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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커플생활매뉴얼

모임이 너무 많은 남자친구, 헤어져야 할까요?

by 무한 2018. 1. 26.

이 사연, 이틀을 붙잡고 몇 가지 버전의 매뉴얼을 쓰다 말았다. 이 답이 구해지기도 하고 저 답이 구해지기도 하는 애매한 사연인데, 굳이 내가 꼭 답을 구해야 한다는 부담을 내려놓으면 좀 더 편하게 작성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오늘은, 내가 이 사연을 두고 고민했던 지점들을 공유하는 것으로 매뉴얼을 대신할까 한다. 출발해 보자.

 

 

1.사람 만나면 방전 VS 사람 만나는 게 활력소

 

나처럼 집돌이적 성향을 지닌 사람은 여럿을 만나고 돌아와 집에서 혼자 다시 충전할 시간이 필요하지만, 반대로 사람을 만나지 않고 홀로 있으면 방전되는 성향의 사람들도 있다. 난 친구들 몇이 모였다며 나오라고 해도 다음에 보자며 거절하곤 하는데, 이런 나와 다르게 친구들이 시간 안 된다고 해도 ‘되는 사람끼리라도 만나자’며 모임에 헐떡이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후자의 사례 중엔, 중학교 모임, 고등학교 모임, 대학교 모임, 동아리 모임, 동호회 모임, 군대동기 모임, 회사동기 모임, 지역 모임, 여행하다 만난 모임 등의 수 많은 모임에 참여하며 많을 땐 일주일에 세 번 까지도 모임이 참석하는 사례가 있다. 이걸 그냥 말로만 들으면

 

‘대인관계와 인맥을 위해 모임에 참석하는 정도야 뭐….’

 

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렇게 모임에 참여하는 것과 연애를 유지하는 것은 같은 동력을 필요로 하는 까닭에 문제가 된다. 연인과는 일주일에 한 번 보는데 모임은 일주일에 두 번 이상 참석하고, 모임에 월요일에 나가 술 마시곤 화요일 숙취로 낑낑대다 수요일 쯤 회복하고, 목요일 하루 쉬곤 금요일에 모임 나갔다가 역시나 토요일에 숙취로 고생하다 일요일에 좀비 상태로 데이트를 하게 되면, 연인의 입장에선 빡치는 것 아니겠는가.

 

게다가 그런 사람들 중엔 모임에 나가면 전화도 안 받고, 집엔 새벽 두 시인지 세 시인지에 들어가는데다, 제발 집에 들어갔다고 연락은 해달라는 이야기를 해도 절대 안 지켜지는 사례가 많다. 모임 중 자리 옮길 때 연락해달라고 하면 집중하기 어렵다는 얘기를 하며, 끝나고 연락할 생각을 하면 눈치 보는 느낌이라 제대로 놀지도 못한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상대와 ‘결혼하면 나아지겠지’하는 생각으로 결혼했지만, 모임에 참석하느라 집을 계속 비우거나 일요일에도 처자식 놔두고 새벽부터 산악회 모임에 가는 상대 때문에 심한 내상을 입은 사례들도 있다. 억지로 붙잡아 놔봐야 시무룩해져선 우울증 초기 증상같은 걸 보이거나 어딘가에 갇힌 듯 무기력한 모습만을 보이기에 붙잡은 사람 입장에서도 마음이 편치 않고 말이다.

 

J양의 남친 역시 다섯 개 이상의 모임에 참석 중이며, 모임에만 나갔다 하면 전화도 안 받고 카톡으로만 연락할 뿐이며, 나아가 이성과의 비율까지 맞춰서 만나거나 그렇게 짠 인원들끼리 놀러가기를 희망하고 있는 까닭에 난 그게 마음에 걸린다. 내 여동생이 이 사연을 들고 왔다면 난 성향이 너무 다른 상대와는 헤어지는 걸 진지하게 고려해 보란 얘기를 해줄 것 같아서, J양에게도 그렇게 권해줘야겠다는 생각을 먼저 했었다.

