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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연애오답노트

전여친을 못 잊겠다며 시간을 달라는 남자 외 1편

by 무한 2014. 4. 9.
전여친을 못 잊겠다며 시간을 달라는 남자 외 1편
TV에서 새를 키우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걸 보고, 내 지인이 자신도 새를 키워 어깨 위에 올린 채 돌아다니고 싶다는 얘기를 한 적 있었다. 그 지인에게 난, 우리 동네에 사는 '새 아저씨' 이야기를 해주었다.

"우리 동네에 새를 어깨 위에 올리고 다니며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걸 즐기는 아저씨가 있어.
그 아저씨가 거리에 나타나면 사람들이 다 신기해서 쳐다보지.
다들 새를 그렇기 키우려면 얼마나 드는지, 어떻게 훈련시켜야 하는지,
그런 것들을 물어봐. 그러고는 들떠서 돌아가지.
그런데 그 아저씨 뒷모습을 보면,
늘 어깨 위의 새가 싼 똥으로 젖어 있더라고. 그게 현실이야."



다친 새 네 마리를 구조해 사무실에서 키우는 어느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볼 때에도 난 지인에게 비슷한 말을 했다.

"지금 저 새들이, 아저씨가 키보드를 치고 있으면 손에도 올라오고
또 사무실 안에서 날아다니다 아저씨 머리나 어깨에도 앉으니까 행복해 보이잖아.
그런데 새 네 마리가 싸는 새똥 치우는 게 보통 일이 아닐 거야.
저기 지금 한 마리 싸고 있네.
저 아저씨 부하직원들이 전부 신기하다고,
또 새들이 있어서 사무실이 활기차다고 인터뷰 하지?
아냐. 신기하고 활기찬 것도 하루 이틀이지. 장담하는데 스트레스 엄청 받고 있을 거야."



내가 너무 부정적인 면만 부각시킨다고 생각할 분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실제로 무언가를 키워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내 말에 동의하리라 생각한다. 막연하게 기대하던 것과 현실에서 직접 경험하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 '친구네 개'와 '개'는 다른 위치에 있다. (출처-검색)



1. 전여친을 못 잊겠다며 시간을 달라는 남자.
 

수정양이 그를 '소울메이트'로 생각하는 것과 달리 난 그를 '협잡꾼' 정도로 생각한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누나가 내게 감정을 가지고 있다면, 그 감정을 그냥 따라와라.
애써 머리로 생각해 감정을 되돌리지 말고 직진해라. 날 쫓아오면 된다.
누나가 내게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든 난 괜찮다.
누나가 나와 친한 누나동생으로 지내고 싶으면 그래도 되고,
그게 아니라도 괜찮다. 난 다 받아들일 수 있다. 마음을 숨기지 마라."



자신은 연애 중인 남자임에도 불구하고 수정양이 손잡고 데이트를 하는 것에 거부감을 보이지 않으니 상대는 거기서 누울 자리를 본 거고, 다리를 뻗은 거다.

"그 아이는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저에게 왔어요.
여자친구와의 관계에서는 사랑하는 마음이 남아 있지 않다고 했어요.
우리는 특별한 인연으로 서로 닮은 부분이 정말 많았고,
그 아이가 제 어떤 모습을 보곤 '이 사람이 진짜다'라고 생각했다고 해요.
그런데 사귀자는 말없이 연인처럼 지낸지 얼마쯤 지나 제가 우리 관계에 대해 묻자,
그 아이는 잘 모르겠다고 하더군요.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잊힐 줄 알았는데, 전여친이 잊히지 않는다고.
두 사람을 마음에 두고 만날 순 없다며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달라고 하더군요.
무한님, 전 왜 남의 연애 중간에 끼어버린 내연녀가 된 기분이 드는 거죠?
그 아이가 전여자친구에게 갈 것 같아요. 전 정말 죽을 것 같아요."



잔인하게 들리겠지만, 애초부터 수정양은 상대에게 내연녀였을 뿐이라는 대답을 해야 할 것 같다. 그가 했다는 저 위의 "누나가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든 난 괜찮다."라는 말을, 수정양은 굉장히 낭만적으로 해석하며 '자신의 마음이 받아들여지지 않더라도 그녀의 곁에서 지켜주는 남자'의 이야기처럼 생각하는데, 다르게 보면 저건 '있으면 좋고 아니면 말고'의 의미가 더 크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그가 실제로 수정양을 세상에 단 하나뿐인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면, 저렇게 간 보는 것 대신 자신의 마음을 내보이며 증명하려 애썼을 테니 말이다.

아니, 이런 얘기는 그만 하자. 노멀로그에서 '바람'이나 '소울메이트'로만 검색해 봐도 그가 다른 여자를 만나 한 말이 아닌가 의심될 정도로 보이는 다른 남자들이 한 '그의 말과 똑같은 얘기들'이 나올 테니 말이다. 이건 접어두고, 여기선 그의 말과 행동의 변화만 보도록 하자.

