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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연애오답노트

반년을 사귀었어도 마음을 열지 않던 여자

by 무한 2013. 12. 10.
반 년을 사귀었어도 마음을 열지 않던 여자친구
내가 오늘 J군을 만나 '좋은 형동생'으로 지내기로 했다고 가정해 보자. 당장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내가 J군에게 아래와 같은 질문을 하기 시작한다.

"J군아, 만약 넌 내가 보증을 서달라고 부탁하면 서줄 수 있어?"


J군이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게 맞다면, 서로 알게 된 지 24시간도 지나지 않은 사람의 보증을 들어줄 리는 없을 것이다. J군의 부정적인 대답에 나는 실망한다. 하지만 크게 내색하지 않으며 일주일 간 J군과 연락하며 지낸다. 일주일이 지난 뒤 내가 다시 묻는다.

"J군아, 지금은? 지금은 내가 보증을 부탁하면 서줄 수 있어?"


J군에겐 내가 어떻게 보일까? 정말 '좋은 형동생'으로 지내려는 사람처럼 보일까, 아니면 보증 서달라는 부탁을 하기 위해 '좋은 형동생'이라는 간판을 걸려는 사람처럼 보일까? J군의 이야기, 출발해 보자.


1. 빨리 애틋한 사이가 되고 싶다는 욕심?


J군은 자신이 당시 '연애조급증'을 앓았던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미안하게도 여기서 보기엔 그건 '연애조급증'이라기보다는 그냥 '급한 남자'의 모습이었던 것 같다.


집에 데려다 주면서 키스를 시도 할 생각이었습니다.

뽀뽀만 해주기에 "겨우 뽀뽀야?"라고 말하자 여자친구가 집에 간다고 하였습니다.

"오늘은 너랑 꼭 키스하고 싶다."



머릿속이 온통 '키스해야지'라는 생각만으로 꽉 차 있는 남자 같다. J군이 이십대 초반의 모태솔로 부대원이라면 스킨십에 대한 환상이려니 하겠지만, J군은 두 번의 연애경험이 있는 이십대 후반의 남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J군은 '키스를 목적으로 만나는 남자'로 보일만큼 키스에 집착했다. 이걸 두고 J군은

"여자친구에겐 저에 대한 믿음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빨리 사랑과 믿음이 생기길 바란 까닭에 제가 더 재촉했던 것 같습니다."



라고 말하는데, 서두에서 말한 '보증'의 이야기를 떠올려 보길 바란다. 내가 J군에게 "이젠 우리가 알게 된 지도 3개월이 넘었으니, 보증 서 줄 수 있는 거지? 이젠 날 좀 믿을 수 있지 않아? 아직도 못 믿어?"라고 말한다면, J군의 마음은 어떨 것 같은가? J군 구여친의 말을 들어보자.

"오빠는 꼭 마지막에 분위기를 망치더라.
오빠는 이러려고 날 만나는 거야?"



데이트만 하면 꼭 '기-승-전-스킨십'이니, 만남의 의도마저 의심스러워 지고 만 것이다. 다시 보증의 얘기로 잠시 돌아와서, 내가 J군을 만나 밥도 사고, 술도 사고, 당구비도 내고 난 뒤에

"자, 이제는 나 믿을 수 있지? 보증 들어줄 거지?"


라고 얘기한다면, J군 역시 내 행위를 '보증을 서달라고 부탁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겠는가? J군이 바래다준다고 해도 구여친이 극구 거절한 것 역시, 위의 행동이 원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말이 좋아서 배웅이지, 집까지 같이 걸어가며 '키스할 기회'만 호시탐탐 노린다는 게 눈에 뻔히 보이는데, 어찌 배웅에 감사할 수 있겠는가. 난 둘이 점점 멀어진 이유가, J군이 그녀가 하는 말이 아니라 오로지 그녀의 입술에만 집중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2. 의미 없는 호의.


J군이 내 동생이었다면, 난 

"어머니껜 내복도 한 벌도 안 사드리면서, 거기서 뭐 하고 있는 거야?"


