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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5)

감정의 널뛰기만 계속하는 짝사랑, 종결의 방법.

by 무한 2016. 7. 22.

그대가 만약 후쿠오카에 갈 예정이라고 했을 때, 누군가에게 물어도 되는 바람직한 질문은

 

“공항에서 텐진까지 버스타고 가는 게 낫나요, 아니면 전철이 낫나요?”

 

정도다. 질문을 하더라도 그렇게 거기 가서 뭐 할 것인지를 좀 정한 뒤에 해야지, 그냥 정말 아무 것도 없이

 

“이번 휴가 후쿠오카로 다녀오려고 하는데 괜찮을까요? 거기 가서 뭐 하는 게 좋죠? 먹는 건요? 그건 어디서 사먹는데요? 맛있어요? 가격은요? 거기 몇 시까지 해요? 쉬는 날 없고요?”

 

라고 물으면, 인내심이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고 해도 결국 짜증을 내고 말 것이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아는 정보가 있어도 대화 자체를 회피하게 될 것이고 말이다.

 

나 역시

 

“서로 단톡방에 있기 때문에 상대랑 개인톡 할 수 있거든요. 개인톡 해볼까요? 뭐라고 톡 보내죠? 마음대로 먼저 톡 보내면 싫어하지 않을까요? 상대가 단답을 하면 어쩌죠? 무슨 얘기를 어떻게 이어가는 게 좋나요? 몇 분 정도 대화하는 게 좋죠? 대화하고 나서 저녁에 또 보내는 게 낫나요, 아니면 하루쯤 뒤에 다시 보내는 게 낫나요?”

 

라고 물어오는 사연을 받고 나면 그냥 힘이 빠진다. 도착한 사연이니 읽기는 하는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대답해줘야 할지도 모르겠고, 어쩌다 대답을 해주면 계속해서 “그 다음은요? 그래도 될까요? 아 어떡하죠? 포기할까요? 잘 될 거라 보시나요?”라고 물어오는 까닭에 난 또 담배를 입에 문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일단 보류해 두었던 사연들이 또 꽤나 쌓였다. 이 상대로 마냥 둘 순 없으니, 최대한 요점만 짚어가며 살펴보도록 하자.

 

 

1. 썸인 줄 알았는데, 만나는 사람 있다고 하네요. 어쩌죠?

 

K씨의 이 사연은, 상대가

 

‘가는 남자 안 잡고, 오는 남자 안 막는다.’

 

의 마음을 가지고 있기에 벌어지는 일이라고 보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런 사람들이 있다. 썸을 타고 있는 와중에도 다른 썸을 같이 타거나, 남친이 있으면서 다른 남자와 영화보고 술 마시는 걸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거나, 썸남과의 관계를 다른 썸남에게 상담하고자 꺼내 놓는 사람들.

 

K씨의 입장에선 자신이 들이대는데도 상대가 밀어내거나 싫어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으니 ‘그린라이트’라고 생각했겠지만, 그런 자리엔 내가 가도 호감이 꽃피는 분위기가 될 수 있고, 김창식씨가 가도 번호 받은 뒤 긴 카톡대화를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상대가 이러는 게, 밀당인지, 아니면 완곡한 거절인지, 대체 뭔지 구분이 잘 안 갑니다.”

 

그런 경우 난 보통 “상대에게 먼저 연락이 오는지, 그리고 상대가 먼저 만나자고 하는지를 살펴보세요.”라고 말하곤 하는데, 이것도 사실 절대적인 구분법은 되질 못한다. 그런 사람들의 경우, 먼저 연락을 하거나 만나자는 말을 하는 사례도 많기 때문이다. 그런 사례 중엔 상대가 먼저 스킨십을 해온다거나, 남친과 헤어질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며 기대는 제스처를 취하는 경우도 있다.

 

난 이렇게 선이 불분명하며 썸을 타는 중에도 다른 사람에게 여지를 흘려두는 사람과는, 연을 맺지 말길 권하고 싶다. 상대가 자신의 이야기도 망설임 없이 털어 놓고 도움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도 거리낌 없이 부탁하는 까닭에 멍석이 깔린 것 같겠지만, 그런 멍석은 김씨나 이씨, 최씨나 박씨 등 그녀에게 호의적인 모습을 보이는 사람에게라면 누구에게나 깔릴 수 있는 것이다. 아직 뭐 서로에 대해 아는 것도 별로 없고 둘이 같이 뭘 한 것도 없는데, 그냥 너무 쉽게 연애까지 금방 될 것 같을 땐 한 번쯤 곰곰이 생각해 보는 게 좋다.

 

‘상대가 정말 내게 마음이 있어서 흔들리는 것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어 갈팡질팡하게 된다면, 상대가 다른 썸남과 만나는 시간 외에만 K씨를 만나고 있는 건 아닌지, 긴 대화가 이루어진다는 건 상대가 자신의 이야기를 수다스럽게 많이 늘어놓아서 가능한 것이 아닌지, K씨는 썸 타는 중이라 생각해 잘해주는 건데 상대는 그저 다른 남자와의 썸까지를 K씨에게 털어 놓고 도움만 받으려고 하는 건 아닌지 점검해 보길 권한다.

