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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4)

허술한 남친, 그래서 그를 함부로 대하게 된 여친

by 무한 2014. 2. 20.
허술한 남친, 그래서 그를 함부로 대하게 된 여친
여행을 가서 초짜 가이드를 만났다고 해보자. 가이드가 사람은 착한데, 여행자보다 여행지에 대한 정보를 더 모른다. 센스도 떨어져서 여행자들의 사진을 찍어줄 줄도 모르고, 돌발상황이 생겨 여행자가 질문하면 "그건 제가 알고 있는 지침에 없는 내용인데…."하는 이야기만 한다. 순박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좀 바보 같아서 그런 건진 모르겠지만 여행객들을 대상으로 바가지 씌워서 파는 물건을 "이거 정말 좋아 보이네요."하며 자기도 구입한다. 그의 허술한 모습을 본 여행객들이 그를 골려주려고 일부러 곤란한 요청을 하면, 그는 "아 그건 좀 곤란한데…. 죄송합니다."하며 진지하게 사과를 한다.

여행자들이 부탁한 일은 잘 처리한다. 자신의 사비를 털어 약을 사다주기도 하고, 누군가 시간을 좀 융통성 있게 조정하자고 하면 그 의견을 받아들여 최대한 조율한다. 여행객들을 대신해 총대를 메라고 하면, 그는 기꺼이 총대를 메고 앞장서서 장렬하게 전사하기도 한다. 다시 말하지만, 그는 악하거나 교활하지 않고 참 착하다. 다만 허술할 뿐이다. 


1. 두 가지 질문.


나는 B양의 남자친구가, 저 초짜 가이드와 비슷한 상황에 놓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시간이 흘러 그에게서 허술함이 지워지고 그게 능숙함으로 바뀌었을 때에도, '악하거나 교활하지 않고 참 착한 사람'으로 남아있을지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지만, 여하튼 적어도 지금은, 그런 것 같다. 그는 B양에게 좋은 남자친구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B양이 바라는 남자가 되기 위해 스스로를 변화시키고 있다.

그런데 B양이 원하는 남자는 '능숙한 가이드'와 같은 남자다. 그녀는 자신이 어디로 가야할 지를 말해줄 수 있는 남자를 원한다. 사진을 좀 찍어달라고 말하기 전까지는 멀뚱하게 서 있는 초짜 가이드 같은 남자 말고, 알아서 다가와 "제가 찍어드릴게요. 저 문 앞에 서 보세요. 문 앞에서 찍어야 사진이 잘 나와요."라고 말해줄 수 있는 능숙한 가이드 같은 남자 말이다.

그래서 어렵다. 차라리 이 사연을 B양의 남자친구가 보냈더라면, 난 그에게 전화를 걸어

"당신은, X맨이, 아닙니다."


라고 이야기 했을 거라는 건 훼이크고,

"배부른 사람에게 그래도 한 입만 먹어 보라며 계속 숟가락 들이밀면,
상대는 짜증만 날 뿐입니다. 그건 상대를 위하는 게 아니에요."



라는 이야기를 해줬을 것 같다. 넘치는 헌신과 호의로 인해 배가 부른 B양을 다시 연애에 집중하게 만들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은, 헌신과 호의를 잠시 줄여 B양을 배고프게 만드는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사연을 보낸 건 B양이니, B양에게 간단한 질문을 두 개 던지는 것으로 대신해야겠다. 내 질문은 아래와 같다.

ⓐ이 남자만큼이나 B양의 말에 귀를 기울여줄 남자를 또 만날 수 있겠는가?
ⓑ정반대의 남자를 만난다면, 그가 B양이 현재 남친을 대하듯 B양을 대하진 않겠는가?



위의 질문을 정말 진지하게 한 번 고민해보고, 답을 낸 뒤 다시 한 번 더 고민해 보길 바란다. 어찌 보면 B양은 많은 여성대원들이 바라는 '다정다감하며 여자친구에게 집중하는 남자'를 남자친구로 두고 있는 것인데다가, 허술한 사람을 가르쳐 능숙하게 만들긴 쉬워도 그 반대는 어려운 법이니 말이다.


2. B양은 괜찮은 여자인가?


난 만약 공쥬님(여자친구)이

"완전 황당해. 아침에 세탁소에 들렀는데 세탁소 아저씨가…."


