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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커플생활매뉴얼

이기적이던 남친이 많이 달라졌는데, 결혼해도 될까요? 외 1편

by 무한 2016. 5. 18.

벌써 며칠 째, 매일 의무적으로 식빵에 땅콩버터를 발라 먹고 있다. 발코니 정리를 하다 조명 기구를 치우고, 삼각대를 치우고, 모니터를 치우다 보니 그 뒤에 땅콩버터가 있었다. 언젠가 코스트코에 갔을 때 평소 다른 마트에서는 찾아도 안 보이던 땅콩버터가 눈에 띄어 두 개나 구입했는데, 하나는 냉장고에 보관하며 먹고 하나는 발코니에 둔 뒤 잊고 있었다.

 

발코니 발굴현장에서 찾아낸 땅콩버터의 유통기한을 보니, 올해 이번 달까지다. 어머니께서는 언제나 그렇듯 ‘유통기한은 유통과 관련된 것일 뿐, 먹어도 되는 기한은 우리 마음속에 있는 거다. 곰팡이가 먹기 전이면 사람이 먹어도 괜찮다’는 말씀을 하시지만, 평소 ‘냉동실에 보관한 식품의 섭취 가능 기간은 영구적’이라는 이론을 주장하시는 까닭에 믿기가 어렵다. 그래서 난 이번 달이 다 지나가기 전까지 땅콩버터를 다 먹기로 했다.

 

그렇게 좋아했고, 또 언젠가는 수입 제품인 그 땅콩버터를 구할 수 없다고 푸념하자 독자 분께서 보내주신 적까지 있는 땅콩버터인데, 매일 한두 끼씩 의무적으로 먹다보니 지겹다. 책에서도, 커피에서도, 손에서도 땅콩버터 냄새가 나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코에 잔뜩 힘을 주고 냄새 맡듯 숨을 들이쉴 때에도 땅콩버터 냄새가 나는 것 같다.

 

때문에 내가 쓰는 글에서도 땅콩버터 냄새가 풍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렇다면 그건 땅콩버터 1일 1식을 수행하고 있는 수도자와 같은 내 고집 때문이니, 얼마쯤은 이해해 주시길 부탁드린다. 다 먹고 나면 2026년까진 땅콩버터가 먹고 싶어지지 않을 것 같다. 여하튼 푸념은 이쯤하고, 매뉴얼 출발해 보자.

 

 

1. 이기적이던 남친이 많이 달라졌는데, 결혼해도 될까요?

 

질문을 먼저 하나 하자. 남친이 출근도 못 할 정도로 아파 집에 앓아 누워있다고 하면, M양은 온통 거기에 신경이 쓰여 안절부절 못하는 마음이 들 것 같은가?

 

난 저 질문에 M양이

 

“글쎄요. 마음이 좋진 않겠지만 그 정도까지는….”

 

이라는 대답을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두 사람이 사귄 지 이제 4개월 정도 되었다는 것도 그렇고, 남친이 이기적인 태도를 보이자 M양이 금방 헤어질 마음을 먹곤 무 자르듯 인연을 끊은 적 있는 것도 그렇고, 결혼을 고민한다는 지금도 남친을 ‘이분, 이사람’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그렇고, 그냥 둘의 사이가 좀, 엄청 멀게 느껴진다. M양이 가장 친한 친구가 아닌 그저 3년 쯤 알고 지낸 동료에게 털어놓을 수 있는 이야기도, 남친에게는 털어놓을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다.

 

때문에 난 M양이 만약 내 여동생이었다면,

 

“너 남친이랑 친하지도 않은데 무슨 결혼이야?”

 

라는 질문을 했을 것 같다. 영화 보고 데이트 하는 등 연인들이 하는 일을 두 사람이 다 하고 있긴 하지만, 두 사람이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며 서로를 재고 있다는 걸 M양도 알고, 상대도 알고, 심지어 나도 알고 있지 않은가.

