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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생활과여행/물고기가좋다

비 오는 날엔 떠나자! 미꾸라지 잡으러(응?)

by 무한 2011. 7. 13.

며칠간 계속 내리는 비로 인해, 치킨을 먹어도 행복하지 않다. 치킨을 먹어도 행복하지 않다는 건 심각한 문제다. 그건 세로토닌과 아드레날린, 엔도르핀의 분비가 원활하게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는 얘긴데,

그 때문에 '남들은 다 잘 살고 있는 것 같은데, 난 왜 이럴까?'라며 메신저에 등록된 지인들의 대화명을 훑으며 좌절감을 느끼거나, '한 때 알고 지냈던 많은 사람들, 그들과의 관계를 다 내가 망쳐버린 걸까?'라며 시린 마음의 상처를 핥으며 우울에 빠질 위험이 있다.




마음에서 끼익끼익 비명소리가 나거든 잠시 멈춰 서서 윤활유를 좀 뿌리자. 내 자전거도 작년 이후로 체인에 기름칠을 안 했더니, 페달을 굴려 앞으로 나가려 할 때마다 끼익끼익 비명을 질렀다. 그냥 소리만 나는 거면 괜찮은데, 체인과 맞물리는 모든 부속들에 상처가 나고 체인과 부속 모두 마모되었다.

"무한님, 제목에는 '미꾸라지'라고 써있는데, 이거 미꾸라지 얘기 아닌가요?"


미꾸라지 얘기 맞다. 그러니까 내 '윤활유'는 '하고 싶은 일'이고, '하고 싶은 일' 중 '비 맞으며 미꾸라지 잡기'가 있었다는 얘기를 하고 있는 건데, 음, 아무리 생각해도 '미꾸라지 잡기'는 그대에게 겨자씨만한 공감대도 형성하지 못하고 시들 것 같다. 그럼 뭐 어떤가. 내가 하고 싶은 일인데!




이야기를 너무 무겁게 시작했더니 갑자기 또 마음이 추욱, 쳐진다. 이건 '비 오는 날 미꾸라지 잡는 얘기'니 분위기를 바꿔보자.

경기도 파주시 교하읍의 한 수로!

내리는 비에 팬티까지 다 젖으며 '쇼생크 탈출'의 느낌으로 미꾸라지를 잡으려고 했는데, 일산에서 출발할 땐 막 쏟아지던 비가, 교하에 도착하니 그쳤다.

혼자 간 건 아니고, 그저께 발행한 [일산 자전거 코스 '파주 100리길'에는 지금 이게 풍년!]이라는 글에 등장한 K형과 스스로 '자연인'임을 주장하며 요즘 '숲 해설가'교육을 받고 있는 홍박사, 이렇게 두 사람이 함께 했다.




바스락, 소리가 나서 쳐다보니, 으아니 저건,

말.똥.게!

말똥게에 관한 내 트라우마가 궁금한 분들은 '이 글(클릭)'을 읽어보시길 바란다. 새 창을 열어 읽기 귀찮은 분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저 게는 말똥 냄새가 심하게 나는 까닭에 먹을 수 없는 게다. 사람들이 먹지 않는 까닭에 무한번식을 해 개체수도 엄청나게 많다. 그런데 난 저 게가 '참게'인 줄 알고,

'앜ㅋㅋㅋ 노다지야 노다지! 참게를 이렇게 많이 잡다니, 난 이제 부자야!'


라며 손에 쥐가 날 때까지 잡아 집으로 가져왔다. 하지만 지인의 지적으로 저 게는 '참게'가 아니라 '말똥게'임을 알게 되었고, 난 다시 녀석들을 다시 놓아주러 갈 수밖에 없었다.

뭐, 그래도 그 일을 통해 저게 말똥게인 걸 몰랐다면, 이번엔 미꾸라지 채집을 때려 치우고 "참게야 참게!"라며 열심히 잡아왔을 테니, 다행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사진 제목은 'HONG VS WILD'. 물에 들어가 채집을 하는 것은 홍박사와 K형이 담당하기로 결정했고, 홍박사가 먼저 수로의 상황을 파악하러 들어갔다.

"무한님은 채집하러 물에 안 들어가시나요?"


히딩크가 공 차러 경기장에 들어가는 것 봤나? 나는 물 밖에서 '포인트 설정'과 '사진', 그리고 '물고기 담기'를 맡기로 했다. 각각의 특색을 살려서 임무를 정한 것인데, 군인 시절 홍박사는 특공대였고, 나는 부대의 사진촬영과 컴퓨터 작업등을 담당했으며, K형은 취사병이었다.

