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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커플생활매뉴얼

화나면 막말하던 남자친구와 헤어진 여자

by 무한 2013. 6. 27.
화나면 막말하던 남자친구와 헤어진 여자
사연을 보낸 E양에게는 우선 미안한단 얘기를 해주고 싶다. E양이 처음으로 사연을 보내 건 2월이었는데, 난 사실 굳이 내가 매뉴얼로 다루지 않더라도 그 만남이 금방 끝날 줄 알았다.

"넌 삼 일이 멀다하고 그 지X이냐.
병원에 가. 주변사람 괴롭히지 말고. 정신병원 가는 거 어려운 거 아니야.
가서 항우울제라도 먹든가. X같으면 네가 혼자 이겨내든가."



라는 얘기를 하는 남자와 이렇게 오래 사귈 줄은, 정말 몰랐다. 남자친구에게 저런 말을 듣고 화를 내긴커녕, 진심으로 반성하는 여자가 있으리라고는….

아무튼 출발해 보자.


1. 스물여섯에 7천만원 모은 남자, 강한 생활력?


E양이 매뉴얼의 내용을 좀 오해한 것 같다. 내가 매뉴얼을 통해 "생활력이 강한지도 체크하세요."라고 한 건, 수전노처럼 들어오는 돈을 움켜쥐고 인색하게 사는 것, 또는 돈을 모아야 한다는 생각에 코피를 쏟더라도 투잡을 뛰는 걸 의미하는 게 아니다. 

- 큰 이상을 가진 까닭에 눈은 높지만, 정작 자기 밥벌이도 못하는 것.


위와 같은 남자가 아닌지를 보라는 얘기였다. 사업하겠다고 일은 벌여 놓고 수습을 못하는 까닭에 아내 혼자 돈벌이를 하는 상황. 그런 와중에도 눈은 높아 얼마 이하인 월급의 직종은 아예 '저건 저런 사람들이나 하는 일'이라며 접어두는 남자. 그런 남자가 아닌지를 보란 얘기였다.

왜? 연애할 땐 저런 남자의 허세나 허풍이 그냥 멋있어 보이고, 정말 그렇게 될 것처럼 착각하기 쉬우니까. 마당 있는 집을 사서 개를 키우고, 건물을 지어서 임대료 받으며 살고, 아이를 낳으면 함께 해외여행 다니며 견문을 넓혀주고…. 내 주변에도 연애할 때 저런 달콤한 약속을 한 사람들이 꽤 있다. 물론, 그들이라고 해서 왜 저런 꿈을 안 꾸었겠는가. 다만 이상과 달리 능력과 운이 따라주지 못해 나중엔 아내보고 돈 구해오라느니, 내조가 부족해서 일이 안 된다느니, 다른 여자들 나가서 돈 버는데 넌 뭐 하는 거냐느니, 애 유치원은 적당한 곳 보내지 왜 비싼 곳 보내냐느니, 하게 되는 일이 대부분이다.

E양은 구남친이 이십대 중반에 7천만원이나 모았다며 굉장한 생활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데, 그는 생활력이 강한 게 아니다. 그냥 수전노일 뿐이다. 들어온 돈은 무조건 저축해두며, 생활을 노숙자처럼만 해도 돈은 모을 수 있다. 연애기간 중 그가 어땠는지를 생각해 보길 바란다. 그는 아예 E양의 자취방에 눌러 앉았는데, 단 한 푼의 생활비도 보태지 않았다. 더 황당한 건, 시험 준비 중이라 벌이가 없던 E양에게 돈을 빌리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거의 대부분의 데이트 비용을 E양이 부담한 건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E양이 아직 어린 까닭에 '7천만원'이 엄청 대단해 보일 수 있는데, 준비하고 있다는 시험에 합격하면 E양은 노숙자 생활을 하지 않아도 2~3년 안에 저것보다 많은 돈을 모을 수 있을 것이다. 이해하기 쉽게 말하자면 오토바이와 비행기의 경주 같은 거다. 100m를 달리는 경주라면 오토바이가 비행기에 비해 절대적으로 유리하겠지만, 비행기가 이륙한 이후부터는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비행기가 빠르다.(여기서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한 구남친은 오토바이고, 대학을 졸업한 뒤 시험을 준비 중인 E양은 비행기다.)

