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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3)

소개팅은 많이 했지만 연애는 한 번도 못한 여자

by 무한 2012. 5. 25.
소개팅은 많이 했지만 연애는 한 번도 못한 여자
그간 소개팅을 한 남자들과의 카톡대화를 모두 사연에 첨부한 L양. 그 카톡대화들을 읽으며 난 채팅 사이트에 방을 만들고 있는 한 여자를 떠올렸다.

"1:1 소개팅 방, 괜찮은 남자 분만 들어와 주세요."


정도의 방제를 달아 놓은 여자. 그 방제에 이끌려 한 남자가 들어왔다가, 나가고, 다른 남자가 들어왔다가, 나가고, 또 다른 남자가 들어 왔다가, 나가는 일이 반복된다.

인사를 나누고 서로 웃는 얼굴로 자기소개를 할 때 까지는 분위기가 좋다. 그 방에 들어오는 남자들은 친절하고 자상하며, L양의 이야기에도 열심히 귀를 기울인다. 때문에 L양은 그 방에 누가 들어오든 초반엔 '좋은 느낌'을 갖게 된다. '그래! 이런 남자라면 분명 괜찮을 거야.'라는 생각과 함께.

나도 그냥 그런 느낌이 변치 않고 쭉 갔으면 좋겠다. 시간이 흘러도 변함없이 "제 조카가 오늘 이를 뽑았거든요, 그런데 지붕 위에 이를 던져야 한다며 울었대요. 조카는 아파트에 살고 있는데. ㅋㅋㅋ" 요따위 얘기를 나눠도 문제가 없는 관계가 된다면, 내게 도착하는 사연은 반으로 줄고, 나는 그 시간에 직원들이 식료품을 싹쓸이 해가는(물건을 숨겨두거나, 자기들끼리만의 세일을 해 마음대로 가격을 후려쳐 담아가는) 우리 동네 대형마트의 현실을 신고해 세상은 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바뀌지 않겠는가. (대형마트 회장에게 보낼 "회장님, 바나나가 먹고 싶어요."라는 제목의 호소문은 두 달째 완성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친구네 집 고양이가 새끼를 낳았어요. ㅎㅎㅎ" 따위의 재미도, 감동도, 영양가도 없는 대화는 초반에만 유효할 뿐이다. 시간이 지나 좀 가까워지고 나면, 저 말에 상대는 '아니, 저건 또 무슨 고양이 같은 소리야.'라는 생각을 하고 만다.

여기서 벌써 문제 하나가 보이지 않는가? L양은 소개팅에서 본 상대의 '처음모습'이 상대의 본모습일 거라 오해하며, 계절이 바뀌어도 상대가 늘 그런 모습으로 있을 거라 착각한다. L양이 남자를 만나거나 남자와 대화한 것은 소개팅을 통한 것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매번 소개팅을 할 때마다 기대와 좌절만 반복한다는 L양. 또 무슨 문제가 남아 있는지 함께 알아보자.


1. 동성친구와 할 얘기, 이성친구와 할 얘기


솔직함은 좋은 것이지만, 누구에게 무엇에 대해 솔직할 것인가는 분명 고민해 봐야 한다. 무작정 숨기는 것이나 말하지 않은 것이 없다고 해서 진실 된 사람이 되는 게 아니다. 자신의 비뇨기과 주치의에게 해야 할 이야기들을 학생들에게 하는 선생님, 혹은 사내 회의에서 해야 할 말을 경쟁사 사람과 만난 자리에서 하는 회사원이 있다면 어떤가. 

L양은 상대와 친해졌다는 사실에 기뻐 모든 이야기를 다 털어 놓으려 한다. 동성친구와 나눌 얘기, 혼자 보는 일기장에 써야 하는 얘기, 엄마와 나눠야 하는 얘기 등을 구분 없이 상대 앞에 꺼내 놓는다. L양도 이 부분에 대해 뒤늦게 눈치를 챈 것 같은데, 좀 더 명확히 해두기 위해 L양이 한 말이 상대에게 어떻게 느껴졌을 지를 살펴보자.

ⓐ 소개팅 했던 남자들 얘기, 혹은 뒷담화.
- 소개팅을 쉽고 빠르고 다양하게 하는 여자인가?
ⓑ 친하게 지내는 남자사람들 얘기.
- 이런 얘기를 대체 왜 할까, 의도가 뭘까?
ⓒ 엄마에게 들은 괜찮은 남자 고르는 법에 관한 얘기.
- 커트라인 같은 걸 말해주는 건가? 장사꾼 집안인가? 
ⓓ 친구들 남친 얘기
- 친구 남친이 현대 다니는데 그래서 뭐? 어쩌라고?
ⓔ 혈액형 및 각종 미신과 편견에 대한 얘기.
- 내가 X형에다 특정지역 출신이며 우리 집안이 그러면 어쩌려고?