K형은 취사병이었지만 축구선수였기에 '발힘이 세다'는 이유로 '수풀 발로 차서 고기 몰기'를 맡기로 한 것이다. 아, 잡은 고기를 요리하는 것도 K형이 담당하기로 했다. 이 얼마나 합리적인 임무 분담인가.




개시는 토종붕어!

먹지 않는 것은 잡지 않는다는 원칙에 의해, 작은 사이즈인 위의 녀석은 다시 돌려보냈다.




이게 바로 참게다. 집게발의 털이 보이는가? 참게의 집게발는 말똥게의 집게발보다 작고 털이 나 있다는 특징 외에도, 말똥게 다리에 굵고 긴 털이 있는 것과 달리 참게는 매끈한 다리를 가지고 있으며 다리길이도 더 길다는 특징이 있다.

사진에 보이는 손은 K형의 손인데, K형은 참게를 발견하자 마자 "이게 참게야. 이건 진짜 참게야!"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K형에게도 말똥게로 인한 굵고 깊은 트라우마가 생긴 것 같다.




오셨습니까. 오늘의 주인공 미꾸라지 등장. '미꾸라지'와 '미꾸리'가 다르다는 것에 대해 좀 얘기하고 싶지만, 길게 얘기를 해 봐야,

"끼약! 징그러워요."


라는 반응만 있을 것 같으니,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S라인을 자랑 중인 미꾸라지들.

미꾸라지로 만드는 가장 대표적인 음식인 '추어탕'은 '서울식'과 '남도식'으로 나뉘는데, 서울식은 미꾸라지를 그대로 넣은 '통 추어탕'이고, 남도식은 미꾸라지를 갈아서 넣은 '갈은 추어탕'이라고 한다.

또, 추어탕은 '미꾸라지'나 '미꾸리' 둘 모두로 끓일 수 있는데, 미꾸리가 미꾸라지에 비해 구수한 맛이 더 있다고 한다. 하지만 양식을 할 경우, 추어탕감으로 쓸 수 있는 크기까지 자라는데 미꾸라지는 1년 내외, 미꾸리는 2년 이상이 걸리는 까닭에 요즘은 추어탕의 재료로 거의 미꾸라지를 사용한다고 한다.




불어난 물 때문에 집이 잠겼는지, 물가로 올라와 일광욕을 즐기는 뱀을 한 마리 보았는데 사진 찍을 틈도 주지 않고 도망가 버렸다. 사진은 그 뱀의 식사거리가 될 뻔한 개구리. 산개구리 종류로 보이는데, 알고 있던 산개구리의 색 보다 노랑과 주황이 강한 까닭에 산개구리가 맞는지 확신이 서진 않는다.




보통 족대질을 한 번 하면 위 사진에 보이는 것만큼의 고기들이 잡힌다. 5월 쯤 태어난 것으로 추정되는 붕어들이 많다. 나중에 다시 올 테니 잘 먹고 잘 커 있으라며 놓아줬다. 그 외에 참붕어, 미꾸라지, 각종 수서곤충 등을 계속 볼 수 있었다.




홍박사와 '이 고기의 이름은 무엇인가?'를 두고 내기를 했다. 홍박사는 '피라미'라고 했고, 난 '참붕어'라고 했다. 상품으로는 '원하는 음식 사 주기'를 내걸었는데, 참붕어와 내가 알고 지낸지 16년째고, 현재 우리 집 어항에도 한 마리 살고 있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뭘 먹을 지 고민 좀 해봐야 겠다.




아 깜짝야. '파주의 수로는 모두 말똥게들에게 접수되었다.'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여기 저기 말똥게 천지다. 녀석들은 논두렁에 구멍을 파고 사는 것 같던데, 농사에 지장을 주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곧 올챙이 적 시절을 잊게 될 개구리다.




알을 등에 붙이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암컷'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녀석은 '수컷' 물자라다. 물자라 수컷은 새끼를 돌보는 극진한 부성애로 유명한데, 사진에서처럼 등에 알을 붙이고 다니며 돌본다.

물자라는 저렇게 수컷의 등에 알을 낳아야 하는 까닭에, 많은 암컷들이 수컷에게 대시를 하고 수컷은 그 중 마음에 드는 암컷을 고른다. 솔로부대 남성대원들이 들으면 부러워 할 이야기다.