계속된 남자친구의 세뇌교육으로 인해 E양이 혼란스러워 하는 것 같은데, 사람은 자기 분수에 맞게 살면 된다. 남자친구가 E양을 두고 '가치관이 쓰레기'라고 한 건, 상대가 자신을 기준으로 E양을 바라봤기 때문이다. 월 500을 버는 사람과 월 150을 버는 사람의 소비는 당연히 다를 것 아닌가. 하지만 남자친구는 그걸 이해하지 못한다. 상대는 E양의 집안에 대해서도

"어떻게 굴러먹어 가는 집안인지 이해가 안 간다."


라고 했는데, 그건 토끼가 코끼리를 이해하기 힘든 것과 비슷한 거다. 토끼는 코끼리를 보며 "뭐 하러 저렇게 많이 먹지? 난 이렇게 조금만 먹어도 배부른데."라고 생각할 것 아닌가. 그 궤변에 넘어가 쓸데없는 반성하지 말고, E양에게 돈 빌리며 택시 타고 다니던 구남친의 행동을 보길 바란다. 어마어마한 녀석이다 진짜.


2 하녀생활.


궤변남과 사귀는 여자가 하녀생활을 하게 되는 건 필연적인 일이다. 정상적인 여자도 하녀생활을 하게 되는 판국인데, 자존감이 낮은 여자가 궤변남을 만난다면…. 

구남친이 E양을 사람취급도 하지 않는 부분을 보자.

구남친 - 넌 어린 거야. 환상 속에 사는 거라고.
E양 - 난 자기한테 불만 없어. 자기를 있는 그대로 좋아하려고 노력해.
구남친 - 아 짜증난다. 너랑 카톡하다가 지금 폰 떨어뜨렸어. 찌그러졌네.
            네가 이 지X만 안 해도 내가 폰 안 떨구지.
            넌 진짜 왜 자꾸 사람을 괴롭히냐.
            네가 보상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대신 해줄 수 있는 건도 아닌데
            왜 내 현재를 망가뜨리냐고.
E양 - 미안해.
구남친 - 이딴 말도 안 되는 얘기 하는 거 진짜 짜증나. 
             널 다 이해해 줄 수 있는 남자 있으면 그 남자 만나. 딴 놈 만나라고.

 

저렇게 대해도 E양에겐 헤어질 생각이 없으니, 구남친의 막무가내 행동은 점점 더 그 수위가 높아질 뿐이다.

"미국에서 살다 와서 잘 모르나 본데, 너 같은 여자 받아 줄 한국 남자 없다."
"회사 사람들이 너보다 전여친이 낫다고 한다."
"우리 부모님을 모시고 살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게, 네 가치관이 쓰레기라는 증거다."
"집에 있으면서 프린트 해 놓으라는 것도 안 해놨냐. 내 말을 뭘로 듣는 거냐."



궤변남을 구별하는 방법은 사실 쉽다. 그들의 사전엔

"아 그래? 넌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라는 말이 없다. 그들은 마음속으로 이미 상대를 '등신' 취급하고 있는 까닭에,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는다. 상대의 말을 '듣는 척'하는 건 본인이 아쉬울 때 뿐이다. 종종 궤변남과 사귀는 여성대원들이 "대화를 많이 했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그 대화를 들여다보면 그건 대화가 아니라 '혼난 것'인거나 '교육받은 것'일 뿐이다.

"다른 여자들 다 하는 걸 왜 너는 못 하냐."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지금 넌 네 감정만을 가지고 나에게 이해를 바라는 것이다."
"내가 아프면 평생 돌볼 거라고 한 말은 뭐냐. 그럴 수 있다는 사람이 이렇게 싸우려 드냐?"



궤변남들은 집요하게 상대의 가치관이나 죄책감을 건드리는 까닭에, 그것에 대한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멍하니 서서 당할 수밖에 없다. 분명 뭔가 이건 아닌 것 같은데 아니라고 콕 찝어서 말할 순 없고, 억울한 건 나인 것 같은데 사과 역시 내가 해야 하는 이상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궤변남이 '너의 의무'에 대해 말할때, "그럼 너는? 네 의무는? 이 연애에서 노력해야 할 사람은 나 뿐이라고 생각하는 건가?"에 대해 말해줘야 한다. 그렇지 못하고 눈 꿈뻑이며 듣고 있다 보면, 몸과 마음 모두 힘든 하녀생활을 하게 될 것이다.


3. 갑과 을.