 

 

2.다 맞춰주고 들어주고 희생해야 하는 연애

 

그런데 둘의 대화를 쭉 읽다 보니, 그 연애는 남친이 J양에게 거의 다 맞춰주고, 얘기도 늘 들어주고, 많은 부분에서 희생하는 걸로 유지되고 있다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때문에 J양 입장에선 그가 우쭈쭈쭈 해주는 다정한 남친이지만, 남친 입장에서 보면 자신이 그저 J양의 보호자로서 그 연애를 하고 있다는 느낌일 수 있다.

 

비유하자면, 남친에게 J양은 어린 친척동생 같은 느낌이고, 모임 사람들은 또래의 친구 같은 느낌이랄까. 어쩌면 J양이 그런 대화만 추려서 보내줬기에 더 그래 보일 수 있지만, 여하튼 J양이 첨부한 대화에선 뭐 먹었다, 어디 가자, 나 지금 뭐 한다 하는 것이 주를 이룬다. 연인이 꼭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에 대해 대화를 나눠야 하는 건 아니지만, 그것들 중 아무 것도 공유할 수 없는 연애는 아무래도 데이트메이트로서의 기능만 수행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난 좀 든다.

 

J양은 내게

 

“모임만 제외하면, 진짜 저흰 완전 좋아요. 그것만 아니면 저도 남자친구의 모든 점이 다 좋고요.”

 

라고 하는데, 난 그 ‘완전 좋아요’라는 부분에 남자친구 역시 진심으로 동감할지를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봤으면 한다. 챙김을 받는 J양의 입장에서는 분명 좋겠지만, 늘 다 맞춰주고 들어주고 리액션해줘야 하고 거기다 리드도 해야 하는 남친 입장에서는 그 관계에 대한 의무감이 더 클 수 있으니 말이다.

 

둘의 대화가,

 

J양 – 나 이거이거 했어!

남친 – 그랬어? 우쭈쭈.

J양 – 나 저거도 할 거다 ㅎ

남친 – 우와~ 그건 같이 하자~

 

라는 패턴의 반복은 아닌지도 돌아봤으면 한다. 저런 리액션을 해주는 남자가 다정다감하고 날 많이 사랑해주는 것처럼 느껴질 순 있지만, 늘 그런 일방적인 대화만 나눠야 할 경우 상대는 그저 조건반사적으로 리액션을 해주거나 권태나 귀찮음을 느끼게 될 수도 있다.

 

J양이 작성한 신청서를 보면 J양에겐 진지한 모습도 있고, 자기 감정을 잘 설명할 줄도 아는 것 같다. 그런데 연애에서는 그 성숙하고 이성적인 모습을 다 생략한 채 그저 삐치거나 심술부리거나 울어버리기만 하는 것 같으니, 그 모습들을 좀 적절히 잘 섞었으면 한다.

 

 

3.하지만 여전히 남는 찝찝함은 왜일까?

 

내가 마냥 긍정적인 답을 하며 마무리를 하기 힘든 게, 위에서 말한 두 가지 문제 외에 J양의 남친에게

 

-일단 J양이 바라는 대로 하겠다고 말해 위기를 넘기려 하는 모습

 

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는 갈등이 생기면 맹목적으로 사과부터 해서 얼른 J양 기분 풀어주는 것을 우선으로 두며, 그 와중에 J양이 요구하는 게 있으면 일단 다 그러겠다고 대답한다. 하지만 그 약속들은 지켜지지 않으며, 같은 갈등을 계속 겪다가 심하게 싸우게 되면 그제야 황당한 소리를 꺼낸다.

 

모임에 대한 갈등으로 인해 가장 최근에 싸웠을 때, 남친이 한 말을 보자.

