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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5)

연상녀를 좋아하게 된 로맨티스트, 문제는?

by 무한 2015. 6. 9.

최형, '햄버거 오빠' 얘기 알아? 이십대 중반의 어떤 남자가, 좋아하는 여자에게 주려고 햄버거 기프티콘을 엄청나게 구입했어. 거의 '햄버거 깡'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차곡차곡 쟁여뒀지. 그러고는 여자에게 하루에 하나씩, 아니, 심지어 그녀가 친구들이랑 같이 있다고 하면 친구들 몫의 기프티콘까지 여러 장 보냈지. 물론 나름 그녀에게 부담을 주지 않겠다며 핑계를 대긴 했어.

 

"나 이벤트에 당첨되었는데, 이런 거 매일 여러 장씩 오거든. 햄버거 먹고 싶으면 부담 갖지 말고 언제든 말 해. 어차피 공짜니까."

 

라면서 말이야. 그래서 나중엔 상대가,

 

"오빠 지금 햄버거 세 개 보내줄 수 있어요? 친구들이랑 있는데 같이 먹으려고요."

 

하는 상황까지 이르고 말았지.

 

얼마쯤 그렇게 지내다가, 나중엔 남자가 고백을 해.

 

"사실 지금까지 보내줬던 햄버거 기프티콘, 너에게 주려고 내가 샀던 거야. 나 너 좋아하거든. 나랑 사귀지 않을래? 나랑 사귀면 내가 매일매일 햄버거 사줄게~!"

 

물론 실패했고, 이후 저 '햄버거 오빠'는 남은 기프티콘으로 끼니를 때웠다는 슬픈 이야기가 있어.(요즘은 그때그때 선물하듯 기프티콘을 전달할 수 있는데, 저때는 구입한 뒤에 상대에게 보냈어야 했나봐. 그래서 이벤트 할 때 왕창 사둔 기프티콘을 무를 수도 없었지.) 난 최형에게 이 이야기가 낯설지 않을 거라 생각하는데, 최형 생각은 어때?

 

 

1. 2014년 3월 4일자 사연의 최형.

 

저때 최형의 이야기를 보면, 최형은 호이를 계속해서 둘리가 된 상황이었고(응?), 최형의 여자친구는 자신이  VIP를 넘어선 VVIP의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중이었지. 그냥 단순하게 보면 이런 사연이었어. 그런데 나도 하루 이틀 사연들을 읽는 게 아니니까, 읽다보면 뭔가 턱턱 걸리는 부분들이 있거든. 최형의 경우는 그게

 

- 맹목적인 양보와 헌신.

- 과한 호의.

- 역할극을 하려는 태도.

- (진심인지 의심이 되는)진부한 표현.

- 느끼함.

 

이었어. 그래서 내가 '종합 잘못 세트'라는 소제목까지 달아가며 설명했잖아. 최형의 기프티콘 뿌리는 버릇, 세익스피어 빙의해 최익스피어 되는 모습, 분명 상대가 잘못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상대가 화를 내면 최형이 사과하는 것 등에 대해 이야기를 했지.

 

당시 사연에 등장한 최형의 여자친구가 '전형적인 속물'이었던 까닭에, 최형에 대한 동정여론이 많았어. 내가 짚은 위의 문제들에 대해 노멀로그 독자 분들이 최형을 변호해 주시기도 했고, 최형을 '로맨티스트'라고 말하는 분도 계셨지. 나는 좀 기계 같은데, 노멀로그 독자 분들은 그렇지 않거든. 내가 사연 주인공의 '헛발질'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한다면, 노멀로그 독자 분들은 '헛발질 하다 넘어진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아. 그래서 적절히 균형이 맞춰지기도 하고, 누군가는 위로를 받기도 하지. 여하튼 그건 그렇고.

 

이후 최형은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새로운 '연상녀'에게 호감을 느꼈어. 그래서 이미 한 번 고백을 한 뒤 내게 사연을 보낸 건데, 내가 해줄 이야기는 전에 말한 것들과 별반 다르지 않아. 최형은 이제 호감 가는 이성에게 기프티콘 보내는 습관을 거의 없앴으니 다 나아졌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수단만 바뀌었을 뿐 예전이나 지금이나 근본적인 문제는 똑같아. 아래에서부터는 이 '근본적인 문제'를 좀 짚어볼게.

