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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멀로그 누적방문자 900만명에 즈음하여

by 무한 2009. 12. 2.
눈만 높아진 작가지망생에게 소설을 쓰는 일은 어렵다. 블로그에 올리는 <움직이지마 다쳐>는 즉흥적으로 써서 올리며, 즉흥성이 만들어 낸 모자람 마저도 많은 사람들이 이해로 덮어주신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무한'이라는 닉네임 말고 본명을 걸고 오프라인으로 파고 들어가는 글은 어렵다. 장기자랑에서 부르는 노래는 음정이 불안하고 가사를 틀려도 박수를 받으며 즐길 수 있는 반면, 오프라인의 글쓰기란 녹음 버튼을 틀어놓고 부르는 노래처럼 깜빡이는 커서 앞에서 오금이 저리다.

삼층짜리 건물에서 뛰어내려도 멀쩡할 것 같던 시절에 친구에게, "안도현이 보여줬던 데뷔 초반의 힘은 시간이 갈 수록 개인화 되고 생활에 밀착되어 야망 대신 연륜이 된 것 같아" 라거나, "김영하의 소설은 갈수록 어려워 지는 것 같아. 그게 소설이 다루는 주제의 어려움이 아니라,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에서 '지적유희'라고 오해를 받을 수 있는 소재의 어려움 같아. 사람들의 지적허영은 그 부분을 숭배하며 닮고 싶어 하겠지만" 따위의 이야기를 했지만, 안타깝게도, 피카소를 평가하며 스스로는 지렁이를 그리고 있는 소년의 모습을 나에게서 찾을 수 있었다.

이상의 산문을 구해 읽고 싶었지만 모두 품절되어 다시 김승옥을 읽고 있다. 1960년대에, 그러니까 지금의 나보다도 꽤 어렸을 나이에 이런 글들을 썼다는 것이 나의 소질을 의심하게 할 정도로 벅차다. 나는 도무지 쓸 수 없을 것 같은 문장들과 단어들. 내 마음 속엔 자신감을 넘어선 오만도 자리하고 있지만, 그 녀석이 커질 수록 두려움이라는 그림자도 커진다. 아, 글 쓰는 사람들은 딱 자기 오만함의 크기만큼 두려움이란 그림자도 가지고 있는 것인가.

200여년 전에 살다 간 하이든의 말을 곱씹는다.

자신이 천재인가 아닌가 하는 것은 대단한 문제가 아니다.
타고난 것을 가지고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도달한 곳은 바로 신이 내게 부여한 최선의 자리이다.
아무리 고민해도 그 이상의 것은 얻을 수 없다.
그 사람의 그릇이 크다면 큰 일을 부여받을 것이며,
그릇이 작다면 작은 일을 부여받을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
어쨌든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만족하라는 것이다.
그래야만 자신에게 어울리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너무 큰 것을 바라고 초조해하면 결국 실패하기 마련이다.

- Franz Joseph Haydn



그나마 위안이라면 1942년 1월 24일에 쓰여진 윤동주의 <참회록> 육필원고 끝자락에 있는 "詩란?, 文學, 生活, 生存, 生, 힘" 이라는 낙서다. 원고 끝자락에 많은 썼다 지움 표시를 남기며 적혀 있는 낙서가, 어느 요정이 내려와 그의 귀에 시를 들려주지 않았음을 알려준다.

노멀로그는 내게 행운이었고, 기회였다. 작가 김승옥이 "소설을 쓰기 위해서 나는 오히려 생계수단으로서는 다른 일을 하곤 했었다." 라고 이야기 하고 있는 것 처럼, 나에겐 그 생계수단이 전혀 관계가 없을지도 모르는 어느 회사의 '웹기획부 팀장'에서 삼층 건물의 일층 같은 '전업 작가지망생'으로 바꾸어 주었다. 블로그 광고 수입으로는 생활이 불가능 한 까닭에 조만간 어느 회사의 직원으로 취직했다는 소식을 들려주게 될 지도 모르지만, 벌써 네 달 째 하루 앞도 보이질 않는 이 생활을 시도할 수 있다는 건, 노멀로그와 노멀로그에 들러 글을 읽어 주신 독자들 덕분이라 생각한다.

댓글에 답이 없어 섭섭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자신에 요청에 응하지 않은 태도에 화가 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가지고 있는 생각과 글을 맞대어 보다가 맞지 않자 비판의 칼을 든 사람도 있을 것이고, 오늘처럼 닉네임을 바꿔가면서 까지 어떻게든 상처를 내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빛을 꾸준히 비춰주며 길을 인도해 주는 사람들이 있기에 좌초되거나 침몰하지 않고 그 이끌림을 따라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공부가 너무 하고 싶어서 어느 인문학 강의 사이트에 메일을 보냈다. 이러이러한 블로그를 운영중인데, 이 블로그에서 배너광고를 해드릴테니, 돈 대신 그 사이트의 강의를 볼 수 있는 수강권을 좀 협찬해 주셨으면 한다는 내용이었다. 거절당하면 몇 몇 강의라도 결재해서 볼 생각이었다. 행운이 따랐는지, 마침 해당 사이트의 관계자분이 노멀로그를 알고 계셨고, 배너광고를 하는 조건으로 난 무료수강권을 얻어 강의들을 듣고 있다.

"파워블로거"라는 이름으로 강연이나 좌담회 등에 참가해 달라는 요청을 받은 적이 있었다. 인문학 강의들을 보며 그곳에 참가하지 않기로 한 결정이 참 잘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명세를 타면 강의를 하고, 인기를 얻으면 강의를 하고, 이슈가 되면 강의를 하는 시대라지만, 몇 십년간 공부해 온 것들을 막힘없이 한자를 써 내려가며 이야기 하고, 고민하느라 머리털이 한 움큼은 빠졌을 시간을 보내온 강사와 어찌 한 자리에 설 수 있겠는가. 당장 생활비에 진통제처럼 효과를 발휘할 페이가 탐나기도 했지만, 글을 쓰기로 했으면 글을 쓰는 것이 맞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형편없음을 그대로 드러내지 않기 위해선, 계속 공부하는 수 밖에는 없다고 생각했다.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버나드 쇼가 묘비명으로 남긴 이야기를 내가 잊지 말길 바라며,


각성을 돕는 커피여, 900만의 영광은 그대에게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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