L양은 자체적인 해결책으로 앞으로는 누구를 만나든 '침묵'하겠다고 했는데, 그건 좋은 생각이 아니다. 모든 걸 다 말하려는 여자만큼이나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여자는 매력이 없다. "앞으로는 가급적 말을 안 하고 내숭을 부리기로 했어요."라는 L양은 다짐은, 그 나름대로의 문제를 만들 것이란 얘기다.

여자와 만나 남자얘기를 하고 싶어 하는 남자는 없다는 것만 잊지 않아도 많은 문제가 해결되리라 생각한다. L양도 상대가 '아는 여자'얘기를 늘어놓으면 짜증이 날 것 아닌가. "친구네 커플이 도자기 축제에 다녀왔다고 하던데..."가 아니라, "도자기 축제 보러 갈래요?"가 되어야 한다는 명심하자.


2. 따로따로녀


어제 발행한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여자도 밀어내는 남자, 문제는?]이라는 매뉴얼에서 이야기 한 부분인데, 거의 비슷한 모습이 L양에게서도 발견된다. '너는 너', '나는 나'에서 한 발짝도 가까워지지 않는 모습. 그 이유도 어제 매뉴얼에서 이야기 한 것과 비슷하다. '진짜 관심'의 결여 때문이다. 

L양이 사연에 첨부한 카톡대화를 보면, 몇몇 남자들은 L양에게 '관심 어린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한다. 예를 들어 "오늘도 야근할 것 같아요. ㅠ.ㅠ"라는 이야기를 하는 남자가 듣고 싶은 건 "조금만 고생하세요. 얼른 마치면 쉴 수 있잖아요. 화이팅!"이 아니란 얘기다. 야근하게 되었다고 투정하는 남자에게, '방해되지 않도록 연락하지 않을 테니 얼른 일하라'고 말하는 여자만큼 센스 없는 여자가 또 있을까.

먹고 있는 아이스크림을 친구가 한 입만 달라고 했다고 정말 딱 한 입만 주는 건 정이 없다. "그럼 한 입 더 달라고 하든가, 아니면 처음부터 반 정도 먹게 해 달라고 하면 되잖아요?"라고 말한다면, 사실 뭐 나도 할 말이 없다. 이게 딱 이럴 땐 이것이상 해야 하고, 저럴 땐 저것이상 해야 한다고 말할 수 없는 일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대가 훗날 늙고 지쳐 비가 올 때면 무릎이 아픈데, 그걸 자식들한테 얘기했더니 자식들이 "그럼 병원엘 가면 되잖아."라고 답했다고 해보자. 아오 배 아파 낳았더니 요 자식이, 라는 생각이 들지 않겠는가. 그와 같은 상황에선, 다리를 주물러 주는 자식에게 사랑을 느낄 거라 생각한다.

L양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상대가 야근 때문에 투정을 부릴 땐 "L양 덕분에 이번 야근이 지겹지 않았어요."라는 얘기를 듣겠다는 마음으로 다가가자. 대화를 나누는 것이 상대에게 정말 방해가 된다면, 중간에 커피 키프티콘을 하나 보내며 쉬었다 하라는 메시지를 보내도 좋다.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하지만 L양은 '따로따로' 정신이 강했기에, 상대가 퇴근한다는 메시지를 보낼 때까지 자기 할 일을 하고 있었다. L양이 차갑게 군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L양에게서 따스함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단 얘기다.

나쁘게 말하면, 데이트 약속을 잡는 것 말고는 상대에 대해 관심이 별로 없는 여자. 그게 L양의 현재 모습이다. 연애를 영화 같이 볼 사람 없어서, 혹은 밥 같이 먹을 사람 없어서 하는 건 아니잖은가. L양이 받는 것만 좋아하고 주는 것을 몰라서 그러는 건 아니다. L양 자신이 생활과 연애를 분리해서 대하고 있기에 상대에게도 딱 그만큼만 허용하는 것이다. 우리끼리니까 하는 얘기지만, L양에게 '회사를 빠지고 상대와 놀러가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일 것이다. 그녀에게 회사는 회사고, 연애는 연애니 말이다. 그 철저한 구분선을 거두고 마음 다해 상대를 대하길 권한다.


3. 3월 3일 - 3월 23일
 

시작과 끝을 비교해 보면 여러 가지를 알 수 있다. 비교해 보자. 

