럼 여겨지고 말 것이며, 계속 상대에게 S양이 원하고 바라는 것들을 내 놓으라고 요구하다 이별을 택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내 삶이 이러이러했기에 어느 부분에서 모자라고 서툴 수 있다고 말하는 것까지는 괜찮지만, 그걸 넘어 과거의 내 삶이 이랬으니 네가 다 치료해 주거나 보상해 내라는 태도를 보이면 이별은 시간문제라는 걸 기억해 두길 바란다.

 

 

2. 상대에게 완전히 의존하는 모습.

 

내가 S양의 새로운 남자친구라고 해보자. 난 S양이 평소 연애를 할 때 보이는 모습을, 그대로 S양에게 보여줄 것이다. 난 아침부터

 

"어제 내가 보낸 카톡에 대답을 안 했네. 몇 시에 자느라 확인도 안 한 거?"

 

라는 카톡을 보낼 것이고, 잠시 후

 

"아 짜증나. 오늘 먹으려고 김밥 사다 놓은 거 있는데 상했어."

 

라는 카톡을 보낼 것이다. 그러고는 오전 내내

 

"출근했어? 출근했으면 출근했다고 말해줘야지."

"키보드 스킨 털다가 찢어졌어. 이거 엄청 약하네."

"안경점 가서 새로 맞춘 안경 찾아와야 하는데 언제 가지?"

"비염 때문에 코가 막혀서 목으로 숨 쉬었더니 이제 목도 아프네."

"비염 약 먹으면 졸려서 약을 못 먹고 있어."

"컴퓨터 포맷했더니 이것저것 다시 깔아야 하는 게 너무 많다."

"은행도 가야 하는데 가기 귀찮다. 너무 멀어."

"밖에서 제초기 돌리고 있어. 시끄러워서 집중이 안 되네."

"점심 뭐 먹지? 매콤한 거 먹고 싶은데 생각나는 게 없네."

"어제 책 주문한 거 오늘 오려나? 오늘 와야 하는데."

"이따 나가서 멘솔 하나 사와야겠다. 그거라도 피우면 코가 좀 뚫릴 듯."

"눈물이랑 콧물이 계속 나. 휴지 옆에 두고 계속 닦았더니 이제 쓰라렵다."

"오늘 보려고 메모해 둔 TV프로그램이 있는데 어디다 놨는지 안 보이네."

"전에 샀던 삼색 펜 연결부가 또 벌어졌어. 이거 제품의 문제 같은데."

"홍콩 티켓 9만 원짜리 떠서 알아보니까, 이것저것 포함하면 20만 원이네."

"친구한테 전화 왔는데 오늘 촬영 도와달래. 나 오후에 나갔다 와야 할 듯."

 

등의 카톡도 보낼 것이다. 오전 중에만 저만큼을 말이다. 이러면 S양도 날 감당하기가 벅차질 것 같지 않은가?

 

또, 난 오후에 더 많은 카톡을 보내며 말을 걸고 S양에게 오늘 저녁에 만날 수 있는지를 물을 것이다. S양이 친구와 선약이 있다는 대답을 하면, 난 그 대답에 실망했다는 걸 그대로 드러낼 것이다. 그러고는 친구와 만나고 있을 S양에게 전화를 걸고, 이어 언제 집에 들어 갈 거냐고 계속 물을 것이다.

 

어떤가? 남이 저지르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보니 끔찍하지 않은가? 저런 내 태도에 S양이 지쳐 적당히 좀 하자는 의미로

 

"ㅇㅋ."

 

라고 대답을 하면, 난 거기에

 

"자음으로만 대답을 하네? 성의 없이 'ㅇㅋ'가 뭐야 'ㅇㅋ'가. 참 나."

 

라며 발끈할 것이다. 이런 남자와 만날 때 S양 마음속에 떠오르는 단 하나의 답은 '이별'이 아닐까?

 

 

3. 상대를 나쁜 놈으로 만드는 화법.

 

이건 위의 태도와도 이어지는 거다. S양은 저렇게 시도 때도 없이 미주알고주알 많은 이야기를 쏟아내고는, 상대가 그걸 받아주지 않으면

 

"나랑 말하기 싫은가 보네?"

"참 나. 내 말 그냥 씹는 거야?"

"굿모닝. 그런데 나만 아침 인사 하는 것 같네."

"어차피 내가 이런 얘기해 봐야 넌 신경도 안 쓰겠지."

"넌 나한테 궁금한 게 하나도 없나봐? 하나도 안 물어보네."

"이렇게까지 관심이 없는 줄 몰랐네. 그거 내가 전에 말했던 건데."

 

라는 이야기를 한다. 그냥 문장으로 보기만 했을 뿐인데도 기운이 쭉쭉 빠지는 느낌이 들지 않는가?

 

나아가 일상적인 저런 대화에서 상대를 '나쁜 놈'으로 만드는 것 외에, 자신의 생각을 꼬아서 말하며 상대를 떠보는 태도도 문제가 된다.

 

"난 그냥 너와 이러이러한 일들을 하고 싶었던 건데, 넌 그냥 아무렇게나 굴고 네 돈 안 써도 내가 옆에 있으니까 그것 때문에 만났나보네."

 

머리에 총 맞은 사람이 아닌 이상, 저 질문에

 

"어 맞어. 너 만나면 네가 돈 다 쓰니까 만났던 거야."