'수채'라고 불리는 잠자리 유충이다. 좀잠자리형의 수채로 추정되는데, 집에 데려와 부화통에서 기르며 훗날 잠자리가 되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을까 하다가 놓아주었다. 수채 사육에 대해 좀 알아보고 다음 주 쯤에 채집해 와 '잠자리로 변신!'하는 모습을 기록할까 한다.




뒷다리가 나온 올챙이. 자세히 보면 꼬리와 몸통 사이에 작은 다리가 나와 있는 걸 알 수 있다. 크기가 엄청난 까닭에 황소개구리 올챙이라고 생각했는데, 집에 돌아와 황소개구리 올챙이 사진을 보니 그냥 참개구리 올챙이 인 것 같다. 저 녀석들은 크기가 '손가락' 만한데, 황소개구리 올챙이는 '손바닥'만하다.  




채집을 다니며 보기 힘들어 진 대표적인 녀석들이 세 가지 있는데, 송사리, 물방개, 그리고 사진에서 보이는 우렁이다. 예전엔 어느 수로를 가든 수면 가까이서 송사리를 확인할 수 있었는데, 작년엔 송사리를 키우려고 마음먹고 채집을 갔음에도 불구하고 찾을 수 없었다. 물방개 역시 예전에는 족대질을 하면 심심찮게 얼굴을 볼 수 있었는데, 최근에는 모습이 보이질 않는다. 오랜만에 우렁이들을 본 기념으로 모아 놓고 기념촬영을 해 주었다.




달팽이가 비를 피해 높은 곳에 올라가 있다, 비가 그치자 다시 땅으로 내려오고 있다.




수로 채집을 하며 가장 만나고 싶지 않은 녀석, 거머리. 물에 들어가 족대질을 하다보면 종아리가 간질간질 할 때가 있는데, 그 때 종아리를 확인하면 거머리가 붙어 배가 터지도록 피를 빨아 먹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 불상사를 예방하고자 이번 채집에는 K형이 '축구양말'을 지원해 준 까닭에 편하게 채집을 할 수 있었다.




또 말똥게다. 저렇게 지천에 널린 녀석들을, 난 K형과 급조한 나무젓가락으로 도로에서 손에 쥐가 날 때까지 잡았던 것을 생각하니, 웃음 밖에 안 나온다.




귀하신 몸, 물방개 유충. 유충들은 대략 그 모습을 가지고 성충의 모습을 추측할 수 있는데, 물방개 유충은 전혀 추측할 수 없다. 




자, 이렇게 놓아 줄 녀석들은 놓아주고 먹을 녀석들은 준비해 간 통에 담아 집으로 가져오기로 했다. 미꾸라지만 잡아다 추어탕을 끓일 생각이었는데, 붕어매운탕이 먹고 싶다는 K형의 요청으로 손바닥만한 붕어들도 챙겼다.




비 그친 뒤 집으로 돌아가는 달팽이처럼, 궁상이 들어와 앉은 까닭에 집을 나갔던 마음도 이젠 집으로 돌아올 시간.

언젠가
먼 훗날에
저 넓고 거칠은 세상 끝 바다로 갈 거라고

- 패닉, <달팽이> 중에서


아, 혹시 이 글을 읽고 비 오는 날 탐어를 갈 마음이 무럭무럭 자란 분들이 있더라도 되도록 따라하지 말길 권한다. 우리는 잘 아는 곳, 많이 가본 곳, 깊지 않은 곳, 최대 수량이 어느 정도인지 아는 곳을 찾아 간 것이지만 그래도 위험하다.

"다음 뉴스입니다. 지난 12일, 미꾸라지를 잡겠다고 나선 경기도 일산의 세 청년이 폭우로 불어난 물에 휩쓸려 실종되었습니다. 평소 '비 오는 날엔 미꾸라지 잡기가 제 맛이지.'라는 이야기를 자주 했다는 J군은 알고 지내던 K군, H군과 함께..."


이런 뉴스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안 그래도 짧은 인생, 어이 없이 마감하지 않도록 늘 주의하자. K형이 끓이기로 한 '추운탕(추어탕+매운탕)'에 대해서는 기회가 되면 나중에 더 이어서 소개하기로 하고, 비 오는 날 미꾸라지 채집얘기는 여기까지! 무슨 요리를 하든 모두 '군대의 맛'을 떠올리게 하는 K형의 요리에 대해서도 그 때 함께 들여다보자.



▲ 찌뿌둥한 일상에 잠시나마 눈길 가는 이야기가 되었길 바라며, 추천은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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