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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커플생활매뉴얼

결혼 말고 연애만 하자는 남자친구, 어떡해?

by 무한 2013. 2. 21.
결혼 말고 연애만 하자는 남자친구, 어떡해?
그닥 유쾌하지 않을 얘기들을 잔뜩 해야 할 것 같아서 경어체로 쓰겠습니다. 먼저, 사연을 보낸 C양은 제가 매뉴얼을 통해 '결혼상대로 적합하지 않은 여자'라고 말한 적 있는 유형에 속합니다. 경제적, 정신적 독립을 못 한 상태이며 징징거리는 것으로 남자친구의 보호본능만 자극하는 타입입니다.

남자친구 통장에 몇 억쯤 들어있거나, 남자친구 집안의 자산이 수십 억 쯤 되는 게 아니라면 C양 같은 여자를 만날 경우 대개 파산을 하게 됩니다. C양은 여행경비를 셈하는 것이 구질구질하고 싫다며 그냥 무작정 떠나고 보는 여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떠났다면 현지에서 경비를 마련하거나, 배낭여행객처럼 욕심을 최소화한 동선을 짜야 하는 법입니다. 그런데 C양은 그건 또 싫어합니다. 남들은 호텔이나 펜션에서 묵는데 우린 이게 뭐냐고 투정만 합니다.

부모님이 여전히 의식주를 모두 해결해 주시고, 거기다 차와 용돈까지 주니 C양에겐 경제개념이 희미해졌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 아예 개념이 잡힐 기회가 오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C양이 일을 하는 것 같긴 합니다만, 그렇게 번 돈은 '용돈'의 또 다른 전달방식에 불과하지 않을까, 하고 저는 생각합니다. 사장님이 아빠니까요. 비난을 하려는 게 아닙니다. C양처럼 완충제가 잔뜩 준비되어 있는 사람과 달리, 직장을 잃으면 살길이 막막해지며 월급으로 자신의 생활을 꾸려나가는 사람이 있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은 겁니다. C양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누리는 것들을, 노력을 해야 겨우 누릴 수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얘깁니다.


1. 3년의 연애기간동안 무얼 하셨습니까?


매주 30~40만원의 데이트비용을 남자친구가 부담했다는 건, 이제 와서 미안해하는 것으로 해결될 일이 아닙니다. 둘은 그냥 미래를 저당 잡힌 채 그 돈으로 열심히 먹고, 마시고, 논 겁니다.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에서의 베짱이처럼 말입니다.

C양만 탓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남자친구 역시 자신의 형편이 좋지 않다는 열등감에, C양이 부담하겠다는 것까지 마다하며 스스로 자신의 무덤을 판 것이니 말입니다. 여기엔 C양이 상대의 헌신을 사랑의 척도로 생각해 징징거리며 부추긴 것이 촉매로 작용하기도 했습니다.

여하튼 그런 연애를 3년 넘게 했지만 C양은 여전히 건재합니다. 결혼을 한다고 하면 당연히 비용도 집에서 부담할 것이고, C양의 지갑으로 해결되지 않는 일은 부모님 카드를 빌려 해결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남자친구는 상황이 다릅니다. 하우스 푸어도 못 되는, 그냥 월세 보증금 빼면 당장 노숙자가 되는 처지입니다.

"저희는 당연히 서로 결혼 할 사이라고 생각하며 만났습니다."


답답하기만 한 소립니다. 결혼이 무슨 고등학교 입학처럼 나이 차면 자연히 진학하는 그런 수순이 아니잖습니까. 물론, C양의 집에서 둘이 살 집과 가재도구들을 전부 마련해 주신다면 결혼이 어렵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결혼 후에도 남자친구와 지금처럼 생활하면 둘의 생활을 겨우 '유지' 할 수 있을 뿐입니다. 육아비나 대소사에 드는 비용을 모두 C양의 집에서 부담해 주신다면, 뭐 그 '유지'가 꽤 오래 갈 수도 있긴 합니다.

"우리 그냥 결혼은 하지 말고 연애만 할까?"


C양의 남자친구가 한 말입니다. 머리를 아무리 굴려 봐도 해답이 안 나오니 저런 얘기를 하는 겁니다. 군생활이 버거운 군인들이 탈영을 할 때와 비슷한 마음입니다. 분위기 있는 음식점을 데려가거나, 감동할 만한 선물(남자친구는 저 둘을 모두 '비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로는 이제 C양을 다독일 수가 없습니다. C양이 바라는 것은 결혼이니까 말입니다. 

"제가 선물을 바란 것도 아니고, 된장녀처럼 비싼 음식점 가자고 한 것도 아닌데요?"


