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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커플생활매뉴얼

결혼상대로는 좋은 것 같은데 답답한 남자, 어떡해?

by 무한 2013. 11. 14.
결혼상대로는 좋은 것 같은데 답답한 남자, 어떡해?
사연을 보낸 J양은 이걸 아주 사소한 문제로 보고 있는데, 난 그렇지 않다. 내가 보기에 이 문제는 자전거 프레임(몸체)에 난 균열이다. J양은 내게 사연을 보내기 전 다른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하다가

"그거, 갈라진 곳에 스티커 붙여. 스티커 붙이면 안 보일 거야.
갈라진 곳에 자꾸 신경 쓰느라 자전거만 들여다보지 말고,
자전거 타고 달려봐. 그럼 라이딩 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거야."



라는 이야기도 들었던 것 같다. 난 저 조언 역시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균열에 스티커를 붙여 숨길 수는 있다. 하지만 만약 그렇게 스티커로 균열을 가린 채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가, 그 균열이 더욱 벌어져 자전거가 두 동강 나면, 그때 J양이 당할 사고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J양이

"이것 말고는 문제가 없어요."


라고 말하는 상황에서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게 너무 앞서 나가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지만, 여동생이 프레임에 금이 간 자전거를 타고 나간다는 걸 염려스럽게 생각하는 오빠의 마음으로 적어볼까 한다. 출발해 보자.


1. 그는 정말 결혼상대로 좋은 사람일까? 리얼리?


연애 시작 직후 '이런 게 사랑받는다는 느낌이구나, 남자친구가 날 많이 좋아하는구나.'를 느끼는 건, 여자가 그간 힘겨운 연애들만 했을 때도 느낄 수 있으며, 남자친구가 이타주의자거나, 맹목적인 헌신을 애정의 척도로 생각하는 남자거나, 연애 시작과 동시에 전력질주를 하는 금사빠인 경우에도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

내가 금사빠 남자고, J양과 사귀는 사이가 되었다고 치자. 그러면 난 현재 J양의 남자친구가 J양에게 보이고 있는 호의나 애정보다 훨씬 더 크고 아름다운 호의와 애정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올 겨울에 함께 할 일들부터 시작해 내년, 내 후년, 그리고 그 다음의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워 이야기 해 줄 것이고, J양이 3분 이상 기다리지 않게 늘 폰을 확인하고 있을 것이다. 시시각각 안부를 묻는 건 기본이고, J양이 친구들과 만날 땐 모임이 끝날 때까지 대기하고 있다가 모임이 끝나면 J양을 안전하게 집까지 바래다 줄 것이다. 또 J양을 위해 앞으로 내가 뭘 해줄 것인지를 이야기 하고, 그 약속을 꼭 지키겠다는 얘기도 할 것이다. 행여 J양이 아프면 모든 일을 제쳐두고 J양을 간호할 것이며, J양이 바다가 보고 싶다고 말하면 약간의 망설임도 없이 바다로 향해 떠날 것이다.

물론 저건 어디까지나 내 도파민과 세로토닌이 나를 자극 할 때까지의 이야기다. 더 이상 J양을 봐도 설레지 않으면, 난 우리 사이에 별 감정이 남아있지 않음을 확인하고 J양을 유기할 것이다. 처음 강아지를 데려왔을 땐 강아지를 위한 장난감도 사고, 간식도 사고, 집도 마련해주지만, 강아지가 지겨워지기 시작하면 아무데나 내다 버리는 어떤 사람들처럼 말이다.

상대가 보이는 호의나 초반의 열정만으로 '그 사람은 좋은 사람'이라는 평가를 성급히 내리지 말자. 늘 얘기하지만 공수표를 발행하는 건 쉽다. 나중에 결혼하면 주방을 넓게 만들어 중간에 아일랜드 식탁도 놓고, 한 편에는 오븐, 뭐 또 한 편에는 새싹 재배기 등을 놓고 살자는 얘기 같은 건 쉽게 할 수 있다. 아파트 보다는 마당이 있는 집에 살자는 얘기, 또 건물을 하나 사서 임대료 받으며 편하게 먹고 살자는 얘기, 우리 집 주변에 가족들의 집까지 마련해서 같이 살자는 얘기 등도 하기 쉽다. 아이가 학업에 찌들지 않도록 방학이면 해외여행 가자는 얘기, 요트를 타자는 얘기, 한 달에 한 번 씩은 가족외식을 하자는 얘기 같은 것도 하기 쉽다. 다시 말하지만, 말은 정말 하기 쉽다.

