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4)

절친에게 심남이를 뺏긴 여린마음 그녀.

by 무한 2014. 4. 3.
절친에게 심남이를 뺏긴 여린마음 그녀.
묻어가는 건 참 편하다. 나 역시 여린마음동호회 회장인 까닭에 자신감이 떨어지는 순간에는 누군가에게 의지하려 하거나 묻어가려 한 적이 꽤 있었던 것 같다.

지금 바로 떠오르는 건, 결혼식 축가와 관련된 일이다. 난 꼬꼬마 시절에는 노래방 아저씨와 서로의 생일까지 챙길 정도로 노래방을 자주 다녔다. 이런 저런 공연을 하러 다닌 까닭에 노래방에서 연습을 했던 적도 있고, 주인아저씨와의 친분으로 고교생 요금인 7천원만 내고도 지칠 때까지 놀 수 있었기에 갈 곳이 없으면 친구들과 노래방에 갔던 것 같다. 그렇게 노래 부르는 게 생활이 되다보니 어디에서든 노래를 부르는 게 겁나지 않았다. 일산 라페스타가 생겼을 초기에는 야외무대에서 노래자랑도 많이 했는데, 길가다 참여해 경품을 타기도 했다. 늘 부르던 노래들이라 아무 망설임 없이 나가서 부를 수 있었다. 

그런데 노래와 담을 쌓고 살던 시간이 길어지니, 소리를 내는 감이 떨어지게 되었다. 노래를 부르면 목구멍이 간지러워지는 느낌과 함께 기침이 나오는 일이 생겼고, 예전엔 쉽게 올리던 고음도 올라가지 않았다. 호흡에도 변화가 생겼는지, 숨이 찼다. 명확한 원인은 알 수 없지만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엔 소리를 내는 근육들이 약해진데다가 오랜 흡연도 문제가 된 것 같았다. 그렇게 난 담배와 노래 둘 중 하나를 끊어야 하는 기로에 서게 되었고, 노래를 끊었다.

예전에 공연을 같이 하러 다닌 친구들이나 공연을 보러 왔던 친구들은 내게 축가를 부탁하곤 한다. 거절할 수 없기에 승낙을 하는데, 위에서 말한 문제들로 인해 난 노래를 부르는 것에 대한 자신감이 많이 떨어진 상태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누군가에게 묻어갈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되었다. 밴드 보컬을 하고 있거나 가수지망생인 지인들에게 듀엣을 부탁하는 것이다. 그렇게 듀엣을 하면 내가 실수를 해도 상대가 어느 정도 커버해 줄 수 있기에 마음이 편하다. 또, 둘이 함께 부른 까닭에 책임도 나눠질 수 있어 노래도 더욱 가벼운 마음으로 부를 수 있다. 나 혼자 불렀다면, 실수들도 온전히 내 책임이 된다는 생각에 마이크 잡은 손을 덜덜덜 떨 수도 있었겠지만 말이다.


1. 여린마음과 믿음.


축가는 위에서 말한 것처럼 남에게 좀 묻어가도 된다. 하지만 연애는 안 된다. 때문에 이전의 매뉴얼들을 통해서도 누누이 강조하지 않았던가. 그대의 연애에 아무도 끼어들지 못하게 하라고. 하지만 S양은 이걸 가볍게 생각했고, 자신의 절친은 믿어도 좋은 사람이라 생각하며 그녀에게 모든 걸 털어 놓았다. 절친이 도와주겠다는 뜻을 밝히자, S양은 그저 든든한 지원군이 생긴 것 같아 기뻐했을 뿐이다.

나도 사람을 잘 믿는 편이고, 누군가 내게 호의를 보이면 나 역시 그에게 호의로 보답하고 싶어 하는 타입이라 S양의 행동들이 낯설지 않다. 내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에게 기대하는 면도 있고, 그 사람도 내 마음 같을 거라 생각하며 빠르게 '내 사람'의 범주에 넣는 면도 있다.

내 사람이, 나 역시 싫어하는 A에 대해 좋지 않은 이야기를 하면, 난 '내 사람과 나 VS A'라는 관계가 정립된 거라고 너무 쉽게 믿었던 적도 있다. 그런데 그러다 보니 뒤통수를 맞는 일도 잦아졌다. 분명 내 편이라 생각했던 '내 사람'이, 언젠가 부터는 나와 나누었던 이야기들을 A에게 모두 일러바친 후 A와 어울리는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그것뿐만 아니라 난 절대 '내 사람'에게 하지 않을 것 같은 기만을, '내 사람'은 나에게 한 일도 있다. 난 영악스럽게 굴 줄 몰라서 그런 게 아니라 그가 '내 사람'이라서 그의 모든 면을 긍정적으로 생각했던 것인데, '내 사람'은 그런 나와는 달리 날 측량하고 있었던 것이다. 

위의 내 고백을 두고

"자, 저렇게 사람을 배신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러니 함부로 믿지 마세요."