 

 

2. 연애 영업사원.

 

최형은 일단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자신의 간과 쓸개부터 빼주려 해. 보통 호감이 있으면 호의를 베푸는 게 당연한 일이긴 한데, 최형의 경우는 이게 심각할 정도로 과하거든. 노예지망생의 느낌이랄까. 일단 자신이 서비스 할 수 있는 것부터 다 하려 드는 거야. 선물 주려하고, 태우려 가려하고, 상대가 들으면 기분 좋아할 만한 이야기들을 하려하지.

 

이렇게만 적어두면

 

"저건 좋은 거잖아요? 저를 저렇게 대해주는 남자가 있다면 좋을 것 같은데요?"

 

하는 여성분이 등장할 수도 있어. 그런데 그녀도 상대가 뭔가 목적을 말하기 위해 호의를 베푸는 것 같다면 거절하게 될 수 있거든. 내 친구가 호의를 베풀어 날 공항까지 태워다 주겠다고 하면 고마워. 그런데 꾸준히 보험 가입을 부탁하고 있는 지인이 공항까지 태워다 주겠다고 하면 마냥 고맙지만은 않잖아. 그렇게 도움을 받고 나면 보험 가입하기 싫어도 가입해 줘야 할 것 같고 말이야.

 

최형은 저런 행동들을 '점수를 따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열심히 몰두하는데, 그렇게 점수를 따서 몇 점 이상이면 친구고 몇 점 이상이면 연인인 게 아니잖아. 그런데 최형은 호시탐탐 점수를 딸 기회만을 노리고 있고, 상대에게 뭔가를 제안할 때에도 그걸 계기로 추가 점수를 더 딸 생각만 해. 때문에 최형이 호감을 가지기 전까진 어느 정도 자연스레 친해질 수 있는데, 호감만 갖게 되면 자신이 서비스 할 수 있는 목록을 상대에게 전하지 못해 안달난 사람처럼 구는 까닭에 불편해질 가능성이 높아지지.

 

이건 예를 드는 게 더 이해가 빠르겠다. 내가 솔로부대원이고, 누군가를 좋아하는 상황이라고 해볼게. 이런 상황에서 최형처럼 행동한다면, 난 그녀와 아래와 같은 대화를 나누게 될 거야.

 

무한 - 날씨 좋네요. 뭐해요?

상대 - 오랜만에 친구들 만나고 있어요.

무한 - 어디서요?

상대 - 웨스턴돔이요.

무한 - 그렇구나. 잼나게 놀아요~

(몇 시간 후)

무한 - 아직 웨돔이에요? 언제쯤 들어가요? 나 웨돔 나왔는데 태워다 줄게요.

상대 - 아, 저 킨텍스 쪽으로 왔어요. 밥 먹고 친구랑 같이 버스 타고 가기로 했어요.

무한 - 친구는 어디 살아요? 내가 태워다 줄 수 있는데.

상대 - 아녜요. 괜찮아요. 잼난 주말 보내세요 ^^

(몇 시간 후)

무한 - 전화 받을 수 있어요?

상대 - 지금 얘기 중이라…. 내일 회사에서 봬요~

(잠시 후)

무한 - 나도 일이 있어서 킨텍스 쪽으로 왔는데 태워다 줄게요~

(이후 답장 없음)

 

어떻게든 점수를 딸 생각으로 기회만 엿보고 있을 땐, 자신의 행동이 저런 발자취를 남긴다는 걸 알기가 어려워. 그 순간엔 추격본능에 완전히 점령당한 채 우격다짐으로 점수 올리는 것에만 몰두하게 되거든.

 

남이 저러는 걸 보니까, 대략 어떤 느낌일지 알 것 같지 않아? 앞서 "저러면 저는 좋을 것 같은데…."라고 말했던 여자 분도, 아마 저 대화를 본 뒤엔 "저건 아니지."라고 말 할 거야. 우리가 배를 타서 노를 젓는 건, 목적지로 가기 위함이잖아. 그런데 최형은 노 젓는 게 목적인 사람처럼 행동하거든. 여기에 대해선 내가 허브를 빨리 키우기 위해 화분에 매일 물을 쏟아 붓는 것으로도 여러 번 비유를 들었으니, 곰곰이 생각해 봐봐.