 

K씨는

 

“제가 고쳐야 할 점이 있다면 어떤 점인지, 이 부분도 고민입니다.”

 

라고 했는데, K씨가 고쳐야 할 부분은 딱히 없다. 교차로에서 이쪽은 파란 불 들어오고 맞은 편 차선은 좌회전 신호 들어왔다면, 그건 신호등의 문제이지 신호등 보고 출발한 사람의 문제는 아니잖은가. 다만, 이쪽의 안전을 위해 ‘내 신호 말고 다른 신호에도 그린라이트가 켜진 건 아닌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걸 기억해 뒀으면 한다.

 

 

2. 상대는 저를 100% 친구로만 여기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난 짝사랑 중 저지를 수 있는 제일 바보 같은 짓을,

 

‘내가 상상으로 만들어 낸 가상의 적들과 싸우거나, 상상한 일들로 인해 혼자 상심하는 것’

 

이라고 생각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 상대와 자연스레 대화할 수 있는 상황에도 점 하나에까지 신경 쓰며 침전하기.

- 상대의 SNS프로필이나 선곡에 어마어마한 의미를 담아 그걸로 대화하기.

- 상대의 구남친, 또는 상대에게 관심을 가진 다른 이성들을 견제하는 것에 힘쓰기.

- 상대의 3g짜리 대답에, 300kg의 숨은 의미가 있을 거라며 찾아 나서기.

- 그냥 대화 나눠도 되는 걸, 혹시 민폐를 끼치는 건 아닐까 염려하며 마무리하기.

 

라고 할 수 있겠다. 짝사랑하다보면 누구라도 저지를 수 있는 일이긴 하지만, 냉수마찰 한 번 하고 생각해보면, 저건 ‘실제 현실의 일’보다는 ‘내가 만든 염려와 불안’ 때문에 스스로를 좀먹어가는 행위일 뿐이라는 걸 금방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혼자 기대했다 실망하며 물러서지 말자. 짝사랑하는 상대에게 거절의 말을 듣는다고 해서 세상 끝나는 것도 아닌데, J군은 뭐가 그리 겁나서 자꾸 물러서는가. 남자가 좀 박력도 있고 리드도 할 수 있어야지, 눈치 보며 상대의 뒤에서 비위만 맞추려 들면 곤란하다.

 

“만나기로 약속은 전에 했는데, 언제 만냐겠냐고 물어보면 뭔가 싫어할 것 같아서, 말은 못 꺼냈습니다.”

“저랑 단둘이 만나는 것은 부담스러워한다는 게 느껴져서, 다른 친구들을 더 부르려 했습니다. 그런데 제게는 운 좋게도, 모두들 시간이 안 된다고 해서 둘이 만나게 되었습니다.”

“예전 100문 100답을 보면 그녀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적어놨었는데, 그때 그녀와 가까웠던 사람들을 추적해가다보면, H군이 나옵니다. 그녀가 H군을 마음에 두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냥 그 대화에서, 저를 남자로 보고 있진 않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잠자는데 혹시 방해가 될까 싶어서 얼른 제가 대화를 마무리했습니다.”

“다 같이 있을 땐 주변 친구들의 눈치가 보여 B양에게 다가갈 수 없었습니다.”

 

이 정도면, 거의 ‘연애 염려증’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다 무섭고 불안하고 염려되는 거라면, 대체 연애는 어떻게 하려고 그러는 건가.

 

둘이 사적으로 연락하고 밖에서도 만나며 또 밥을 먹을 때 먹여주기도 할 정도라면, 이쯤에서 J군이 잿빛 상상을 하며 집에서 글루미 선데이만 찍고 있을 게 아니라, 나중에 포켓몬 같이 잡자는 얘기라도 꺼내야 할 시점이다. 물 들어왔으면 노 저어야지,

 

‘물이 다시 빠지는 건 아닐까? 아마 빠질 거야. 노를 저어도 소용없겠지. 배에 타고 있는 게 괴롭다.’

 

하는 생각만 하고 있으면 앞으로 1cm도 나아가지 못한 채 그 자리에서 괴로움만 느끼게 될 뿐이다.

 

내가 오늘 J군을 만난다면, 솔직히 J군과는 별로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냥 인사만 하고 헤어져 집으로 돌아올 수 있다. 그런데 만약 J군이 “제가 걍사(사슴벌레)를 키운 적이 있습니다. 서식지도 알고 있고요. 같이 채집 한 번 가실래요?”라고 묻는다면 난 곧바로 J군을 따라 나설 것이다.