주면 받았고, 가서는 또 잘 먹지 않았습니까. 연인에게는 상대가 궤도를 이탈 할 때, 다시 정상궤도로 돌아올 수 있게 도울 의무도 있는 겁니다. 그렇게 지내다 보면 몇 년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뻔히 보이는데, 덮어두고 무작정 "야호! 카르페디엠!"하면 둘 다 망하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끼리니까 하는 얘기지만, "누구는 뭐뭐 하더라."라고 말하면, 그게 그렇게 해달란 얘기로 들립니다. 여자의 말을 '문제'로 받아들이는 남자의 특성상 당연히 자신이 해결하려 드는 법이고 말입니다.


2. C양의 어머니께선 아십니다.


월세도 괜찮고 단칸방도 괜찮다는 그런 얘기는 하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그건 두 사람 모두 미래를 위해 노력하고 있을 때나 가능한 얘기입니다. 미래에 대해선 꿈만 꾸며 현재를 소비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닙니다. 부모님에게서 경제적, 정신적인 독립을 하지 못한 사람들이 그 상황에 처하면, 괴로움과 어려움에 대한 원망을 가장 가까운 사람을 향해 표출하게 됩니다. 서로를 탓하고 나아가 증오하게 될 가능성은 98.37%입니다.

"나머지 1.63%는 그래도 잘 살 수 있단 얘긴가요?"


1.63%는 스스로를 탓하며 지구별에서 떠납니다.(응?) 농담이고.

C양의 어머니께선 알고 계신 겁니다. 사윗감이 될 남자는 당신과 '보호자 배턴터치(바톤터치)'를 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걸 말입니다. 현재 C양 어머니의 시각에서 보자면, C양이 그와 결혼한다는 얘기는

"나 얘네 집에서 자고 올게. 언제 돌아올지는 몰라."


라는 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얘기입니다. 일반적인 경우 거의 모든 부모님이 저런 상황에서 걱정을 하니 크게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그리고 자식들 또한 부모님의 걱정에 대해선, 마음을 놓으실 수 있게 '내가 그를 확신하는 이유'나 '우리가 잘 살 수 있을 거라는 증거'들을 내놓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C양 커플은 어땠는지 한 번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C양 : 어머니의 반대가 서운해 계속 울기만 함.
남친 : "제 어떤 점이 마음에 안 드시죠?"라며 하극상에 가까운 패기를 부림.



역시 갑갑합니다. 이후 C양은 부모님께 거짓말을 하곤 계속 남자친구를 만납니다. 부모님이 주선해주신 선도 봅니다. 이 부분은 마치 드라마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남친 - 꼭 그 자리에 나가야겠냐?
C양 - 그럼 어떡해? 엄마는 우리가 헤어진 줄 아는데.
         걱정하지 마. 선만 보고 애프터는 절대 받지 않을 거니까.
남친 - 불안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내가 지금 뭐 하는 건지 모르겠다.
C양 - 미안해. 어쩔 수가 없잖아.

 

C양이 둘의 연애를 위한 한 노력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주어지는 대로 상황에 순응하며 책임회피를 하기 바빴을 뿐입니다. 미안하지만 C양은, 부모님께든 남자친구에게든 늘 보호 받는 입장이었기에 무언가를 스스로 지키는 법에 대해 무감각 했던 것 같습니다. 위에서 알 수 있듯 남자친구 역시 당장 닥친 위기를 해결하는 것에만 급급해 멀리까지 내다보지 못했습니다. 멀리까지 내다봤다면 여자친구 부모님을 그리 쉽게 적으로 만들진 않았을 겁니다.


3. 자포자기한 남친과 책임감이 말소된 관계


이후 상황은 더 나빠질 수 없을 정도로 구질구질하게 변합니다. 남자친구는 아무 희망도 보이지 않는 관계가 지속되자 자포자기를 하고 맙니다. 이미 결혼해서 아이를 키우고 있는 또래의 친구들도 있는데, 자신이 가진 거라곤 현재 월세 보증금 밖에 없으니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고 만 것입니다. 연애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힘이 드니, 가정을 꾸려 아이까지 키우는 건 엄두도 못 내게 됩니다. 두 베짱이에게 겨울이 왔습니다. 그래서 선언합니다.

"우리는, 그리고 이 연애는 너도 힘들고, 나도 힘들기만 한 관계인 것 같다. 헤어지자."


C양도 이별에 동의합니다. C양은 사연에 '홧김에' 헤어지자고 했다고 적었지만, 저 대화를 나누는 순간까지 C양은 "너 때문에 힘들다."라는 말로 남자친구에게 책임만 떠넘겼습니다. 어찌 보면 '밑 빠진 독'은 C양인데, 열심히 물을 붓고 있는 남자친구에게 "왜 빨리 채우질 못 하는 거냐!"고 다그치기만 했으니, 궁지에 몰린 그는 '포기'를 선택하고 만 겁니다.