라는 이야기를 했을 것 같다. 데이트를 할 때 모든 비용을 지불하고, 만날 때면 향수나 액세서리를 선물하고, 그것도 모자라 데이트를 하다가 여자친구에게 어울릴 것 같은 장신구가 보이면 선물하고, 한 달에 한 번 씩은 꼭 꽃다발을 선물하고, 식사는 고급 레스토랑이나 일인당 5만원 정도하는 식당에서 하고…. 그러면서 "경제적인 부담 때문에 정말 너무 힘들었습니다."라고 말하는 남자에게 나는

"이것 보세요. 멍충한 짓을 하니까 멍충이 소리를 듣는 겁니다."


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저는 정말 물질적, 정신적으로 모든 걸 주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저건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게 아니라, '삽질을 했다'고 말해야 맞다. 누가 파라고 한 것도 아닌데 J군 혼자 열심히 파 놓고 "정말 손이 다 부르텄지만 정신력으로 팠습니다. 제가 얼마나 깊이 팠나 보세요."라고 얘기하면, 난

"그거 왜 파셨어요?"


라고 물을 수밖에 없다. 정말 고생했다느니, 내가 본 어느 구덩이 보다 깊이 팠다느니 하며 J군을 토닥토닥 해줄 수 없다는 얘기다.

혹시 그런 걸로 배틀 같은 걸 하고 싶은 거라면, 파주 쪽에 '바'가 하나 있는데 거기 한 번 가보길 권한다. 거기 가면 바에서 일하는 여자의 환심을 얻으려 땅까지 판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옷도 사주고 차도 사주고 하며 농촌총각들이 배틀을 벌이고 있는데, 거기 한 번 참여해 보길 바란다. 단, 전에 한 번 이장 아들과 김씨 아저씨네 아들이 낫 들고 싸운 적 있으니 몸조심은 해야 할 것이다.

글쎄 난 모르겠다. J군은 구여친이 그렇게 다 받기만 했다고 분개하는 것 같은데, 받아 챙기기만 한 그녀도 그녀지만, 이건 선물을 하거나 카드를 긁는 것으로 마음을 얻으려고 한 J군이 원인을 제공한 게 아닌가 싶다. 만약 J군의 친구가, 월급 백삼십 받는데 데이트비용으로 백만원이 들어서 힘들다고 한다면, J군은 그에게 뭐라고 말할 것 같은가? 그게 바로 내가 J군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3. 그럼 전부 J군의 잘못 때문인가?


그렇지 않다. "이십대 중반이야. 이 나이에 어떻게 김밥천국 같은 곳에서 데이트를 해?"라는 이야기를 하는 그녀도 분명 범상치 않은 여자다. 저건, 김밥천국 사장님이 들었으면 피가 거꾸로 솟을만한 멘트고 말이다. 또 그녀는

"데이트 비용은 무조건 남자가 내야 한다."


라고 생각한다. 이게 J군이 멍충이처럼 구니까 멍충하게 봐서 한 말인지, 아니면 실제로 연애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어서 저런 얘기를 하는 것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녀가 "사귀자는 말은 꽃다발과 직접 쓴 손편지 주면서 해줘."라고 요구했던 걸 보면 후자일 가능성이 높은 것 같다.

우리끼리니까 하는 얘긴데, 그런 여자들이 있다. 자신의 판타지를 몸소 실천하고 있는 여자들 말이다. 그녀들은 동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공주, 혹은 차도녀에 빙의되어 현실과 동떨어진 삶을 산다. 여자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작은 환상 같은 걸 말하는 게 아니다. 이건 그것보다 훨씬 위험한, 분명 뭔가 이상한 여자에 대한 얘기다. 그녀들은 사고하는 방식이 일반인과 살짝 다르기에 일반인은 그녀들을 이해하기 어렵다. 난 J군의 사연 중


(백화점에서)
J군 - 자기 전에 **산다고 했잖아. 저기서 사면되겠다.
구여친 - 응. 맞아. 저기서 사야겠다.
구여친 - (구매 후, 계산을 안 하고 J군을 쳐다본다.)
J군 - 아, 나 아까 돈을 다 써서 지금 현금이 없는데.
구여친 - 그런데 왜 사라고 했어? 왜 사람 창피하게 만들어? 나 갈게.