수정 - 네가 전에 그랬잖아. 너만 따라오면 된다고. 마음을 숨기지 말라고.
썸남 - 그랬었죠. 근데 두 사람을 마음에 두고 있을 순 없잖아요. 저도 혼란스럽고 힘들어요.



바람을 피우는 남자들의 공통점은, '그 순간에만 유효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다. 희망과 환상이 될 만한 이야기들을 잔뜩 해서 부풀게 만들어 놓고는, 그 말에 책임을 지지 않는다. 난 수정양이 이 지점을 확실하게 인식했으면 좋겠다. 내가 무슨 얘기를 하든 내 얘기 보다는 소울메이트라고 생각되는 그의 말을 더 믿고 싶겠지만, 그는 '그 순간에만 유효한 이야기'를 하는 남자다. 이런 상황에서 궤변을 늘어놓아 수정양을 이상한 여자로 만드는 건 일도 아니다. 내가 나쁜 마음을 먹는다면,

"나는 정말 힘들어서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던 건데,
누나는 내 마음을 의심하며 답을 달라는 이야기만 했다.
난 이제 누나가 정말로 날 사랑하는 것인지에 대한 확신이 없다.
누나는 누나 자신을 위해서만 내가 필요한 사람 같다.
내가 가장 힘들던 시간에도 누나는 날 몰아세우기만 했다."



라는 이야기로 얼마든지 수정양을 흔들어 놓을 수 있을 것 같다. 달콤한 약속들을 해 놓고는 지키지 않는 문제에서 벗어나, 아예 다른 문제를 가져다가 수정양을 탓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럼 날 소울메이트라고 굳게 믿고 있을 수정양은, 죄책감을 느끼며 내게 사과를 하고 앞으로 얼마든 더 기다릴 테니 마음이 정리되면 돌아오라고 말할 것이다. 이 외에도 수정양을 '이상한 여자'로 만들어 이별의 구실로 삼을 수 있는 방법은 서른 가지가 넘게 있다.

지금 상황으로 봐서는 만약 그가 돌아온다 하더라도 '천천히'를 강조하며 아무 약속 없이 즐길 것만 즐기다가 "난 분명 천천히 알아가자고 했는데, 누나는 자꾸 서둘러 우리 관계를 정립하려고만 했다. 누나와 난 맞지 않는 것 같다."라는 이야기를 하며 떠나갈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이것보다 더 강하게 내 마음을 이끄는 가설은 그가 여자친구와 잠깐 다퉜을 때 수정양에게 왔다가 다시 돌아간 것이라는 가설인데, 이런 가슴 아픈 이야기는 접어두도록 하고, 어쨌든 이건 못 쓰는 관계니 그만 손을 놓길 권해주고 싶다.


2. 안녕 지수.


안녕 지수. 우선, 구남친과의 연애에 대해서는 구남친 역시 이별에 책임이 있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어. 구남친은 이제 사회로 걸어 나가는데, 지수만 혼자 제자리에 있는 것 같아서 침전하고 있는 것 같은데, 구남친이 그 어떤 대단한 일을 하고 있든 간에 연애에 의무를 다하지 않은 건 잘못이야. 

내가 글을 쓰고 있으면 간디가 옆에 와서 내 다리를 긁어. 안아 달라는 표시야. 안았는데 내 손을 핥으려고 하면 배고프다는 거고, 폭 안기지 않고 자꾸 다시 내려가려고 하면 나가고 싶다는 신호야. 그럼 난 긴박한 상황에서 글을 쓰고 있다가도 간디가 원하는 걸 들어줘. 간디를 사랑하니까. 글을 쓰다가 흐름이 끊겨서 순간적으로 짜증이 나도, 내색하지 않고 잠시 나가서 간디와 산책을 하다가 와.

"안 돼."
"기다려."
"하지 마."



따위의 이야기만 하는 건 사랑이 아니잖아. 그리고 저건 사랑인 동시에 책임이기도 해. 나중에 좋은 간식을 사주는 건 나중 문제고, 예쁜 옷을 사주겠다는 것 역시 옷에 대한 문제일 뿐이야. 필요할 때 관심과 사랑을 주지 못하는 건, 훗날 다른 걸로 대신해 줄 수 있는 게 아니야.

"오빠는 정말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게 부럽고 존경스럽기도 했지만, 저는 자꾸 허전함을 느끼고 외로워졌습니다.
전 자존감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했고,
혼자서 뭐든 해낼 수 있는 여자가 되려고 마음먹었지만,
때때로 무너지고 부정적으로 변했습니다."



내가 전에 말했잖아. TV에서 한 연예인 부부가 한강에서 자전거를 타는 모습이 방송되었는데, 아내가 넘어지자 남편이 자전거에 탄 채로 뒤를 돌아보며

"안 다쳤어? 조심하지. 빨리 와."