그 달콤한 약속들을 주는 대로 받아 즐기다간 나중에 "우린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라는 얘기를 들으며 '나는 누구? 여긴 또 어디?'의 상황에 놓일 수 있다. J양은 남자친구의 "넌 정말 특별해, 너와 헤어지면 난 못 살 거야, 너랑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고 싶어."라는 얘기에 들뜬 것 같은데, 그런 말은 대부분의 남자들이 애정을 표현할 때 사용하는 말이다. 그 말 앞에는 '어떻게 바뀔지 모르지만 여하튼 지금 마음으로는'이라는 조건이 붙어 있다는 걸 잊지 말길 바란다. 상대의 마음이 바뀌면, 공수표는 그저 휴지조각일 뿐이다.

제발 땅에 발을 딛고 생각하자. 지금 내가 J양에게, "그래서 남자친구가 그 계획들을 위해 현재 어떤 일을 하고 계시죠?"라고 물으면, J양은

"남자친구요? 지금은 집에서 잠깐 쉬고 있어요."


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 아닌가. 쉬고 있다는 게 나쁘다는 게 아니라, J양이 상대의 '희망사항'을 '약속'으로 여기며 그걸 근거로 '결혼상대로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는 게 문제다. J양은

"제가 그간 사귄 남자들은 전부 농담이나 하고,
저런 약속을 하거나 이야기를 나눌 만큼 진지하지 않았거든요.
그냥 가볍게 사귀었던 연애들이었는데, 이번엔 달라요."



라고 말하는데, 미안하지만 여기서 보기엔 저건 또 다른 형태의 가벼움으로 보인다. 사귀고 난 뒤 아직 계절 하나도 바뀌지 않았는데, 상대가 저런 얘기를 한다고 해서 '결혼상대로 좋은 남자'라고 단정 짓지 말고, 만나며 그가 자신이 한 말들에 책임을 지는 사람인지를 먼저 좀 보자.


2. 너는 내 인형?


내가 본 이 연애의 균열은,

"남자친구는 제가 먹고 싶다고 하는 것이나 가고 싶다고 하는 것에 대해선 
뭐든 다 해주려고 하는데,
정작 연애에 대해 제가 뭐라고 말하면 서로 다르니까 이해하래요.
전혀 양보하지 않고 남자친구의 스타일대로만 하려고 해요."



라는 J양의 이야기에서 잘 나타나 있다. 남자친구가 J양에게 헌신하는 대신, 조율에 대한 부분을 포기해야만 지속되는 관계라고 할까.

"내가 너에게 엄청 잘 하고 있으니까, 뭔갈 더 요구하지는 마."


라는 식이다. 내가 보기에 J양의 남자친구는, '현실의 J양'이 아닌 '상상 속 J양'과 연애를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남자친구 혼자 '이렇게 하면 J양이 좋아하겠지'라고 생각하는 부분을 열심히 실천하곤 있지만, 현실의 J양은 남의 선물을 대신 받는 것처럼 어색한 기분이 들게 된다. 물론 선물이라는 게 남의 것이든 내 것이든 일단 받으면 기분 좋은 까닭에 지금까지는 J양이 '감사합니다'만 했던 것 같은데, 시간이 지나며 점점 알맹이 없이 껍데기만 그럴듯한 연애를 하는 것 같아서 J양은 고민하고 있다. 

