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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연애오답노트

지독히 개인주의적인 남자와의 연애 외 1편

by 무한 2014. 8. 7.

지독히 개인주의적인 남자와의 연애 외 1편

이제 막 자리 잡고 돈을 벌기 시작했을 때 쯤, 부모님께 돈을 드리는 걸 아까워하던 친구가 있습니다. 그 친구도 처음에는 부모님께 효도하고 부모님 호강시켜드릴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연애도 해야 하고, 차도 사야하고, 결혼할 준비도 해야 하고, 그렇게 이런 저런 돈 들어갈 일이 많아지자 매달 일정하게 부모님께 드리던 돈을 아까워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십 쯤 드리던 돈을 이십으로 줄이고, 나중엔 그 이십도 드리다 말다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그 집 냉장고가 고장 났습니다. 한 집에 차 두 대가 있으면 나가는 돈도 많아지고 해서 친구 아버지 차는 없앤 상황이라, 친구 어머니께서는 친구에게 가전제품 매장에 같이 좀 가자고 부탁을 하셨습니다. 그렇게 같이 가긴 했는데, 매장에서 친구는 갈등했습니다. 어머니께서 자꾸 큰 냉장고를 사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한쪽으로 여닫는 저렴한 냉장고도 있었는데, 친구 어머니께서는 양문형 냉장고를 고르고 계셨습니다. 친구는 자신이 결제하려고 했던 까닭에 어머니께 큰 냉장고 필요 없다며 싼 냉장고를 사자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어머니께서는 이상하게도 그날따라 양문형으로 하시겠다며 고집을 부리셨습니다.

 

그렇게 친구 어머니와 친구의 옥신각신이 한참 계속 되다가, 친구 어머니께서는 "내가 살 거니까. 너는 아무 말 하지 말아라."라고 하셨습니다. 자신이 실수한 것 같은 감정을 느낀 친구는 양문형으로 사도 자신이 결제하겠다고 했지만, 어머니께서는 듣지도 않으시며 당신께서 계산하셨습니다.

 

집에 돌아와서는 친구 어머니께서 친구에게 통장을 주셨습니다. 그동안 친구가 줬던 돈이 다 들어있는 통장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앞으로 돈을 줄 필요 없으니 돈도 주지 말고, 집안일에 참견도 하지 말라는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친구가 용돈을 드리기 시작한 이후부터 이건 왜 샀냐, 저건 안 바꿔도 되지 않냐, 했던 부분들이 모두 친구 어머니께 서운함으로 남아있었던 것 같습니다. 친구 아버지께서는 받으신 돈을 다 쓰셨는지 아무 말씀 없이 그 광경을 보고만 계셨다고 합니다.

 

그날 일산의 한 공원 벤치에서 친구가 울며 제게 털어 놓은 이야기였습니다. 저는 친구에게

 

"어렸을 때 우리는 부모님께 나이키 신발 사달라고 조르곤 했는데,

이제 다 커서 부모님 신발 사 드릴 때가 되니까 그저 싼 걸로….

우리는 최신형 스마트폰 찾아 쓰면서,

부모님께는 효도폰 어쩌고 하며 대충 카톡이나 좀 되는 폰으로….

원래 한 부모가 열 자식은 키워도, 열 자식이 한 부모 모시긴 어렵다고 하잖아."

 

라는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당시 친구가 지갑을 두고 나왔다고 해서 공원에서 먹은 맥주 패트 몇 개와 닭강정은 제가 샀는데, 나중에 준다던 그 돈을 친구는 아직도 주고 있지 않습니다. 저도 그냥 제가 산 셈 치고 잊고 싶은데, 이런 쪽에는 기억력이 좋아서 잘 잊히질 않습니다. 더치페이 한다고 해도 만삼천오백원 받아야 하는데…. 농담이고, 출발해 보겠습니다.

 

 

1. 지독히 개인주의적인 남자와의 연애.