 

이렇듯 J군이 먼저 뭔가를 좀 해야 ‘다음 이야기’가 이어지는 거지, 그저 자신이 만든 상상 속 적들과 결투를 벌이다 치명상만 입고 있으면, 상대의 ‘여러 친구 중 하나’라는 자리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내가 매일 매뉴얼을 올리지 않았다면, J군이 노멀로그를 알게 돼 내게 사연을 보내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 아닌가. 수습은 내가 도와줄 테니, 상대와 만나 놀며 일단 좀 저지르자. 지금 J군에겐 걱정만 너무 많다.

 

 

3. 사내 심남이에게 대체 어떻게 다가가야 하나요?

 

7월은 이제 거의 다 갔으니 심기일전해서 8월부터 카톡도 보내보겠다는 계획을 세우는 것도 좋지만, 그 전에 들고 있는 그 김칫국 사발부터 내려놔야 한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L양 자신도 인지한 듯

 

“아마 연애하게 되면 비밀 연애가 되지 않을까 하는데…. 이건 뭐 김칫국 2리터 드링킹이죠?”

 

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아직 상대와 카톡대화도 트기 전인 이 시점에 ‘비밀 연애’를 생각하는 건 너무 많이 나간 거다. 또, 그렇게 너무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보면, 발밑의 상황은 보지 못한 채 상대에 대한 관찰만 하게 될 수 있다.

 

“그의 부서에 예쁘고 착한 여직원이 있어요. 그의 바로 옆자리에 앉은데다가, 그 여직원이 워낙 친절한 편이라서 저는 좀 불안해요.”

 

그 여직원은 여직원이고, L양은 L양이다. 지금 당장 생각해야 하는 건 ‘상대와 L양의 관계’이지, 상대와 남의 관계가 아니다. 그러니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쳤을 때 말 한 마디라도 나누는 것, 어쩌다 같이 걸을 일이 있을 때 둘의 공통점인 종교를 활용해 질문을 하는 것, 업무를 핑계 삼아서라도 둘의 카톡을 트고 대화하는 것에 더 집중하자.

 

직원들끼리 점심 먹으러 갈 때, 부서가 다른 그가 본인 부서의 남자 직원과 걸어가는 건 당연한 일이다. L양은 그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기에 그가 말이라도 걸어주길 바라고 있겠지만, 그의 입장에선 L양이 타 부서 사람이며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면 눈을 피하고, 인사도 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생각하길 바란다. 붕 떠서 혼자 기대와 좌절만 할 게 아니라 현실에 발 디디고 생각해야 한단 얘기다.

 

“대화할 기회가 있긴 했는데, 제가 괜히 부끄러워서 어색하게 굴고 말았어요.”

 

호감 가는 사람의 옆자리에 앉게 되어도 부끄러워서 말을 못 건다면, 그냥 부끄러워하며 계속 그러고 있는 수밖에 없다. 내가 새벽기도를 나가 L양을 대신해 기도해준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잖은가. 당 떨어지는데 생과일주스라도 한 잔 하겠냐고 말이라도 걸어야 그도 L양의 존재를 신경 쓰게 되는 거지, 아파트 5층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관찰하듯 그를 구경만 하고 있으면 그는 L양이 쳐다보고 있는지도 모를 뿐이다.

 

“상대가 철벽남인 것 같아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L양은 상대와 사적으로 말 한 마디 나눠본 적도 없지 않은가. ‘거절당하는 것’과 ‘거절당할 것 같은 것’은 완전히 다른 건데, L양은 후자의 결과를 예측하며 상대에게 ‘철벽남’의 혐의를 씌우려 한다. 이래버리면 ‘옷가게에 마음에 드는 옷이 없을까봐 가지 않는 것’과 같은 일이 벌어지고, 결국 L양은 문 밖으로 한 발짝도 못 나간 채 옷도 살 수 없을 것이다. L양이 상대에게 종교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거나 전화번호를 묻는다고 해서 그가 따귀를 올려붙이는 일은 절대 벌어지지 않을 테니, 김칫국과 부정적인 상상을 번갈아가며 복용하는 건 그만두고, 말부터 걸어보길 권한다.

 

 

나도 여린마음동호회 회장인 까닭에 사람들의 무서운 표정을 먼저 떠올리고 혹시 나중에라도 상대와 적이 되는 건 아닐까 하며 두려워하곤 하는데, 그걸 극복하고 용기를 내보면 내 생각보다 세상에 아군은 많고, 홀로 고민하던 것이 민망할 정도로 쉽고 아무렇지 않게 해결되곤 한다.

 

내 아군 중 한 명이 그대인 것처럼 그대의 아군 중 한 명인 내가 바로 여기 있으니, 엄호는 걱정하지 말고 앞으로 돌격하길 바란다. 난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여기 있을 것이고, 노안으로 돋보기가 필요할 때에도 그대의 사연을 정독할 것이다. 그러니 몸을 숨긴 채 벌어지지도 않은 일에 겁먹고 불안에 떠는 건 그만하고, 일어서서 약진 앞으로!

 

다들 즐거운 불금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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