 

“솔직히 난 내가 모임에 나가서 왜 너에게 연락을 해야 하는지 진짜 모르겠다. 모임 끝나고 집에 들어갈 때도 왜 내가 집에 들어간다는 걸 너에게 알려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앞으로 무조건 연락 잘 할 것이며 연락 못 해서 정말 미안하다고 몇 번이나 사과했던 사람이, 같은 문제를 계속 일으키다가 이제야 ‘그런데 내가 왜 연락해야 함?’이라고 묻고 있다. 여기에 빡친 J양이

 

-그럼 결혼해서도 그럴 거냐. 결혼해서도 새벽에 들어와 잘 거냐. 결혼 후에도 모임의 이성들과 어울리며 놀러가려고 할 거냐.

 

라고 묻자,

 

“결혼하면 상황이 다르지. 그땐 그런 모임엔 안 나가겠지.”

 

하는 대답을 했다. 대답한 내용을 보면 그도 그런 모임에 자주 나가는 게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듯 보이는데, 지금까지 그가 보인 태도를 보면 결혼 후엔

 

“근데 왜 결혼했다고 해서 내가 모임에 나가면 안 되는지?”

 

하는 질문을 하진 않을까 싶기도 하다. 게다가 현재 모임으로 인한 갈등이 있을 때마다

 

-난 네가 모임에 나가도 아무렇지 않을 것 같다. 너도 나가라.

-네가 억지로 허락할 때면, 가라고 해도 내가 마음 편하게 못 간다.

-네가 모임에 나가는 건 네 인생인데 내가 왜 뭐라고 하겠냐.

 

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연인임에도 불구하고 ‘네 인생, 내 인생’을 확실하게 구분 지어 생각하며 ‘내가 마음 편하게 모임에 가서 노는 것’을 주장하는 게, 여기서 볼 땐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 그것도 J양이 모임을 원천봉쇄하는 것도 아니고 연락만이라도 잘해달라는 요구를 하는 건데, 그는 모임 참석 중엔 연애나 연인을 완전히 배제해 놓고는 다음 날 눈 뜨기 전까지 일시정지 해두고 싶어 하는 것 같아 보이고 말이다. 그래서 참 나도, 뭐라 말해주는 게 좋을지 솔직히 모르겠다.

 

 

J양은 ‘결혼하면 안 그럴 거다’라는 상대의 말에 이번에도 명확하게 결론 짓지 못하고 그냥 흐지부지 넘어가게 된 것 같은데, 이건 상대가 ‘이성이 포함된 모임’에 자주 참석할 때 J양의 기분이 어떤지, 그리고 상대가 모임에 나간 이후 거의 연락두절 되다시피 해 다음 날이 되어서야 연락이 될 때 J양은 어떤 나쁜 생각들을 하게 되는지, 그리고 그런 부분들이 J양에게 어떤 불안을 가져다 주는지 등을 차분히 설명하는 작업이 꼭 필요하단 얘기를 해주고 싶다. 

 

또, 그간 J양은 늘 상대가 잘못을 한 이후에야 화가 나 따지고 약속을 받아내는 것으로만 조율하려 했는데, 그러지 말고 분위기 좋을 때 둘이 카페에 앉아서라도 이런 이야기들을 해봤으면 한다. 만나서 그저 먹고 마시고 영화 보고 등의 데이트만 하다가 나중에 갈등이 생기면 그제야 극약처방으로 진화하려 하지 말고, 예방을 할 수 있도록 평소에도 힘써보자. 상대에게도

 

-내 말에 다 따라달라는 게 아니라, 오빠의 솔직한 생각을 듣고 싶다. 오빠가 뭐라고 말하든 나도 그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것이며, 조율하고 싶다.

 

라는 이야기를 해 최대한 안심시킨 채 대화를 시도하면, 그도 솔직하게 속마음을 털어놓을 것이다. 단, 그의 성향 상 맹목적으로 다 맞춰주겠다는 얘기를 하거나 저걸 함정수사로 여겨 속마음을 감출 수 있는데, 그럴 땐 그게 아님을 몇 번이든 말해가며 설득해 꼭 조율하길 바란다. 자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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