3월 3일 
남자 - 그럼 무슨 전공 하신 거예요?
남자 - 에구구. 제가 질문만 너무 많이 하죠? ㅋ 

L양 - 아녜요~ 경영 전공했어요. ^^  

3월 23일
남자 - 회사에서 대전 다녀오래.
L양 - 오빠 술은 다 깬 거야? 대전 혼자가?
L양 - 차 밀린다고 하고 차에서 좀 자 ㅋㅋㅋ
L양 - 오빠차 갖고 가는 거야? 아님 회사차로?



L양이 첨부한 카톡대화에서 L양은 'You'로 표시되는데, 마지막으로 연락을 주고받은 3월 23일의 대화를 보면, 'You'의 홍수다. 반면 상대의 대화는 '응.', '아니.', '피곤해.'가 주를 이룬다. 신원이 드러날까봐 해당 단어를 적진 않겠지만, 20일에 나눈 대화에서 상대는 L양을 '**이'로 부른다. 사전은 '**이'의 뜻을

촐랑거리며 조심성 없이 함부로 행동하는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


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깊이 생각해 볼 문제다. 하나 더 살펴보자.

3월 3일
남자 - 아, 전 왜 L양이 주선자와 같은 동네에 산다고 생각했을까요.;;
L양 - 저에 대해서 들으신 게 별로 없으신가봐요. ^^
남자 - 네. 사실 주선자가 물어봐도 말도 안 해주고, 일단 만나보라고...

3월 23일
L양 - 오빠 주선자한테 화내는 거 아냐? ㅋㅋ 왜 이런 애 소개시켜줬냐고 ㅋㅋ
남자 - 내가 놀랄 게 더 남아 있는 거야?
L양 - ㅋㅋㅋㅋㅋ 뭐라는 거ㅋㅋ 알고 싶어? 원해? 만나면 보여줄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좀 아닌 것 같다. 3월 3일에 대화를 나누던 신녀성을 어디 간 것인가. 청순하고 조신할 것 같은 그 신녀성은 사라지고, 3월 23일엔 말괄량이씨가 등장했다. "오빠 세이 호오~"라며 한껏 들뜰 기세다. L양은 앞으로 이 부분에 대해 '절대 내숭'으로 극복 하겠다 했는데, 위에서 이야기 했듯 그건 내부적으로는 억눌린 욕망에 대한 이상증상을 만들 위험이 있고, 외부적으로는 상대에게 엄청난 트라우마를 남길 수 있다. 그것 보다는 3월 23일의 모습을 조금 다듬어, 처음부터 '명랑소녀'임을 밝히길 권한다. 밝고 긍정적이라고 싫어할 남자는 없으니 말이다. 단, 대화를 혼자 장악하려 하는 모습이나 상대의 말을 끊는 모습, 그리고 한 번에 너무 많은 얘기를 하려는 모습은 분명 바뀌어야 한다.


위와 같은 모습들이 고쳐지지 않는다면, 한 달에 몇 번 소개팅을 하든 결과는 좋지 않을 것이다. 3번 4번의 애프터까지 이어지더라도, 결국 상대는 '뭐지? 이 당한 듯한 느낌은?'이라고 생각하며 물러날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위험한 건, 소개팅을 통해 정말 괜찮은 사람을 만나더라도, 위와 같은 모습으로 다가갔다간 결국 상대에게 날 제발 좋아해 달라고 애원하는 것 말고는 다가갈 방법이 남지 않는다는 거다.

끝으로, 소개팅에서 남자가 L양을 마음에 들어 했다는 이유만으로 쉽게 만나지 말 것과, 소개팅 외에는 전혀 이성과 대화를 나눌 생각하지 않는 태도를 수정하길 권한다. 그렇게 소개팅 방을 만들고 앉아 있으면 남자들은 계속해서 만날 수 있다. 앞으로 몇 해는 더 끊임없이 '오는 남자'를 만날 수 있단 얘기다. 오는 남자를 막지 않고 상대가 관심을 보인다고 연애로 이으려 하다간, 껍데기만 있는 연애를 하게 될 수 있다. 연인이란 이름으로 묶여 있지만, 실제로는 '따로따로'인 그런 관계 말이다.

L양의 마음을 움직이게 만드는 그런 사람과 만나길 바란다. 그냥 대충 지금 형편으로 살 수 있는 옷을 사면 애정이 안 생기는 법 아닌가. 그렇게 산 옷은 몇 번 입다가 옷장에 걸어두기만 하고 말이다. 애정이 생기는 사람과 만나자. 그런 사람이라면 L양이 애쓰지 않아도 푹 빠지게 만들 테니.



▲ 소개팅 남에게 "수고하셨습니다람쥐~ 다람쥐~" 이런 건 좀 그렇지요. 사귄 뒤에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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