 

전에도 한 번 이야기 했지만, 평강공주가 바보온달을 변화시킬 수 있었던 건 '온달이 공주의 말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공주가 온달에게

 

"부디 시장 사람의 말을 사지 마시고,

나라에서 키우던 말 중에서 병들고 파리해져 쫓겨난 말을 골라 사십시오."

 

라고 했을 때, 온달이

 

"넌 말에 대해선 말을 말아. 내가 시장에서 잔뼈가 굵었는데 너보다 내가 더 잘 알지."

 

라고 했다면 공주의 선견지명을 빛을 잃었을 것이며, 왕의 눈에 띌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사람이라는 게 참 그런 것 같습니다. 이십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부터는 어떤 부분들에 대한 생각이 머리에 아예 인쇄된 듯 박혀 버립니다. 나쁘게 말하면 고집과 편견이라 할 수 있겠고, 좋게 말하면 주관과 철학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여하튼 그렇게 굳어진 생각들이 남들의 그것과 모양이나 빛깔이 달라도 어울릴 수 있으면 참 좋을 텐데,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특히 '나 때문에 남이 아팠겠구나.'하는 시간을 가져 본 일이 적을수록 그렇습니다.

 

서두에서 이야기 한 친구의 경우 부모님과의 저런 일이 없었다면, 여전히 자기 편한 대로만 생각하며 부모님을 짐처럼 여기거나 자신이 베푸는 호의에 대해 대단한 것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받은 것에 대해서는 잊은 채 베푼 것에 대해서만 생각하며 말입니다. 하지만 친구는 저런 일을 겪었고, 덕분에 앞으로는 좀 더 넓게 생각하며 폭군처럼 구는 짓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교통사고를 낸 적 있는 사람이 그 후로는 더 조심히 운전하게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런 부분에서 M양의 남자친구는 '무운전, 무사고'를 해왔던 것 같습니다. 무사고는 무사고인데 운전을 하지 않아 사고기록이 없는 것입니다. 때문에 그는 연애에서도 '우리'를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는 연애를

 

- 나는 성공해서 너를 기쁘게 해 줄 사람.

- 너는 내 성공을 기다리는 사람.

 

정도로만 나눠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서로 알아서 잘 살며 나중을 기약하면 되지, 뭐하러 현재의 사소한 감정들까지 나눠야 하는지 잘 이해를 못 하는 듯 보입니다. 데이트라고 치면, '쟤가 가고 싶다고 한 미술관에 다녀왔으면 됐지, 뭐하러 저녁 늦게까지 붙어 있어야 하나?'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M양이 먼저 함께 하자고 말하는 것 외에, 그가 M양과 같이 하고 싶은 일은 아무 것도 없고 말입니다.

 

M양이 제 여동생이었다면,

 

"일주일에 두 번 만나는 것, 나에게는 그게 지금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다."

 

라고 말하는 남자와는 당장 헤어지길 권했을 것 같습니다. M양이 화를 내면 그가 사과를 하고 달래주며 이런 저런 약속들을 하니까 M양도 억지로 여기까지 연애를 질질 끌어왔던 것 같은데, 이건 이미 진작 헤어졌어야 맞는 관계입니다. 그는 당장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공약을 던졌는데, 그 공약들은 대부분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때그때 사과는 참 잘했기에, M양도 이별을 유예만 해온 것 같습니다.

 

둘에게 이별이 필연적인 건, 남친이 원한 게 '여자친구'가 아니라 '인형'이었기 때문이라 저는 생각합니다. 그는 그냥 자신이 데려다가 앉혀 놓기만 하면 그 자리에 그 상태로 가만히 있는 여자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것에 견디다 못해 M양이 "우린 연인도 아니고 그냥 친구 같은 느낌이다."라고 했을 때, 그가

 

"난 친구들과 이런 대화를 하지도 않고, 이렇게 만나지도 않는다."

 

라고 한 것만 봐도, 이건 M양에게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가 좀 이상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어떻게든 남친을 양지로 이끌어 보려 M양이 렌트도 하고, 예매도 하고, 이런 저런 계획까지 다 짜서 준비를 해도

 

"난 집에 있는 게 더 편하다."

