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5)

의무적으로 만나는 것 같다며 떠난 그녀, 끝난 걸까? 외 1편

by 무한 2016. 6. 16.

새끼 고양이 노랑이가, 세상을 떠났다. 어제 통조림을 1/4캔이나 먹길래 혹시 회복되는 건가 하는 기대를 했었는데, 오늘 아침 일어나자마자 상태를 살펴보려 상자를 여니 누워서 일어나질 못하고 있었고, 몇 시간 뒤 다시 물이라도 먹여보려 다시 상자를 여니 핑크 빛이던 살들이 푸르게 변한 채 굳어 있었다.

 

어제 하루 종일 붙어서 통조림도 먹이고, 따뜻한 물 축인 헝겊으로 몸도 닦인 뒤 말려주고, 머리부터 꼬리까지 한참 쓰다듬어 주길 잘한 것 같다. 동공이 팽창된 채 입을 벌리고 숨을 쉬던 그 와중에도, 나를 알아보곤 발을 만질 때 발톱을 감추던 그 마음이 아직 느껴진다.

 

무슨 얘기를 더 해야 좋을지 모르겠으니 마중글은 이쯤 적고, 바로 매뉴얼 시작해 보자.

 

 

1. 의무적으로 만나는 것 같다며 떠난 그녀, 끝난 걸까?

 

4년 동안 단 한 번도 헤어지자는 말을 한 적 없던 여자친구가 한 번의 이별통보를 한 뒤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아 마음이 내려앉았겠지만, 그렇다고 그저 다급한 마음에 맹목적으로 사과만 하진 말자. 그게 그렇게 “미안해, 정말 잘 할게, 노력 할게.”라는 말들을 반복해서 해결될 것 같으면, 난 헤어진 뒤 분 단위로 절망하는 대원들에게 깜지를 쓰라는 얘기를 하고 있을 것이다.

 

“전 지금도 그녀가 너무나도 보고 싶고, 미안하고, 고맙고, 사랑스럽고 그렇습니다. 그녀가 돌아와 준다면 제 모든 것을 바쳐서라도 그녀가 원하는 남자가 되도록 바꿀 겁니다.”

 

그냥 다 미안하고 무조건 내가 잘못한 거니 용서해달라고 막연하게 말하는 것보다, 어떤 마음으로 무슨 행동을 했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훨씬 용기 있고 진솔한 사과법이다. 그녀가 이별을 말하게 된 마지막 사건, 그 사건에 대해 K씨가 내게 한 말을 보자.

 

“5월 초 황금연휴였는데, 그녀가 연휴 내내 많이 아팠습니다. 그녀 건강이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솔직히 마음 한편으로는 평일에 자기 친구들 만나 잘 놀던 여친이 꼭 저를 만나는 주말이나 연휴에만 아프다고 하니 마음이 좀 그랬습니다. 또, 저 역시 그냥 집에서 쉬고 싶은 마음도 있어서, 여러 감정들이 뒤섞인 채 저는 결국 아픈 그녀를 방치해두고 제가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연휴를 보냈습니다.”

 

바로 저 자초지종. 저걸 꺼내놓고 대화해야 한다. 그냥 “연휴기간 내내 신경 못 써줘서 진짜 미안해. 앞으로 절대 그런 일 없도록 할게. 제발 돌아와 줘.”라고 말할 게 아니라, K씨는 어떤 마음으로 그런 행동들을 했는지를 밝히는 게 좋다.

 

혹 저렇게 얘기하면 그녀가 더 괘씸하게 생각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겁을 먹을 수 있는데, 그 생각과는 반대로 오히려 저렇게 이야기를 해야 그녀도 자신을 돌아보며 더 넓게까지 생각해 볼 수 있다. 단순히 ‘마음이 식어 K씨가 무성의하게 구는 것 같다’는 오해도 풀 수 있는 것이고 말이다.

 

“이렇게 헤어지면, 다시 만날 가능성이 없는 건가요? 만약 정말 그런 가능성이 없는 거라면, 그녀의 행복을 빌기 위해 저도 깨끗하게 그녀를 잊으려고 합니다.”

 

K씨는 앞서 “돌아와 준다면 제 모든 것을 바쳐서라도 그녀가 원하는 남자가 되도록 바꿀 겁니다.”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정말 그럴 생각이라면 지금 그 마음의 절반을 사용해서 그녀를 붙잡아 보길 권한다. 연애 할 때 소심한 복수 같은 걸 하는 모습을 보여줬다면, 지금 이 순간만이라도 앞에서 울며 부탁이라도 할 정도의 마음을 보여줘야 하는 것 아닌가. 그저 그녀가 안 돌아 올까봐 너무 괴롭다는 독백만 하고 있지 말고, 나중에 잘 되면 열심히 하겠다는 그 ‘열심’의 절반 정도를, 지금 당겨 쓴다고 생각하며 대화를 시도해 보길 권한다. 내가 K씨라면, 만사 제쳐두고 내 연인에게 가서, 익숙하지 않은 고백이라 덜덜 떨리고 눈물이 나오더라도, 나 정말 너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얘기할 것 같다.

 

 

2. 여자 인턴 선생님을 좋아하게 되었는데요. 아, 전 환자요.

 

태준씨, 병원은 상대의 직장인 거고 거기서 태준씨는 환자였던 거잖아.

 

“그 분은 저를 그냥 동생 같은 환자로만 생각하는 거 같아요.”

 

그건 당연한 거지. 난 오히려 태준씨가, 그 관계를 ‘의사와 환자의 관계’가 아닌 무슨 관계라고 생각하는 건지가 궁금해.