 

 

3. 종합 잘못 세트 Verse.2

 

최형은 신청서에

 

"노멀로그의 매뉴얼을 읽으며, 사귀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 사람을 알아가는 게 목적이 되어야 한다는 것. 인연은 다 소중히 여길 수 있는 마인드. 뭐 그런 것들이 생긴 것 같습니다."

 

라고 적었어. 그런데 최형의 말과 달리 행동은 안 그렇거든. 최형이 상대에게 했다는 이벤트성 고백을 보면, 거기엔

 

-최익스피어가 되는 문제.

-고백을 위한 고백을 하는 문제.

 

이렇게 두 가지 문제가 여전히 포함되어 있어. 이걸 어떻게 해야 잘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최형을 보면 상대와의 이야기를 영화처럼 만들려고 너무 애쓰는 것 같아. 상대가 최형의 구애를 받아줬으면 하는 마음은 진심이겠지. 그런데 그 허락을 받아내기 까지의 과정과 허락을 받기 위해 하는 말들이 연기하는 것 같은 거야.

 

최형 스스로도 이걸 알 거야. 최형은 이걸 그저 '오버한 것'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그게 상대에겐 '프로포즈 받는 기분'이 아닌 '프로포즈 하는 걸 구경하는 기분'이 들게 만드는 거거든. 그냥 최형다운 모습으로 마음을 말하면 되는 건데, 최형은 최카프리오가 되려고 하거든. 그러니 상대에겐 그게 와 닿지 않는 거고, 아무리 봐도 뻥튀기 된 것 같은 최형의 표현과 고백에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게 되는 거지.

 

상대가 최형의 고백을 듣곤 생각해 보겠다고 한 뒤 아직까지 이렇다 할 대답이 없어 답답하지? 거절할 거면 거절의 의사표시를 확실하게 해주어야 최형도 편할 것 같다고 했잖아. 봐봐. 이렇다니까? 최카프리오, 또는 최익스피어가 되어 버리면, 상대에겐 아래의 남자처럼 보이는 거야.

 

ⓐ언젠가부터 당신이 궁금했고, 당신을 알게 된 뒤 난 달라지고 있으며, 앞으로 항상 당신의 곁에서….

ⓑ나 퇴짜 맞은 건가? 뭐지? 나랑 사귀겠다는 거야, 안 사귀겠다는 거야? 답답하네.

 

난 최형이 ⓐ의 모습을 좀 내려뒀으면 좋겠어. 멋있게 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거든. 고백할 때 말고 썸을 타는 것 같은 분위기 일 때도, 맹목적으로 다 이해해주고, 걱정해주고, 어떻게든 헌신하려는 사람처럼 굴지 마. 무조건 착하기만 한 사람처럼 굴지도 말고, 상대를 향한 칭찬과 위로만을 해주려는 사람처럼 굴지도 마. 이렇게 의식적으로 포장해서 보여주려고만 하니까, 진짜 최형의 모습을 보여주기가 어려운 거야.

 

또, 최형은 이제 기프티콘 남발하던 버릇을 고쳤다고 했는데, 그게 없어진 대신 "제가 태워다 드릴까요?"라는 멘트가 새로 생겼어. 그리고 앞서 말한 대로 계속 위로와 칭찬만을 반복하다 보니, 아래와 같은 이상한 대화까지 하게 되었지.

 

상대 - 미안한데 나 일이 급하게 생겨서 오늘 만나기가 어렵겠네….

최형 - 안 좋은 일은 아니시죠? 기다리고 있을 테니 일 마치시면 연락주세요.

최형 -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쁜 일은 아니길….

상대 - 갑자기 조카 봐 줄 일이 생겨서.

최형 - 아…. 조카가 아픈 건 아니길 바랍니다.

상대 - 그런 건 아니고. 저녁까지 좀 봐주는 거야.

최형 - 걱정했는데 다행이네요. 그럼 오늘은 어쩔 수 없고, 내일 봐요. 세 시에.

(답이 없자 몇 시간 후)

최형 - 저녁 먹었어요? 저 **쪽에 나왔는데 가실 때 데려다 줄게요.