라는 결론을 내면 나도 편하고, S양도 마음 편히 인간관계를 재정비하고, 읽는 사람들도 자신이 경험한 적 있는 배신을 털어 놓으며 속 시원하게 넘길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넘기고 나면 아무에게도 속내를 털어 놓지 말아야 한다는 이상한 결론을 낼 수 있고, 치명적인 문제가 고쳐지지 않아 언젠가 또 뒤통수를 맞을 수 있다. 그러니 그 '치명적인 문제'가 뭔지 함께 살펴보자.


2. 믿음, 그리고 의지와 기대.


여린마음을 지닌 사람은 불안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두려움의 실체가 분명히 있는 공포가 아니라, 막연하게 느껴지는 불안 말이다. 어제 쇼핑하며 사온 물건을 반품하는 경우라고 해보자. 그러면 여린마음 동호회 회원들은 '내 사람'에게 아래와 같은 이야기들을 하게 된다.

"이거 반품하겠다고 하면 받아줄까?"
"저녁쯤에 나가서 반품할 건데 같이 갈래?"
"포장을 뜯어서 반품 안 된다고 하면 어쩌지?"



자신이 직접 나가서 부딪혀 보면 결과를 알 수 있는 일을, 결과를 모르긴 마찬가지인 상대에게 털어 놓는 것이다. 그러고는 상대가 "받아 줄 거야. 저녁에 같이 가 보자."라고 말하면 안심하며 상대와 만날 약속을 잡는다.

연애와 관련해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여린마음의 그들은

"지금 카톡 보내면 답장이 올까?"
"뭐라고 보내면 좋을까?"
"혹시 그가 내 카톡을 귀찮게 생각하지 않을까?"



하며 '내 사람'에게 계속해서 확인을 받으려 한다. 그러다 보면 전에 이야기 한 것처럼, 상대는 늘 확인 받으려 하는 이쪽을 어린애처럼 보게 될 수 있고, 자신의 말에 따라 움직이는 이쪽을 깔볼 수 있다. 내 말을 못 믿겠다면 딱 일주일 정도만 누군가에게 '뭐든 확인 받으려는 모습'을 보여줘 보길 권한다. 일주일 후, 지금 둘의 관계와는 전혀 다른 관계가 형성되어 있을 테니 말이다.

'내 사람'이라고 여기며 상대를 믿는 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상대를 믿으며 의지하려 하거나, 상대가 나에게 '나에게 없는 것'을 주길, 또는 '내가 할 줄 모르는 것'을 대신 해주길 기대하며 발생한다.
 
S양이 절친과 심남이를 만나게 했던 그 날을 떠올려 보길 바란다. S양은 심남이에게 만나자는 카톡을 보내도 좋을지에 대해 절친에게 물었고, 그렇게 연락을 하다가 심남이와 만날 약속을 잡았을 때 절친도 데려가기로 했다. 긍정적인 조언을 많이 해준 절친인 까닭에, 심남이와 함께 만났을 때에도 그녀가 S양을 도와줄 거라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기대와 달리 절친과 심남이는 현재 연인이 되었다.

"정말 이해할 수 없네요.
제가 심남이의 답장 하나에 얼마나 들뜨고 신나했는지
절친도 분명 눈앞에서 그렇게 봐 놓고도…."



우선 난, 아직 만난 지 반년도 안 된 친구를 '절친'이라고 힘주어 말하는 S양을 이해하기 힘들다. 여기서 보자면 둘은 몇 번 밤새 이야기를 나눴을 뿐인데, S양은 그녀를 세상에서 가장 친한 사람을 설정한 후 그녀도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친한 사람으로 여길 것이라 철석같이 믿고 있다.

"절친과 저는 정말 빨리 친해졌고, 서로를 돈독하게 믿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별별 얘기를 다 하고 서로 모르는 비밀이 없을 정도로 대화하는 사이였습니다."



그러면 딱 그 정도의 사이로 지내면 된다. 너는 너의 삶을 살고, 나는 나의 삶을 살면서 우리가 만나는 시간에 '우리'가 되면 된다. 그런데 S양은 상대와 친해진 순간부터 '우리의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며 상대에게 의지하려 했고, 또 절친이 우리의 삶을 이끌어 가주길 기대했다. 절친과의 우정만을 동력삼아 삶을 살아가려 한 것이다.


3. 의지와 기대, 그리고 배신.


절친과의 우정만을 동력삼아 삶을 살아가려 하면, '배신'이라고 생각되는 감정을 느낄 일이 많아진다. 서두에서 말한 축가 이야기를 좀 더 해보자. 나와 여러 번 함께 축가를 불렀던 지인이 있다. 난 그 지인과 듀엣을 하는 것이 만족스러웠고, 지인 역시 나와의 듀엣을 만족스러워 했다. 그래서 난 그가 축가를 부를 일이 있을 때 나에게 함께 하자는 제안을 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지인은 자신이 혼자 주목 받는 것에 즐거움을 느끼는 타입이었고, 때문에 축가를 부를 일이 있을 때 나에게 아무 제안도 하지 않았다.