 

상대가 정말 착한데다가, 그녀에겐 태준씨가 자기 담당 환자였으니까 많이 참은 거야. 아파서 입원해 있는 자기 환자에게 화낼 수 없는 거잖아. 그녀가 태준씨에게 했던 말들을 봐봐.

 

“실없는 소리 하지 마요.”

“장난하지 마요.”

“그러니까 제가 자꾸 피하잖아요.”

“왜 이렇게 철이 없어요?”

 

상대가 차갑게 거절하거나 화내며 혼내려 들지 않으니까 그래도 되는 것 같지? 그렇게 생각한다면 태준씨는 정말 큰 착각을 하고 있는 거야. 저건 상대가 최대한 좋은 소리로 “그러지 마세요.”라고 말한 거지, 거기가 병원이 아니고 태준씨가 상대의 환자가 아니었으면 “야, 너 지금 뭐하는 거야? 내가 하지 말랬지?”라는 이야기를 했을 수도 있어.

 

“지금은 제가 퇴원한 상태입니다. 연락처를 물어보고 카페 가서 커피 마시고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셋업을 해야 하나요? 의사들은 개인적인 건 규정 때문에 안 알려준다고 하던데 전화번호를 물어보면 안 된다고 할 것 같고, 쪽지로 ‘커피 한 잔 할래요?’라고 하는 게 나을까요? 어떻게 데이트신청을 하고 뭘 해야 할지 조언 부탁드립니다.”

 

사람이 긍정적이고 희망찬 건 좋은 거지만, 본인이 상대에게 폐를 끼치고 있는 건 아닌지도 돌아봐야 하는 거잖아. 태준씨가 상대에게 보여준 거라고는 누워서 능청스런 아저씨들이나 할 만한

 

“선생님 예뻐요~”

“남친 없어요?”

“제가 또 예쁘다고 하면 화낼 거예요?”

 

따위의 말들 밖에 없어. 국어사전에

 

치근덕-대다 [원형:치근덕]

- 성가실 정도로 끈덕지게 자꾸 귀찮게 굴다.

추파 [秋波]

- 환심을 사려고 아첨하는 태도나 기색.

 

라고 정의된 행동들 말이야.

 

단언컨대, 이건 누가 좀 도와주거나 말 몇 마디 잘 한다고 가까워질 그런 관계가 아니야. 사실 지금은 ‘관계의 발전’같을 걸 생각할 게 아니라 사과부터 해야 하는 상황인데, 태준씨가 이걸 하도 아무렇지 않게 얘기하니까 내가 다 헷갈려. 나쁘게 말하자면 태준씨가 입원해선 담당 의사에게 개념도 없고 예의도 없는 행동만 보여주다 나온 건데, 이걸 뭘 어떻게 잘 될 수 있게 도와달라는 건지 모르겠어. 쪽지로 전하겠다는 “커피 한 잔 할래요?”라는 멘트 역시 그냥 완전히 다짜고짜인데다 무례하기까지 하잖아.

 

“퇴원 후에 한 번 가서 봤는데, 그냥 제게 안부만 묻고 다른 말은 안 하더라고요. 저를 그냥 퇴원한 환자로만 생각하는 것 같아요.”

 

대체 뭘 근거로 어떤 기대를 하고 있는 거야? 아니, 그래서 될 것 같으면 나도 이렇게 매뉴얼을 쓸 게 아니라 오늘부터 다들 입원해서 의사나 간호사들에게 추파를 던지라고 하겠지. 퇴원한 후에는 “커피 한 잔 할래요?”라는 쪽지 보내라고 할 거고.

 

상대가 “태준씨는 진짜 재미있는 사람이에요.”라는 이야기를 했다면 이건 긍정적인 사연이겠지만, 상대가 “장난하지 마요. 왜 이렇게 철이 없어요?”라고 말했잖아. 이런 상황이라면 원헌드레드퍼센트 부정적인 게 확실하니까, 되도록 더는 상대에게 폐를 끼치지 말길 권할게. 태준씨가 지금 해야 하는 건 ‘대시’가 아니라 ‘사과’이며, 상대에게 쪽지 줄 생각 할 게 아니라 자신이 얼마나 철없고 경솔한 사람으로 보였을 지를 되돌아 봐야 한다고 적어둘게. 곰곰이 생각해 봤으면 좋겠어.

 

 

노랑이를 어떻게 보내줘야 하는지 몰라서 찾다보니, 법적으로는 애완동물이 죽었을 때 소각용 봉투에 넣어 밖에 내놔야 한다고 한다. 동물병원에 맡기는 방법도 있는데, 그곳에 맡길 경우 의료폐기물과 함께 배출하거나 동물 사체만 가져다 소각하는 사람이 가져간다고 한다. 동네에 세 곳의 동물병원이 있어서 전화를 해봤더니, 오만오천원, 삼만삼천원, 이만원으로 가격이 다 제각각이다. 아무 곳에나 묻으면 불법이지만 사유지가 있을 경우 1미터 깊이로 판 뒤 묻어도 괜찮다고 한다.

 

다들 편안한 목요일 저녁 보내시고, 불금맞을 준비 잘 하시길.

 

카카오스토리에서 받아보는 노멀로그 새 글! "여기"를 눌러주세요.

 새 글을 편하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 하트 버튼과 좋아요 버튼 클릭은 제게 큰 힘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카카오뷰에서 받아보는 노멀로그 새 글과 연관 글! "여기"를 눌러주세요.

 새 글과 연관 글을 편하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