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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천오백자연애상담

백수 연하남친과의 연애, 두 번째 헤어졌는데 마음이 힘들어요.

by 무한 2022. 1. 10.

백수 연하남친. 말만 들어도 마음에 벽돌이 몇 개 놓인 듯 갑갑해지는 단어입니다. 그간 얼마나 고생 많으셨습니까. 평강공주 빙의해서 사람 하나 만들려고 했더니 이건 그 자리에서만 끄덕끄덕 할 뿐 결국 작심삼일이고, 뭐 될 것 같지도 않은 허황된 얘기나 꼬꼬마스러운 미래 계획들로 사람 속 터지게 하고, 선물 같은 거 받을 생각도 크게 없이 이해하고 만나면 정서적인 부분에서라도 충성충성 해야 하는데 그런 것도 아니고, 나도 이제 결혼 생각 같은 걸 좀 해야 하는데 현 상황을 보면 상대는 아직 취업 전이니 갈 길은 수만 리 인 것 같고….

 

연애 초반에야 '나중에 행복하게 해주겠다', '마당 있는 집에서 살자' 같은 상대의 말들이 달달하게 들리지만, 반년이 지나도 일 년이 지나도 또 새로 알바 자리만 구하거나 공부하겠다면서 나가 친구와 술 마시고 들어오는 상대를 보며 참담한 기분이 들 수 있습니다. 뭐가 좀 나아지면 부모님께 소개도 하고 인사도 가고 하려 했는데, 해가 바뀌어도 여전히 제자리인 것 같은 상황에 말입니다.

 

 

그런데 그게 꼭, 상대 혼자만의 문제나 한계는 아닐 수 있습니다. 상대가 애초에 그렇게 태어난 사람이며 어차피 비전 같은 건 없는 인생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 나비가 되기 전 애벌레의 시절을 필연적으로 겪어야 하는 삶이라 그럴 수 있으며, 이쪽과의 연애가 오히려 상대를 애벌레에 묶어두는 치명적 문제를 지니고 있어서 그럴 수 있습니다.

 

H씨는 삶을 빈틈없이 살아오며, 졸업 후 현재 정년이 보장되는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고 있기에 잘 모를 수 있지만,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여러 변수들로 인해 꼬꼬마시절부터 삶의 구김은 생길 수 있으며, 여차저차 함정 같은 것들을 넘어오긴 했지만 현 상황에서 앞을 보니 발 디딜 곳이나 비빌 곳이 마땅찮은 경우도 생길 수 있습니다. 불운하게도 주변 누구 하나 길을 알려줄 사람이 없었다거나, 이상한 길을 알려준 까닭에 돌아 나오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을 수 있고 말입니다.

 

제가 H씨의 사연을 읽으며 가장 안타까웠던 문장은

 

"미래에 대해 대화를 나눈 적은 거의 없습니다.(중략) 헤어지기 직전에, 우리의 미래를 그려보면 느껴지는 한계에 대해 제가 이야기했습니다."

 

라는 부분이었습니다. 연인의 미래를 꼭 이쪽에서 함께 고민해야 하는 게 의무는 아닙니다만, '우리의 미래' 절반이 상대에게 달려 있는 거라면, 함께 고민하고 당장 실천할 수 있는 것부터 같이 찾아봤으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특히 H씨는 '너무 어린 생각으로 세운 듯한 상대의 계획'에 대해 제게 이야기를 하셨는데, 그전에 상대에게 터놓고 말했으면 지금과는 다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도 고집대로만 할 뿐이며 귀담아듣지 않는다면 그건 상대라는 사람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할 지점이겠지만, 여하튼 그냥 쭉 다 지켜만 보다가 최후에 "잘 봤습니다. 전 불합격드리겠습니다." 하게 된 것 같아 아쉬움이 좀 남습니다.

 

 

그리고 이건 좀 다른 얘긴데, 직관이 뛰어나며 아는 게 많은 사람일수록 

 

-상대가, 내가 아닌 다른 이성을 만난다면 더 긍정적일 수 있는 부분.

 

들도 꾸준히 떠올려 볼 필요가 있습니다. 직관이 뛰어나며 아는 게 많은 사람일수록 '오만'이라는 함정에 잘 빠지게 되는데, 그런 경우 모든 지점에서 상대를 얕잡아 보거나 '나니까 상대를 만나주는 것'이라는 착각에만 사로잡힐 수 있습니다.

 

사례를 들자면, 교육직 공무원인 전여친에게 '피해의식에 쩌든 낙오자'라는 평가를 받았던 모 대원의 경우, 이별 후 부동산업을 크게 하는 아빠를 둔 연하여친을 만나 결혼까지 한 뒤 부동산 일을 하며 남부럽지 않게 잘 살고 있습니다. '젊은데 정육점에서 일하는 남친을 부모님에게 소개하기 부끄럽다'는 얘기까지 들었던 어느 대원은, 다른 사람을 만나 연애하며 변화를 겪어 지금 이름만 대면 알만한 프랜차이즈 갈빗집을 하며 잘 살고 있고 말입니다.

 

H씨가 잘못했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다만, 다음번에 누구를 만나더라도 오만의 함정에 빠지게 된다면 상대를 과소평가하게 될 수 있어 하는 얘깁니다. 그럴 경우 '을'이 되었을 땐 자존심 상해하고, '갑'이 되었을 땐 상대를 우습게 여기게 되는 극단적인 두 모습으로만 연애를 하게 될 수 있습니다. 

 

 

연애가 '낚시'이고, 결실이라는 게 '함께 잡은 고기'라고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나는 낚시를 잘 하고 상대는 못 하기에, 내가 이것저것 설명해주며 낚시를 하는 중입니다. 그런데 상대는 바늘에 미끼도 엉망으로 끼우고, 입질이 있으면 채야하는데 채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속으로 혀만 차고 있을 게 아니라, '함께 잡은 고기'를 위해서라도 잘못된 지점들을 알려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또, '얘 말고 다른 사람이랑 왔으면 더 많이 잡았을 걸'이란 생각을 하면 상대의 일거수일투족이 다 짜증 나 보이기만 할 뿐이겠지만, 따지고 보면 상대 역시 나 아닌 요트 있는 사람을 만나 제주바다에 요트 띄우고 낚시를 했으면, 이런 작은 동네 방파제에서 깔짝깔짝 고기 잡는 것보다는 훨씬 쉽고 빠르게 많이 잡지 않았겠습니까?

 

이게 H씨가 보낸 사연이며 H씨의 오답노트 위주로 살펴보다 보니, 자칫 '백수 연하남친'에 대해선 무조건 이해하고 가르쳐주며, 응원해주고, 나중에 다 잘 될 사람이니 서포트해주라는 얘기처럼 잘못 전달될까 걱정이 되긴 합니다. 제 얘기는, 같이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지금부터 준비해보는 거니 속으로 혀만 차지 말고 서로 돕자는 것, 그리고 그러는 과정에서 내가 더 잘하는 부분이 많으면 상대를 우습게 볼 수 있는데 그럴 때면 내 오만을 내가 단속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라 생각해주셨으면 합니다. 이건 상대가 연하든 연상이든 동갑이든 그 어떤 관계든 다 해당되는 이야기니, 다음번에 하실 행복한 연애의 밑거름이 되었으면 합니다. 자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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