위에서 '구질구질'하다고 말한 건, 이즈음 남자친구의 '바람' 문제도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헤어지기로 했지만 혼자 된 것을 견딜 수 없었던 C양은 며칠 후 남자친구의 자취방으로 찾아갑니다. 남자친구는 집에 없었지만, 거기서 C양은 다른 여자가 쓴 메모와 19금의 흔적을 보게 됩니다. 남자친구는 책임질 필요 없이 가볍게 만나는 관계를 추구하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메모의 내용으로 보아 그녀와의 일은, 둘이 이별하기로 하기 전에 벌어진 일인 것 같았습니다.

C양은 남자친구의 '바람'을 덮어두기로 합니다. 남자친구가 C양의 전화번호를 차단까지 한 상황에서 그 이야기를 하면 더욱 악화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남자친구는 '너랑 연인으로는 절대 안 만난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친구로라면 몰라도'라는 여지를 남깁니다. C양은 친구로라도 좋으니 인연을 끊지 말자고 합니다. 서로 새로운 연인이 생기면 축하해주고, 안부를 물으며 지내는 뭐 그런 관계 말입니다. 물론, C양에게 이건 '다시 사귈 구실'이었습니다. 하지만 남자친구는 이걸 '엔조이'로 받아들입니다.

남자친구는 '자유연애'의 길을 걷기로 한 것입니다. C양과 인연을 계속 유지하고 싶긴 한데 그렇다고 결혼이나 육아 등에 관해서까지 생각하긴 싫고, 책임감 같은 거 느낄 필요 없이 그저 그때그때 감정에만 충실하게 지내는 관계를 원하게 되었습니다.

"결혼 같은 걸 꼭 해야 할 필요는 없잖냐. 그냥 나랑 평생 이렇게 같이 놀자."


C양은 그에게 다시 사귀고 싶은 마음은 있는 건지, 자길 좋아하는 마음은 있는지, 아니면 다른 남자 주기엔 아까워 자신을 붙들어 두려 하는 것인지 혼란스러워 합니다. 그런 와중에 이번 주말에 여행을 가기로 합니다. 남자친구는 "같이 여행가는 게 불편해? 그럼 말구."식으로 여행을 제안했습니다. 아직 마음이 남아있는 C양은 불편하지 않다며 여행을 승낙했습니다. C양도 자유연애를 추구하기로 한 거라면 여행을 가도 상관없습니다만, 그게 아니라면 지금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지 냉철한 시각으로 다시 바라보시길 권합니다.


이렇게 긴 이야기를 적은 까닭은, C양의

"남자친구는 무슨 마음으로 저렇게 행동하는 걸까요?
그리고 저희가 발전 가능성이 있는지도 꼭 좀 알려주세요."



라는 물음에 답을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현재 상황에서 '발전 가능성'을 묻는다면, 전 김수철 7집을 선물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고 싶습니다. 7번 트랙 후렴부에 제가 하고 싶은 말이 담겨 있습니다. "아 여보게 청신차려 이 친구야."

남자친구의 마음을 아는 것보다 더 급하고 중요한 게, 위에서 말한 C양의 모습을 바꾸는 겁니다. 그 모습을 바꾸지 않는다면 남자친구와 다시 만나든, 아니면 다른 사람을 만나든 무조건 사고를 내게 됩니다. 면허시험도 보지 않은 상황에서 차부터 구입해 끌고 나간 것과 같으니 말입니다. C양 혼자 다치고 말 거라면 '자업자득'이라고 넘길 수 있겠습니다만, 동승자도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의 치명상을 입을 수 있습니다.

제 주변에도 상대의 영혼까지 털어가며 파멸로 몰아간 사례가 세 건 있습니다. 그 중 한 커플은 저희 외가 쪽 지인인데, 둘의 이야기는 어른들 사이에서 '여자 잘못 만나서 집안 망한 사례'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물론 저는 그 커플의 이야기에 대해, '중심을 잡지 못하고 여자를 달래려고만 하다 스스로 무덤을 판 남자도 병맛.'이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습니다. 반평생을 같이 살 사람들인데, 왜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얘기를 전혀 나누지 못하는 건지….

수동적인 자세로 즐거움만 누리며 타인에게 '방향을 제시해 달라'고 말하는 태도에서 벗어나시길 권합니다. 지금까지 C양은 그런 태도로 지내다가, 뭔가 잘 되지 않으면 상대에게 책임을 묻기만 했습니다. 이제 더 제시할 방향도 남지 않은 남자친구는 '책임을 지지 않을 관계'를 추구하게 된 것이고 말입니다. C양은 가벼운 관계의 대상이 된 듯한 느낌 때문에 스스로를 '피해자'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3년간 애쓰다가 결국 파산해 '자유연애'말고는 대안을 찾을 수 없는 남자친구도 '피해자'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 "저희는 결혼을 약속하며 만났고, 확고했습니다." 하지만 아무 계획도, 대책도 없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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