둘의 대화를 읽으며, 난 J양 남자친구에게서 '좋은 남자친구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남자의 의무방어전'의 모습을 봤다. 분명 통화는 길게 하는데, 그건 영혼 없이 그저 의무적으로 J양 말에 맞장구 쳐주는 대화인 것 같다고 할까. 별로 즐거워 보이지 않으며, 관심도 없는 얘기를 '남자친구니까' 열심히 들어주고 있는 느낌이다. 더불어

"제가 이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니까 완전 딱딱한 말투로 대답하더라고요."
"기분이 안 좋아졌는지 피곤하다며 전화 끊자고 하더라고요."
"분명 남자친구가 결혼하고 나면, 퇴근 후 쇼파에 앉아 대화를 많이 하자고 했거든요.
그런데 지금 통화해도 남자친구는 별 대꾸도 하지 않고, 제가 뭘 물어보면
뭐 그런 것까지 이야기 하냐는 식이거든요. 자긴 저에게 불만 하나도 없다는 얘기만 하고…."
"그래도 아닌 건 아닌 거라고 정색을 하고 말하더라고요."



라는 이야기를 통해, 그가 '현실의 J양'을 피곤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안타깝게도 그의 호의와 애정은 '내가 해주는 것에 J양이 만족하는 모습을 보일 때'라는 조건을 달고 있는 듯 보인다. 그렇지 않고 J양이 먼저 뭔가를 요구하거나, 관계의 조율을 하려고 들면 그는 표정을 지운 채 '참견금지'의 팻말을 든다.

솔직히 말하자면 현재 남자친구가 J양에게 보이고 있는 호의와 애정은 '오버'된 것이다. 난 그 정도 속도로 전력질주를 해서는 세 달을 넘기지 못할 거라 생각한다. J양은 '그 호의와 애정을 유지하면서, 내 감정적인 부분까지 남자친구가 돌봐주도록' 남자친구를 바꾸려고 하는데, 그건 불가능하다. '남자친구의 인형'에서 벗어나는 길은, 그에게 '현실의 J양'을 보여주며 계속 조율해 나가는 방법뿐이다. 그럴 경우 맹목적인 남자친구의 호의와 애정은 현실에 맞춰 좀 작아질 수 있겠지만, 지금처럼 '넌 그냥 주는 대로 받기만 해'라는 일방적인 관계가 아닌 '우리'가 된다는 걸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3. J양 지인의 조언에 대하여.


그냥 다 좋은 쪽으로 생각하며 덮어두고 이해하라는 식의, J양 지인의 조언은 위험하다. 그건 마치,

Q. 남자친구가 약속에 매번 늦어요. 열심히 말해도 계속 그래요. 항상 핑계는 많이 대거든요. 차가 막혔다, 시간을 잘못 알았다, 버스가 늦게 왔다, 폰을 두고 나와서 다시 가져왔다, 오다가 누구를 만났다…. 그래서 제가 화를 내면, 자기가 늦고 싶어서 늦은 것도 아닌데 왜 화만 내냐고, 그런 것도 이해 못 해주냐고 오히려 큰 소리를 내요. 전에는 그러다가 저보고 그냥 들어가라면서 가버린 적도 있고요. 남자친구가 늦을 때 제가 어디쯤 왔냐고 물어보면, 자기도 늦어서 미안해하는 중인데 더 미안하도록 만들지 말라고 하네요. 이럴 땐 대체 어떻게 해야 하죠?

A. 남자친구를 좀 더 이해해 주세요. 그가 한 말처럼 그 역시 늦고 싶어서 일부러 늦은 건 아닐 겁니다. 늦어서 미안해하는 중에 여자친구 분이 연락을 하시면, 그것 때문에 더 미안해져서 마음이 편하지 않을 수 있고요. 남자친구가 원하는 건, 자신이 좀 늦더라도 너그럽게 이해해 줄 수 있는 여자친구일 겁니다. 늦은 것에 대해 사과하기도 좀 그래서 미안한 표정을 지으면, 그걸 눈치 채고 남자친구를 편하게 해 줄 줄 아는 여자친구 말입니다. 그런 여자친구가 되어 보시는 건 어떨까요?



라는 조언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쉽게 말해 "왼 뺨 맞은 거 분해하지 말고, 오른 뺨도 딱 돌려 대세요."라는 얘긴데, 아니 무슨 남자친구랑 저녁 한 끼 먹는 데에도 종교적 사랑을 보이며 박애정신으로 대해야 하는가. 저런 식이라면 음주운전을 한 운전자의 차에 치여도,

"그 사람도 일부러 님을 치려고 한 건 아닐 겁니다. 속상한 일이 있어서 술을 한 잔 마셨고, 대리비를 아끼려다보니 일이 그렇게 된 것일 뿐입니다. 그 사람도 지금 반성하고 있고, 사고를 내서 정말 초조한 마음으로 지내고 있을 겁니다. 그러니 님이 두 다리를 못 쓰게 되었더라도, 그를 먼저 생각해 용서할 줄 아는 멋진 피해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건 어떨까요?"