라는 이야기만 해도

세탁소 아저씨 - 용서 받을 수 없는 죄를 지은 가해자.
공쥬님 - 세탁소 아저씨 때문에 여린 마음을 다친 피해자.



라고 설정한 뒤, 즉시 공쥬님의 변호인이 되어 '세탁소 아저씨가 악의 축인 7가지 이유를 만들어 낸다. 복구공사는 감정의 쓰나미가 다 지나간 뒤에 해야 한다는 걸 알기에, 설령 공쥬님이 잘못한 일이라고 해도 우선 변호인이 되어 감정의 쓰나미가 얼른 지나가도록 돕는다. 그러고 난 뒤 감정이 잔잔해지면 그때 피해현장으로 뛰어들어 복구공사를 한다.

그런데 이런 나라고 해도 B양을 감당할 순 없을 것 같다. B양은

[내가 B양의 변호인이 되었을 시]
"내 편 들어주려고 애쓰지 마. 꼭 그 아저씨만 잘못한 건 아니니까."

[내가 판사가 되어 잘잘못을 가릴 시]
"내가 지금 너한테 그런 얘기나 듣고 있어야겠어? 그래 다 내 잘못이다."



라는 반응을 보일 테니 말이다. 애초에 화풀이 할 목적으로 대화를 시작한 사람과는 정상적인 대화를 할 수 없는 법 아닌가. B양은 이 부분에 대해

"그냥 하나가 미우니까 다 미운 것 같기도 하고…."


라며 쉽게 말하는데, 이런 B양의 성격을 감당할 수 있는 남자는 찾기 어려울 거라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이건 그냥 심술을 부리는 것 아닌가. 심술을 부리는 여자에겐 그 어떤 남자도 오래 머물 수 없다. 맞춰주다가도 하나 둘 포기하는 부분이 많아질 것이며, 뭘 택하든 결국은 화풀이 대상이 되어줘야 하는 역할에 지치게 될 것이다.

'짜증내고, 화내고, 잔소리하며, 남자로 하여금 눈치만 보게 만드는 여자'


에겐 필연적으로 질릴 수밖에 없다.

상대가 내 사람이 되기 전까지는 그에게 좋은 모습만 보여주다가, 내 사람이 되고 나면 내 가장 지독한 모습들을 꺼내서 보여주는 거, 정말 좋지 않은 버릇이다. 날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의무적으로라도 살갑게 굴어 좋은 평가를 받고, 정작 나와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폭군으로 군림하는 것. 이건 주로 가정에서 독재자의 모습을 보이는 일부 가장들에게서 볼 수 있는 모습인데, 이 모습이 B양에게서도 보인다. 난 B양이,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의 명대사

"I have always depended on the kindness of strangers."


라는 말을 할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내 좋은 모습만 본, 낯선 사람들의 친절에 의지해서 사는 삶은 위태롭고 외로울 수 있으니 말이다.


3. 바꾸려면 뭘 어떻게 시도해야 할까?


우선, 남자친구에게 불만을 표시할 때에는 최소한 세 문장 이상으로 말하길 권한다. 지금처럼

"너나 많이 해."
"그냥 가."
"지금 말하고 싶지 않아."



라고 얘기하면, '남친은 문제를 몰라 풀 수 없고, B양은 답을 못 들어 답답해하는' 갈등만 계속 반복될 것이다. 말을 거칠게 하는 것도 문제인데, 타고난 성격상 말을 예쁘게 하는 게 힘들다면 우선 '서론-본론-결론'의 세 문장으로 정리해서라도 말해보길 바란다. 위의 "그냥 가."의 경우,

ⓐ써프라이즈도 좋지만, 나 야근할 때가 많아서 너 와있으면 마음이 조급해진다고 했잖아.
ⓑ그런데 넌 또 와서 무작정 기다린다고 하니까 고맙기보다는 미안하고 부담스러워.
ⓒ나 일 마치려면 세 시간을 걸려. 그러니까 나 도와주는 셈 치고 오늘은 그냥 가.