(여자친구가 친구들과 만난 날)
J군 - 끝나고 전화해줘~
구여친 - 응.
J군 - (4시간을 기다리다 연락해선)집에 잘 들어간 거야?
구여친 - 들어와서 자고 있다가 오빠가 연락해서 깼잖아.
             (짜증내며)나 자다 깨면 다시 잘 못 자는 거 몰라?



J군 - 난 이렇게 너희 집 근처에서 데이트 하고 집으로 돌아가야 하고,
        또 만나면 내가 다 부담해야 하는 게 사실 좀 벅차.

구여친 - 나 피곤해. 나중에 얘기해. 나 먼저 들어갈게. 오빠도 조심히 들어가.
J군 - 그래…. 잘 가.



라는 부분들에서 구여친의 '이상한 모습'들을 봤다. 겉으로만 보면 이게 그냥 그녀가 '이기적인 여자'라서 그러는 것처럼 보이는데, 사실 또 그렇진 않다. 그녀는 웬만한 정성으로는 하기 힘든 걸 만들어 J군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그녀가 이러는 이유를 난, '판타지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연애를 하는 게 아니라 연기를 하는 거라고 할까. 보통의 남자를 만났다면 금방 헤어졌겠지만, 반년 간 J군이 (이상한 오기로)이를 악 문 채 이 연애를 떠받치고 있었기에 유지될 수 있었던 것 같다.


헤어진 후 J군은 '나였으니까 저런 구여친을 버티고 있었던 거지, 다른 남자라면 못 버틸 걸?'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미련도 남지 않아 마음이 편해졌다. 그러다가 얼마 전 카톡에 뜬 그녀의 사진을 봤다. 그녀는 연애 중이었다. 그래서 J군은 '다른 남자랑은 잘 사귀네? 그럼 내가 잘못되었던 건가?'하며 멘붕을 경험했다. 그럼 대체 뭐가 문제였던 건지 찾다가 J군은 노멀로그를 알게 되었고, 나에게 사연을 보내게 되었다.

난 J군에게, 상황이 바뀌면 사람도 바뀌는 것이고, 또 반대로 사람이 바뀌면 상황도 바뀌는 것이라 그럴 수 있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전에 내가 얘기한 K군의 구여친과 현여친의 이야기를 기억하는가? K군은 자존감이 낮은 구여친을 시녀 대하듯이 대했지만, 도도한 현여친에겐 자신이 집사가 되어 그녀의 시중을 들고 있다. 그녀와 헤어질까봐 확실하게 반대 한 번 못 하던 J군과 달리, 현남친은 강한 카리스마로 그녀와 조율을 해 나가는 것일 수 있다. 그렇다면 그녀도 '내가 이러면 헤어질 수 있겠구나'하는 두려움을 느끼고 있을 테니 말이다. 

또는 J군과의 연애를 거울삼아 그녀가 스스로 자신을 고쳐나가는 것일 수 있다. 시행착오를 겪었으니 이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된 것이라고 할까. '내 남자친구는 날 공주처럼 대해야 해'하는 생각이, 이제는 '나만 그런 대접을 받을 게 아니라, 나도 남자친구를 왕자처럼 대해야 하는구나.'하는 생각으로 바뀌었을 수 있단 얘기다.

다음 연애를 한다면, 우선 내게 사연을 보낼 일 없을 만큼 둘이서도 조율이 가능한 연애를 하길 바란다. 혹 사연을 보낼 일이 생기더라도 신청서에 '모름'이라고 적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반년을 함께 지냈는데 상대의 간단한 인적사항조차 모르는 건, 아무 생각 없이 TV보며 시간 보내는 듯한 그런 연애만 했다는 증거다. 헌신과 접대와 호의로만 이루어지는 연애 말고, 관심과 애정과 배려가 있는 연애를 하길 바란다.



"전 제가 가진 모든 것을 주면서…." 없는 것까지 주려다 신불자 된 선배들도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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