 

라고 말하는 남자와는 헤어지는 게 맞습니다. 보통의 여자 같았으면 수십 번도 더 헤어졌을 연애를, M양은 '그래, 사람은 다 다르니까. 그를 배려해야지.'라며 스스로 반쯤 인형이 되어가면서까지 버텼기에 참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여자친구에게 "난 혼자 있는 게 가장 편하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그냥 혼자 살 게 두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만나거나 대화하는 것까지도 남자친구에게 구걸해야 했던 그 연애에 미련두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번 주말에 여자친구와 워터파크 갈 계획을 짤 줄 아는 남자도 많으니, 그런 늪 같은 곳에서 허우적거리지 마시고 바로 빠져나오시길 권합니다. 터가 아무리 좋아도 그 기반이 모래면 거기다 농사 못 짓는 겁니다.

 

 

2. 흑백의 판정을 내리는 남친.

 

원만하게 지내는 게 꼭 능사는 아니다. 원만한 사람들과 원만하게 지내면 좋은 일이지만, 앞선 사연의 M양의 남친과 같은 사람과 원만하게 지내려고 하면 벙어리 냉가슴으로 살아가야 할 수 있다. 사연을 보낸 E양의 남친 역시 M양의 남친과 비슷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그걸 E양 혼자 참으며 눈물을 흘려봐야

 

"넌 너무 감성적이야."

 

같은 생뚱맞은 반응만 돌아올 수 있고 말이다.

 

앞선 사연과 비슷한 경우임에도 불구하고 E양의 사연에 충분한 가능성이 있는 건, E양의 남자친구가 E양과의 관계에 긴장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E양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기 때문이다. 또, E양 역시 위의 M양과 다르게 '어느 정도의 개인플레이'에는 오히려 편안함을 느끼는 타입이다. 그래서 같은 공간에서 남자친구는 노트북을 하고 있고 E양이 TV를 봐도, E양은 섭섭해 하거나 서운해 하지 않는다.

 

난 E양에게 세 가지를 권해주고 싶다.

 

ⓐ'너'말고 '나'에 대한 이야기하기.

 

남자친구가 판사가 되어 E양에게 "네가 실수한 거야.", "난 네가 사람들과 잘 지낸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일로 인해 사회성이 좀 부족한 게 아닌가 생각을 했어."라는 이야기를 할 때에는, 믿었던 남친이 저런 이야기를 하는 것에 대해 충격과 공포가 느껴지더라도 일단 말을 끊지 말길 바란다. 저 때에는 남친이 사람이 아니라, '논리적인 기계'가 되었다고 생각하려 노력해야 한다. 저런 말을 감성적으로 받으면 의사소통이 어려워진다.

 

남친의 말을 다 듣고 나서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남친이 모르고 있는 부분들에 대한 설명이다. E양이 왜 그런 말과 행동을 했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하자. 그래도 남친은 여전히 기계의 모습을 보이며 "그래도 잘못한 건 잘못한 거야."라는 식의 이야기를 할 텐데, 그럴 땐 '내 편'이 되어주긴커녕 가장 앞장서서 지금 날 심판하고 있는 사람이 남친이라고 말해주자. 남자친구의 그런 모습에 E양은 어떤 기분을 느끼는지, 가장 가까운 사람이 제일 앞장서서 비판을 한다는 게 얼마나 슬픈 일인지도 말해주자.

 

그렇게 말을 해 남친이 이해를 했다 하더라도, 그는 자신이 사과하면 지는 거라는 이상한 승패논리에 갇혀 "뭐,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알았어." 정도로만 어물쩍 넘길 수 있다. 혹은 "난 내가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에 대해서 가깝다는 이유로 모른 체 할 수 없어."라는 괴상한 소리를 꺼낼 수도 있고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대화를 포기하진 말자. 그럴 때일수록 힘을 내야 한다. 저런 얘기 하는 남친의 입을 한 대 때려버리고 싶은 그 미움을 짓누르며, 남친의 손을 잡자. 그러고는 "네가 내 친구에게 실수를 해도 난 그게 네가 나빠서 그런 게 아니라는 걸 안다. 그런 일이 벌어지면 엉망이 되어버린 상황 때문에 너도 기분이 좋지 않을 텐데, 그럴 때 난 너도 여러 생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속상할 너에게 사회성이 떨어져 보인다거나, 이번 일은 네가 잘못한 거라는 판정만 내리진 않을 것이다."라고 말해주면 된다. "너는 왜 내 마음도 몰라?"라며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말고, "지금 내 마음은 이래."라고 말해줄 수 있도록 노력하자.