라고 풀어서 말하면 된다. 둘의 카톡대화를 보면, B양은 '결론'의 한 조각만 상대에게 던져놓고는, 상대가 찰떡같이 알아듣길 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게다가 거기에 '상대가 이쪽의 발을 밟으면, 이쪽에선 상대의 머리를 후려쳐 복수하려는 태도'가 더해져, 아무 것도 아닌 일로 두 사람이 큰 상처를 입고 마는 경우가 많다. 위의 "너나 많이 해."를 보자.

B양 - 배터리 또 놓고 나왔네. 오늘은 배터리 하나로 버텨야 해.
        회사에 충전기도 없는데….
남친 - 자꾸 깜빡하니까, 그걸 현관 쪽 콘센트에 꽂아두면 어떨까? 
         그럼 아침에 출근하다가 눈에 보이니 챙길 수 있을 것 같은데. 
B양 - 됐다. 할 일 해.
남친 - 화났어? 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말해준 건데, 왜 화 난 거야?
B양 -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방법 말해 달랬어?
        속상해서 한 말인데, 그냥 같이 속상해 주면 안 돼? 
남친 - 같이 속상해 한다고 달라지는 게 없잖아.
          난 또 깜빡하는 일이 없도록 현관 쪽 콘센트에다 충전하라고 한 건데….

B양 - 너나 많이 해.



B양은 위와 같은 상황을 두고 "남자친구가 진짜 여자를 몰라서 그러는 건지, 아니면 자존심 세우려고 끝까지 주장을 굽히지 않는 건지 모르겠어요."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정말 그게 모두 상대만의 문제일까? 위의 대화에서 B양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을까? 난 "됐다. 할 일 해."대신, "오늘부터는 그래야겠다. 자꾸 깜빡해서 속상하네."라고만 했어도 이 대화가 갈등으로 이어지진 않았으리라 생각하는데, B양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전부 다 상대가 B양에게 맞추길 기대만 하지 말고, B양이 할 수 있는 일부터 해보길 권해주고 싶다. 자신은 아무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상대에게 불만만 품는 건 이기적인 태도다. 반대로 B양이 남자친구에게 "너나 많이 해."라는 말을 들었다면 그 즉시 이 연애를 끝냈을 것 아닌가. 저 말을 듣고도 계속 사귀는 건 B양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을 테니 당장 헤어지자고 했을 텐데, 왜 그 말로 인해 남자친구 역시 상처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생각하지 않는가. B양의 그런 태도에 속상한 남자친구가 속상하다고 말하면, B양은 또 자존심을 세우느라 열심히 변명과 합리화를 하다 "그럼 헤어지자."라며 초강수를 둔다.

장담하는데, 그런 태도는 상대로 하여금 B양과의 인연을 끊는 걸 진지하게 고민하도록 만들고 말 것이다. 자존심을 짓밟는 멘트와 극단적인 통보에 상대는 면역이 될 것이고, 나중엔 '이런 여자와의 미래가 행복할 리 없어.'라는 생각을 하며 B양의 협박을 덤덤하게 받아들일 것이다. 지금이야 B양이 남자친구를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으니 헤어져도 상관없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언젠가 목숨을 걸고서라도 되돌리고 싶은 관계를 B양이 스스로 망쳤다는 걸 발견했을 땐, 손이 다 닳도록 빌어도 돌릴 수 없을 것이다. 그제야 '있을 때 잘 할 걸.'하고 후회해 봐야 버스는 이미 지나간 뒤 일 테니, 상대가 옆에 있는 이 순간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하길 권한다.


난 개인적으로 B양의 이전 연애들이 궁금하다. B양은 사람을 안 믿는 것 같은데, 그러면 이전의 연애들도 마음에 보호필름을 잔뜩 붙인 채 상대들을 만났던 게 아닌지 궁금하다. 키케로는 말했다.

"The better a man is, the less ready is he to suspect dishonesty in others."


의역하면, 남을 많이 속이는 사람일수록 다른 사람을 믿지 못한다는 뜻이다. B양 자신을 위해서라도, B양에게 작은 상처도 주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남자친구에게 한 뼘 더 솔직해져 보길 권한다. B양 혼자 다 짐작하고, 탐구하고, 시험하고, 결정하는 연애는 스스로에게도 결코 보금자리가 될 수 없을 테니 말이다.



▲ "세탁소 얘기…, 그럼 무한님은 무조건 공쥬님 편드시나요? 어떤 상황에서도?"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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