 

“남친이 붙잡아 다시 만나게 된 이후로는, 저에게 다 맞춰주는 쪽으로 바뀌었습니다. 완전 딴 사람처럼 바뀌어 제게 잘해주고 있습니다. 결혼이야기도 하기 시작했고, 손해 보는 걸 싫어하는 사람인데 희생도 하고 양보도 합니다.”

 

일부러 불길한 말을 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난 그게 ‘당장은 그러는 것밖에 방법이 없기에 잠시 맹목적으로 다 맞춰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염려가 든다. M양은 내게

 

“제 생각에 이 사람은 제가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반응이 달라지는 사람 같습니다.”

 

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그래서 난 더욱 걱정된다. 우직하거나 진중한 모습 없이 연애 4개월 차에 상대 반응에 따라 그 태도를 달리 할 정도라면, 좀 더 시간이 지난 뒤엔 타협이 불가능한 상태로 M양이 그의 이기심을 견디는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난 M양이, 현재 그가 M양이 바라는 대로 거의 무조건 따라와 주고 있다고 해서 그를 완전히 길들이겠다는 생각은 하지 말길, 더불어 그가 전과 변했으니 앞으로 좀 더 사귀다 결혼할 일만 남은 거라고는 생각하지 말길 권해주고 싶다. 연애는 두 사람이 한 차에 탄 채 시시각각 펼쳐지는 도로 모양에 따라 좌회전을 했다가 우회전을 했다가 하며 함께 가는 거지, 어느 구간을 무사히 통과했다고 핸들에서 손 놓은 채 마냥 편하게만 갈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러니 우선은, 상대를 좀 더 만나봤으면 한다. 당장 뭘 어떻게 약속 받고 M양이 바라는 대로 상대를 개조하려고만 들지 말고, M양이 친구들에게도 못 했던 얘기를 상대에게는 할 수 있을 정도로 친해지는 걸 목표로 삼자. 서로가 서로에게 보금자리가 되어줄 수 있는 게 먼저지, 누가 얼마를 더 내고 누가 더 많이 양보하기로 하는지를 정하는 건 사실 별 의미 없는 짓이다.

 

결혼해서 한 집에 살게 되었는데 남편과 별로 친하지도 않고, 서로가 서로를 손님처럼 여겨 내 공간 침범당한 듯 불편한 마음만 갖는다면 끔찍할 것 아닌가. 앞으로 둘이 여행도 같이 가보고, 서로의 친구들도 함께 만나보고, 명절에 서로의 부모님께 인사도 드리고 하는 등의 많은 일들이 남아 있으니, 그런 일들을 해가면서 파악하고 또 겪어가며 결정하도록 하자. 4개월 만난 것과 당장 남친이 꼬리를 내린 것만 가지고 다 겪어봤다 생각하며 결정해 버리면, 훗날 남친이 지금과 다른 태도를 보일 때마다 눈물만 삼키게 될 수 있으니 말이다.

 

 

2. 한 살 많은 누나를 좋아합니다. 도와주세요.

 

한 3년만 지나도, 서준군은 상대에 대해

 

‘생각해 보니까, 그 누나도 그때는 진짜 그냥 꼬꼬마였구나. 고등학생일 뿐이었는데 왜 그땐 그 누나가 다 큰 어른처럼 보였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중학생 때 학교에서 유명하네 어쩌네 하던 사람들을 지금 돌아보면 그냥 ‘중딩’중 하나인 것처럼, 그런 느낌으로 ‘그 누나’를 바라보게 될 수 있다는 걸 먼저 기억하자.

 

그래야 들이대도 들이댈 수 있는 거고, 저질러도 저지를 수 있는 거다. 지금 서준군이 상대를 대하는 태도는 ‘초등학생 아이가 여자 담임선생님에게 귀여움 받으려고 손 드는 모습’에 가까운데, 그건 상대를 ‘다 큰 어른이며 절대적인 존재인 여자’로 설정해 두고 있기 때문이다. 무슨 얘긴지 잘 모르겠다면, “너 짝사랑하는 중이라고.”라는 이야기를 하는 거라 이해하면 되겠다.