라는 식의 얘기를 할 수 있게 된다. 그러니까

"남자들은 원래 얘기를 잘 안 한다. 그러니 이해해라.
남자친구가 얘기 하지 않아도 눈치 챌 줄 아는 여자친구가 돼라."



라는 조언은 한 귀로 흘리길 권한다. 그 조언대로라면 연애하기 위해서는 독심술을 배우고 늘 남자친구를 프로파일링 해야 한다. 또 조언을 한 J양의 지인은,

"관심과 시간이 해결해 줄 거야."


라고 말했는데, 말을 하지 않으면 오해는 더 깊어지고, 백 년을 함께 지내도 모르는 부분이 가득할 수밖에 없다. 옹알이 수준의 대화라도 일단 이끌어내는 게 답이지, 덮어두고 무작정 이해하는 건 분명 연인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아는 게 없는 불행한 결말을 이끌 뿐이라는 걸 잊지 말길 바란다.


연애하기 위한 연애는 시간낭비가 되는 경우가 많다. '내가 여행을 다녀오자고 하면 여자친구가 좋아하겠지?'라고 생각하는 남자와, '내가 기뻐해야 여행가자는 제안을 한 남자친구도 즐거워하겠지?'라고 생각하는 여자의 여행과 같다고 생각하면 된다. 돈과 시간을 들여 여행을 다녀오긴 하는데, 서로 연애를 위해 자신이 봉사를 하고 있다는 생각만 할 뿐 함께 여행 왔다는 즐거움은 별로 느끼지 못한다고 보면 되겠다.

하루에 한 시간 꼭 통화하는 건 뭐고, 맛집 찾아다니며 남부럽지 않은 데이트 하는 건 또 뭔가. 제대로 된 연애를 하고 있는 게 맞다면, 동네 공원을 함께 돌아도 마음이 풍요로워지고 정류장에 앉아 함께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마저도 행복하게 느껴지는 법이다.

둘이 어느 목적지를 향해 가는 것인가도 중요하지만, 그 목적지까지 함께 가는 여정이 바로 두 사람의 기반이 된다는 걸 잊지 말길 바란다. 똑같은 커플임에도 불구하고, 정류장에 서서 즐거운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는 커플이 있는 반면, 서로 버스가 오나 안 오나만 지켜보고 있는 커플도 있다. J양의 현재 연애엔 그 '여정'이 없다. J양의 남자친구는 "목적지까지 가기로 했으면 된 거지, 뭘 또 여기서 까지 대화를 해야 해."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고, J양은 '하긴 목적지까지 간다고 말은 했으니, 그냥 조용히 따라가기만 해야겠다. 차비도 남자친구가 낸다고 했으니까.'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그렇게 탄 버스에서 남자친구는 언제든 내릴 수 있음을 잊지 말자.

J양은 결혼까지 생각한다고 했는데, 난 J양이 신혼여행 가는 비행기에서 이어폰을 꽂은 채 폰만 들여다보고 있는 남편을 보고 싶은 건 아닐 거라 생각한다. 행복한 결혼생활을 위해서 '잘 해주는 것'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 중 어느 게 더 중요한 것인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고, 현명하게 그 비율을 잘 맞춰가길 바란다. 다시 말하지만 옹알이 수준의 대화더라도 지금 당장 대화를 시작하는 게 답이다. 그래야 단어 단위로, 문장 단위로, 문단 단위로 점점 대화를 할 수 있다. 지금 하지 않으면 영원히 입을 닫게 될 수 있음을 꼭 기억해 두자.



▲ 새 책 서평과 리뷰를 메일로 보내주시는 분들이 늘고 있습니다. 그것도 물론 감사합니다만, 리뷰와 서평은 http://bit.ly/1hH0bvn 나 http://bit.ly/1aFq452, 또는 구입하신 서점 책 페이지에 적어주시면 더욱 좋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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