꼬꼬마 시절 친구들과 어울려 동대문에 옷을 사러 갈 때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난 당시 A군 친했다. 그래서 동대문에 갈 때마다 A군에게 같이 가자는 제안을 했다. 그는 매번 흔쾌히 승낙했고, 난 우리가 동대문에 나가서 쇼핑을 하는 것에 대해 그 역시 즐거워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날 A군이 B군과 함께 동대문에 나갔다 온 것을 알게 되었다. 난 그 소식을 듣고 마음속에서 무엇인가가 깨지는 듯한 느낌을 느꼈는데, 사실 따지고 보면 그건 내가 실망할 일도 아니었다. 옷 입는 스타일은 A군과 B군이 비슷했으니, 그 둘이 쇼핑을 가는 게 더 즐거웠을 것 아닌가. 하지만 난 '우리'가 세트로 움직일 거라고 여겼던 기대가 깨어진 까닭에 서운하고 섭섭했다. 

이미 엎질러진 물 같은 '절친과 심남이'에 대한 이야기는 접어두더라도, 난 S양이 여전히 친구들에 대해

'걱정과 고민을 다 털어 놓을 수 있을 정도로 믿을만한 친구들'


이라고 말하는 것이 염려된다. 친구는 내 모든 걱정과 고민을 털어 놓으라고 존재하는 게 아니다. 걱정과 고민에 대해선 S양이 스스로 고민하고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 스스로의 고민과 책임이 없이 늘 우정에 기대기만 하면, 친구들에게서 '배신감'을 느끼는 건 시간문제일 것이다.

이번 사건을 두고도 S양은

"정말 이렇게 비참할 수가 없어요.
이 힘든 상황을 내 친구에게 털어 놓고 싶은데,
절친이 저렇게 된 까닭에 그럴 수도 없어요.
털어 놓을 수 있는 친구들은 멀리 떨어져 있어서
내 옆에서 위로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어요.
여기 있는 다른 친구들도 있긴 하지만,
그 둘의 얘기를 제가 뒤에서 하고 다닌 게 될까봐 말도 할 수 없어요."



라고만 말한다. 난 S양에게, 그걸 누군가에게 다 털어 놓거나 위로 받지 않고 한 번 견뎌보길 권해주고 싶다. 여기서 기대다 실망하면 저기 가서 기대고, 또 저기서 기대다 실망하면 또 다른 곳을 찾아가 기대다간 늘 정서적 보호에 목말라 하는 생활만을 하게 될 수 있으니 말이다.


S양은 또

"더 이상 누군가를 만나기도 지쳐요.
그냥 혼자 다닐까요? 혼자 다니면 저에게 더 안 좋을까요?"



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필요하다면 혼자서도 뭔가를 해보길 바란다. 혼자 식당도 가보고, 혼자 영화도 봐 보고, 혼자 가까운 곳을 돌아다녀 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다. 그간 두려움 때문에 누군가와 함께가 아니면 가지 않았던 곳들을 혼자 돌아다녀 보면, 스스로 뭔가를 할 때의 즐거움도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혼자 하지 못했던 것들이 별로 겁낼 일도 아니었다는 것 역시 알게 될 거고 말이다.

사연에 등장한 절친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거리를 두라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그녀는 "그와 연애를 시작했지만 나에게 1순위 친구는 너다. 그걸 그에게도 말했다. 그랬더니 질투하더라."라는 피콜로 더듬이 빠는 소리를 하고 앉아 있는데, 피콜로 더듬이는 혼자 열심히 빨라고 내버려두자. 이런 상황에서 S양이 정말 소중한 친구 운운하며 그 둘이 부른다고 찾아가 들러리 하는 건, 스스로를 두 번 죽이는 일이라는 걸 잊지 말길 바란다.



"그 친구와 저는 정말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인데…." 그게 지금, 잘 떼어진 것 같은데요?





<연관글>

미적미적 미루다가 돌아서면 잡는 남자, 정체는?
2년 전 썸남을 아직도 잊지 못하는 Y양에게
동료 여직원에 대한 친절일까? 아님 관심이 있어서?
철없는 남자와 연애하면 경험하게 되는 끔찍한 일들
연애경험 없는 여자들을 위한 다가감의 방법

<추천글>

유부남과 '진짜사랑'한다던 동네 누나
엄마가 신뢰하는 박사님과 냉장고 이야기
공원에서 돈 뺏긴 동생을 위한 형의 복수
새벽 5시, 여자에게 "나야..."라는 전화를 받다
컴팩트 디카를 산 사람들이 DSLR로 가는 이유
카카오뷰에서 받아보는 노멀로그 새 글과 연관 글! "여기"를 눌러주세요.

 새 글과 연관 글을 편하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