 

나만 저 대화를 이상하게 느끼나? 내가 보기엔 영혼이 없는 느낌이거든. 조카가 아픈 건 아니길 바란다는 얘기도 이상하고. 그리고 깨알 같은 '데려다 줄게요' 역시 잊지 않고 등장해. 일이 뭔가 틀어진 것 같으니, 최형은 다급해져서 '긴급 점수회복'을 하려는 것처럼 보이고. 이런 상황인데 가능성이 있냐고 물으면, 난 오직 그 가능성이 '상대가 얼마만큼 외로움을 느끼고 있는 중인가'에 달렸다고 대답할게. 최형의 매력이나 이 관계의 밀도와는 관계없이, 오로지 상대가 많이 외로울수록 가능성이 생기는 연약한 관계라고.

 

 

연애가 관계의 시작이 아니야. 둘의 관계는 이미 시작된 거고, 지금도 진행 중인 거야. 최형은 자신이 물심양면으로 헌신해 연애만 시작되면 핑크빛 나날들이 시작될 거라 착각하는 것 같은데, 이미 한 번 경험해 봤잖아. 맹목적인 헌신이 상대를 괴물로 만들어 계속해서 더 퍼줘야만 유지되는 연애. 작년에 이미 한 번 해봤잖아?

 

오로지 여자들이 좋아할만한 거, 여자들이 하고 싶어할만한 거, 여자들이 먹고 싶어할만한 거, 그런 것들만 열심히 대접하려 드는 동안 현실의 둘은 멀어지는 거야.

 

"연상녀에 대한 뭔가 새로운 지침 같은 것이 있을까요?"

 

그런 거 찾지 말고 둘이 보기로 한 영화를 봐. 영화를 보자는 말에 상대가 거절하지 않고 받아줬으니 이제 다 된 거라 생각해 재고백 하려 들지 말고, 영화를 봐. 고백은 12월에 할 거야. 그러니까 그 전까지는 상대랑 재미있게 놀아. 최형이 한 번도 안 가본 근사한 곳이나 소문난 곳에 데려갈 생각을 하지 말고, 최형이 자주 가는 곳에 같이 가. 또 최형이 재미있어 하는 걸 같이 해. 최형이 관심 두고 있는 걸 상대에게도 소개해.

 

내 친구 H군은 6월에 결혼하는데, 그는 제수씨가 썸녀일 때 그녀와 캠핑을 다녀왔고 산에도 종종 갔어. H군은 캠핑에 관심이 많고, 장비도 많이 구입해 놨으며, 산에 가면 재미있게 설명해 줄 수 있는 것들도 많거든. 물론 나라면 산에 갈 생각 같은 건 하지 않지. 난 H군과 잘 할 수 있는 게 다르고, 관심사가 다르니까. 난 평지에서, 또 정적인 상태에서 뭔가를 잘 하는 타입이야. 이런 내가 H군을 따라하면, 그저 쫓아하기 바빠 내 매력도 보여주지 못할 뿐더러 재미도 감동도 전달하지 못 하겠지. 그러니까 우리, 잘 하는 걸 하자고.

 

끝으로 하나 더. 계속 연락하며 일부러라도 더 만나야만 친해지는 건 아니야. 최형은 만남이나 연락의 빈도를 친해짐의 척도로 생각하니까 그 부분을 집요하게 공략하려 들거든. 업무 때문에 주중에 매일 보는 사이면, 사적으로는 주말에 한 번 만나도 충분해. 그렇게 만남을 유지해가며 좀 더 깊은 대화를 나누고 친밀한 감정을 키워가면 되는 건데, 최형은

 

'주말에 한 번 보는 사이가 되었으니 이제 평일에도 사적으로 만나야겠다. 평일에도 사적으로 만나는 사이가 되었으니 이제 평일에 두 번 만나야겠다. 이것도 성공했으니 이제 매일 퇴근 후에도 함께하는 사이가 되어야겠다.'

 

이래버리는 거야. 상대는 최형과 친해지면서도 자신의 삶을 잘 유지해갔어. 그런데 최형은? 친해질수록 점점 가능성을 생각하며 올인 하려 했지. 그러면서 동시에 상대도 얼른 최형에게 올인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만 품었고 말이야. 한 계단씩 올라가. 몇 층 올라간다고 끝나는 거 아니고 계속 올라가야 하는 건데, 최형은 조급해 하며 두세 계단씩 막 뛰어 올라가니까 벌써 지치잖아. 최형이 휴전선 이남에서 제일가는 로맨티스트면 뭐해. 그 유효기간이 100일을 못 가는데. 난 최형이, 내가 늘 말하는 "연애는 창업보다 경영이 중요하다."라는 말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봤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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