 

라고 대답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때문에 S양은 상대가 부정했다는 것으로 잠시나마 위안을 삼지만, 크게 보면 S양의 저런 태도는 상대로 하여금 정이 떨어지게 만들며 만남 자체를 의무로 느끼게 만들고 만다.

 

연애와 상관없이도 확고하게 존재하는 자신의 생활과 목표가 있어야 한다. 그게 없다면 닻을 내리지 못한 배처럼 물살 따라 떠내려가거나 흔들리다 이리저리 치이게 될 것이다. 누구나 자신이 내년에 뭘 하며 살고 있을지 정확하게 알진 못하지만, 내년엔 이러이러하길 바라며 노를 젓는 사람이 있는 반면, 몇 년 전 물살만 괜찮았어도 안전한 항구로 흘러들어가 있을 거라고 아쉬워만 하고 있는 사람도 있잖은가.

 

그저 표류하는 배에 계속 멍하니 앉아 있으면, 그 누구를 만나도 S양을 그냥 지나쳐 가게 될 것이다. S양은 선택해야 한다. 거기에 계속 앉아 지나가는 배에 소리 질러 잠깐의 관심을 끌겠는가, 아니면 노를 저으며 나아가다 같은 방향으로 가는 사람과 만나 함께 가겠는가.

 

 

4. 전남친과의 관계엔 0.01%도 가능성 없음.

 

아아, 이 슬프도록 순진한 영혼이여!

 

S양과 내가 친구인데 사이가 좋지 않다. 그래서 S양이 화해를 청했는데, 난 S양에게

 

"나 같은 놈이랑 뭐하러 친구하려고 그래. 나랑 친해져봐야 너한테 돈만 빌릴 걸."

 

이라고 말한다. 그러자 S양은 돈을 빌려주겠다고 말하고, 난 S양에게

 

"그럼 일단 백오십만 입금해줘. 급하게 사야할 게 있거든. 아, 그리고 노트북 좀 빌려줄 수 있나?"

 

라고 말한다. S양은 흔쾌히 백오십을 입금해 주고, 노트북도 빌려주겠다고 한다. 그러자 난 또

 

"노트북 가지러 가야 하는데, 갈 차편이 마땅치 않네. 노트북은 그냥 나중에 차비 생기면 빌려야겠다. 내가 빌리는 입장인데 너보고 갖다 달라고 할 순 없잖아."

 

라고 말한다. 그 말에 S양은 노트북을 들곤 우리 집까지 찾아오고, 날 위해 커피까지 산다. 이후에도 난 계속해서 이게 필요하다, 저게 필요하다 하며 S양이 우리 집으로 찾아오게 유도하고, 강아지 간식까지도 S양이 사게 만든다.

 

이게 이렇게 손익계산이 분명한 '돈'에 비유하면 뭐가 문제인지 확실히 보이는데, '몸'이라고 놓고 보면 혼동하기가 쉬운 것 같다.

 

'어차피 나도 즐기는 거니까.'

'함께 즐길 땐 그도 내가 정말 좋다고 말하니까.'

'아무 감정이 없는 거라면 이렇게 날 만나지도 않겠지.'

 

라는 생각으로 합리화 하며 정신승리를 하고 있는 대원들이 S양 말고도 몇몇 있다.  

 

순진한 S양은 또 딴에 이걸 자신이 '유혹한 것'이라 생각하며,

 

'이제 전화를 걸어도 차단하는 사이에서도 확실히 벗어났으니, 몸 말고 마음으로도 가까워질 방법만 찾으면 돼.'

 

라고 여기는 중이다. 이러니 내가 어떻게 담배를 끊을 수가 있겠는가. 비염 때문이긴 하지만 내가 이렇게 울면서 부탁하니, 숙박비까지 S양이 내가며 상대로 하여금 S양을 더 가치 없게 생각하도록 만드는 일은 오늘부로 그만 두길 권한다. 김유신 장군이 들었으면 큰 칼을 찾을 일이다. 그만 두자.

 

 

S양에게 보내는 매뉴얼은 이쯤에서 줄이기로 하고. 답변을 기다리는 이백팔십 몇 개의 카톡이 있었는데 그게 다 날아가 계속 마음이 편치 않다. 전에 한 애독자 분도

 

"근데 무한님, 저 3월에 카톡 보낸 적 있는데 무한님이 씹으셨어요. ㅋㅋㅋ"

 

라는 이야기를 하신 적 있는데, 그게 고의로 그런 건 아니고 대답을 몰아서 하려고 놔뒀다가 한 번씩 날려 먹어 중간 중간 이가 빠져서 그렇다. 카톡아이디를 블로그에서 내린 후로는 그런 일이 현저히 줄었지만, 그 전엔 열혈 글쓰기를 하고 있는 와중에 카톡이 오면 흐름이 끊겨 무음으로 해두기도 하고 일단 다 대답을 보류하다 보니 계속 쌓이게 되었다. 여하튼 일부러 무시하려고 대답을 안 한 것은 아니니, 시간이 지나도 '1'이 없어지지 않았다고 너무 야속하게 생각하진 말아주시길 부탁드린다.

 

지금 막 발견한 사실인데, 오늘이 금요일이었다. 몸이 아파 며칠 누워 있고 또 이후에 컴퓨터까지 말썽을 부린 까닭에 오늘이 금요일인지도 몰랐다. 좀 당황스러운데, 여하튼 다들 즐거운 불금 보내시길 바란다. 힘이 닿으면, 빼먹은 매뉴얼들을 주말에 발행하도록 하겠다. 불금 마음껏 즐기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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