난 E양에게 한국생활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지 말라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E양은 외국에서 오래 살다 온 까닭에 자신이 한국생활에 '뒤쳐진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그렇게 생각하며 살다 보면 자신이 모르고 있는 걸 하나라도 아는 사람을 만났을 때 맹종할 위험이 있다. 이와 관련해 얼마 전 읽은 좋은 문장이 있기에 소개할까 한다.

Don't ask what the meaning of life is.
You define it.



한국말로 하자면, "삶의 의미가 뭐냐고 묻지 마. 네가 정의해."라고 할 수 있다. E양은 구남친과 사귀는 내내 상대가 정의해 주는 인생을 살려고 했고, 그의 말에 모두 따랐다. 그러다보니 연인으로 시작한 연애는 갈수록 '갑과 을'의 관계가 되었고, 늘 묻기만 하는 E양을 남자친구는 '코흘리개 꼬마'정도로 생각했다.

E양이 보낸 카톡대화를 보며 난 얼마 전 이슈가 되었던 모유업의 '욕설 사건'이 떠올랐다. 서른넷의 영업소장이 쉰여섯의 대리점주에게 욕을 하는 내용인데, 손바닥만 한 권력이라도 그것에 취하면 사람이 쉽게 막장에 이를 수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그 녹취록에서는 영업소장이 대리점주에게 "망해. 망해버리라고. 씨XX아."라고 말하는 부분이 있는데, 서두에 소개했듯 E양의 구남친 역시 E양에게 "정신병원에 가봐라."라고 말한다.

(여기다 적은 E양과 구남친의 대화는, 사연에 등장한 최고 수위의 대화에 비하면 절반 정도 밖에 안 되는 수준이다. 구남친의 멘트들이 E양의 외모, 성격, 가치관 등을 철저하게 짓밟는 내용이라 옮길 수 없음을 양해해 주길 바란다.)

남자친구에게 "넌 쓰레기야."라는 말을 듣고도

"미안해. 그래도 나 데리고 살 거지?"


라는 이야기를 하는 건, 사랑이 아니다. 연애 할 때 인내가 필요하긴 하지만, 그 인내가 저런 인격모독과 폭언을 참는 걸 의미하지 않는다.

남자친구 번호는 차단하고, 자취방도 옮기길 권한다. 안 그러면 또 찾아온다. 찾아와서는 늘 그랬듯 "우리 다 덮고 다시 시작해 보자."고 말할 것이다. 왜? 공짜로 숙식 해결하며, 잔소리든 잠자리든 마음껏 할 수 있는 이 좋은 장난감을 왜 버리겠는가. 그러다 질리면 또

"너랑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게 힘들다. 넌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


라며 나갈 것이고 말이다. 한국생활의 외로움을 달래고자 구남친에게 전화하지 말고, 필요하다면 종교모임이든 동호회 활동이든 하며 사람들과 친해지길 권한다.


이십대 금방 지나간다. 스물다섯에 저런 남자와 연애 시작해 삼사 년 만나다 보면, 곧 코앞에 서른이 와 있을 것이다. 그 즈음이라도 정신을 차린다면 참 좋겠는데, 안타깝게도 그때가 되면 또

"제 이십대의 대부분을 함께 한 사람이에요.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요?"


라는 이야기 하며 매달리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우물쭈물 하다가 삽십대 중반이 된다. 그건, 나쁘게 나온 1학기 중간고사 성적에 계속 마음 빼앗기고 있다가, 2학기 기말고사까지 놓치는 것과 같다. 그리고 그렇게 보낸 세월의 책임은 고스란히 자신이 져야 한다.

자기 밥그릇도 스스로 못 챙겨 먹는 사람은 남들로 부터 존중받지 못한다. 궁금하다면, 오늘부터 가까운 사람에게 "내일 비 올까? 내일 비 오면 어쩌지?"라는 얘기를 한 달간 해 보길 바란다. 처음에는 웃으며 일기예보를 알려주겠지만, 시간이 지나며 "폰 봐봐. 거기 나오잖아."라며 귀찮은 듯 말할 것이고, 그 다음은 일기 예보 뿐만이 아닌 모든 방면에서 그대를 얕잡아 볼 것이다. E양이 새로운 남자를 만난다면, 그를 '선지자'나 '예언자'가 아닌, '남자친구'로 받아들이길 바란다.



▲ 비슷한 사연 중 맞은 사연이나 돈 뜯긴 사연을 보내신 분들, 병원이나 법원으로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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