 

ⓑ거울요법, 그리고 가르치기.

 

나도 E양의 남친과 비슷한 병이 있었다. 내가 친구A와 길을 가다 친구B를 만나면, A와 B를 소개시키지 못 하는 병. 나도 이걸 공쥬님(여자친구)에게 지적 받았고, 이십대 중반이 되어서야 고칠 수 있게 되었다. 공쥬님이 사용한 처방전은, "내가 만약 길을 걷다 친구와 만났는데, 그 자리에서 널 멀뚱멀뚱 세워두고 친구랑만 대화하다 보내면 어떻겠어?"라는 '거울요법' 이었다. 같은 일이 상대에게 벌어졌을 경우 어떤 감정이 들지 거울로 보여주듯 말하는 방법. 필요할 때 사용하자.

 

E양의 친척 어른 한 분이 중환자실에 입원하셨다는 얘기를 남친에게 했을 때, 그가 우물쭈물 거리다가 "가실 때가 되었나 보구나."라고 말한 건, 정말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나름 열심히 머리를 굴려 얻어낸 대답이다. 그건 마치 처음 장례식장을 간 사람이 장례식장에서 절을 먼저 해야 하는지, 향을 먼저 꽂아야 하는지, 아니면 밥을 먼저 먹어야 하는지 몰라서 실수를 하는 것과 같으니 E양이 가르쳐 주길 바란다. 그가 위로의 방법을 몰라 멍하니 있을 때면, "이럴 땐 그냥 날 안아주면 돼."라며 E양이 먼저 안기는 방법도 있으니, 하나 둘 씩 가르쳐 '멋진 남친'으로 만들길 바란다.

 

ⓒ"남만 평가하지 말고 너도 평가해봐."라고 말 할 준비하기.

 

"남만 평가하지 말고 너도 평가해봐."라는 말을, 난 E양이 언젠가 반드시 남친에게 꼭 해줄 순간이 오리라 생각한다. 그는 자신이 옳지 않아도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잘라 나가고 있고, 또 자신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모습과 다른 모습이 E양에게서 보이면 못마땅해 하는 편이다. 이걸 난 약간의 오만함이 차곡차곡 쌓여가는 중이라고 생각하는데, 훗날 그가 자신의 단점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으며 E양의 단점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그러는 너는 어떤 사람인데?"라는 뉘앙스의 말로 그의 오만함에 금을 내길 권해주고 싶다.

 

오랜 연애를 하다 보면 한 번쯤은 '내가 아깝다고 생각되는 순간'이 찾아오곤 한다. 상대가 내게 점점 의지하고 있을 때 그렇게 생각할 수 있고, 또 위에서 말한 것처럼 내 단점은 접어둔 채 상대의 단점만을 바라보게 되어도 그럴 수 있다. 그럴 땐 자신을 완벽한 사람으로, 상대를 결점이 있는 사람으로 착각하게 될 수 있는데, 바로 그때 "너에 대해서도 객관적으로 생각해 봐."라는 이야기를 해주자. 대개 이럴 때 이런 말은 못 하고 노력해보겠다며 매달리거나 과거의 좋은 추억을 기억해 보라며 애원하며 그의 근자감만 키워주고 마는데, 그러지 말고 꼭 "남만 평가하지 말고 너도 평가해봐."라고 당당하게 얘기하길 바란다.

 

 

오늘도 자전거 여행을 위한 특훈을 해야 하는 까닭에 배웅글 없이 마무리할까 한다. 하루만 버티면 불금이니 오늘 하루 무사히 버티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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