 

짝사랑 중 약간의 조울증 증세를 보이게 되는 건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내가 상대에게 민폐만 끼치게 되는 것 같고, 상대가 뭔가 긍정적인 행동을 해도 ‘나에게만 그러는 게 아니라 남들에게도 그러는 거겠지’하는 생각을 하게 되고, 연락을 하다 TV를 본다고 하거나 잔다고 하면 그게 꼭 ‘난 너에게 관심 없어’라는 이야기를 하는 말처럼 들려 시무룩해질 수 있다. 역시나 모두 정상적인 반응이니, 서준군 자신에게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도 좋다.

 

‘누나’와 친해질 때 꼭 기억해야 하는 팁을 하나 이야기 하자면, 가끔 이쪽이 상대의 오빠가 된 듯한 모습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는 거다.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서준군이 지금 그러는 것처럼 무조건 ‘참 잘했어요’라는 도장을 받으려는 꼬꼬마처럼 굴거나, 맹목적으로 동의와 칭찬만 해서는 곤란하다.

 

상대를 나와 같은 ‘한 사람’으로 여기며 대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 서준군의 태도를 보면 한 살 어린 후배에겐 열 살 많은 오빠처럼 굴려고 들고, 한 살 많은 누나에겐 열 살 어린 꼬꼬마처럼 굴려고 드는데, 그 간격을 최대한 좁히는 게 서준군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다. 극존칭을 써가며 모시려 들지 말고, 그냥 친구와 대화하듯 말하되 뒤에 ‘요’자만 붙이길 권한다. 그러다 그걸 떼도 될 것 같으면 떼고 말이다.

 

나는 꼬꼬마 시절부터 이상하게 ‘누나’들과 친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비법-이라고 해도 될진 모르겠지만 여하튼-이, 상대를 내 친한 친구라고 생각하며 대했기 때문인 것 같다. 난 내가 그들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응원한다는 마음을 비췄고, 실제로도 그런 마음을 가진 채 대했다.

 

그랬던 나와 현재 서준군의 태도를 비교해 보면, 서준군은 열심히 카톡으로만‘그 누나 팬클럽 회장’이 된 듯이 상대를 대하고 있다.

 

“누나 뭐 해요? 누나 뭐 먹었어요? 누나 뭐 좋아해요? 누나 잘 들어가셨어요? 누나 공부해요? 아, 그래요? 어디 가봤어요?”

 

그러지 말고, 자주 보는 사이라면 오프라인에서 친해지는 걸 목표로 두길 권한다. 카톡으로는 수다쟁이가 되어 질문공세 하면서, 오프라인에서 마주치면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도 침묵만 지켜선 곤란하다. ‘카톡은 도울 뿐’이라고 생각하며, 누구 눈치 볼 것 없이 오프라인에서 먼저 말을 걸고, 인사를 하고, 먹을 것도 나눠 먹길 바란다. 이게 안 되는 상황에서 이러다 카톡으로 고백까지 해버리면 ‘퇴짜’는 필연적인 거란 걸 잊지 말자.

 

 

저녁 12시가 되기 전 밤하늘에 대삼각형이 걸리는 걸 보니, 이제 여름인 것 같다. 요즘 해 진 직후에는 하늘 동쪽, 밤이 깊어 가면 남쪽에서 화성과 안타레스가 경쟁하듯 붉게 빛나고 있으니, 밤에 혹 생각나시면 남동쪽 하늘 한 번 올려다보시길 권한다. 올려다보신 그 화성이 나도 매일 올려다보는 화성이니, 우리 같은 화성 한 번 바라봤다 생각하시며 미소 한 번 지으시길 바란다. 자 그럼, 다들 즐거운 수요일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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