라고 말하는 걸 봤다고. 저럴 거면 같이 자전거를 타러 나갈 필요가 없어. 둘이 같이 자전거를 타러 나온 건 '함께'라는 걸 느끼고자 한 거잖아. 그러면 빨리 목적지를 향해 가자고 재촉할 게 아니라, 내려서 아내를 일으켜 주거나 자전거를 붙잡아 주거나 많이 다친 건 아닌지를 확인해야지. 같이 웃고 떠들고 즐길 때만 좋은 게 연인이고 부부인가? 구남친이 이별을 통보하며 지수에게 한 말을 봐봐.

"우리, 서로를 더 이상 갉아먹지 말고 헤어지자."


저건 자전거에서 내려 옆에 와 보지도 않은 채로,

"안 일어 날 거야? 너 때문에 내가 못 달리고 있잖아.
다친 거면 온 길 돌아서 집에 가. 나 혼자 목적지까지 갈 테니까."



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거야.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수는

"오빠도 얼마나 답답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오빠는 바쁘고 할 일도 많은데 저는 제 힘든 것만 말한 것 같아요.
저는 왜 이렇게 이기적일까요."



라며 스스로를 탓하고 있지. 물론 그 중엔 맞는 부분도 있겠지만, 이게 전부 지수의 잘못 때문에 벌어진 일이며, 지수가 그에게 걸림돌 같은 존재였다고는 생각하지 말았으면 좋겠어. 난 매뉴얼을 통해 두 다리로 서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지만, 사람이 살다 보면 넘어질 때도 있는 거잖아. 그럴 때 일으켜 주는 것만 연인이 아니고, 옆에 앉아 살펴봐 줄 수 있는 게 연인이고 말이야.

동업이 아니라 연애잖아. 둘이 아주 멀리까지 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코앞까지 밖에 못 가도 좋으니, 상대가 걷지 못할 땐 잠시 업고 갈 수 있는 게 연애라고 나는 생각해. 네가 나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고, 네가 나를 갉아 먹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게 아니야. 너의 문제가 아니고 우리의 문제니까.

키우던 개가 나이를 많이 먹어 주인을 알아보지 못하고 누워만 있는데, 욕창이 생길까봐 돌아 눕히며 보살피는 사람이 있어. 그런 반면 배변 문제로 산책시키기 귀찮으니까 인적이 드문 곳에 가서 강아지를 내다 버리는 사람도 있지. 지수가 무언가를 잘못해서 그에게 버림받고 말았다는 생각만 하며 스스로를 괴롭히지만 말고,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도 곰곰이 생각해 봐.

난 지수가 '빨리 이 감정을 극복한 채 행복해져야 한다'는 강박에서도 벗어났으면 좋겠어.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져서 골반 부분이 쓸리면, 그 상처에 아무리 연고를 발라도 몇 주간은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거든. 머리로는 분명 그 상처가 언젠가 나을 걸 알아도, 샤워를 할 때 불로 지지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까지 아무렇지 않게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 마음에 난 상처엔 연고도 바를 수 없기에 더 오랫동안 낫지 않거든. 지수처럼 그 마음의 상처에 딱지가 앉을 때마다 뜯으면, 더 덧날 수도 있고 말이야.

"그냥 모든 게 다 의미 없이, 의욕 없이 그렇게 흘러만 가네요.
저도 앞으로 제가 스스로 뭔가를 해야 한다는 건 알아요.
제가 잘 할 수 있을까요. 모든 일이 잘 될까요. 잘 풀려갈까요. 좋은 일이 생길까요.
내가 겪고 있는 이 모든 과정들이 나에게 좋은 것들로 돌아와서 남아줄까요."



집에 졸업앨범이 있으면 한 번 펼쳐 봐봐. 졸업앨범이 없으면 가족사진이든, 꼬꼬마 시절에 찍어 둔 독사진이든 사진을 봐봐. 그리고 사진 속 과거의 지수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떠올려 봐봐. 앞으로 뭘 하라는 것이든, 아니면 뭘 하지 말라는 것이든 다 괜찮아. 웃고 있는 과거의 지수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분명 떠오를 거야. 그 이야기에 담긴 것들을 지금 바로 시작해. 지금 하지 않으면 늙고 지쳐서 죽을 때까지 그걸 꿈꾸기만 할 뿐일 테니까. 언젠가 분명 끝이 찾아올 인생을, 막연히 나중에 좋아질 거라 생각만 하며 그렇게 그냥 내팽개쳐두지 마. 내 인생에 내가 바짝 달려들어서 살지 않으면, 어정쩡하게 살다 죽는 수밖에 없을 거야.


오늘은 저녁탐어가 예정되어 있는 관계로 배웅글 없이 끝내겠습니다. 다들 즐거운 수요일 보내시길!




"근데 서두의 애완동물 얘기는 왜 하신 거죠?" 그게…, 뭐 얘기 하려고 하다가 까먹음.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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